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홍두 응급의학과 1회 전문의 인터뷰

2019 대한 응급의학회 30주년 기념사업 05

"우리 1년 차가 OS한테 한 번 맞은 적이 있어요.
그래서 OS 의국에 찾아갔죠. OS 의국장이 쌍소리 막 하고
그러다가 거기 넌킴들이 들어오면서,
나한테 웬일로 오셨냐고 인사를 하기 시작했거든요.
그러니까 의국장 인상이 싹 바뀌더니,
나를 OS 골방에 데리고 들어가서. 그건 아니고 어쩌고 저쩌고.
자기도 내가 나이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고,
난 2년 차고 자긴 4년 차고 그러니까. 난 아무 말도 안 했고.
그런 거로 해서 조금씩 풀면 되는 거니까. 밑에만 손 안 대면."


"응급의학과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자기가 좋아서 일을 하면,
다 원장처럼 대접받을 수 있거든요.
근데 하기 싫어서 일하면 정말 끝까지 전문의가 돼서도
레지던트처럼 취급당할 수도 있고.
시간도 많은 과이니까, 쉬는 동안에 체력 보충 잘하고
그러면 아주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과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응급의학과는 할 게 되게 많은 과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해볼 수 있는데 아직 못 하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잘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고.
어떤 사람은 실제로 실용적인 부분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많을 거고.
응급의학을 하는 사람이 자기가 제일 관심 있는 분야나 그런 것도
쉽게 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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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구홍두

응급의학과 전문의 번호 : 37번

수련병원 : 연세대학교 신촌세브란스병원

현근무지 : 제주한라병원




Q 학생 때 응급의학과를 알고 계셨었나요? 언제 처음 응급의학과를 알게 되셨습니까?


A 졸업하고 군대를 갔다 오고 나서. 졸업하고 군대를 바로 갔으니까. 그리고 인턴을 할 때, 그때 장석준 선생이랑. 장석준 선생하고 나는 학교를 같이 다녔기 때문에. 하면서 장석준 선생이 혼자잖아요, 심심하니까 늘 찾아왔어요. 인턴하고 하면 무슨과 하냐 자주 물어 오다가, 어느 날 제안이 와서 “그냥 하지 뭐.” 그렇게 됐죠. 그리고 그때는 과 자체가 형성이 안 되어 있으니까, 거기서 말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요.




Q 그러면 군대 갔다 오고 인턴 하실 때까지 응급의학과가 뭔지를 모르셨겠네요?


A 그렇죠, 응급의학과가 뭔지에 대한 인식이 없었죠.




Q 장석준 선생님이 그럼 응급의학과를 하면서, 응급의학과가 뭐라고 얘기를 하시던가요?


A 별 이야기 없었어요 그때는.




Q 그래도 하라고 권유를 했을 때는, 이런 과니까 해라 라던지?


A 근데 장석준 선생이 처음 시작할 때, 재밌잖아요 자기는. 외국도 다니고 프랑스 이런데 구경도 다니고. 자기 특권이니까 그게. 그러니까 재미있다는 거죠. 얼마나 힘들지 이런 것은 본인도 모르고 하는 상황이고 그러니까. 요즘이야 응급의학과가 응급실을 다 본다고 하지만, 그 당시 사실 한 명이 응급의학과 볼 생각했었겠어요? 그냥 상황을 컨트롤해주는 정도로 생각했었으니까. 인턴 하면서 보니까, 의사들 보면 누가 멋있어 보이나 이런 거 하면, 대부분 학생 때는 GS(일반외과), 터프한 거 되게 좋아하거든요. 그렇게 하고 싶은데, 막상 응급의학과라는 데가 새로 생겼고 멋있게 보이니까.




Q (그럼 장석준 선생님이) 멋있어 보이시던가요?


A 멋있게 보였죠, 인턴 때.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인턴을 들어왔잖아요. 할 줄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까 겨우 배웠겠지만. 배운 적 없는 인투베이션을 했거든요. 그러니까 장석준 선생님이 아마, 이걸 재밌어 하나 보다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Q 장석준 선생님의 권유로 그럼 응급의학과에?


A 그렇죠. 그리고 장석준 선생님이 먼저 그렇게 얘기하고 나서, 김옥준 선생이 장석준 선생하고 같이 합작해서 설득을 하고.




Q 응급의학과를 결정하신 게 몇 월달이세요? 왜냐면 제가 김승환 선생님한테 듣고 온 이야기가 있거든요.


A 원래는 다른 과를 하고 싶었는데, 1번 지목은 일반외과(GS)였죠. 그 당시에 GS가 안 되는 경우에 뭘 생각했을까 했을 때, 그때 참 용감하게 요즘 유행하는 방사선과. 그다음에 재활의학과 이런 것을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방사선 과도 내가 어플라이를 한 번 넣어 봤고. 근데 별로 뭐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서. 당시 방사선과 참 인기 없었는데.




Q 2 지망 1순위셨군요? 응급의학과는?


A 아니요, 사실은 응급의학과 어플라이는 안 하고 있었어요. 안 하고 있었는데.




Q 김승환 선생님은 본인이 아는 친구하고 둘이서 응급의학과를 하려고 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와서 지원을 했다더라 하시던데요?


A 그러니까 다른 과 지원을 이렇게 쭉 하고, 거의 마감날 끝이죠. 그냥 하라고 이야기가 들어왔어요.




Q 지원하실 당시에 킴, 넌킴 티오도 아직 결정이 안 되어 있어서, 신촌이 뽑을지 말지도 몰랐었던 상황이라고 얘기를 들었어요.


A 그때는 별로 그런 거 상관을 안 하고 어플라이를 했죠.




Q 최옥경 선생님이나 김옥준 선생님이 아랫년차가 들어오게 되니까, 되게 좋아하셨겠어요?


A 뭐 좋아했겠어요(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되게 껄끄럽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어요. 최옥경 선생님 같은 경우는 내가 나이가 더 많으니까. 사실 그렇잖아요.




Q 신촌은 연차 간의 호칭을 어떻게 합니까?


A 그냥 선생님.




Q 서로 존댓말이요?


A 보통 윗년차가 아랫년차한테 반말을 하죠.




Q 나이랑 상관없이요? 세브란스는 원래 그랬었나요?


A 다른 병원도 다 비슷하지 않나요? 나이 존중해주는 과가 있었을까? 별로 없었을 것 같은데. 그냥 말 놓기가 애매하면 ‘구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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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3월에 응급실 첫 근무 하실 때 이야기를 좀 듣고 싶어요. 응급의학과 레지던트가 돼서 첫날 근무하실 때 어땠습니까? 100일 당직이 있었나요?


A 없는 걸로 아는데.




Q 그럼 김승환 선생님하고 어떻게 근무를 하셨어요?


A 한 번도 사실은 안 만나죠. 둘이서 24시간을 맞교대를 했었으니까. 근무에 아주 충실했으면 둘이서 전혀 모르는 사이가 될 수도 있는 그런 시스템이니까.




Q 그럼 2년 차 때부터는 같이 근무를 합니까?


A 아니요. 그때도 따로따로 하는데, 2년 차가 올라가면 우리 밑에도 생기고 하면서 로테이션에 좀 숨이 트이면, 같이 뭔가 할 일이 생길 수도 있는 거죠. 매번 2년 차도 계속 당직 서는 게 아니니까. 근데 어차피 교대하면서 만나야 되고, 그때 처음 시작할 때는 할 일이 워낙 많아서. 그때는 김승호 선생님이 응급실 장부라는 것을 쓰게 했거든요. 그 당시에 모든 과들이 가지고 있는 큰 파일에다가 그걸 다 쓰고. 그 당시에 첫 컴퓨터 같은 게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것을 다 엑셀로 입력하게 했었어요. 그럼 보통 집에 잘 못 가죠.




Q 하루에 몇 명 정도 옵니까 신촌 응급실에?


A 120명, 130명. 그럼 그것을 다 깨알같이 손으로 적고 하나씩 다 입력하고, 내원 시간부터 시작해서 진단명 처치결과 등 이런거죠.




Q 근무가 끝나도 집에 잘 못 가셨겠네요?


A 뭐 응급실 뒤에 방 하나를 마련해 놓고 빨리 하는 사람은 빨리 하고. 아니면 보통 해달라고.




Q 뒷방은 당직실입니까? 조그만했나요?


A 그냥 책상 하나 들어가 있고 침대하나 있고 그정도 크기였죠.




Q 보통 아침에 컨퍼런스를 합니까?


A 그 전날 당직 보고를 먼저 하고요. 그래도 우리는 당직 보고가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아. 내가 그 당시에 다른 병원이나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그걸 일일이 다 당직 보고를 하더라고 모든 환자를. 우리는 자기가 특이하다고 생각하는 것. 왜냐면 난 이게 특이해서 이걸 얘기하면, 거의 다 이야기가 되는 게, 김승호 선생님이 환자들을 다 조금씩은 물어봐요. 그럼 결국 다 그걸 하게 되지만, 그나마 내가 마음먹고 정리해야 하는 것들은 조금 적으니까.




Q 최옥경 선생님이나 김옥준 선생님은 김승호 선생님하고 단 둘이 앉아서 컨퍼런스 하는 게 그렇게 스트레스였다고 하더라고요?


A 이게 재밌는데. 김옥준 선생님은 정말 그 이야기를 많이 하셨죠. 우리 들어오고 나서 컨퍼런스 하는 방에 절대 먼저 안 들어가려고 했죠. 시간을 두고 조금 있다가 입장을 해서, 좀 편안한 자리에 앉으려고. 최옥경 선생은 김승호 선생님 만나는 거 되게 좋아했고. 김옥준 선생님은 어쨌든 안 만나려고 했었고. 우리야 뭐, 윗사람들이 보고 하고 하니까 뒤에서 그냥 쳐다보고 있으면 재밌잖아요(웃음).




Q 뭘 가지고 컨퍼런스를 하셨어요?


A 책은 있었어요. 교과서는 있었는데. 그게 이제 복사판이 돌았으니까. 그러면 누군가 뽑아서 공부를 하면 됐고. 대부분 저널이었던 것 같은데. 김승호 선생님이 보통 저널을 가져와서 해요. 그러면 다 일목요연하게 순서가 착 나와. 머릿속에 벌써 이렇게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게 맨날 뭘 자꾸 이런 시키냐고 생각을 하지만, 김승호 선생님 생각에는 이게 순서대로 이렇게 할 거라고 생각을 했을 거예요.




Q 김승호 선생님이 무서우셨습니까?


A 인상은 좀 무서운 편이죠.




Q 실제로 전공의들한테는요?


A 무섭다기보다는, 되게 꼼꼼하기 때문에. 전공의들보다는 간호사들이나 이런 사람들이 훨씬 어렵게 생각했죠. 왜냐하면 회진을 돌면, (손가락으로 쓱 닦아서) 청소가 되어 있는지 그걸 봐요. 우리는 “환자 이렇습니다, 이렇습니다.”가 중요한데, 싹 들어오면서 가다가 뭔가 줄이 꼬여있는 걸 하나씩 집어요. 그러면 옆에 따라오는 간호사는 난리 났죠. 그럼 이제 뭐라 그럴 것 같지만, 그냥 그렇게 하고 갔어요. 그러면 다른 사람들 막 정리하고 뒤에서. 그러고 다음 날 오면 그걸 싹 봐요, 잘 되어 있는지. 그러면 며칠간 잘 되어 있겠지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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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나이가 있으셔서 다른 과하고 관계는 좀 편하셨을 것 같아요. 어떠셨나요? 동기들이 좀 윗년차시고 스텝들이지 않았습니까?


A 하긴 했는데. 별로 난 그렇게, 내가 응급의학과 하고 나서는 다른 과하고 잘 만나지를 않았기 때문에. 나도 어렵게 생각은 안 했지만, 그냥 비슷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다른 과의 높은 연차는 나도 어차피 존중해줘야 하니까. 내가 1년 차 때는 사실은, 트러블이라는 개념을 잘 못 느꼈던 게, 다른 과 사람들이 뭐라 그러면 내가 삭히면 그만이거든요. 근데 내가 2년 차 되기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문제가 생기잖아요. 내 1년 차랑 다른 과 2, 3년 차랑 이런 게 있으니까. 그런 문제에서 제일 그런 게 있었죠.


그때 OS(정형외과)랑 항상 문제가 많은데, 우리 1년 차가 OS한테 한 번 맞은 적이 있어요. 그래서 OS 의국에 찾아갔죠. OS 의국장이 쌍소리 막 하고 그러다가 거기 난킴들이 들어오면서, 나한테 웬일로 오셨냐고 인사를 하기 시작했거든요. 그러니까 의국장 인상이 싹 바뀌더니, 나를 OS 골방에 데리고 들어가서. 그건 아니고 어쩌고 저쩌고. 자기도 내가 나이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고, 난 2년 차고 자긴 4년 차고 그러니까. 난 아무 말도 안 했고. 그런 거로 해서 조금씩 풀면 되는 거니까. 밑에만 손 안 대면.




Q 그럼 선생님이 2년 차 되셨을 때, 1년 차로 들어오신 선생님이?


A 박인철 선생님, 이경룡 선생님.




Q 선생님이 (들어오라고) 꼬시셨나요?


A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 그때부터는 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김승환 선생 같은 경우도 학교 때, 응급의학과라는 것을 조금씩 듣고 하니까. 아마 괜찮게 생각하지 않았나 싶은데. 나 같은 경우는 학교에서 졸업할 때까지 응급의학과 이야기가 나온 적이 한 번도 없으니까. 그냥 와서, 이런 일을 하네. 인턴 하면서 응급실을 계속 돌면, 이런 일을 응급의학과라는 데가 한다고 하네. 이 정도 이야기고.




Q 선생님이 하실 때는 사실 전문의가 될지, 안 될지도 정해지지 않았던 때이지 않습니까?


A 근데 뭐 된다고 생각은 했죠. 언젠간 되겠지. 사실은 생각이 어떤 전문 과목이라도, 꼭 그 전문의로서의 그런 것보다 전문의 과정은 자기 실력을 닦는 시간이니까. 그 정도 인턴 마치고 해도, 뭐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은 하는 거죠.




Q 아랫년차로 박인철, 이경룡 선생님 들어오셨을 때, 뭐라고 해주셨습니까?


A 별로 생각이 안 나네요. 아마 애들도 기억에 나를 술 마시는 사람으로 많이 기억할 거 거든요. 그러니까 그때 희한하죠. 24시간 일하고 술 마시고 다시 24시간을 해도.




Q 아니, 언제 술을 드시러 가세요? 아침에 끝나지 않습니까?


A 쉬는 날. 그리고 아침에도 가요. 아침에 여는 집이 몇몇 있거든요. 딱 12시 되면 문 여는 집이 있어요. 그러면 8시에 교대하고 이것저것 정리하고 11시쯤 나와서, 그 집 찾아가서 술 마시고. 저녁에 조금 자고 다시 나오면 되니까. 체력이 뒷받침되면 뭐든.




Q 영동이나 원주로 파견을 가셨습니까?


A 4년 차 때 갔죠 아마. 원주는 선택이었던 것 같긴 한데, 가고 싶은 사람. 왜냐면 그 당시에 원주는 뭐든지 굉장히 많이 하는 집단이었거든요. 입원도 많이 시키고 응급실에서 대표적인 게 심초음파나 이런 거를 막 시행하는 집단이고. 신촌은 뭔가 하려면 계속 부딪히는 집단이고. 우리는 다른 걸 배울만한 뒷받침이 없어서, 원주 같은 경우에는 황성오 선생님이나 워낙 에코를 잘하시니까 본인이 가르치면 되잖아요. 우리는 누가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계속 독학하고, 서로 모여서 하고.


그래서 신촌에서는 그런 적도 있었어요. 메이저 트라우마 이런 게 왔을 때, DPL을 우리가 가끔씩 했었거든요. 우리가 DPL 하는 이유는 간단하잖아요. 빨리 GS 불러서 빨리 수술하려고 하는 건데. DPL을 해서 피를 봤어요. 근데 거의 죽을만한 상황이었는데 GS펠로우가 내려와서 난리가 난 거예요, 이걸 괜히 해가지고. 신촌 세브란스 같은 경우는 모탈리티(mortality conference; 사망사례발표) 되게 무서워하니까. 인민재판처럼 계속 이야기가 나오니까. 안 올리고 결정할 단계인데, 우리가 DPL을 해서 수술을 할수밖에 없는 문제가 생겼죠.


그래 가지고 막 펠로우가 뭐라고 했나 봐요. 근데 펠로우가 내 후배였거든요. 그래서 와서 나랑 대판 싸운 거죠. 교과서 발언부터 시작해서 결국은 싸우다가 환자가 죽었는데.


프로시저나 이런 부분에서 원주는 워낙 특출하게 많이 하고 있었기 때문에, 배우고자 하는 욕망이 있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대표적인 게 최옥경 선생님 같은 사람. 아마 신청을 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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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4년을 수련을 받으시고 전문의 시험이 바로 있었잖아요. 운이 좋게. 좀 “아싸!” 이런 느낌이 있으셨나요?


A 그것보다 그 당시에는 된다고 쭉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아마 그 위에 사람들이 되게 흥분했었겠죠, 우리 선배들. 그 사람들은 물론 대부분 학교에 남아있기는 하지만, 또 일부는 멀어지는 사람도 있었을 거고. 우리야 계속하면서 정부 방침에, 이번에는 한다. 근데 도대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우리가 잘 모르니까. 그래서 우린 “아싸!”보다는 처음 시기니까 공부 뭐 어떻게 할까 이런 게 있었죠. 그래서 우리끼리 4년 차 마친 사람끼리 했는데, 거기에 다른 사람들이 섞여 들어오는 형태로.




Q 그 당시에는 족보도 없었을 거고. 어떻게 시험이 나올지도 예상이 불가능했을 테고요. 전문의 시험 볼 때 힘드셨나요?


A 별로?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점수를 잘 받았잖아요. 성적순대로 번호를 준 거 아닌가? (웃음)




Q 2차 시험도 있었잖아요, 어느 선생님하고 면담하셨습니까?


A 그때 잘 기억 안 나는데. 그때 사실은 다른 병원에 계신 선생님들을 잘 몰라서.




Q 뭐 물어보셨는지는 기억나세요?


A 생각도 안 나.




Q 그럼 졸업하시고 맨 처음 어디로 가시게 됐나요?


A 난 펠로우 했었어요, 신촌에서 2년 동안. 그때는 과의 문제라기보다, 모든 프로세스가 레지던트 마치면 당연히 펠로우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요즘은 너무 많이 달라졌지만.




Q 그러면 “남아라, 말아라” 이런 얘기를 한 것도 아니고, 그냥 남으신 건가요?


A 그게 남는다기 보다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 난 결혼을 좀 일찍 했기 때문에, 그때 또 애들도 둘이 있고. 살기는 어렵죠. 근데 와이프한테 미리 그 정도 시간까지는 어쩔 수 없다는 양해 같은 것을 해 놓고.




Q 사실 그 당시에는 교수님이 어디 가라고 그러면 가고, 어디 있어라 그러면 있고 그랬지 않습니까?


A 그렇기는 한데, 어디 가라고 이런 말씀은 잘 안 하셔서. 근데 나는 그 펠로우를 하면서 어디 갈지가 정해져 있었거든요. 펠로우 하면서 일산 병원 건립, 추진 이런 게 시작됐는데. 거기에 내가 참가를 하기 시작을 했고. 그래서 당연히 내가 간다, 이렇게 생각을 나도 하고 있었고.




Q 그럼 처음부터 일산병원 사업 시작하실 때부터 같이 하셨던 거네요?


A 같이 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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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전문의가 되시고 나서, 새로 레지던트를 받으셨을 것 아닙니까. 전문의 입장에서 레지던트를 딱 받았어요. 기분이 달라지셨을 것 같아요. 피교육자에서 교육자의 입장으로 바뀌게 된 것 아닙니까. 어떠셨나요?


A 기분 좋은 이런 것보다, 부담이 사실은 더 많이 됐던 것 같아요. 그전에 받아왔던 교육적인 과정을 생각해 보면, 내가 이제 스텝이 되면 그전에 내가 받았던 것처럼 뭔가를 해줘야 되는데, 그게 어렵잖아요. 그 위의 사람이 누군가 남아있으면서 해주면 좋은데, 우리 때는 그런 게 없었으니까. 내가 그걸 맡아서 한다는 것이 되게 부담이었어요. 컨퍼런스 이런 거. 코멘트, 이런 거 쉽게 잘 안 나오거든요. 그러면 맨날 할 수 없이, 폰트가 어떻고 이런 이야기부터 나와야 되는데.




Q 응급의학과를 하면서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없으셨나요?


A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Q 응급의학과가 본인하고 정말 잘 맞았다고 생각하십니까?


A 솔직하게 얘기하면, 다른 과 했어도 잘 맞추어 갔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제 응급의학과에 대한 제일 그 당시 그만둘까 생각보다는 우리 과가 왜 이래? 아무리 생각해도 도움될만한 것이 없는 거예요. 와이프한테는 나중에 돈 좀 될 것이다라고 얘기했는데, 응급의학과를 시작하고 나서 하면서 한 번도 돈이 된다고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에(웃음). 그걸 어떻게 무마시키나 이런 잔머리만 느는 거고. 일 자체는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Q 응급의학과가 어떤 과입니까?


A 내가 시작했을 때, 응급의학과는 뭐라 그럴까. 사실 난 현장 이런 것을 많이 생각하기는 했었는데. 요즘 나는 군진의학(Military medicine)에 관심이 더 많거든요. 어떻게 하면 다리를 피가 안 나게 자를 수 있을까부터 시작해서. 요즘 내가 느끼는 응급의학과는 어떤 과라기보다는, 그냥 전문가로서 하면서도 즐길 수 있는 그런.




Q 본인은 충분히 즐기고 있나요?


A 비교적.




Q 다시 한다고 하면, 응급의학과를 하실 것 같으세요?


A 별로 의사 하고 싶은 생각 없고. 요즘 보니까 다른 직업이 워낙 좋은 직업이 많은데.




Q 응급의학과가 힘든 과입니까?


A 아니요. 응급의학과는 힘들지는 않습니다. 그냥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과라고는 생각이 됩니다.




Q 응급의학과가 멋있는 과인가요?


A 하기에 따라서, 그니까 싫지 않게 일하면 정말 멋있는 사람이 되는 거고. 응급의학과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자기가 싫지 않게 일을 하면, 다 원장처럼 대접받을 수 있거든요. 근데 하기 싫어서 일하면 정말 끝까지 전문의가 돼서도 레지던트처럼 취급당할 수도 있고. 시간도 많은 과이니까, 쉬는 동안에 체력 보충 잘하고 그러면 아주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과라고 생각합니다.




Q 1회 전문의 시험 때, 이제 22분이 같이 공부를 하셔서 시험 합격되셨고요. 작년에 (면허번호) 2000번이 나왔어요. 2000번대 후배들에게 한 마디만 해주신다면?


A 음, 2000번이면 숫자는 많은데, 아직 응급의학과는 할 게 되게 많은 과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해볼 수 있는데 아직 못 하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조금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잘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고. 어떤 사람은 실제로 실용적인 부분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많을 거고. 그리고 응급의학을 하는 사람이 제일 내가 관심 있는 분야나 그런 것도 쉽게 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지금은 꿈을 좀 접었지만, 일산 병원에 17년 정도 있었기 때문에, 그 중간에는 '국경없는의사회' 가서 하는 게 제일 멋있게 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는데. 사실 다른 과보다는 응급의학과가 그런 거에 특화되어서 갈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니까. 자기의 취미, 자기의 특기를 잘 살릴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Q 정말 친한 지인, 후배에게 응급의학과를 권유하시겠습니까?


A 만약 의사를 하겠다고 그러면, 응급의학과를 추천해 줄 수는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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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의학과 1기 22명의 개척자들, 그들의 이야기 들어보기 [인터뷰 모음 영상]

https://youtu.be/kUyoqRTj1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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