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멀스멀 Jul 31. 2018

여행 가서 대학교 따위를 왜 가는 거야?

온전한 나만의 경험을 쌓기 좋으니까

 여행할 때 랜드마크에 딱히 관심이 없다. 이건 어렸을 때부터 갖고 있던 습관 같은 성향이다. 고등학생 때 시드니에 갔을 땐 멀리서 오페라하우스를 힐끗 보며 지저분한 만두 같다고 생각했다. 20대 뉴욕에선 자유의 여신상 같은 건 아예 볼 일도 없었다. 전망대에도 큰 감흥이 없고 사진 찍기 좋아하나 찍히기 싫어하는 성격도 한몫한다. 기념사진에 대해선 내가 그곳에 있는 사진보다 내 눈으로 본 그곳을 담는 게 개인적으로 더 좋다. 게다가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해서 대만의 지우펀에 갔을 땐 인파를 피해 식당으로 도망쳤을 정도. 막차로 모두가 떠난 지우펀의 비어있는 골목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비단 여행뿐 아니라 남들 다 보는 영화는 몇 년이 지나도 손이 잘 안 가는 그런 꼬인 구석이 있다. 이를테면 아바타, 명량, 태극기 휘날리며 등을 여태 보지 않았다.


 여행을 자주 다니다 보니 관련해서 많은 질문을 받는다. 그중 최근에 자주 들었던 질문은 여행 가서 대학교 따위를 왜 가는 거냐는 것. 공교롭게도 올해 두 번 홋카이도에 다녀왔다. 2월에 한 번, 7월에 한 번. 두 여행에서 겨울과 여름의 홋카이도 대학 캠퍼스를 산책했다. 그리고 두 번 모두 뉘앙스는 조금 달랐지만 위의 질문을 들었다.

정말 예쁜 호스텔

 겨울에 처음 묵은 숙소는 삿포로 역에서 서쪽으로 조금 걸으면 나오는 호스텔이었다. 안팎으로 인테리어도 예쁘고 방도 좋은데 심지어 스태프들도 친절해 인상 깊었다. 만족 스럽게 머물고 체크아웃하는데 스텝이 어디에 갈 거냐 물었다. 마침 잘됐다 싶어 홋카이도 대학 캠퍼스에 가는데 길을 알려달라 하자 꽤나 당황하더라. 당황한 스텝, 아니 스텝들을 보고 나도 당황했다. 왜냐하면 호스텔과 대학은 걸어서 고작 3분 거리였기 때문이다. 지도에 출입구의 유무가 안 보여 물은 건데 스텝들 중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거기를 대체 왜 가느냐는 질문. 눈 내린 캠퍼스가 보고 싶어서 간다는 답변에 다들 미소는 뗬으나 눈에는 의구심이 가득했다.




가는길에 만난 작은 문화재 Seikatei 清華亭

 일단 가 보자며 일행들과 길을 나섰는데 그 짧은 거리 중간에 문화재가 있었다. 눈 덮인 작은 정원이 예쁜 고택인데 무료로 개방되어 있어서 잠시 들러 구경했다. 조금 더 걸어 도착한 대학 캠퍼스에는 다행히 작은 출입구가 있었다. 처음으로 만난 건물은 매점과 식당, 서점 등이 있는 생협 건물. 현지 친구들이 사는 모습을 잠시나마 볼 수 있으니 얼마나 멋진 곳인가. 그런데 방학중이라 그런지 문을 닫아 아쉬운 마음을 안고 눈길을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만난 넓은 눈밭과 눈 덮인 나무들, 그 사이로 잔잔히 흐르는 개울물. 눈밭에는 산책 나온 가족이나 연인들이 있었다. 우리 같은 여행객도 있지만 동네 사람들이 꽤 많았고 건물을 오가는 학생들도 있고. 나는 고등학교보다 조금 큰 캠퍼스에서 대학생활을 해서 이런 멋진 캠퍼스를 보면 좀 부럽기도 하다. 농대로 시작한 대학답게 낙농에 강한데 학생들이 하는 카페에서 파는 우유 아이스크림이 너무 맛있어서 부러움은 배가됐다.


눈 덮인 홋카이도 대학 캠퍼스 곳곳의 모습

 여행에서 돌아와 지인들이 어디가 좋았냐 물어 눈 덮인 대학 캠퍼스가 참 예뻤다 하면 대체로 갸우뚱. 그리고 이어지는 예의 그 질문. 지난겨울 삿포로에서 나에게 여행병을 안겨준 건 홋카이도 대학인 호쿠다이와 작은 징기스칸 집이었는데 왜들 의아해할까. 눈 덮인 교정 풍경에 대한 맛깔난 설명이나 사진만 봐도 여행병 기운이 들 것 같은데 말이다.


 겨울의 북해도만 두 번 겪어본 일행들끼리 여름의 북해도에 꼭 와보자 다짐했었다. 생각보다 일찍 추진돼서 7월 말 극성수기에 조금 비싼 돈을 주고 다녀왔다. 여름의 삿포로로 떠나기 전 계획 단계에서 내 머리엔 호쿠다이가 떠다녔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 7월의 홋카이도는 후라노의 라벤더 밭이리라. 지인들이 하나같이 라벤더 밭을 꼭 가보라 당부했는데 이번엔 내가 시큰둥했다. 꽃을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으니 지나가다 들려도 그만이다 싶은 그런 정도. 게다가 더운데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서 기념사진 찍기에 열중일 거라 생각하니 마음은 조금 더 멀어졌다.

스스키노 Rojiura Curry SAMURAIスープカレーSAMURAI

 여름 홋카이도 여행엔 초행인 친구도 한 명 함께했다. 스프카레를 먹고 대학 캠퍼스에 산책하러 가자 얘기하니 다행히 흔쾌히 동의했다. 스프카레 얘기가 나와서 잠깐 옆길로 빠지면 개인적으로 사무라이 스프카레가 스아게 보다 맛있다. 채소 하나하나가 어찌나 달고 맛있는지. 스프는 또 보약이다 싶을 정도로 깊고. 원래 북해도산 채소가 유명한 게 많은데 브로콜리의 아삭하고 달콤한 맛이 정말이지 아름다웠다.  



홋카이도 대학의 작은 포플러 숲 길

이번엔 지난번과 다른 방향에서 캠퍼스에 들어가 보려고 지하철을 탔다. 기타주니조 역에서 한 골목을 걸어가자 대학 입구가 나왔다. 북에서 남으로 2km, 동에서 서로 1.6km인 캠퍼스는 넓은 평야 같고 푸르른 녹음이 짙었다. 여유롭게 걷는 학생들이나 교직원들을 따라 캠퍼스를 걷다 보니 작은 포플러 숲이 나오고 잔잔한 바람과 까마귀 소리가 들린다.


 대학 박물관 근처 연못엔 연꽃이 가득하다. 나무 사이로 햇살이 비춰 들어오고 벤치에서 책 읽는 사람도,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도 여유롭다. 한쪽에선 노부부가 연신 셔터를 누르시기에 조심스레 다가가니 오리 가족이 물장구를 치고 있다. 지난겨울엔 문을 닫아 구경하지 못했던 생협에 들러 기념품도 살펴보고 식당도 기웃기웃했다. 유학생도 아니면서 마음에 드는 기념품도 몇 개 샀다. 가을이나 돼야 입을 수 있는 맨투맨과 겨울에나 유용할 녹차 잔 하나. 지나고 생각하니 너무 더운 이 여름이 싫어서 그랬나 싶다. 


 조금 더 걸어 지난 여행 때 눈 밭이었던 곳에 도착하니 널찍한 잔디밭에 나무 그늘과 개울이 있어 시원했다. 커다란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과자와 커피도 나눠먹고 쉬었다. 이번에는 산책 나온 모자, 유카타 입은 아이의 사진을 찍으러 온 가족, 열심히 운동하는 러너들이 보였다. 캠퍼스를 방문하기 전 날 한 일행의 일본인 친구를 시내에서 만났다. 내일 어디에 갈냐는 물음에 호쿠다이 간다니 역시나 같은 반응. '에? 왜?'


대학 캠퍼스의 잔디밭과 개울들

 

중고매장에서 찾은 보물

 그러니까 나는 이런 것들이 좋다. 여행을 가면 현지인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 경험하는 게 좋다. 그런데 모르는 사람의 집에 불쑥 찾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대학 캠퍼스 같은 곳은 참 좋은 선택지다. 재래시장 같은 곳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없어 급히 기념품만 사거나 쇼핑리스트를 채우려면 드럭스토어나 돈키호테가 낫겠지만 거긴 낭만도 없고 특별함도 없으니까. 이번에 묵은 호스텔 근처에 중고 그릇 집이 있어 두 번이나 구경을 갔다. 한참 구경하다 100엔짜리 삿포로 맥주잔과 50엔짜리 병따개를 샀다. 잘 닦아서 써야겠지만 어떤 현지인의 손을 탄-심지어 예쁜-걸 저렴한 가격에 구했으니 나에겐 보물이나 마찬가지.


 물론 선호하는 여행 방식이나 취향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앞선 여행자들이 만들어둔 길을 좇아가는데 바쁘다. 그러니 비슷한 경험만 하고 돌아온다. 그런데 그런 경험 중 많은 부분들은 만들어진 경험이 많다. 그러니까 한 번씩은 옆길로 새는 것도 추천하고 싶다. 짧은 여행에 유명한 것을 많이 보고 싶겠지만 유명하지 않은 것도 매력 있을 때가 있다. 그리고 앞선 사람의 경험과 감정 때문에 만들어지지 않는 온전한 나만의 경험을 쌓기 좋으니까.




홋카이도 대학의 여름 산책 영상 https://youtu.be/cWb5y6s23q8

이전 09화 찡쪽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