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노라마 #소설 #기습 #잔상
"뭐라고? 방도현 차사님이?"
이영희 차사는 오차사에게 보고를 받고 놀랐다. 잘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언제나 능구렁이 같은 방차사의 웃음과 속을 알 수 없었기에 여간 걱정이 되는 일이 아닌 듯하였다.
"죄송합니다. 저는 정말 팀장님이 방차사님께 그렇게 말씀하신 줄..."
"아니 난 그런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죄.. 죄송합니다."
오차사는 더욱 긴장을 한 채 차렷자세를 유지하며 소리쳤다. 그때 막내가 자동차에서 달려 나오며 팀장에게도 왔다.
" 티.. 팀장님. 이것 좀 보십시오. 20여 년 전 이 근방 2km 지점에서 기억리셋이 한번 더 일어났다고 본부에서 팩스가 들어왔습니다. 아무래도 본 사건과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막내가 가져온 팩스의 글을 보고 한참을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그녀는 생각에 정리가 어느 정도 된 듯 지시를 내렸다.
"우선 오차사는 본부로 연락해서 방차사가 제대로 연행했는지 확인해."
"네, 알겠습니다!!" 신입 때처럼 잔뜩 군기가 들어간 대답을 하였다.
"그리고 막내는 김도운 차사 쪽 확인을 해보고. 사건 장소는 내가 먼저 간다. 다들 마치고 이곳으로 오도록."
"네 알겠습니다!"
이영희 차사는 날이 선채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 이외 누구의 지시도 듣지 마라. 그 상대가 베드로라도 말이야. 알았어?"
"네!!"
[푸른 언덕 베이커리]
다시 기억 속으로 돌아온 훈은 소연과 함께 빵집 앞에 섰다. 운전을 하며 아까 전에 따라오는 검은색 승용차가 없는지 계속해서 두리번거리는 소연은 걱정스레 바라보다 결국 한마디를 꺼내었다.
"당신 무슨 일 있어요? 아까 전부터 계속 누가 쫓아오기라도 한 듯 주위를 둘러보나요?"
"아.. 아니.. 무.. 무슨 일은.. 아무 일도 아니야. 긴장이 되어서 그런가 보네. 어서 케이크를 찾아오자고."
훈은 머리를 짜내며 간신이 둘러댄다. 소연은 머리를 갸우뚱거렸지만 더 이상 말을 하지는 않았다.
베이커리는 그 이름처럼 푸른 언덕이 연상이 되게 벽돌이 모두 푸른 바탕으로 칠해져 있었고, 어느 파리의 분주한 도시의 길 가에 제빵사가 빵집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을 들고 나오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얼마나 실감이 나는지 그 연기가 빵집에서 나오는 냄새와 맞물려 마치 그림을 뚫고 먹음직스러운 빵이 나오는 것만 같았다. 훈은 문을 열어 소연이 들어가게 하고,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본 채로 들어갔다.
"후우.. 간 뎅이가 부었네. 지금 이 상황에서 기억 나들이나 할 때인가?"
수많은 인파 사이에서 담배 연기를 길게 뿜어내며 한 남자가 중얼거렸다. 방도현 차사였다. 그는 쓰라린 한쪽 얼굴면을 살짝 마사지하듯 주무르다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땅바닥에 던지고 총을 꺼내어 빵집으로 향하였다.
"케이크 예약했어요. 이름은 김 훈"
"예, 고객님 잠시만요"
하얀 피부에 서글서글한 점원이 웃으며 잠시 카운터 뒤로 들어갔다. 훈은 빵 집안에서도 여전히 불안한 듯 주먹으로 카운터 앞의 모서리를 치며 살며시 주위를 둘러본다. 빵 집 안에는 오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빵 집 한가운데에는 진열대가 뷔페집처럼 2열로 길게 늘여져 그 위에 맛깔난 빵들이 놓여 있었고, 양 갈래로 앉아서 먹을 수 있도록 테이블들이 놓여 있었다. 진열대 위에는 일부 빵이 이미 모두 비워져 덩그러니 쟁반만 놓여 있는 곳도 있었다. 왼쪽 한 공간에는 10여 개의 테이블이 놓여 있었는데 이미 모두 자리를 차지한 채 저마다의 이야기들로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예약하신 떡앙금 케이크입니다."
점원은 조금은 무거운 듯 커다란 하얀 박스를 힘겹게 들고 나왔다. 훈은 케이크를 건네받고 소연과 돌아서서 자리를 떠나고자 하였다. 그때 갑자기 "탕"소리와 함께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고 뛰며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 쥐새끼 같은 넘. 이제 그만 끝내자"
훈은 소연과 몸을 쭈그려 앉아 카운터 뒤로 몸을 숨겼다. 훈은 빼꼼히 고개를 내밀어 소리가 나는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아까 자동차에서 마주쳤던 그 남성이었다.
그는 위협적으로 총을 든 채 빠른 걸음으로 거침없이 앞을 가로지르며 나아갔다. 그 앞에 놓인 사람들은 벌벌 떨며 그와 몸이라도 닿으면 죽기라도 할 듯 이리저리 몸을 피했다.
"이 버러지 같은 기억들. 진짜처럼 반응 하네. 아주 웃겨"
방차사는 몸을 숙여 피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그의 앞에 있는 거슬리는 그들을 향하여 총을 쏴댔다. 총구의 화염과 동시에 그들은 모두 재가 되며 사라졌다. 총알이 다 떨어졌는지 총에서 빈 탄창소리가 들려왔다.
"하아 총알도 아깝네. "
방차사는 잠시 멈춰 새로운 탄창을 꺼내어 권총에 갈아 끼었다.
"누구나 다 사연은 있는 거야. 그렇지만 아무나 갈 수 없는 그 좋다는 천국까지 가서 어딜 기어 나와?"
권총을 갈아 끼는 그 순간 훈이 달려들어 그를 뒤에서 붙잡았다.
"여보! 어서 도망가"
훈은 황급히 숨어있는 소연에게 소리쳤다. 그녀는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채 잔뜩 겁에 질려 몸을 숙여 벌벌 떨고 있었다.
"이 자식이 저승사자를 호구로 보고"
방차사가 순간 몸을 낮추자 그의 몸을 둘러싸던 훈의 두 팔의 공간이 생겼다. 그 틈을 늦추지 않고 방차사는 훈의 팔을 낚아채 앞으로 내던졌다. 훈은 아무런 대처도 못한 채 나동그라졌다.
"별것도 아닌 게. 내가 얼마나 많은 악질들을 상대했..."
순간 방차사는 훈의 얼굴을 보고 멈췄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분명 방차사의 기억에 낯익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잠시 자리에 서서 그를 바라보며 그를 어디서 봤는지 떠올려 보려 하였지만 도무지 기억의 근거 자체가 떠오르지 않았다.
'천사경 때문에 잠시 내가 정신이 나간 건가?" 순간 그의 얼굴을 긁고 지나간 뺨에서 천사경의 상처가 욱신거렸다.
"암튼 뭐 됐고 구슬 어딨냐?"
방차사는 쓰러져 신음을 하고 있는 훈을 번쩍 들었다. 살집이 두꺼운 그의 힘이 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훈은 힘없이 번쩍 들렸다. 훈은 금방 내동댕이 쳐져 그런지 피가 거꾸로 돋고 머리가 핑글핑글 도는 기분이었다.
"말하라고"
그는 총손잡이로 훈의 얼굴을 가격하였다. 그의 코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한 손으로는 강하게 그의 멱살을 쥐고 있는 터라 훈은 그의 고개만 충격에 뒤로 심하게 꺾였고, 다시 날아온 총손잡이를 그대로 맞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수차례를 얻어맞고 방차사가 잡고 있던 멱살을 살며시 놓자 훈은 힘없이 뒤로 자빠졌다. 그 순간 소연이 달려와 훈을 얼싸안는다. 아침에 뿌렸던 그녀의 향수가 훈의 콧등을 스치며 그는 고통에 몸을 바르르 떨면서도 그 와중에도 마음 한편이 포근해지는 듯하였다.
"로맨스 찍고 앉았네"
방차사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한 손으로 가볍게 그녀의 뺨을 때리고 그 반동에 벌어진 틈을 타 그녀의 목덜미를 잡아 한쪽으로 내동댕이 쳐버렸다.
"여.. 여보.."
훈은 간신히 상채를 세워 소연이 나동그라진 쪽으로 손을 뻗어본다. 하지만 순식간에 그는 다시 번쩍 들어 올려져 정신없이 방차사의 주먹에 얼굴이 부딪히며 빵들이 놓여있던 진열대 위로 몸이 넘어갔다.
"너희들은 당최 감사할 줄을 몰라. 누구는 정말 지옥 같은 삶을 살다가 죽어서도 지옥처럼 살고 있는데. 천국으로 갔으면 되었지. 어디를 기어 나오냐고."
방차사는 자신의 혼잣말에도 감정이 점점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기억의 문제일까? 아니면 죽은 뒤에도 고통은 함께 여전히 수반되는 걸까? 훈은 고통의 신음을 내었다. 그의 코에서는 뜨거운 핏물이 용암처럼 흘러내리고 있다는 게 실감 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 순간 그의 머릿속으로 번쩍 하며 이번엔 뭔가 다른 느낌의 기억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 자신의 기억이 돌아올 때와 다른 이질적인 뭔가가 차갑게 느껴지는 것이 자신의 것이 아닌 타인의 기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로 자신을 때리고 있는 남자의 기억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다.. 당신 경찰이었군 하아하아 그것도 아주 더러운 경찰"
"뭐?"
방차사는 쓰러진 훈에게 다가서는 발걸음을 멈칫하였다. 자신의 생전 직업에 대해 갑작스럽게 말하는 그에게 알 수 없는 소름이 목덜미를 휘감았다.
"더러운 돈을 받아 처먹더니 나중에는 사람까지 죽였구나. 그것도 네 동료를.."
훈은 상체만 간신히 일으킨 채 방차사를 노려보며 말하였다.
"천국에서는 남의 기억도 흡수할 수 있는 것도 배우는가 보지? 그렇게 개인 보호를 외쳐 누가 도망쳤는지도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말이야"
"자꾸 내가 천국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도대체 당신은 누구야? 왜 자꾸 쫓아와서 괴롭혀? 내가 자네를 밀고한 동료라고 생각해?"
"하하 이 새끼가 내 기억 좀 안다고 완전 입으로 막 내뱉네"
방차사는 몸을 구부려 훈의 멱살을 잡아 다시 주먹을 날리기 위해 팔을 번쩍 들었다. 그때 빛이 번쩍하며 방차사의 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으악"
방차사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고통에 무릎을 꿇었다. 그 사이 훈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아 좀 전에 빛이 스치고 지나간 부위를 감쌌다. 단순히 스쳐지나갔으면서도 칼 끝에 베인 것처럼 온 신경이 곤두서고, 부들부들 상처 부위의 살들이 떨려왔다.
"저승차사란 놈이 자꾸 엄한 사람을 조지는 구나. 그래 갖고 어디 저승길도 제대로 인도하겠느냐?"
학수의 목소리였다. 그의 손에는 좀 전에 차에서 보았던 커다란 손거울이 들려있었다. 방차사는 빠르게 진열대 뒤로 몸을 숨기고 권총을 꺼내 들었다.
"미꾸라지 같은 새끼. 너였냐?"
학수는 또다시 거울을 방차사쪽으로 비추었다. 거울에서는 굵은 빛줄기가 쏟아져 나와 방차사가 몸을 숨긴 진열대를 뚫고 지나갔다. 방차사는 몸을 날려 반대편 진열대로 몸을 피하였다. 그리고는 권총으로 학수가 있는 쪽을 향해 발포하였다. 학수 또한 진열대로 몸을 숨기었다.
"하아하아.. 이 미꾸라지 새끼 용케도 훔쳤나 보네. 아님 천국도 하도 태평해서 천사들 군기가 빠진 건가?"
"아무렴 저승사자만 하겠어? 딱 봐도 부패한 차사구먼. 차사 복장이라면 분명 저승사자는 맞는 것 같지만 체포조는 팀단위로 움직일 텐데. 달랑 혼자 와서 이렇게 죽일 듯이 달려드는 거 보면 너도 천국의 구슬이 탐나나 보지?"
방차사는 뜨끔한 듯 잠시 멈칫하였지만 씰룩이며 말하였다.
"이승 나랏밥도 쥐꼬리만 한데 저승이라고 다를 게 없더라고. 가만 그러고 보니 그럼 이 새끼는 필요 없네?"
방차사는 쓰러져 신음을 하고 있는 훈을 향해 총구를 겨누며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