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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멀스멀 Oct 11. 2019

찡쪽 이야기

저는 태국에 살고 있는 도마뱀이에요

 태국이나 라오스, 베트남 등지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이 있다. 바로 10cm 정도밖에 안 되는 작고 조금 투명한 도마뱀이다. 태국어로 찡쪽이라고 부르는데, 우는 소리가 '쪽, 쪽, 쪽' 하는 것 같아 이름 붙었단다. 아침이 되면 다들 어디로 가는지 숨어 잠을 자다가 저녁나절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바닥이 아니라 주로 벽이나 천장에 붙어 있는데, 조명 근처에 많이 있어 간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신기한 발가락 덕분에 벽이나 천장에 붙어있을 수 있고 주로 가만히 있다가 모기나 초파리 같은 해충을 사냥한다. 아마 그래서 조명이 밝게 켜진 곳을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도마뱀'이란 존재 자체가 우리에겐 낯설어 그런지 처음 찡쪽을 보면 놀라기도 하고. 그래서 숙소나 식당에서 찡쪽이 보이면 기겁을 하며 놀라거나 도망가는 사람을 본 적도 있다. 한데 찡쪽 입장에선 참 억울한 일인 게, 본인들 사는데 사람이 쳐들어 와서는 무섭다고 나가라는 거 아닌가. 찡쪽은 겁이 많아 사람에게 다가오거나 잡히는 일이 거의 없다. 작은 몸을 볼록 거리며 숨만 쉬는 듯 있다가, 사람이 다가오면 잽싸게 도망가기 바쁘다. 그런데 겁이나 후다닥 도망가는 그 모습이 사람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나만해도 벌레 포비아가 있다고 얘기할 정도의 사람이라, 무언가 빠르게 움직이면 몸이 얼어버리곤 한다. 인터넷에 찾아보면 우리나라, 일본, 대만 등지에도 서식한다고 하는데 시골에나 가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찡쪽을 방에서 내보내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는 여행자의 글도 봤고, 여행 전부터 겁이 나 찡쪽을 잡기 위해 전기 파리채를 구매했다는 무시무시한 글도 본 적이 있다. 그러면 선배 여행자나 현지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찡쪽의 무해함을 알려주며 오해를 풀어주곤 한다. 많은 경우 '겁나는 존재'에서 '고마운 존재'로 돌아서니 다행이다만, 왜 우리 사는데 와서 무섭다고 하는 건지 찡쪽은 여전히 억울할 수밖에. 모기 조차 잘 잡지 못하는 나에게도 든든한 지원군이자 고마운 존재다. 동남아에서 잠자리에 들 때면 그날 밤 찡쪽이 배불리 포식하기를 바라곤 한다.


태국 식당 천장에 붙어있는 다섯 마리의 찡쪽들


 집이든 식당이든 찡쪽이 살지 않는 곳이 없는 데가 태국이다 보니, 관련된 미신도 여럿 있단다. 집을 나서는 순간 찡쪽이 소리 내어 울면 불길한 일이 일어난다는 설이 있다. 그래서 태국인들은 이동하는 동선과 수단을 전부 새로 짜거나, 아니면 아예 일정을 취소하고 집에 머물기도 한단다. 많은 찡쪽의 수에 비해 우는 소리를 자주 들을 수는 없는데, 처음 들으면 바깥에 새가 우는 소리 같기도 하다. 어떤 때 적막 속에서 갑자기 들으면 약간 기괴한 느낌도 들어 놀라기도 한다. 이렇게 하루 종일 들리는 울음소리가 아니다 보니, 집 나서는 순간 들려오는 찡쪽 소리는 불행의 예고처럼 들리나 보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고, 벽과 천장에 찰싹 붙어있는 찡쪽도 가끔 떨어진다. 그게 그렇게 드문 일인지, 떨어지는 찡쪽에 몸을 맞으면 행운이 깃든다고 여긴다. 그래서 찡쪽 맞은 날엔 복권을 사야 한다는 설이 있다. 치앙마이 한 달 살기 중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 떨어지는 찡쪽에 맞을 뻔했다. 호텔 프런트에 볼 일이 있어 방을 나서는데 복도 천장에 붙어있던 찡쪽이 놀랐는지 눈 앞으로 떨어진 것이다. 내 발 한 뼘쯤 앞에 툭하고 떨어져 몇 초 가만히 있더니 후다닥 뛰어서 도망갔다. 몸이 가벼운 개미는 수십층에서 떨어져도 다치지 않는다던데, 찡쪽도 가벼워서 그런가 천장에서 떨어졌으면서 기절하지도 않았다. 한 발짝만 더 앞섰으면 찡쪽의 기운을 빌어 복권을 사고 당첨금을 찾으러 다시 태국 여행을 갈 수도 있었는데. 아쉬울 따름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내 몸에 떨어졌다면 벌레인 줄 알고 소리 지르고 난리 났을 거다.


호치민 시티에서 만난 찡쪽 티셔츠의 디자인


 어떤 이들은 무서워 하지만, 또 어떤 이들은 아주 귀여워하기도 한다. 그래서 기념품 가게나 다양한 소품에 도마뱀 디자인이 활용되곤 한다. 호치민 시티를 여행하다 발견한 세련된 디자인의 옷 가게에서 찡쪽 티셔츠를 만났다. 티셔츠 가슴 주머니에서 찡쪽이 기어 나오는 듯한 귀여운 디자인이었는데 함께 여행하던 짝꿍에게 간택받아 몇 해 째 잘 입고 다닌다. 찡쪽의 영문명인 게코 Gecko라는 이름을 딴 브랜드나 매장도 많다. 치앙마이의 한 구석엔 게코 가든이란 술집이 있는데 매일 밤 서양 아저씨들이 둘러앉아 맥주를 마신다. 해충만 잡아주는 게 아니라 디자인 소재가 되어주고, 아이콘도 되어주고, 불행은 막고, 행운은 가져다 주니 여러모로 고마운 친구다.


서점 간판 위 형광등 주변에 있는 두 마리의 찡쪽들


 처음엔 무서워해놓고 있는 듯 없는 듯 같이 살다 보니 정들어 이름을 지어주는 사람도 봤다. 비슷하게 생겼는데도 구별이 되는지, 함께 사는 찡쪽 두 마리에게 각각 이름을 붙여주기도 하더라. 그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정이 들어 헤어질 때 아쉬워하기도, 후에 그리워하기도 한다. 번듯한 첨단의 대도시인 서울 한복판에 살면서 모기 몇 마리 어쩌지 못하는 지금, 나도 찡쪽이 사무치게 그립다. 치앙마이의 자연을 담은 모습으로 호텔을 꾸몄다던 한 작은 호텔 오너가 말했다. 


 저기 멀리 보이는 1박에 300달러가 넘는 5성급 리조트에 가면 벌레도, 찡쪽도 없다고 들었다고. 그렇게 보기 싫은 것 다 감춰두고 내쫓고 죽이고 사는 게 무슨 삶이냐고. 왜 찡쪽 사는 곳에 놀러 와서 보기 싫다, 눈에서 치우라 하냐고. 걔네가 그냥 없어지겠냐고. 약을 엄청나게 놓아 다 박멸할 텐데 겉만 번지르르한 저기가 왜 좋다는지 모르겠다고. 곤충이 무서워 벌벌 떠는 나는 온 마음으로 동의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찡쪽 몇 마리는 같이 살아도 좋겠지 싶다.


 식당이나 숙소의 후기를 보다 보면 종종 도마뱀이 나온 게 큰 일인 양 호들갑을 떨며 별점 하나를 주는 사람들이 있다. 도마뱀 사는 집에 놀러 가 놓고 도마뱀이 있다고 뭐라 하는 격이니 답답한 노릇이다. 거기에 별점 테러로 무고한 사람들 생계까지 곤란하게 만드니 답답을 넘어 먹먹한 지경이다. 이러니 찡쪽이 억울하지 않을 수가 있나.


루앙프라방 식당 간판에 붙어있는 세 마리의 찡쪽들


 나는 모기에 잘 물리지만, 물린 곳을 딱히 긁지 않아 금세 가라앉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원래부터 이랬던 건 아니고 중학교 2학년 때 홀로 삼척 바닷가의 민박집에서 머물 때 체질이 변했다. 첫날밤 자고 일어나니 온 몸에 모기를 물려 가려워 미치는 줄 알았다. 너무 많이 물린 것도 신기해 세어보니 140군데 정도 물렸던 기억이 난다. 게다가 산모기에 물렸으니 오죽 가려웠을까. 민박집 할머니께 바르는 약을 달라고 하자 그런 건 없다며, 바다에 몸을 담그면 가렵지 않다고 하셨다. 반신반의하며 바다에 들어가 보니 웬걸, 가려움도 많이 가라앉았고 시원해 즐겁기까지 했다. 삼척에서 지낸 2주 동안 바르는 약 없이 바닷물로만 가려움을 달랜 후 나는 모기에 물린 데를 손대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아, 그때 그렇게 많이 물린 걸 보면 우리나라 시골에도 찡쪽은 별로 없나 보다. 찡쪽이 있었더라면 그렇게 물렸을 리가 없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 무더운 치앙마이의 여름을 온몸으로 느끼며 한 달 살기를 하고 돌아와 한국에서 가을을 맞이했다. 더울 땐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모기가 어디 있다 이제와 극성인지, 10월 중순을 바라보는 지금 집에서 집요하게 괴롭힌다. 모기를 잘 잡지도 못하고 물려도 별로 개의치 않는 나인데도 신경질이 날 만큼 물어댄다. 글을 쓰거나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몇 번이고 불을 밝게 켜고 천장과 벽을 뚫어져라 보곤 한다. 한쪽 구석에서 반대쪽 구석까지 눈에 불을 켜고 모기를 찾지만 잡는 데는 번번이 실패한다. 글을 쓰는 지금도 가끔씩 일어나 모기 사냥을 하고 있자니, 내가 찡쪽인지 찡쪽이 나인지 싶은 지경이다. 서울에 있는 우리 집에도 든든한 찡쪽이 한 마리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찡쪽은 '집 도마뱀붙이'로 우는 소리는 'tchak tchak tchak'과 같이 묘사할 수 있으며 흔히 세 번씩 운다고 한다. 75mm 에서 150mm 정도까지도 자라며 5년 정도 산다고. 독이 없으며 사람에게 딱히 해를 끼치지 못하는데 스트레스를 주면 물기도 한다. 다만 힘이 없어 사람 피부에 해를 입히지 못한다고. 겨울에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휴면 상태에 들어간다.







치앙마이의 자연을 닮은 한 호텔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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