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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상 Oct 14. 2024

#10.체포

 #파노라마 #소설 #체포 #잔상

"어서 오세요? 국수 한 그릇 말아드릴까?"
명환은 조금 전에 꺼내온 물병과 물수건을 자리에 올려놓으며 말하였다.
"시원한 놈으로 곱빼기 두 그릇 주세요."
커다란 몸집의 남자 중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험상궂은 남자가 인상과 달리 해맑게 웃으며 말하였다. 최진만이었다.
"대장 맞게는 찾아온 걸까요?"
최진만은 주인이 자리를 벗어나자 누가 들을새라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 속삭이듯 말하였다.
"탐지기에는 이 곳에 기억리셋이 일어난 것 같은데 천국에서 탈출 한 놈이 여기서 이런 뻘찟을 하는 게 말이 안 되지 않아요?"
"흐으음..."
김혁은 생각에 잠긴 듯 대답 없이 짧은 신음만 내었다. 진만은 말없이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김혁이 대답이 없이 짧은 신음을 낼 때면 분명 깊은 고민을 할 때이고 방해받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네 말대로.."
2-3분 정도가 지나고 김혁은 차가운 스테인리스 컵의 물을 벌컥 들이켜고 말을 꺼내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지. 하나는 정말 우연이 겹쳐서 이 장소로 도망 온 것일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아니면 사연이 있는 놈인 거 같아. 재밌네. 허허"
그의 말에 진만은 '사연이 있다면 대체 무엇일까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어차피 이건 그 탈출한 놈을 잡지 않는 이상 알 수 없기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그놈 사연이 진만의 관심 밖이었다. 오로지 그는 구슬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기다려요. 어머니 제가 어서 돌아갈 거예요.'
진만은 속으로 되네이며 그 역시 컵 안에 있던 물을 비었다.
"국수 나왔습니다."
어느새 국수 두 그릇이 나왔다. 국물은 뽀얀 눈처럼 빛이 났고 면발은 탱글탱글 해 얼른 입에 넣고 싶은 비주얼이었다. 잠시 국수에 감탄하고 있을 때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누군가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명환은 시선은 문 쪽으로 고정한 채 김혁과 진만 앞에 국수를 놓으며 인사하였다. 발자국 소리가 '또각또각'났다.
김혁은 등을 지고 앉았지만 그 발소리에 잠시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이내 평온을 찾고 젓가락을 들었다.
그 발자국 소리는 그들에게 다가오더니 김혁의 귓가를 지나더니 검은 그림자가 나타나 진만 옆 빈자리에 불쑥 앉았다. 그제야 국수에 온통 신경이 집중되어있던 진만은 누군가 다가온 것을 알아채고 고개를 돌렸다.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뒤로 넘긴 이영희 차사였다. 너무 놀란 나머지 그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아. 일행이셨구나. 국수 한 그릇 더 말아드리면 될까?"
명환은 분위기 파악을 하지도 못 한 듯 그저 밝게 얘기하였다.

진만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김혁을 바라보았다.
"허튼짓하지 마. 너희들이 아무리 설쳐대서 저승사자를 너무 우습게 보는 놈들이 많아져서 안 그래도 골치가 아파"
김혁은 진만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듯 손짓하였다. 이차사는 진만 앞에 놓여있던 그릇을 갖고 와 젓가락을 새것으로 꺼내어 먹기 시작하였다.
"면발이 쫄깃하네. 어서 먹어 면 뿔겠다."
김혁은 자리에서 팔짱을 낀 채 무표정으로 이차사를 바라보았다. 이차사는 가볍게 젓가락을 놀리며 하얀 면발을 입에 넣었다. 탱글탱클 윤이 나는 면발이 부드럽게 물결치며 그녀의 입 안으로 부드럽게 밀려 들어갔다.
"면 좋아하는 건 죽어서도 여전하네"
"사담은 됐고. 여기까지 오게 힌트를 준 건 정말 고마웠어."
"천만에"
김혁은 별 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어찌 되었든 잘 추적할 거라 생각해서 당신들이 오기만을 기다렸고. 또 당신들만 쫓은 거였지."
"그런데..."  이차사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휴지를 뽑아 입가를 닦아내었다.
"우리 애들까지 건드는 건 실수였어."
이 말과 함께 이차사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은 채 김혁을 노려보았다.
"하하 가벼운 함정이었는데 실수라고 말할 정도야? 하여간 요즘 들어오는 저승사자 애들도 물러터져 가지고."
김혁은 크게 박장대소하며 조롱하듯 말하였다. 그녀의 미간이 잠시 찌푸려졌지만 그녀는 다시 평온함을 찾은 듯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선은 넘지 말았어야지. 원래는 조용히 너희 뒤를 밟을까 했지만 하도 괘씸하기도 하고 생각보다 출가양반이 많이 허술하기도 해서 더 이상 당신들이 필요가 없어졌지 뭐야."
말이 끝나자 이영희 차사가 손을 들자 가게 문이 열리며 수 십 명의 저승차사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각자 커다란 소총들을 들고 김혁과 최진만을 겨누었다.
명환은 갑작스러운 그들의 난입에 놀라 테이블 밑으로 숨었다.

"어이 김혁차사 오랜만이야? 아? 헌터라고 불러야 하나?"
총을 겨누고 있는 저승사자들 사이에서 커다란 근육질의 남자가 나타났다. 김도운 차사였다. 그가 더 가까이 서자 그의 우람한 체구에 식당이 가득 차는 듯하였다.
"어휴 김선배 올만이유. 나 잡으로 여기까지 오고 고생이 많수."
그때 김도운 차사의 커다란 주먹이 김혁의 얼굴을 강타하였다. 웬만해선 그 큰 주먹에 맞으면 나가떨어질 법도 하지만 김혁은 잠시 휘청이더니 다시 날아오는 김 차사의 주먹을 이번에는 가볍게 피하여 그의 몸으로 파고들어 그를 바닥에 넘어뜨렸다. 그가 눕혀진 상태에서 김혁은 그의 주먹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주변의 저승차사들의 총구가 순식간에 김혁의 목까지 파고들었다.
"형님" 최진만은 잔뜩 흥분한 채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지만 총구가 이미 김혁을 에워싸고 있어 더 이상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하하하 아니 김선배 제대로 함 붙자니깐 언제까지 후배들한테 빌붙을 작정이유"
김혁은 양손을 번쩍 든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차사는 '씩씩'거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복싱 자세를 취하였다.
"헉헉.. 그래 이 새끼야. 제대로 한 번 붙어보자. 모두 물러나 있어."
김 차사가 잔뜻 흥분한 채로 소리치자 총을 겨누던 저승사자들이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김혁도 가드를 올리며 그와 겨룰 듯이 다가섰다.
"이제 그만"
이영희 차사의 낮은 저음의 목소리가 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분명 낮은 톤이었음에도 그 위압감에 그 둘은 가까워지던 거리가 일순간 멈춰졌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닙니다. 이 수배자들은 어서 연행해 주세요. 지금 우리는 얼른 출가자를 잡아야 합니다."
이영희 차사의 무표정으로 말하였으나 매우 압도되는 위압감에 김도운 차사는 주먹을 내리고 그의 부하들에게 손짓하였다. 그러자 부하들이 다시 김혁과 최지만 주위를 감싸고, 수갑을 채우기 시작하였다.
"하아.. 일단 너희 새끼 들은 지박령을 사주하여 저승사자들을 유인 및 살해 시도를 한 죄를 물어 현행범으로 체포한다. 알다시피 너희들 같은 쓰레기들에게 조차 스스로를 변호할 권리가 있고, 하늘의 심판을 받을 시 진술이 가능하다. 알아들었으면 지옥 갈 준비나 해라"
김도운 차사를 분이 남은 듯 수갑을 찬 그들에게 침을 뱉듯 이야기하였다.
그들이 움직이려는 찰나 이차사가 갑자기 김혁 앞에 가로막고 섰다. 약 5초간 그를 노려보다 이차사가 그에게 나지막이 말하였다.
"분명히 말하는데 말썽피지 말고 그냥 연행해. 딴짓하다 나한테 잡히면 그때는 정말 지체 없이 당신을 쏠 거야."
"오.. 그 순간이 정말 기다려지는 군. 암튼 미리 충고해 줘서 고마워. 여보"
순간 희죽대는 김혁의 말에 주변의 저승사자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소문이 진짜였냐는 듯 아무 말 없이 서로 눈만 껌뻑이며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여기서 얼른 꺼져"
이차사는 뜻밖의 말에 얼굴이 약간 붉어져 고개를 매섭게 돌리며 돌아섰다.

"오차사님 오셨어요? 방금 들으셨어요? 말씀대로 정말 저 두 분은 부부였군요. 아니 그런데 어찌하다 부부가 이렇게 한 자리에..."
"조용히 해 인마. 목소리가 너무 크잖아"
조금 전 현장에 도착한 오차사는 막내를 흘겨보며 우람한 그의 어깨로 '툭'쳤다. 그 순간 최진만이 지나가며 오차사와 눈이 마주쳤다. 그 둘은 마치 오래된 앙숙인 냥 노려 보았다.
"서로 아는 사이세요?"
막내는 또다시 그의 입을 놀린다. 그 둘이 문을 통해 시야가 서로 끊어질 때까지 오차사는 노려보았다.
"내 동기였지. 참 순한 놈이었는데. 쯧쯧"
오차사는 고개를 흔들며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차 댔다.
김혁과 최진만이 가게를 나서자 검은색 지프차 여러 대가 서 있었다. 새까만 차량의 도색 위로 햇살이 날카롭게 반짝이며 스스로 그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들은 앞에 서 있던 커다란 검은 지프차에 각각 나뉘어 오르게 되었다.
"하아. 1900년대 차라 승차감이 아주 오지겠네."
김혁은 못마땅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차에 올랐다.
"쇠사슬로 뒤에 묶고 가도 시원찮을 판에 그 정도면 감지덕지라고 생각해"
뒤이어 오던 김 차사가 말하였다.
"내가 여기에 타지" 김혁이 실린 검은 차에 올라타려던 그의 부하에게 말하였다. 김차사는 차에 오르기 전 그의 뒤를 따라 나온 이차사에게 말하였다.
"암튼 뭐 이 놈을 내게 넘겨줘서 고맙긴 해. 집중해서 그 출가 놈을 잡길 바라"
"네 선배"
이차사는 앞선 무표정과 달리 엷은 미소와 함께 가볍게 목례를 하였다.
그렇게 그들이 모두 차에 올라 시야에서 멀어지자 오차사와 막내가 이차사 옆으로 왔다.

"잠시 시간을 번 거니깐 얼른 서둘러 우리가 잡자"
이차사가 자동차가 사라진 곳에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하였다.
"잠시 시간을 벌다니요?"
막내가 역시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말한다. 오차사는 이제 그의 말에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무시하고 다른 말을 꺼낸다.
"팀장님 우린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요?"
"흐음... 지금 우리가 가진 단서가 이 지역과 기억리셋 그리고 이천오십삼년 구월 이십칠일이라는 날짜 단서가 있어. 이 날에 무슨 사고가 일어났는지 알아봐 봐. 특히 가까운 사람일 거야. 대부분 기억리셋이 일어났다는 것은 좋지 않았던 기억을 자기도 모르게 되돌리려 하는 것일 테니"
"네 팀장님"
오차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막내와 함께 세워둔 차량으로 달려갔다.

[어느 산중턱의 벤치]
훈은 잠시 벤치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은 연분홍 빛으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해가 지평선 아래로 조금씩 가라앉으며 마치 노른자가 터져 새워 나오듯 그 색깔이 퍼져 하얀 구름들이 솜같이 조금씩 분홍색으로 물들어가는 듯하였다.
"자네가 참 좋아하던 하늘이었어. 조그마한 위로가 될 수 있을까 해서 준비했지"
학수는 스스로 자랑스럽다는 듯 쓴웃음을 지으며 훈에게 말하였다. 훈은 여전히 조금 전의 기억이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퉁퉁 부은 눈으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고마워"
한참 동안 멍하니 있던 훈이 입을 뗀 첫마디였다.
"저 하늘 말인가? 그리 어려운 건 아니지만 자네가 만족해하니 다행이야"
학수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그의 중지로 검은 뿔테 안경을 버릇처럼 고쳐 쓴다.
"아니.. 내 말은 여정을 함께 해줘서"
"허허 하늘을 보고 너무 감정적이 된 거 아닌가? 닭살 돋는구먼"
학수가 멋쩍어하며 말한다.
"친구이니깐 그런 거지 허허. 소중한 친구"
넌지시 그의 진심을 덧붙여 본다. 훈은 그의 뒷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학수에게 말하였다.

"자. 이제 다음 목적지로 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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