여행을 오래 즐기는 비법!
[여행이 끝난 후 D+136일]
우리는 몸을 씻듯이 우리의 운명 또한 씻어내야 하고, 삶을 속옷처럼 갈아입어야 한다. 영양분을 섭취하고 잠을 자는 것처럼 삶의 유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위생이라고 부르는, 가치 환산이 불가능한 자긍심 때문이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에서)
이 문장이 잠시 내 안에 머물자 나는 머리를 잘라야겠다 생각했다. 삶을 속옷처럼 갈아 입고 운명을 몸을 씻듯이 씻어내기 위해서는 이 거추장스러운 머리카락부터 없애버려야만 했기 때문이다.
귀밑 3센티 짧은 단발머리. 거울 속의 내 모습이 낯설어서 좋다.
피곤한 아침, 어질러진 집, 바쁜 아이들 등원 준비, 짧은 글쓰기, 긴 청소, 끝이 없는 듯한 아이들 치다꺼리...
이것이 반복되는 일상을 사는 나는 페소아가 되지 못해 고작 똑 단발 하나에 삶을 갈아입길 바라는 평범한 군상이다.
나는 나로 존재하는 것이 피곤하여 나로 존재하지 않는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에서)
오늘 아침 나의 몸과 머리에 낀 뿌연 피로를 끌어안고 잠시 페소아처럼 해볼까 한다. 나로 존재하는 것이 이리도 피곤하니 지금의 나로 존재하지 말아 보자 하고...
이곳은 코스타리카 산 안토니오 해변, 에메랄드 빛 하늘과 그와 비슷한 듯 다른 바다가 펼쳐져 있다. 세상의 모든 바다와 해변이 거기서 거기인 듯 하지만 이곳의 공기와 분위기는 왠지 모르게 다르다. 바다 냄새가 비리지 않고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에 부드러운 바람이 기분 좋게 피부를 스친다. 해변에 있는 바에 앉아 시원한 피냐 콜라다 한잔을 마시니 짜릿한 쾌감이 온몸에 퍼진다. 친구들과의 별거 아닌 수다가 어두워지도록 계속되고 그리운 얼굴들은 별처럼 빛난다. 하루 종일 비키니 차림으로 놀던 우리는 맛있는 파스타를 먹고 또다시 물에 들어간다.
나는 잠시 폐허가 된 집구석에 피로하게 앉아있는 내가 아니라 스물한 살의 내가 되어 본다. 내 생에 최고로 아름다운 풍경과 추억을 안고 있던 코스타리카에 있던 나로...
그때의 행복감이 온몸을 감싼다. 잊혔던 그 날의 감각들이 조금씩 되살아난다.
부조리하고 앙상한 내 방 책상 앞에서, 이름 없고 하찮은 사무원인 나는 쓴다. 글은 내 영혼의 구원이다. 나는 멀리 솟아난 높은 산 위로 가라앉는 불가능한 노을의 색채를 묘사하며 나 자신을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내 석상으로, 삶의 희열을 대신해주는 보상으로, 그리고 내 사도의 손가락을 장식하는 체념의 반지로, 무아지경의 경멸이라는 변치 않는 보석으로 나에게 황금의 옷을 입힌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에서)
페소아가 옳았다. 작고 어수선한 내 방에 앉아 또 다른 내가 되어 글을 쓰다 보니, 나는 어느 순간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 있었다. 그리고 그 날의 내가 지금의 나를 새롭게 물들여 주었다.
방 안에 흩어진 여러 명의 나들, 그 여러 명 중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는 희미한 누군가를 발견했다. "나는 나와 나 사이에 있는, 신이 망각한 빈 공간이다." 나는 나와 나 사이에 있어 보기로 했다. 그냥 나와 나 사이에. 나와 나 사이의 빈 공간에. 신이 망각한 이 공간을 발견할 수 있어서 기뻤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규정하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나의 기분과 행동도 달라지는 것 같다. 어질러진 집에서 매일 반복되는 육아를 하는 피로한 나와 젊음의 생기를 가득 안고 행복한 도전을 계속했던 그 날의 나. 오늘 나는 페소아를 따라 내 안의 여러 나 사이 그 어딘가에 머물러 본다. 무료함과 피로도 조금 사라지고, 깊숙이 숨어 있던 생기가 얼굴을 살짝 내민다.
포르투를 여행할 때 나는 영어와 포르투갈어로 된 페소아의 책 몇 권을 샀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이 원서들을 가끔 펼쳐 보다 최근 한국어로 번역된 책을 사서 보게 되었는데, 덕분에 요즘 페소아를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행지와 관련된 인물의 책을 읽으며 그 인물처럼 살아보는 것!
이것이 바로 여행이 끝난 이후에도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나만의 비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