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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상 Oct 07. 2024

#8.함정

#파노라마 #소설 #함정 #잔상

[지박령이 있는 빌라]
빨간 벽돌로 되어있는 빌라와 더 가까워지자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외벽은 세월의 풍파에 곳곳이 갈라져있었고, 군데군데 색이 바래었으며 이끼가 끼어 있었다. 지붕은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기와가 걸쳐 있었다. 유리 창문은 오랫동안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듯 뿌옇다 못해 누렇게 묵은 먼지가 끼어있었다. 빌라 입구에 당도하자 깨어진 유리문 위에 하얀 종이가 눈에 들어왔는데 "철거 예정"이라고 쓰여 있었다.
"아무리 저승사자라도 여긴 혼자 못 들어올 거 같아요." 막내는 다소 긴장한 듯 어깨를 움츠린 채 말하였다. 옆에 덩치 큰 오사자는 그를 말없이 쳐다보고 앞장서 문을 열었다.
"끼익"
녹슨 문이 굉음을 내며 열렸다. 정면에는 위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보였고 왼쪽으로는 통로가 보였다. 문득 생각난 듯 오차사는 고개를 돌려 막내차사에게 말했다.
"그거 알아? 왜 저승사자 하다 그냥 도망치는 놈들 있잖아?"
"있죠. 대부분 헌터가 되잖아요"
"그런데 일부는 이런 지박령 있는 곳에 숨어 들어서 자리를 차지하고 일부러 사람들을 놀라게 해 죽이거든. 그러면 구슬을 빼앗기 더 쉬우니깐. 문제는..."
잠시 오차사가 말을 멈췄다. 막 내 차 사는 마른침을 꿀꺽 삼킨 채 다음말을 기다렸다.
"문제는 그들은 눈에 뵈는 게 없는 거지. 대부분 저승사자들을 보고 도망가지만 그들은 안 도망가고 저승사자도 공격한다는 거야"
"에? 정말요?"
막내차사는 믿기지 않아 되물었다.
"그렇다니깐. 특히 무기 안 빼앗기게 조심해"

"난 위층으로 가볼 테니. 넌 이쪽 통로로 가서 1층을 샅샅이 살펴봐."
오차사는 황급히 말을 마무리하고 막내에게 통로 쪽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아.. 아니 그런 무서운 말을 하시고 가시면 어떡해요? 전 아직 신입인데.. 가.. 같이 가요"
막내차사가 오차사의 뒤를 쫓으려 하자 오차사는 큰 손으로 막내차사의 어깨를 잡았다.
"그러니깐 신입 놈이 선배명령을 거부하면 안 되지."
웃음기 없이 우락부락한 얼굴로 막내차사에게 말을 건네자 막내차사는 체념한 듯 한걸음 물러났다.
"이상한 거 보이면 바로 소리 질러"
오차사는 다시 몸을 돌려 계단 위로 걸어 올라갔다.
홀로 남겨진 막내차사는 깊게 한숨을 쉬며 텅 빈 통로를 바라보았다. 빛이 닿지 않은 깊숙한 안쪽은 마치 새까만 블랙홀 같아 보였다.

"하아.."
짧은 한숨과 함께 그는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권총의 몸체는 은빛으로 온몸을 뒤덮고 있었고 손잡이 부분만은 미끄러지지 않도록 고무가 장착되어 있다. 매끄러운 총신 끝에는 금방이라도 화염을 뿜어댈 듯 성난 구멍이 보였다. 탄창에 있는 총알들은 천국의 눈물이라고 불리는 양기가 강하게 응축되어 들어가 있어 스치기만 해도 영들은 순식간에 찢겨나가 버리며 모습이 사라진 혼만이 남아 지옥으로 떨어진다. 우리가 가끔 보게 되는 도깨비불이라는 것이 바로 이 혼인 것이다. 이 무시무시한 무기는 사실 꺼낼일도 없다. 대부분은 자신의 죽음 자체에 넋을 잃거나 두려움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막내차사는 총손잡이가 부서질세라 있는 힘껏 쥔 채 시커먼 통로에 발을 내디뎠다.

철거 종이가 붙을 정도로 오래된 건물임을 말하듯 벽의 페인트는 곳곳에 벗겨져 있었다. 바닥은 차가운 시멘트 바닥이었지만 빛이 살짝 닿은 곳을 보면 군데군데 금이 가있었다.
짧은 통로를 지나니 길이 양갈래로 나뉘어 있었고 각각 101호와 102호 팻말이 적힌 문이 있었다. 101호는 문이 닫혀져 있었던 반면 102호는 문이 살짝 열려있었다. 마치 금방 누군가 다녀갔다는 듯이.
'흠.. 한쪽 문만 열어놓은 거라면 분명 그쪽으로 유도하려는 건가?'
어떠한 귀신이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보니 막내차사에게는 지박령이 파놓은 함정이라는 의심이 앞섰다.
'그래 네 장단에 놀아 나 주지. 나도 소싯적에는 한 주먹 했다고.' 속으로 자기 암시를 하듯 열린 문손잡이를 꽉 잡고 있는 힘껏 문을 마저 열어젖혔다.
기름칠이 필요한 듯 문은 끼익 거리며 열렸다. 그때 동시에 살며시 101호의 문이 열렸다. 하지만 동시에 문소리가 나다 보니 막 내 차 사는 101호의 문이 열린 줄 몰랐다.

"어딨어? 나와! 이 새끼가 어딜 감히 저승차사가 왔는데.. 인사하러 나와도 모자랄 판에. 우습게 여기고."
막내차사는 총구를 이리저리 조준하며 소리쳤다.
집 안은 낮인데도 불구하고 꽤 어두웠다. 낡아빠진 누런 암막 커튼이 반정도가 뜯긴 채 매달려 나머지가 햇살을 가리고 있었다. 뜯긴 부분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만 아니었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거실을 지나 주방 쪽을 향하였다. 한 쪽다리를 잃고 주저앉은 4인용 목조 식탁이 보였고 벽에는 다양한 조리기구들이 걸려있었던 듯 듬성듬성 국자 등이 매달려있었다. 그 왼 편으로는 반쯤 열린 방문이 보였다. 그는 힘겹게 한걸음 한걸음을 떼며 그 방문 앞으로 향하였다.
"그 방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나와 이 자식아!"
그는 몸으로 문을 세게 밀치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어딨 어? 어디..."  그때 누군가 검은 양손이 그의 뒤에서 튀어나오더니 막내차사의 목 위로 올가미가 써졌다. 그러더니 막내차사의 몸이 순식간에 천정으로 올라가며 그의 총이 바닥에 떨어졌다.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막내차사는 조여오는 목줄을 잡고 '켁켁'거리며 발버둥만 칠 뿐이었다. 온통 검은 사람의 형체는 떨어진 총을 들고서는 벽 뒤의 검은 그림자 안으로 숨어들었다.
그때 이윽고 오차사가 뛰어들어오며 천장에 매달려 있는 막내차사를 보고 황급히 칼을 꺼내 들었다.
"컥컥 사.. 살려ㅈ"
"걱정 마 이미 넌 죽은 몸이라 이걸로 큰일 나지 않아"
오차사는 방 한켠에 보이는 의자를 가지고 와 올라서서 막내차사의 목을 조이고 있는 굵은 목줄을 끊으려 했다.
그 사이 숨어들었던 벽에서 검은 형체가 다시 나타났다. 그 형체는 사람의 형상이지만 온통 까맣고 눈 부분만 하야면서도 흐릿하게 형체가 보일 정도였다.  그 형체는 조금 전에 주은 권총을 오차사를 겨눴다.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뭔가가 튀어나와 그 형체가 쥐고 있는 총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방아쇠를 더 이상 당길 수 없게 손가락이 걸쳐 있었다. 검은 형체는 당황한 듯 옆을 쳐다보자 어느새 총을 쥐고 있던 손이 꺾였다. 그렇게 검은 형체가 앞으로 고꾸라지는 순간 무릎이 강하게 검은 형체의 얼굴부위를 강타하였다.
"쿵" 소리와 함께 검은 형체는 총을 떨군 채 벽에 부딪히며 쓰러졌다.
"ㅌ.. 팀장님!"
오차 사는 칼로 막내 차사의 목을 조이고 있던 줄을 계속해서 긁으며 얼굴만 돌린 채 말하였다.
이영희 차사는 떨어진 총을 들어 오차사에게 비키라고 손짓하였다. 오차사는 놀라 잠시 머뭇거리다 의자에서 내려왔다.
"탕"  소리와 함께  총구는 하얀 염기를 뿜었고 막내차사는 줄이 끊기며 그대로 땅바닥에 떨어졌다.
"헥헥.."
막내차사는 몸을 웅크린 채 목을 붙잡고 거친 숨을 내뱉고 있었다. 어안이 벙벙한 듯 막내차사와 이차사를 번갈아 보던 오차사는 정신을 차린 듯 수갑을 꺼내 쓰러진 검은 형체로 다가갔다.
"아니 어떻게 알고  오셨습니까?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검은 형체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며 오차사가 말하였다.
"봤어"
"네? 누구를.. 아.."
누구인지 말하지 않았지만 오차사는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헌터 중에 가장 통제가 안 되는 한 팀으로 그들의 이름은 김혁과 최진만이었다. 둘 다 한 때는 저승사자였으나 스스로 헌터로 전향하였다. 최진만은 저승사자도 건들기 힘들다는 한을 품은 원귀였으나 당시 저승사자였던 김혁에 의해 붙잡혔고 그때부터 김혁을 따른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즈음 김혁도 저승사자의 사명을 버리고 헌터로 전향하였다. 원래대로라면 그런 그들을 붙잡아 지옥으로 인도해야 하지만 워낙에 저승사자들이 꺼려하는 사악한 원귀들을 부단히 잘 처리해서 암묵적으로 그냥저냥 지나치곤 하였다. 물론 다른 시대에 배치되어 있는 원칙주의자인 김차사와 노련한 방차사가 지금 이 시대로 온 이상 어떻게 될지 두고 봐야 할 일이겠지만 결과야 어찌 되었든 득이 되면 되었지 해 될 것은 하나 없었다.

"너희들이 여기로 출발하기 전 분명 현장에 있던 그들이 사라지고 없더라고"
이차사는 무표정으로 총을 막내차사에게 건넸다. 팀장은 단 한 번도 그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으로는 김혁이라는 헌터가 그녀의 남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영혼 인도율, 원귀 체포율이 가장 높은 그녀가 김혁일당을 검거하지 않은 합리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무기 관리 잘하라니깐"
오차사는 퉁명스럽게 얘기하면서도 누구러트린 말투로 얘기하였다. 홀로 막내를 보내 당하게 해서 미안한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저승사자를 업신여기고 무기를 빼앗긴 창피와 분노가 치밀어 검은 형체의 지박령의 멱살을 잡아 번쩍 들어 올렸다. 거대한 키의 오차사의 잔뜩 움켜쥔 손등에는 울그락불그락 터질 것 같은 정맥이 팔뚝까지 이어져 나왔다. 지박령은 숨이 막히는 듯 '컥컥'거리며 천정에 머리가 닿을 듯하였다.
"아니 오차사 그를 내려놓아."
이차사는 손을 오차사 어깨에 올리며 내리라 말하였다.
"하지만 팀장님. 이 놈이.."
"그런 식으로 소용없어."
평상시 두 번 말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을 잘 아는 오차 사는 그를 말 끝을 흐리며 그를 내려놓았다.
지박령을 내려놓자 이차사는 그의 품에서 총을 꺼내 쏘았다.
"탕"
소리와 함께 아슬아슬하게 지박령의 바로 옆 벽에 검은 구멍을 내었다. 막내차사는 깜짝 놀라 몸을 숙이며 양 귀를 막았다.
"티.. 팀장님!"
오차사 역시 놀라 이차사와 검은 구멍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저승사자 무기탈취, 살해시도 이 둘 중 하나만 되어도 우리는 이 총을 쓸 수 있어. 어차피 이 놈은 불지도 않을 거고 불어도 거짓으로 말하겠지. 지금 우린 이 놈을 연행할 시간도 없으니 즉결 심판한다."
이차 사는 총을 재장전하여 이번에는 지박령의 머리에 정조준하였다.
"아이고.. 그거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그저 헌터가 시킨 대로만.."
지박령은 검은 형체를 넙쭉 엎드려 벌벌 떨며 이야기하였다.
"그 정도는 나도 알아. 그 놈들도 이제 끝난 혼들이지."
"저.. 제가 본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총구가 그의 머리에 닿자 황급해진 그는 그가 본 것을 털어놓았다.

그의 얘기는 대략 5분간 이어졌다. 일부 고개를 갸우뚱거리긴 하는 부분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묵묵히 들었다.
"네 말이 사실이렸다?"
"아이고 모두 사실 입죠. 제가 어찌 감히.."
조금 전 저승사자들을 죽일 듯이 공격하려던 모습과는 상반되는 모습으로 그는 비굴한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하였다.

"연행해."
이차사는 오차사에게 말하고 총을 다시 거둬 가슴팍에 넣었다.
"그리고 좌표 찍어줄 테니 확인 후 바로 그곳으로 와. 막내는 나랑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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