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는 자동차에서 부서져 나온 파편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검은색 승용차는 차체가 완전히 찌그러져 있었고, 종잇장처럼 구겨진 본네뜨 아래에서는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잠시 후, 삐그덕 소리와 함께 찌그러진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하였다. 비틀 거리며 겨우 자동차에서 빠져나온 그는 힘겹게 차량에 기대어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담배를 하나 꺼내었다. 떨리는 손으로 어렵사리 담배를 입에 다 가져두었고, 힘없는 엄지로 몇 번이고 라이터의 부싯돌을 돌리다 겨우 불을 붙일 수 있었다.
"하아. 쥐새끼 같은..."
그의 입에서 흰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연기가 새어 나오며 그의 볼록한 배가 더욱 튀어나왔다. 정수리가 하얀 원형 탈모의 남성, 방도현 차사였다.
[1시간 전]
"연행해. 좌표 찍어줄 테니 수감 후, 바로 그곳으로 와. 막내는 나랑 간다."
이차사가 오차사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맞은편 골목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방도현 차사는 입에 담배를 물고 있었다. 이영희 차사 일행이 먼저 그 자리를 떠나고 잠시 뒤, 오차사가 검은 그을린 형체의 지박령을 집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이윽고 빌라 앞에 세워진 검은색 자동차 뒷 좌석의 문을 열어 지박령을 태우고 있었다. 그때, 방차사가 그들 앞에 나타났다.
"여어. 고생이 많아. 그 놈인가?"
방차 사는 담배를 쥔 오른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였다. 담뱃재가 떨어졌다.
"방차사님 여긴 어인일로"
오차 사는 흠칫 놀랐지만 이윽고 그의 육중한 몸집과 달리 90도 각도로 깍듯이 인사를 하였다.
"응 안 그래도 나도 현장에 있다가 이차사에게 연락을 받고 온 길이야. 여기 오면 연행할 놈을 네가 데리고 있을 거라고 하더라고. 나한테 맡기고 너는 얼른 합류할 수 있게 해달라고 연락을 받았어."
"아.. 그러셨습니까?"
"응응 자넨 바쁘니 얼른 이차사를 쫓아가. 내가 데려가지."
"하지만..."
"어허. 이차사가 얼른 자네보고 오라고 했다니깐."
"아.. 알겠습니다. 그럼."
오차 사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방차 사는 기다려주지 않고, 뒷좌석에 있던 지박령을 차에서 끌어내었다. 오차 사는 가벼운 목례와 함께 검은색 승용차의 운전자 석으로 이동하여 출발하였다.
"오늘은 완전 기분 좋은 날이구먼."
방차 사는 백미러를 보며 지박령과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를 하였다. 시커먼 잿덩어리 속에 하얀 두 눈만 깜빡 거리는 지박령은 눈을 마주치고 황급히 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방차 사는 대략 200m 정도가량 운전을 하다가 인적이 드문 낡은 건물들 골목길에서 차를 세웠다. 벽에는 이미 오래전 끝나버린 선거 벽보들이 일부는 찢기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방차 사는 그의 튀어나온 뱃살에 조금은 힘겹게 핸들을 잡고 몸을 뒤로 밀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지박령이 탄 뒷 좌석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내려 이 새끼야."
그에겐 아무런 표정 없었지만 약간의 피로감과 설렘이 교차되는 미묘한 주름살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네에?"
"내리라고 이 새끼가. 타 죽으면서 귓구멍까지 타들어갔나?"
어느새 방차 사는 그의 가슴팍에서 검은색의 권총을 꺼내어 그를 겨누었다. 권총은 빛이 반사되지 않는 무광의 코팅으로 덮여 있었고, 총신이 길게 쭉 뻗어있었고, 그 끝의 커다란 검은 구멍은 금방이라도 화력을 내뿜을 것만 같이 지박령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내는 듯하였다. 지박령은 놀란 듯 수갑을 찬 두 손을 든 채로 차에서 천천히 내렸다.
"아.. 아니.. 이미 전 다 말.."
"나한테 다시 말하라고"
"악"
방차 사는 권총의 손잡이의 모서리 부분으로 지박령의 이마 부위를 가격하였다. 지박령은 고통스러운 듯 그의 이마를 감싸 쥐으며 신음소리를 낸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풀어줄게."
"으으윽... 네? 지.. 진짜요?"
"그래, 그렇다니깐. 그러니 솔직하게 말해"
방차 사는 한 손에는 총을 쥔 채 다른 한 손으로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문다.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어 불을 붙인 후, 지박령 입 부위로 담배를 가져다준다.
"너도 얼마나 한이 많겠어. 안 그래도 그 한 때문에 그 집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건데. 하룻 사이에 여러 놈들이 들쑤셔 놓았다가 체포되니 얼마나 억울하겠어? 안 그래?"
지박령은 떨리는 두 손으로 담배를 받아 입에 물며 입김을 내뱉는다.
"저.. 정말이죠? 다시 다 말씀드리기만 하면.. 바.. 바로 풀어주시는 거죠?"
"그렇다니깐 속고만 살았나?"
방차 사는 웃으며 이마가 가려운 듯 총구를 그의 이마에 대고 긁어대었다.
지박령은 단숨에 그에게 좀 전에 이차사에게 말했던 모든 사실들을 이야기하였다. 그가 거리에서 본 사람들과 어디로 향하였는지 모든 것들을. 방차 사는 묵묵히 듣고 나서 한참을 생각에 잠긴 듯하였다.
"그.. 그럼 이제 저를 푸.. 풀어주세요"
방차 사는 깊은 생각에 잠시 흐려졌던 초점이 돌아왔다.
"아.. 그래."
그는 수갑 열쇠를 꺼내어 지박령의 손목에 찬 수갑을 풀어주었다. 지박령은 그의 마음이 바뀔 새라 그 자리를 벗어나고자 얼른 뒤돌아 뛰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 순간, "탕" 소리와 함께 총알이 지박령의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검은 잿덩어리의 지박령은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 한채 순식간에 온몸의 재가 바람에 날리며 모두 흩어져 버렸다.
"미안. 그대로 보내주기엔 목격자가 너무 많네"
방차 사는 사라진 그의 자리에 가벼운 목례를 하고 차에 몸을 싣고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났다.
[기억 밖]
"아.. 아니 대체.. 왜.."
한참을 끝없는 말을 되네이며 훈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 자체를 믿기도 어려웠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그 일들에 적응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순식간에 유일하게 현재로선 믿을 수밖에 없던 학수의 충격적인 말에 그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저승사자 대신에 내가 마중 나온 거라고 하지 않았는가?"
"..."
"꼭 이 길에 저승사자가 함께 할 필요가.."
"왜.. 자네지??"
"그게 무슨 말이지?"
"자넨 이미 중학교 때 죽었다고. 게다가 그날 그 백화점에 내가 자네를 데리고 가지 않았어도.. 그.. 그럼 죽지도 않았을 텐데. 오히려 자네가 나를 미워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왜 마중까지.."
훈은 벌겋게 충혈된 두 눈을 부릅뜬 채 학수를 노려보며 말하였다.
"아니.. 그.. 그건."
학수는 좀 전과 달리 훈의 예기치 못한 이야기 전개에 놀란 듯 말을 더듬기 시작하였다.
"됐네. 여기서부터는 나 혼자 가지. 어차피 자네가 저승사자도 아니면 내가 혼자 가도 상관없겠지."
"아무리 그래도 혼자 이 일을 어떻게 하겠는가? 가뜩이나 저승사자도 따라붙었는데."
"내가 아닌 자네를 붙잡으러 왔겠지. 아무튼 상관없어. 자넬 붙잡든 날 붙잡든"
훈은 자리에 일어났다.
"어서 나를 다시 기억으로 돌려줘."
"하지만..."
"어서!!!"
훈이 핏대를 세워 지른 고함에 학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였다. 어느새 콧등에 미끄러져 내려온 검은 뿔테를 다시 올리지 못할 정도로 학수는 묵묵히 훈을 바라보았다.
"알았네."
이윽고 그는 체념한 듯 손가락을 튕겼다.
[김혁이 탄 자동차 안]
"형님. 기억나쇼? 그때 우리 함께 잡았던 이혁수? 아니 거의 다잡아 놓은 놈을 형님이 수갑을 덜 채우는 바람에.."
"닥쳐. 언제 적 얘기를 꺼내고 있어."
김도운 차사는 뒷 좌석에 묶인 채 말하고 있는 김혁의 말에 입술을 꽉 다문채 창밖을 내다본다. 운전대를 잡은 또 다른 차사는 김혁의 말에 힐끔 눈알을 굴려 김도운 차사를 쳐다보았다. 김차사는 계속되는 김혁의 시비조의 말들을 애써 무시한 채 잠시 눈을 감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다음에 들려오는 말에 결국 그는 참지 못하고 폭발한다.
"아니. 이 형님이 덩치는 저래도 겁이 어찌나 많은 지 뭐만 있으면 나를 앞장 세웠다니깐. 하긴 나랑 붙어서 이겨 본 적이.."
"차 세워!"
김도운 차사는 우레와 같은 고함을 쳤다.
"네에?"
운전대를 잡고 있던 젊은 차사가 놀란 듯 그를 보며 이야기한다.
"차세우라고!"
"하.. 하지만.."
"지금 상관의 말에 불복종한다는 거야? 어서 세워"
결국 젊은 차사는 김 차사의 말에 황급히 차를 세웠다. 그 뒤를 쫓아오던 차 행렬들이 도미노처럼 거의 부딪힐 것처럼 멈춰 서기 시작하였다. 김혁은 그들에게 보이지 않지만 슬쩍 미소를 보였다.
"네가 자꾸 나를 이긴다고 하는데. 우리가 제대로 붙어 본 적은 없잖아?"
"그건 그렇죠. 형님. 그래도 아까 식당에서.."
"아까는 내가 너무 흥분해서 미끄러진 거고!!!"
또다시 김차사는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되더니 소리를 질렀다.
"내려. 정말 누가 이기나 오늘 지금 여기서 제대로 한 판 붙어보자."
김차사는 거의 문짝이 날아갈 정도로 발로 강하게 밀치며 문을 열었다. 그리고 뒷문을 열어 그의 굵은 근육질의 두 팔로 김혁을 차에서 황급히 끌어낸다. 그사이 차에 타고 있던 대부분의 행렬들이 차 밖으로 나와 주위를 둥글게 에워쌓다. 그중 김 차사의 바로 아래 후임으로 보이는 파마 머리의 차사가 달려왔다.
"지금..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
"됐어. 내가 다 책임질 테니 너는 잠시 애들 뒤로 물러"
김차사는 잔뜩 흥분한 채로 열쇠를 꺼내어 김혁의 수갑을 풀었다. 김혁은 손 목을 번갈아 가며 문지르며 씰룩 웃는다.
"괜찮겠수? 여기서 이렇게 많은 후배들 앞에서 쪽 당하지 않겠수?"
김차사는 그의 말에 대꾸도 안 하고 겉 옷을 신경질적으로 벗어던졌다.
"닥치고 오늘 여기서 너와 나 결판 내자."
그 말과 동시에 김차사는 커다란 성난 황소처럼 김혁에게 돌진해 온다. 김혁은 순식간에 그의 돌진에 몸이 부딪히며 함께 뒤로 나자빠졌다. 김차사는 엎어진 상태에서 상체를 들어 그의 주먹을 크게 휘둘러 김혁의 얼굴에 내리꽂으려 하였다. 하지만 김혁은 가볍게 그의 주먹을 피해 몸을 주먹의 반대쪽으로 피한다. 체중을 실은 강력한 펀치로 인해 김도운 찬사는 균형을 잃고 땅바닥으로 상체가 엎어지고, 그 사이 김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도운 차사는 분한 듯 양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치고 다시 일어나 복싱 자세를 취하였다.
"형님은 나한테 안된다니깐"
김혁의 또다시 성질을 건드는 말이 나오자 김도운은 주먹을 이리저리 휘두른다. 한 대라도 맞으면 정말 저승길에서 또 다른 저승길로 갈 것만 같은 매서운 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하지만 김혁은 그의 주먹들을 요리 저리 피하더니 그의 겨드랑이 사이로 몸을 돌려 파고들며 뒤에서 그의 목을 팔로 에워쌌다. 그리고 어느새 김도운 차사의 옷 안에서 꺼낸 총을 김 차사의 관자놀이에 갖다 댄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주변을 에워싼 모두가 놀랐다.
"뭘 그리 놀라?"
"아.. 아니.. 이 자식이.. 남자답게 결투를 하.."
"이 형님은 이렇게 승부에 눈이 멀어서.. 어휴 이러니깐 형님은 늘 나한테 안 되는 거유"
"아무리 그 총으로 나를 겨눠도 여기를 어떻게 빠져나가게? 얘들아. 이 새끼가 나 쏘면 알지? 바로 쏴서 이 새끼도 그냥 끝내버려."
주변을 둘러싼 차사들이 그들도 급하게 총을 꺼내어 겨누었지만 김 차사가 방패막이처럼 앞에 있어 어찌할 줄 몰랐다.
"크크 다 나갈 방도가 있죠. 어이. 진만아 아직도 묶여있나?"
김혁의 말과 동시에 그 들 주변에 있던 검은 지프차 한대가 달려오기 시작하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어느 틈엔가 진만도 묶여있던 수갑을 풀고 자동차를 탈취한 것이었다.
"아.. 아니.. 이 것들이..."
김도운차사는 잔뜩 성이 난 듯 얼굴이 빨개지며 김혁의 팔에 이끌리어 차에 가까이 가게 되었다.
"우리 대결은 나중으로 미룹시다. 내가 급히 가봐야 할 곳이 있어서. 얼른 가자 진만아."
김혁의 말에 진만이 차를 출발시켰다. 동시에 김혁은 김 차사의 목을 조르고 있던 손을 풀더니 발로 있는 힘껏 그를 차서 쓰러뜨린다. 김차사는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바닥에 내동댕이 쳐지고, 김혁과 최진만은 순식간에 그 자리를 벗어났다.
"어.. 얼른 쫓아가"
김차사는 넘어진 채 다가오는 부하들에게 말하였다.
일부는 김혁과 진만이 탄 지프차를 향해 총을 쏘도 또 다른 일부는 차로 향하였다. 그러나 어느 틈엔가 차키가 모두 뽑혀 있었고, 타이어가 찢겨 있었다.
"제. 제길"
김차사는 너무도 분하여 땅에 엎드린 채 또다시 양손으로 바닥을 내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