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대한 응급의학회 30주년 기념사업 07
"그때 C라인이라고 중심정맥관 삽입을 해보고 싶은데
다른 외과나 내과 선배들이 가르쳐주지 않아서
중증 환자가 왔을 때 외과 내과 레지던트들이 다 올라가고 난 다음에
저 혼자서 커튼 쳐놓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개업을 하니까, 일단 복잡하고 시끄러운
응급실을 벗어났다는 것도 좋았었고.
하루에 한 사람씩 진상 환자가 있었는데,
그러면 퇴근하면서 그 환자가 머릿속에서 맴돌아서
찝찝했었던 기억이 있었는데, 그런 게 없어지고.
응급실에서는 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인데,
개업하고서는 평생 자기 환자로 되니까.
그런 면이 응급실 환경 하고는 달랐던 점이죠."
"저도 이렇게까지 발전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레지던트 할 때만 해도 과가 중간에 없어질 수 있다는 얘기도 있었고.
요즘처럼 아무 병원이나 가봐도 응급의학과가 있고.
이차 병원 급에서는 응급의학과 의사 수가 다른 과보다 제일 많고.
하는 일도 비중이 굉장히 높아졌고.
전혀 25년 전엔 예상하지 못 한 상황이죠. 뿌듯하죠."
이름 : 김성중
응급의학과 전문의 번호 : 40번
수련병원 : 연세대학교 영동세브란스병원
현근무지 : 이대서울병원
Q 선생님이 영동 세브란스(현 강남 세브란스) 병원에서 근무하실 때 응급실이 되게 작았었잖아요. 그때 그 이야기 좀 해주세요. 맨 처음 전공의 들어가셨을 때쯤이요, 90년 3월인데요?
A 그때 응급실의 규모나 상황은 지금 시골 병원에 갔을 때의 응급실 모습하고 비슷하지 않았을까? 침상은 10개에서 20개 정도 있었을 거예요.
Q 그럼 거기 누가 근무하고 있었습니까?
A 거기 이한식 과장님 한 분하고 그리고 제 윗 분이셨던 장석준 선생님하고 둘이 있었지요.
Q 이한식 선생님하고는 어떻게 근무하셨어요?
A 저희가 초창기이다 보니까 정해진 근무 시간이나 스케줄이 딱 정해져 있지 않았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응급실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 가서 주로 뒤처리를 한다던지 그런 식으로 (했었지요).
Q 응급의학과가 없었을 때는 그럼 거기는 누가 지키고 있었던 건가요? 간호사가 지키고 있다가 의사를 부르고?
A 아니요. 지키고 있던 의사는 저희 인턴들 두 명이 상주하고 있었고요.
Q 응급실에 환자가 무척 많았죠?
A 네 환자는 많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특히 교통사고 환자가 정말 많았다고 생각이 드네요.
Q 지금계시는 응급실보다 환자가 많았던가요?
A 숫자 자체로는 지금보다 적었겠지만 음 글쎄요, 하여튼 제 기억에는 외상환자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Q 당시에 중증 외상환자면 사실 그냥 죽는 것 아니었습니까?
A 예 그런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다발성 외상환자가 왔을 때 새벽에 그런 일이 많았었는데, 모든 과가 다 내려와도 워낙 중증이다 보니까 응급실에서 사망하는 경우가 꽤 많았습니다.
Q 선생님께서는 응급학과를 어떻게 시작하시게 된 것인가요?
A 그 당시의 상황이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는데.
Q 인턴을 마치고 그럼 군대를 안 가시고 바로 전공의를 하신 거죠?
A 예. 제가 인턴 때 가을쯤에 아마 응급의학을 하기로 결정이 됐을 건데, 정확히 그때 이한식 선생님이 저를 꼬셨는지 장석준 선생님이 꼬셨는지 기억이 잘 안 납니다.
Q 원래 응급의학과라는 것이 있는지 알고 계셨나요?
A 전혀 몰랐습니다. 학생 때도 몰랐었고 강남 세브란스 인턴을 들어갈 때도 응급의학과가 있다는 것은 모르고 들어왔습니다.
Q 그럼 인턴을 돌다가 응급실을 돌다 보니 응급 의학과가 있더라?
A 예, 그렇게 해서 알게 된 거죠.
Q 장석준 선생님이 멋있어 보였나요? 힘들어 보였다기보다는 멋있는 부분이 있으니깐 나도 응급의학과를 해야 되겠다, 뭐 이런 생각이 들지 않으셨을까요?
A 뭐 멋있어 보이는 거야 그분이 워낙 잘 꾸미고 다니니까 멋있어 보였겠지만, 힘들어 보였다고 생각이 들지는 않고요.
Q 그러면 장석준 선생님은 혼자 계셨으니 거의 매일 계셨겠네요 응급실에?
A 예, 거의 매일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Q 응급의학과를 하시기로 결정을 하고 처음 출근했을 때 얘기를 한 번 해주시죠. 첫날 이제 딱 일 년 차로 출근을 하셨을 때?
A 거창하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 당시에 레지던트 1년 차이지만 하는 일이 딱 세팅이 되어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뭐 레지던트 하기 전에도 픽스 턴이라고 해서 먼저 응급실에 들어가서 몇 달 있었으니까. 그때 인턴 때 하던 일의 연장이라고 봐야 해요.
Q 왠지 그래도 인턴 때 응급실 환자 보는 것하고 응급의학과 레지던트가 딱 돼서 환자 보는 것하고 뭔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았나요?
A 달랐으면 좋겠지만 일단 제가 아는 것이 있어야지 환자를 제대로 보는데, 갑자기 제가 인턴에서 1년 차가 되었다고 지식이 갑자기 늘어난 것도 아니고. 아는 만큼 보다 보니까 단지 레지던트로 신분이 바뀌었다고 해서 큰 차이가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Q 그럼 응급의학과 1년 차 때 어떤 식으로 근무하셨나요? 근무 스케줄은 어땠습니까?
A 근무 스케줄도 딱 짜여 있지 않았고요. 1년 차 저 한 명, 그다음 장석준 선생님. 두 명도 서로 딱 정해놓고 일한 것 같지는 않고요.
Q 집에는 가셨습니까?
A 갔죠, 집에도 못 갈 것 같았으면 제가 하지도 않았죠.
Q 보통 그럼 밤새 근무를 하고 아침에 집에 가고 뭐 그런 스케줄인가요? 정해지지 않았으면 집에 가기 눈치 보였을 텐데요?
A 제가 1년 차가 되었지만 응급실 상황이 완전히 응급의학과 주도적인 상황으로 바뀐 게 아니라 기존에 수십 년 동안 해오던 인턴 중심의 시스템이 아직 그런 식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갑자기 응급의학과 1년 차가 한 명 생겼다고 해서 응급실이 확 바뀐다던지 그러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Q 컨퍼런스나 당직보고 이런 것을 자주 하셨나요?
A 네, 옛날 분들이 장부에 기록하시는 것을 워낙 좋아하시다 보니까 장부 관리는 잘해야 했어요.
Q 그럼 매일 아침 전날 환자에 대해서 보고하고 그런 것도 하셨겠네요?
A 예. 그런 게 있었습니다.
Q 인상 깊었던 환자가 있었나요? 전공의 때 보셨던 환자들 중에요.
A 이런 얘기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그때 C라인이라고 중심정맥관 삽입을 해보고 싶은데 다른 외과나 내과 선배들이 가르쳐주지 않아서 중증 환자가 왔을 때 외과 내과 레지던트들이 다 올라가고 난 다음에 저 혼자서 커튼 쳐놓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Q 그런 것을 하면 다른 과에서 반발들이 많았었죠?
A 예 그런 게 조금 있었습니다.
Q 그게 몇 년 차쯤 되니까 해결이 되던가요?
A 아무래도 제가 이제 고년 차 3, 4년 차로 올라가면 상대하는 타과 레지던트들이 저보다 연배가 아래다 보니까 조금 편해졌다고 볼 수 있죠.
Q 그럼 그 정도 되니까 술기 하는 것에 대해서 다른 과에서 태클을 걸지 않더라?
A 뭐 직접적으로는 그렇습니다.
Q 사실 지금 같은 경우에는 오히려 응급의학과 때문에 다른 과들이 기회가 없어서 우리 보고 하나씩 가르쳐 달라고 하는 상황이 되었어요. 처음에는 이런 것을 가지고 다른 과가 태클을 많이 걸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 1년 차 하실 때 다른 과랑 컨텍이 많지 않습니까? 누가 보호막이 되어 주셨나요?
A 보호막은 저희 윗분들, 장석준 선생님이랑 이한식 선생님. 일단 레지던트 보호막은 장석준 선생님이 하셨고 스텝들 보호막은 이제 이한식 과장님이 하셨고.
Q 그럼 다른 과와 이렇게 문제가 생기면 항상 싸워주셨나요?
A 아무래도 제 편을 들어주셨죠.
Q 대판 싸웠던 일이 있나요? 어느 과랑 주로 트러블이 발생했나요?
A 대판 싸웠던 일도 많습니다. 저도 성격이 욱하는 성격이 조금 있어서 뭐 거의 모든 과랑 한 번 이상씩 싸웠던 것 같아요.
Q 내과 계열이 많이 싸우는 편인가요, 외과 계열이 많이 싸우는 편인가요?
A 아무래도 내과 계열 접촉이 제일 많다 보니까, 내과 계열 하고 충돌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Q 주로 환자 뭐, 디스포지션에 대한 건가요?
A 그렇죠, 사소한. 예를 들어서 무슨 프로시저를 저희들이 했을 때 왜 이걸 응급의학과에서 했느냐고 따지는 사람들도 있었던 것 같고. 또 환자 초진 본 기록이라든지 내용이 마음에 안 들었을 때, 저희보고 대놓고 이런 것도 모르냐고 심한 말도 하는 사람도 있었고.
Q 지식에 대한 갈등이 있었을 것 같아요.
A 네 참 그게 저도 고민이었는데, 자기가 아는 만큼 환자를 볼 수 있는 거니까. 잘 모르다 보니까 아무래도 행동 자체가 위축이 되는 거죠. 많이 알면 과감하게 넓은 분야에서 행동할 수 있는데, 아는 게 적다 보니까 그만큼 위축됐습니다.
Q 그럼 그때도 틴티넬리, 로젠(응급의학과 교과서)을 가지고 공부를 하셨던 건가요?
A 그때 책은 있었지만, 로젠이 복사본이 있긴 있었는데. 그거를 정독할 시간은 없었고 가끔가다 찾아보는 정도였습니다.
Q 그러면 어떤 컨퍼런스 라든지 렉쳐라든지 이런 것들은 어땠습니까?
A 그것도 저희가 돌아가면서 발표를 하고, 인턴들이 바뀔 때마다 인턴들한테 발표시키면서 같이 공부하고. 그런 게 있었는데. 우리나라 현실보다 너무 앞서 있으니까, 외국에서는 이렇게까지 하고 있구나 하고 마음속으로 부러워만 하는 정도였고. 직접 적용시키기에는 저희 상황에서 힘든 게 많았습니다.
Q 그럼 90년도에는 장석준 선생님과 선생님, 그리고 이원재 선생님. 이렇게 세 분만 전공의셨잖아요. 그럼 세 분이서 자주 만나셨겠네요?
A 자주는 못 만났는데, 기억이 나는 게 이원재 선생님하고 셋이 무슨 중국집에서 같이 모임이 있었는데, 제 기억에는 제1회 전공의 모임이 아니었었나(웃음). 주로 가톨릭대 앞에서 많이 만났어요.
Q 만나서 무슨 얘기 하셨어요?
A 만나면 일단 반갑고. 동료를 만났으니까, 마음 편하고. 그때는 워낙 초창기이니까 어떻게 일 하고 계시냐. 저한테 지금 질문하듯이 저도 궁금했죠. 가톨릭대에서는 어떻게 하고 계신가 그런 얘기도 많이 하고. 이런 거 해봤냐 저런 거 해봤냐 물어보고.
Q 그럼 학술대회는 언제부터 처음 시작된 건가요?
A 제가 인턴 때 그 무렵에 아마 학회가 창립된 것 같은데, 그때는 저는 그냥 심부름이나 하는 정도 수준이었고. 그다음에 1년 차 되어서는 제가 학회 홍보물이라든지 우편물이라든지 봉투에 넣어서 직접 붙이고 배달시키고, 그런 일에 관여를 했었죠.
Q 지방에서도 했나요?
A 처음에는 주로 서울에서 했었고 제 밑에 연차들이 들어왔을 때부터는 지방에서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Q 선생님께서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들어가서 보니까 어떻게 느끼셨나요? 응급의학과는 이런 일을 하는 거구나라던지?
A 딱히 뭐 한 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응급실에서 필요한 존재라는 느낌이 들었었지만, 무슨 일을 해야 된다 그런 것은 아직 정립이 안 되지 않았었나.
Q 전문의 시험이 있을지 없을지 몰랐잖아요. 그럼 졸업하시고 수료를 하신 다음에 처음엔 어디 계셨습니까?
A 레지던트 4년 차 끝나고, 펠로우 단계는 수원에 아주대학교 들어가서 했습니다.
Q 그럼 그때 처음 아주대학교 응급의학과가 생겼군요?
A 예, 제가 아주대학교 창립 멤버라고 볼 수 있죠.
Q 그럼 거기서 근무를 하고 계시다가, 나중에 전문의 시험이 생겼다고 들으신 건가요?
A 거기서 한 번 더 옮겼죠. 아주대학교에서 1년 하다가 서울 아산 병원으로 이직을 해서 아산 병원에서 3년 있었는데, 그 사이에 전문의 시험을 보게 됐습니다. 자격증을 받고 나니까, 이제 그때서야 비로소 나도 진짜 전문의다, 뿌듯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Q 그럼 전문의가 되고 나서는, 응급의학과가 이런 것이었구나 느낌이 있으셨습니까?
A 큰 차이는 없었습니다.
Q 그럼 전문의가 되시고 나서 했던 업무가 전공의 때랑 큰 차이가 없으셨나요?
A 거의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전문의 자격증을 제가 받았다고 해서 하는 일이 갑자기 바뀐다던지 그런 것은 없었고. 그냥 레지던트 때부터 해오던 일의 연장선 상이지. 다른 과 같은 경우는 레지던트랑 전문의랑 하는 일이 차이가 나지만, 저희 과는 과 특성상 1년 차가 하는 일을 과장이 할 수 있고 그런 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Q 중간에 개업을 하셨어요. 응급의학과에 대해서 그만해야겠다, 이런 생각이 있으셨습니까?
A 그때 당시에 보면 응급의학과를 하려고 했다가 중도 포기하는 사람도 많았었고. 초창기 멤버들 보면 개업하신 분들도 많았거든요. 그거는 그만큼 초창기 저희 응급의학과 상황이 지금에 비해서 많이 열악했던 것 같습니다. 저도 그런 생각에서 개업을 했었겠죠.
Q 혹시 개업을 하고 나니까, 응급실 근무 그만하기를 잘했다 이런 생각이 들던가요?
A 그런 면이 있습니다. 개업을 하니까, 일단 복잡하고 시끄러운 응급실 상황을 벗어났다는 것도 좋았었고. 제가 응급실에서 근무할 때 하루에 한 사람씩 진상 환자가 있었는데, 그러면 퇴근하면서 그 환자가 머릿속에서 맴돌아서 별로 기분 좋게 퇴근하지 못하고 찝찝했었던 기억이 있었는데, 그런 게 없어지고. 그리고 개업을 하면 환자 한 명 한 명이 내 환자이니까, 응급실에서는 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인데, 개업하고서는 평생 자기 환자로 되니까. 그런 면이 응급실 환경 하고는 달랐던 점이죠.
Q 그럼 개업하고서 다시 응급실로 돌아오시게 된 이유는? 그리우셨나요?
A 자의 반 타의 반. 개업과 상황도 많이 안 좋아졌고요.
Q 그리우신 적이 있었습니까?
A 그리울 정도는 아니었고, 두려움을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처음에 들어왔을 때 진짜 등골에 식은땀이 날 정도로. 응급실 일을 아무리 오래 해도, 개업을 6개월만 하게 되면, 거의 다 까먹는다고 봐야 되거든요. 저는 10년을 넘게 개업했다 보니까 거의 모든 것을 까먹고 들어왔는데, 간호사가 저한테 폴리를 끼라고 갖다 주는데 어떻게 끼는지 모르겠더라고요.
Q 어떤 분야든지 30년을 하게 되면, 사실은 명장이라고 봐야죠. 특히 이런 전문적인 분야는. 응급의학과를 30년을 하시면서 어떤 명장이 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A 일단은 업무적으로 응급실 환자들 빨리빨리 지체되지 않게 처리하고. 그런 일을 항상 하다 보니까, 매일 하던 일, 그런 쪽에서는 아무래도 많이 숙달이 된 것 같은데. 글쎄요, 다른 과처럼 제대로 한 분야의 명장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일반적인 진료 외에 개인적으로 관심 분야를 가지고 집중적으로 시간을 투자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응급의학과의 전문성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A 음, 당연히 응급환자 진료겠지만. 저희가 맡은 일 자체가 좀 약간 general practice에 가까운 일이다 보니까, 높은 수준의 general practice를 한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Q 장점과 단점을 하나씩 꼽아보시면?
A 환자 보는 데서는 아무래도 넓은 분야. 다른 과 전문의들은 자기 분야 외에는 잘 모르는데, 저희는 다른 과 의사들이 모르는 것을 알 수 있고. 그런 건 장점이고. 역으로, 그렇지 못하다는 게. 한 분야에 대해서 깊이 알지 못하다는 게 단점이고.
Q 이제 30년이 지나왔는데요. 두 분이서 시작했는데 2천 명이 됐네요?
A 저도 이렇게까지 발전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레지던트 할 때만 해도 과가 중간에 없어질 수 있다는 얘기도 있었고. 그런 시기도 있었기 때문에. 요즘처럼 아무 병원이나 가봐도 응급의학과가 있고. 이차 병원 급에서는 응급의학과 의사 수가 다른 과보다 제일 많고. 하는 일도 비중이 굉장히 높아졌고. 전혀 25년 전엔 예상하지 못 한 상황이죠. 뿌듯하죠.
Q 그럼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할 것 같습니까?
A 일단은 지금 잘하고 있으니까. 하는 것은 지금처럼 계속 잘 진행하면서, 대학에 계신 분들은 나름대로 전문 분야를 찾아서 우리 과의 영역을 계속 전문화시키는 분들도 있어야 되지 않을까.
Q 응급의학과를 고민하고 있는 친구들한테 “이러니 응급의학과를 해라”이런 이야기를 해주신다면?
A 응급의학과라는 우리가 학생 때 생각했던 멋있는 의사가 현실에서 존재합니다. 그런 분들이 응급의학과 의사입니다.
Q 응급의학과 의사는 멋있는 의사군요.
A 네, 사고 현장에도 있고, 전쟁이 났을 때도 제일 멋있어 보일 거고. 큰 교통사고나 재난 상황에서도 제일 멋있어 보이는 의사가 응급의학과 의사라고 생각합니다.
Q 응급의학과 수련받으시는 동안, 응급의학과 의사나 전공의로서 경험해서 나는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셨나요?
A 일단 저희 과 인원이 적었고, 초창기다 보니까 의사 수도 적다 보니까, 병원에서 하는 일이 당연히 주도적인 역할도 아니고. 뭐랄까, 조그만 응급실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적은 인원이 일하다 보니까 마이너 과라는 생각이 들었죠.
Q 응급의학 레지던트가 되신 진짜 솔직한 계기는?
A 전공의 월급은 다 똑같았으니, 월급 문제는 아니었을 거고. 글쎄요 그 당시 대학병원에 다른 특히 일부 메이저 과에서 너무 1년 차들을 혹독히 몰아세우거나 그런 게 있었는데 저희 과는 그런 게 별로 없어 보이고 좀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서 아마 끌리지 않았을까.
Q 막상 어떠셨어요?
A 막상 해보니까, 그랬습니다. 그래서 저희 동기. 같은 1년 차들이 저 가끔 만나면 제가 부럽다고 그랬습니다.
Q 그때 선배님한테 많은 도움을 받으셨었나요?
A 저희 선배님(장석준 선생님)도 어려웠었고 저도 어려웠었고 서로 아는 게 많이 없다 보니까, 그런 건 서로 어려웠던 점이고. 대신 이제 학교 선배님이고 그러다 보니까 인간적으로 충고도 많이 해주시고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Q 응급의학과 전문의로서 역할이랑 다른 전문 과목하고 사이에서 갈등이 많으셨을 텐데, 구체적인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A 환자가 일단 와서 최종적으로 입원할 때까지 과정이 있는데, 어차피 저희가 환자를 입원시키는 과는 아니기 때문에. 어느 과로 입원이 되는 단계에서 저희가 어느 선까지 일을 해줘야 하는지. 요즘 2차 병원에서 하는 것처럼 저희가 입원장까지 쓸 것인지, 아니면 초진 기록까지만 할 건지. 그런 것에 있어서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 보니까. 뭘 해야 된다는 게 어느 선까지 해야 되는지 몰랐다고 할 수 있죠.
Q 타사 의사들하고 부딪혔던 사연 중에 가장 화나고 열 받았던 사연이 있으시다면?
A 일단 제일 화나는 것은 타과 선배들한테 혼날 때. 자기 과 선배한테 혼나는 것보다 타과 선배한테 혼나는 게 서러운 거고요. 만약에 타과래도 동기가 저한테 그러면, 같이 붙어서 싸우기라도 할 텐데. 일방적으로 억울하게 혼날 때는 서러운 적도 있었죠.
Q 후배들한테 짧고 굵게 한 마디 하신다면.
A 지금 잘하고 있으니까. 지금 해온 것처럼 하시는 거 열심히 하시면 계속 발전하리라고 생각합니다.
Q 다시 응급의학과 하라고 하시면 다시 하시겠습니까?
A 네 하겠습니다.
응급의학과 1기 22명의 개척자들, 그들의 이야기 들어보기 [인터뷰 모음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