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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순 Aug 27. 2019

내면의 불에 초점을 맞추는 때

밀을 빵으로 바꿔놓는 불

[여행이 끝난 후 D+105일]

불을 피우고 싶으면 햇빛을 한 곳에 모아야 한다. '신성한 힘'이 세상에 내보인 큰 비밀이 바로 불이다. 단순히 타오르는 불이 아니라, 밀을 빵으로 바꿔놓는 불 말이다. 내면의 불에 초점을 맞추는 때가 왔을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의미를 갖게 된다.
(파울로 코엘료의 '아크라 문서'에서)


처음 산티아고 길을 걷겠다며 여행을 결심했을 때 나에겐 간절한 소망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상처와 갈등의 골이 깊어져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 놓인 부모님에 관한 것이었다.


두 분의 치유와 회복, 그리고 마음의 평화...

내가 바랬던 것은 이것이 전부였다.


기도와 한숨으로 보냈던 작년 겨울은 내게도 어머니에게도 참 길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봄이 오고 우리는 여행을 떠났다. 처음 계획했던 것처럼 사리아(Sarria)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로 향하는 100km 구간의 산티아고 길은 아니었지만 집 문을 박차고 나오자마자 우리들만의 다이내믹한 까미노(camino)가 시작되었다.  


여행을 시작하고 4개월이 지난 지금, 여행의 모든 순간이 비현실적으로 아득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분명해지는 것이 있다. 부모님에 대한 나의 간절한 소망이 불꽃이 되어 이 여행을 이끌었고 결국 그 불이 밀을 빵으로 바꿔놓았다는 것...


어머니는 여행이 끝나고 정신 건강병원을 찾으셨다. 여행을 갔는데 너무 재미가 없고 신이 나지 않아 우울증인 것 같다고 상담을 받으셨다. 묵주기도와 치료와 함께 어머니는 천천히 일상을 회복해 가셨고 마음이 아픈 날 보다 그럭저럭 괜찮은 날들이 점점 늘어갔다. 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도 많아지며 이제 꽤 평범한 부부의 모습을 보였다. 그 평범함이 너무나 감사하고 그럭저럭 괜찮은 날들이 아직 이어지고 있어 또 감사하다.



내면의 불에 초점을 맞추는 때가 왔을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의미를 갖게 된다했던가. 이번 여행은 내가 나의 내면의 불에 초점을 맞추고 제대로 불을 지폈던 손에 꼽을 만한 경험이었다. 기억은 갈수록 희미해져 가지만 그날의 나를 움직였던 내 안의 불꽃은 기억하고 싶다. 그리고 지루하리만큼 평온한 오늘의 일상이 기적임을 기억하고 싶다.


하루하루가 결코 같지 않음을 알아볼 수 있게 해 주소서. 날마다 다른 기적이 일어나고 있기에 우리가 계속 숨 쉬고 꿈꾸며 태양 아래 걸을 수 있는 것임을 알게 하소서.
(파울로 코엘료의 '아크라 문서'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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