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준 응급의학과 1회 전문의 인터뷰

2019 대한 응급의학회 30주년 기념사업 04

"처음에 혼자서 2년 정도 하다 보니까,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제가 처음 들어왔을 때는 젊은 나이에 들어왔고.
같이 근무했던 교수들이나 과장들은 나보다 나이가 다 많았습니다.
그 당시에 있던 교수나 과장들은 응급의학과 전공의를 보지도 못 했고.
그런 사람들이랑 처음 일했을 때는 쟤는 도대체 뭐지? 뭐하는 애지?라는 무지함.
그런 문제 때문에 갈등을 빚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응급의학과 스텝을 늘려달라고 협상을 했는데 안 돼서,
일단 사표를 쓰고 한 번 나갔죠.
그러고 나니 다시 협상을 하자고 해서
김성중 선생님하고 최성욱 선생님을 저희 병원에 같이.
그때 98년 당시에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3명이 근무한다는 건 대단한 거였죠.
제가 3년 동안 혼자 있으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했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파격적으로 세 명을 구해줬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응급의학과 의사보다는 의사라는 게 대체 무엇인가 생각을 해봤습니다.
의사라는 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아픈 사람을
안 아프게 해주는 게 의사라는 생각을 많이 했고.
특히 응급의학과 의사는 가장 짧은 시간 내에 환자의 고통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의사 중에 최고의 의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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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김옥준

응급의학과 전문의 번호 : 35번

수련병원 : 연세대학교 신촌세브란스병원

현근무지 : 차의과학대학교 분당차병원




Q 신촌 세브란스 맨 처음 들어가셨을 때 최옥경 선생님이랑 두 분이서 1회셨던 거고 공중 보건 의사를 하시다가 신촌 세브란스를 들어가신 거잖아요. 응급의학과라는 것을 어떻게 아셨나요?


A 88년도에 인턴을 끝내고 공중 보건의를 처음 갔었는데, 그때 의료원이라든지 보건소에서 환자를 진료하다 보니까, 어떤 1차적인 진료에 대한 내 전문 지식의 한계를 많이 느꼈어요. 그래서 공중 보건의를 끝내고 나서 좀 더 전문화된 1차적인 진료를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생각이 좀 있어서 처음에는 가정의학과도 생각을 했는데.


일단 원주에 있는 안무업 선생님 얘기를 들었죠. 원주 세브란스 병원이 응급의학과는 지원자가 다 찬 상태였고. 선생님이 신촌에 가서 상의를 해보라고 하셔서, 신촌에 와서 교수님 얘기를 듣고 처음 시작했던 게 계기가 된 것 같고요. 처음에 저도 응급의학과가 확실히 무슨 일을 하는 건지 개념이 없었고, 그냥 기대 반 두려움 반 정도로 해서 시작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Q 공중 보건의는 어디에서 계셨습니까?


A 그때는 삼척의료원에도 있었고, 보건소는 근덕 보건소에서 공중보건의 생활을 좀 했습니다. 그때는 알바라는 게 있어서, 밤에 응급실에서 진료를 하다 보니까 상당히 모르는 게 많더라고요.




Q 응급실 알바 얼마 받았나요?


A 그때 제가 중위였는데요. 중위 월급이 19만 6천7백 원 정도 됐습니다. 근데 어느 병원에 가서 하룻밤 당직을 서니까 20만 원을 주더라고요. 그때 일반 의원에 있는 선생님이 자기 서울 간다고 외래를 좀 봐달라고 해서, 리피트 처방으로 하루에 20만 원 받았던 기억이 나는데. 그래서 중위 월급 하고는 차이가 너무 나고, 나중에 전문의가 되면 나도 저렇게 받아야 되지 않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했었습니다.




Q 그러면 그때 응급실 아르바이트하면서 응급의학과는 좀 비싼 월급을 받는 과다라는 생각을 하셨군요?


A 그렇죠. 입원 환자 이런 것도 없이, 단 시간 내에 자기 시간에 가서 딱 일만 하면 상당히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




Q 야간 아르바이트하시면서 어떤 부분이 좀 아쉽던가요?


A 그때는 제가 인턴을 하고 갔기 때문에, 1차적인 진료를 하리라고 생각을 했는데 갑자기 중환이 왔을 때는 혼자 있다 보니까 난감한 일도 많이 벌어지고, 그래서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다행히 의료사고가 안 나고 제대를 했기에 망정이지. 제 생각에 그때는 지식도 없이 했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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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어떻게 보면 처음 신촌 세브란스 들어가셨을 때, 최초로 한 년차에 두 명이 들어온 의국이 되네요. 최옥경 선생님 어땠습니까 처음 만나 뵈었을 때?


A 제가 1년 차를 시작했을 때, 저보다 2개월 먼저 시작해서 상당히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다른 과에 전혀 뒤지지 않게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고 굉장히 놀랬습니다.




Q 2개월 먼저 시작했으니까 어차피 같이 일했던 시기는 없었겠네요. 스케줄은 어떻게 근무를 하셨나요?


A 처음에는 김승호 선생님이 파견을 좀 나가서 타과 하고 많은 관계를 가지고 배워야 한다고 하면서, 응급실에는 한 명을 근무시키고 다른 한 명은 파견을 위주로 스케줄을 짰습니다. 제 생각에는 처음 1년 동안 거의 집엔 못 간 것 같아요. 제가 평일 날 월요일부터 거의 주말까지는 병원에 있다가, 주말에 한 번 집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낮에는 김승호 선생님하고 틴티넬리 북리딩 하고 저널을 교수랑 단 둘이 마주보고 하는 게 굉장히 부담스럽고, 워낙 깐깐한 교수님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던 터라. 아침 회진 준비라든지 여러 가지 그런 면에 있어서 굉장히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Q 그럼 교수님하고 조그마한 방에서 단 둘이 저널을 보신 건가요?


A 네, 지금처럼 단 둘이서 마주 앉아 틴티넬리 북 리뷰를 하면, 저는 밤새 그걸 읽고 발표를 해야 하기 때문에 진료보다는 그게 더 무서웠던 기억이 납니다.




Q 그러면 컨퍼런스 하면서 야단도 많이 맞으셨나요?


A 그렇죠. 워낙 성격이 클래식하고 대충은 용납이 안 되는 성격이기 때문에 아침 회진 시간이 제일 무서웠습니다. 예를 들면, 아침에 회진 돌다가 환자가 줄이 왼쪽에 있는데 오른쪽에 껴있다든지, 여러 가지 지시하는 것을 봤을 때는 배울 점도 있지만 저 정도까지 해야 되나라는 생각도 들면서.


특히 환자를 전원 보냈을 때, 네가 전원 간 병원을 가봤냐, 뭘 믿고 전원을 시키냐, 굉장히 그런 것을 야단을 많이 쳤고. 전원 소견서를 쓸 때도 병원의 얼굴인데, 다른 병원에서 전원 소견서를 보면 그 병원의 퀄리티를 알 수 있으니까 전원 소견서 쓸 때도 확실하게 잘 써라. 뭐 하여튼 여러 가지 배울 점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Q 어떻게 보면, 의국 선배가 없는 상황이잖습니까. 다른 과랑 컨택이 좀 어려우셨을 것 같은데요?


A 그렇죠. 처음에 셋업 하는 과 중에 하나였고. 다른 과는 뭐 몇십 년 동안 전통적으로 계속 내려왔던 과인데. 이미 자기 과에 대한 영역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래서 그쪽 과에서 오더라든지 프로시저 같은 거에 대해서는 굉장히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신경외과 인투베이션을 한다든지, 내과 환자 오더를 내면, 왜 이런 오더를 냈냐면서 다 없애 버리고. 그런 일들이 좀 많이 발생해서 타과하고의 갈등이 심했습니다 처음에.


그럼 과연 응급의학과라는 게 응급실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 생각해봤습니다. 응급실이 하나의 팀으로서 역할해야 하니 일단 구성원들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간호사들이랑 팀워크를 통해 환자에 대해 중점적으로 얘기를 하면서, 다른 과 오더보다는 그래도 응급의학과 오더를 받는 편을 만들기 위해서 굉장히 열심히 회식도 하고 교육도 하고 인간적으로 접근을 해서 응급실에서의 주인은 응급의학과다라는 것을 인식시키고. 다른 과에서 와서 큰소리치더라도 일단 응급실에서의 주인 의식을 가지고. 다른 과와도 잘 지내면서도 우리 과의 주인 의식을 찾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었던 것 같습니다.




Q 어느 과랑 많이 부딪혔었나요?


A 특히 내과인 것 같아요. 내과가 지금은 내과 하겠다는 전공의들이 응급의학과를 많이 해서 여러 가지 퀄리티가 예전보다는 떨어졌지만, 옛날에 내과 의사들은 자기네 자존심을 가지고 많이 왔던 과이기 때문에. 응급실에서 환자를 볼 때 오더 내는 것에 대한 그런 거라든지, 많이 갈등을 가졌던 것 같고요.




Q 김승호 선생님께서 응급의학과는 무슨 과라고 설명을 해주셨나요?


A 일단은 초창기이기 때문에, 교육 프로그램이나 그런 게 크게 없었고. 처음 시작하는 입장에서 서로 동료 의식을 가지고 개척해 나가면서 만들어가자라는 생각을 많이 하셨던 것 같습니다.




Q 최옥경 선생님은 잘 왔다 그러시던가요?


A 그전에 만났던 기억은 잘 안 나고. 5월에 처음 만났는데, 상당히 열심히 일을 하고 있어서. 저보다도 더 먼저 왔으니 힘들었겠죠. 두 달 동안 타 과랑 자기 과에 대한 것을 가지려고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저는 조금 더 수월했던 것 같습니다.




Q 그럼 아랫년차를 다음 해에 뽑으셨잖습니까. 누구누구였죠?


A 구홍두 선생님, 김승환 선생님, 그리고 박인철 선생님.




Q 그럼 후배들을 응급의학과 하라고 꼬시셨던 겁니까?


A 그때는 이제 응급의학과 어플라이를 지금처럼 많이 하는 게 아녔으니까. 인턴 중에 도는 것을 보고 응급의학과를 할 수 있게끔 밥도 사준다든지. 프로시저도 보여주면서 프라이드도 가지게 하면서. 어떻게 하게끔.




Q 주로 뭐라고 포섭을 하셨습니까?


A 하여튼 응급의학과가 초창기이기 때문에 나중에 일단은 나중에 끝나고 나서 모 아니면 도 일수도 있지만, 초창기 멤버로서 나중에 티오도 많이 나올 거고. 그런 방향으로 얘기했던 것 같습니다. 응급의학과에서 가장 중요한 게 인력인 것 같아요. 그래서 후배들을 많이 끌어드리도록 의국장 하면서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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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수련을 마치시고, 수료를 하셨는데 전문의 시험 없었지 않습니까. 느낌이 어떠셨어요?


A 그때 전공의를 하면서 기억에 남는 거라던지 얘기를 해보면, 지금은 학회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지만. 그때는 초창기 봄 학회를 끝내면 가을 학회를 준비하는 게 대게 교실 단위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초창기 위원들께 편지를 붙인다던지 그런 일들을 하고. 제가 전공의 때 우리 교수님이 동물 실험을 해서 논문을 발표하라고 해서 쥐를 100마리 정도 잡은 기억이 있고, 최옥경 선생님은 돼지를 잡은 기억이 있거든요. 그런 것들이 기억에 남고요.


특히 우리 초창기 때 열 명이 학회가 끝나고 모여서 앞으로 전문의 제도도 없는 암울한 시기를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자주 만나서 술도 많이 먹고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서 고민을 상당히 많이 했습니다. 제가 95년도에 4년 차 끝나고 시험을 봐야 하는데, 전문의가 없었습니다. 전문의가 없이 95년도에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분당차병원에 윗선들이랑 연락이 돼서 오게 됐는데. 처음에 제가 95년도에 분당차병원에 왔을 때는 사람들이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11월에 보드 시험을 간다는 얘기를 했을 때, 다른 과 전문의들이 저한테 와서 너 아직도 보드도 안 땄냐라는 질문을 했을 때, 참 난감하기도 했지만. 그때는 참 전문의도 없이 처음에 나와서 일한다는 것 자체가 타과하고 관계에서 난감했던 기억이 납니다.




Q 분당차병원도 어떻게 보면 응급의학과가 없다가 선생님이 오셔서 응급의학과를 세팅한 것이지 않습니까. 응급의학과가 없다가 처음으로 만들게 되면, 병원이 응급의학과를 보는 인식은 어땠나요?


A 그때는 아마 초창기에 응급의학과를 인식해서 병원에서 뽑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요. 그때는 응급실에 책임 지울 사람을 생각하다가 외과 선생을 응급실장으로 앉힐 생각이 있었나 봐요. 근데 그때 김승환 선생님하고 분당차병원에 먼저 오신 선생님하고 연결이 돼서 응급의학과가 처음 생겼으니까 가서 세팅을 좀 해봐라. 제 생각에도 그때는 대학병원의 역할보다는 처음에 오픈하는 병원에 가서 응급의학과를 새로 시작하면, 어떤 역할이라든지 존재감이 좀 더 발휘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서, 아무것도 모르고 95년도에 처음으로 오게 됐습니다.


처음에 왔을 때는 이 병원이 인턴, 레지던트도 없는 병원이라서 굉장히 황당해 했습니다. 그래서 전공의 때 보다도 인력이 없는 상황에서 응급실을 맡다 보니까, 일단은 GP(일반의)를 구해서 같이 일을 하고. 그래서 응급의학과가 처음에 세팅을 하기는 다른 과에 비해서 훨씬 수월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지금도 종합 병원에서는 웬만한 다른 과 스텝들이 응급실 환자를 좀 안 보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대학 병원보다는 응급실에 대한 의존도가 좀 높고. 그래서 응급의학과로서 일하는 면에서는 대학병원보다 좀 더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지 않았나. 그래서 응급의학과를 셋업 하는 데 있어서 대학 병원보다는 훨씬 빨리 셋업이 된 것 같고요.


응급의학과를 계속 혼자서 하다 보니까 다른 과에서 전공의를 뽑기 시작하더라고요. 제 생각에는 그때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뽑아서 좀 높은 퀄리티로 응급실을 돌릴까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래도 다른 과와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서 97년도에 전공의를 뽑았죠. 다른 과와 동등한 위치에서 응급의학과 교실을 만들어서 좀 발전시킬 생각으로, 그때 응급의학과 전공의를 신청을 해서 처음으로 저희가 응급의학과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Q 23년을 계셨던 거네요. 다른 데 가고 싶지 않으셨어요 선생님?


A 처음에 95년도에 왔을 때 혼자서 2년 정도 하다 보니까,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제가 처음 들어왔을 때는 37, 38 젊은 나이에 들어왔고. 같이 근무했던 교수들이나 과장들은 나보다 나이가 다 많았습니다. 그 당시에 있던 교수나 과장들은 응급의학과 전공의를 보지도 못 했고. 그런 사람들이랑 처음 일했을 때는 “쟤는 도대체 뭐지? 뭐하는 애지?”라는 무지함 같은. 그런 문제 때문에 갈등을 빚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그래서 처음에는 다른 과와 갈등을 해결해 보려고 노력을 했던 것 중 하나는, 일단은 제 생각에 타 과의 관계에서의 어떤 적을 만들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손해를 좀 보더라도 타과의 의견을 많이 받아가면서 보직자와의 관계를 유지해가면서 응급의학과를 운영을 하는 게 제가 앞으로 병원에 오래 있을만한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고요.


그다음에 아까 얘기한 2년 정도 일하고 나니까, 번아웃(Burnout)이 오더라고. 그때는 응급의학과를 더 뽑는 병원을 찾아보려고 그만둘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그만두려고 병원에다 말을 했는데, 병원에서는 기존에 있는 진료부장이라든지 보직자들이 별로 도와줄 생각도 없고, 그냥 너는 밤에나 근무하고 낮에는 우리들이 지킬 테니 해보라고 해서. 그게 가능한지. 굉장히 회의감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때 협상을 한 게 응급의학과 스텝을 두, 세명으로 하면 계속해서 해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속 협상을 했는데 안 돼서, 일단 사표를 쓰고 한 번 나갔죠. 그러고 나니 다시 협상을 하자고 해서 김성중 선생님하고 최성욱 선생님을 저희 병원에 같이. 그때 98년 당시에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3명이 근무한다는 건 대단한 거였죠. 그때도 병원 측에서는 제가 3년 동안 혼자 있으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했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파격적으로 세 명을 알아서 구해줬다고 생각합니다.




Q 다른 곳으로 한 번 옮겨 봤으면 좋겠지 않을까 이런 생각 안 해 보셨나요?


A 일단은 얼떨결에 종합병원에 와서 생활을 했는데, 97년도에 학교가 되면서, 나름대로 전공의들도 늘어났고. 특히 학생들이 응급의학과 실습을 돌 때 응급의학과에 대한 개념도 가르쳐주고 하면서 보람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때도 다른 병원에서 응급의학과를 많이 뽑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권역 센터가 되고 나서부터 응급의학과가 그렇게 생겼지만. 그때는 이제 다른 병원의 대학이라든지 티오도 많지 않았고. 어차피 분당차병원도 대학병원이 됐기 때문에 나름대로 보람을 갖고 후배들을 양성하는 느낌으로 해서 했습니다.


제가 그래서 응급의학과를 지원하는 애들한테는 2가지를 물어봐요. 일단 집에 돈이 많냐, 아니면 부인이 돈을 버냐. 너는 취업반을 할 거냐, 진학반을 할 거냐 물어보는데. 그 당시 제 와이프도 심장 내과 의사지만, 어떻게 보면 재정적으로 문제가 없어서 지금까지 제가 다른 병원에 한 눈 안 팔고, 28년 동안 한 병원에 있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Q 언제까지 당직을 서셨습니까?


A 제가 초창기에는 응급의학과는 밤에 있는 의사라고만 생각을 해서, 그때 진료 부장도 저한테 “난 낮에만 근무할 테니 밤에는 네가 나와라.” 이런 식으로 얘기를 했던 시절입니다. 그때 초창기에 3명 전문의 시작했을 때도 당직을 24시간 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응급의학과가 제일 힘들 때가 전문의 3, 4명으로 24시간을 돌아가는 체제일 때 같습니다.


그래서 그때 지역 센터 같은 경우에는 24시간 상시 전문의가 상주를 하는 법이 있기 때문에 그것도 지켜야 하고. 제 생각에는 권역 센터가 되고 난 그때부터 2013년도까지는 계속 당직을 같이 나눠서 하면서 돌았고요. 그래서 권역센터 되고 나서 인력이 전문의가 7, 8명 되고, 그때부터는 당직을 좀 그만두게 됐습니다.




Q 몇 살까지 당직을 설 수 있다고 보십니까?


A 제가 생각해보면, 한 54살까지 선 것 같습니다. 그래서 55세까지는 서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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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초창기 전국에 다 합쳐 열 분이 이렇게 모여서 시작하셨고, 지금은 (전문의가) 2000명이 됐습니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응급의료가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 하는 꿈이 있으셨을 텐데, 지금 얼마나 왔을까요?


A 초창기 때는 10명이서 이 과가 과연 우리나라에 존재할 수 있는 과인지 굉장히 무서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뭣도 모르고 시작했을 수도 있는데, 일단은 지금 상황을 보면 저희는 그때 미국 시스템을 보고 많이 공부를 했을 땐데. 그때는 미국에서는 응급의학과 의사가 응급병동 당직처럼, 일단 파트타임으로 해서 코디네이터가 있으면서 각 병원에 인력을 뿌려주는 시스템이 많이 되어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앞으로 응급의학과 의사가 늘어나면 한 병원이랑 계약을 통해서 이런 시절이 올 것 같은 생각이 들었는데요.


지금 생각하기에는 응급학과가 5년 전까지만 해도 각 병원의 티오라든지 관해서는 굉장히 어려웠던 시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보면 응급의학과의 발전은 어떤 시스템, 특히 우리 보건복지부라든지 여러 가지 의료 수가 체계에 따라서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도 그런 응급의료 체계 공적인 역할을 봐서는 다른 과에 비해서 향후에 더 발전을 할 수 있는 과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다 완성이 됐다고 보기는 어렵고, 권역 센터를 기점으로 해서 응급의학과의 위상이라든지 할 일이 점점 더 늘어나고 책임감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앞으로 나머지 절반을 채우기 위해서 뭘 해야 하나요 후배들이?


A 일단은 수가라든지 여라 가지 복지 정책에 관해서 공공 의료 기관이라는 생각을 가지고요. 자기가 좀 더 희생을 하더라도 어떻게 보면 환자와의 공감이라든지 특히 타 과와의 소통에 있어서 발전을 해서 나름대로 응급의학과의 주인 의식을 갖도록 열심히 노력을 해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과로 발전을 했으면 합니다.




Q 지금 여기 응급의학과는 병원과 보직 선생님들한테 인정을 받고 있습니까?


A 제 생각에는 제가 병원에 오래 있다 보니까, 응급의학과가 결국은 시간이 좀 해결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초창기 때 종합 병원에 왔고 그다음에 여러 가지 활동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학회 활동을 제가 그동안에 많이 못 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처음에 종합 병원이 되고 인력도 없는 상태에서 이 학회 일 자체를 하기가 부담스러워서, 여러 가지 오퍼가 왔기는 했지만, 그래도 제가 응급의학과 이 병원에서 존재감이 있어야지 대외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서요. 병원에서 인정을 받도록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병원에서도 어느 정도 인식을 가져서요, 오래 있다 보니까 혁신 실장이라든지 그런 역할들을 하면서 병원의 중책을 좀 맡고. 그러다 보니까 지금은 오히려 타 과에서 응급센터가 갑질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속으로는 굉장히 뿌듯하고.




Q 시간이 흘러 올해 들어온 1년 차한테 뭐라고 설명해주셨습니까? 우리 응급의학과는 이렇다.


A 우리 응급의학과는 인턴들이 돌면 감을 잡는데요. 다른 과들이 특히 전공의 80시간 때문에, 응급실에 대한 역할이라든지 그런 게 축소가 됐고. 응급실에서 네가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는 것은 할 수 있고, 어떻게 보면 다른 과의 여러 가지 소통이 안 되거나 문제가 있을 때는 응급의학과가 주도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 이렇게 설명하죠.




Q 다시 하라고 해도 응급의학과를 하시겠습니까?


A 저는 사실 처음에는 응급의학과 의사보다는 의사라는 게 대체 무엇인가 생각을 해봤습니다. 의사라는 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아픈 사람을 안 아프게 해주는 게 의사라는 생각을 많이 했고. 특히 응급의학과 의사는 가장 짧은 시간 내에 환자의 고통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의사 중에 최고의 의사라고 생각합니다.




Q 응급의학과의 장점과 단점을 하나씩 꼽아주시죠.


A 응급의학과는 가장 짧은 시간 내에 정확한 진단을 내려서 환자를 안정화시키는 데 큰 매력을 느끼는 과입니다. 단점이라고 하면 인력적인 문제가 가장 큰 문제인데요. 초창기 때는 인력이 없어서. 주말 근무를 하는 것에 있어서 다른 과에서 일반 당직 의사처럼 취급하는 게 자존심 상하고 그랬는데, 최근에 응급의학과에서 보면 오히려 주말이나 밤 근무하는 게 장점이 되지 않았나 합니다. 왜냐하면 인력이 늘어나다 보니까 자기 시간만 확실히 커버를 하고 나머지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특히 다른 과 같은 경우는 입원 환자를 시킨다든지 하면 24시간 환자 콜 받느라고 힘들어하는 것을 볼 때는 응급의학과의 단점이 장점이 됐기 때문에, 상당히 좋은 과라고 생각이 듭니다.




Q 응급의학의 전문성이 뭘까요?


A 응급의학 전문성은 다양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간호사들이 갈 수 있는 영역이 굉장히 다양하잖습니까. 진료도 볼 수 있고 여러 행정도 볼 수 있는 그렇기 때문에 다른 과 같은 경우에는 자기 과에 대한 것들만 할 수 있는데, 응급의학과에서는 진료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고, 스페셜한 것은 없더라도, 환자를 진료할 수 있으면, 웬만한 환자들은 진료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들고요. 특히 또 응급실에서 응급의학과의 장점은 그런 진료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응급의료체계라든지 행정이라든지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이 듭니다.




Q 분당차병원에서 전문의도 없이 독수리 오형제 느낌으로 고생을 많이 하셨다던데,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


A 이제 분당차병원에 처음 왔을 때 인턴 레지던트도 없이 GP를 데리고 근무했을 때 느낀 건데요. 다른 과 전문의들이 다 퇴근했을 때 특히 밤에 그런 입원 병동 환자 문제가 심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아마 내가 밤에 없으면 인투베이션은 누가 할 것이며 이 중환 문제가 생겼을 때는 어떻게 케어할 수 있을지가 상당히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아마 그 시절에는 퇴근을 거의 못 했던 것 같고요. 그래서 초창기 응급실뿐만 아니라 각 병동의 콜을 받으면서, 간호사들이나 환자들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나타나서 도와줄 수 있는 그런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서, 항상 5분 대기조 느낌으로 일을 해왔던 것 같습니다.




Q 대한민국 응급실 체계를 지금 1기 선배들이 다 잡아 놓으셨다고 생각을 하시나요?


A 아니죠. 제가 보기에는 초창기 멤버 선생님들은 인력이 너무 없었기 때문에, 각 병원에서 환자 치료하는 데 굉장히 힘을 많이 썼던 것 같습니다. 그 밑에 훌륭한 후배들이 오면서 여러 가지 학회라든지 복지부 관계라든지 그런 일들을 많이 하면서 진료적인 것뿐만 아니라 그런 면에서도 많이 발전을 이뤄 왔다고 생각이 들고요. 후배들이 저희들보다 훌륭해서 이렇게 발전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Q 타 과들 보다 선배님들이 없잖아요. 장단점이 있나요?


A 처음 응급의학과 시작하면서 4년 동안 의국장 하면서, 과장님한테 보고라든지 회진 준비 어려움이라든지 그리고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외로움과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점들이 힘들었고. 대신에 윗년차들한테 잔소리는 안 들었습니다. 대신에 교수님한테 직접 들었던 게 장점 아니면 단점이라고 생각하고요. 처음에 혼자 시작하고 한 두 명씩 늘어나면서 인력적인 문제가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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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의학과 1기 22명의 개척자들, 그들의 이야기 들어보기 [인터뷰 모음 영상]

https://youtu.be/kUyoqRTj1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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