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꿈이 한때 패스파인더였거든요
나와 함께 여행을 가면 편하단다. 나부터 빡빡한 일정을 좋아하지 않기에 전문 가이드 같은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나 자연스럽고 알차단다. 헤매는 일이 별로 없고 일행이 원하는 것을 묻고 준비된 옵션을 제시하는데 웬만하면 만족한다. 저녁거리를 정할 때도 마찬가지고 술안주를 고를 때도 마찬가지란다. 아침과 점심까지 통으로 거를 때가 많으니 그 둘은 논외로 하자. 그러니 항공권을 끊거나 차편을 마련하는 것 이외에 짐과 몸만 준비하면 된다고 한다. 한 번 여행을 함께 해보면 다음 여행을 갈구하는 지인도 있고 다른 지인에게 나와의 동행을 추천하는 경우도 있다.
새 학기에 학교에 나가면 반이 배정되고, 담임선생님들이 이내 호구조사를 하곤 했다. 한 명 한 명 돌아가며 개인적으로 상담하는 섬세한 방식은 아니었고 모두가 앉아있는 교실에서 질문하면 해당하는 사람이 손을 드는 투박한 방식이었다. 아마 여러 가지 이유로 마음에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참 많았으리라. 선생님들 또한 그것이 얼마나 폭력적인 일인지 알지 못했고, 손을 들지, 말지 내적 갈등 때리던 우리도 몰랐을 그런 때였다.
꼭 나오던 질문 중 하나는 '집에 자가용이 있는지'였다. 오너드라이버라는, 90년대생만 해도 아마 들어보지 못했을 말이 쓰이던 때다. 그만큼 자가용을 가지고 있는 집이 드물었던 때인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왜 그런 걸 학기초에 조사했는지 모르겠다. 인구통계조사를 위해 실시했던 걸까 싶지만 그건 다른 방법으로 훨씬 정확한 통계를 잡기 쉬울 테니 역시 알다가도 모를 시절이다.
아버지는 다품종 소량생산의 모델과도 같은 한 외국계 회사에서 전자제품 엔지니어로 일하셨다. 워낙 큰 기계가 여기저기서 쓰이는 탓에 엔지니어들은 당연히 차량이 필요했기에 아버지는 회사차를 운전하셨다. 차량 소유주는 회사일 터니 정확히는 오너드라이버가 아니었지만 개인에게 지급돼 출퇴근은 물론 일상에서도 쓸 수 있는 차량이었다. 사실 너무 어려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내가 탔던 첫 '아빠차'는 도요타 스테이션왜건 차량이었다. 5도어 스테이션왜건 차량이 지급된 이유도 부품과 장비를 싣고 다녀야 하는 엔지니어이기 때문이고, 당시 제대로 된 국산 스테이션왜건 차량이 없던 터라 외제차를 몰게 되었을 것이다.* 어찌 됐든 여러모로 고맙게도 나도 살면서 한동안 남들의 선망을 받은 외제차를 몇 년 타본 경험을 갖게 됐다.
다른 글에서도 고백했지만 내 첫 번째 덕질은 자동차였다. 아버지가 오너드라이버여서 아기 때 가장 먼저 뱉은 말 중 하나가 '차'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차를 정말 좋아했다. '아빠차' 뿐만 아니라 도로에 있는 모든 차들을 사랑했다. 차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매일 아침 오는 쓰레기 수거 차량까지도 너무 사랑해 쓰레기차 운전수가 되는 게 꿈인 때도 있었다. 쓰레기차에 환경미화원들이 매달려 가다 뛰어내려 절도 있게 쓰레기를 던져 넣으면 엄청 거대한 기계가 웅장하게 움직이며 쓰레기를 먹어치우는 그 섹시함이란... 이에 부모님께선 어찌 받아들이셨을지 모르겠지만 나의 차사랑은 그 정도였다.
도로에 차량이 얼마 없던 그 시절 아버지께서 운전하신 거리에 대해 어느 날 얘기 나눈 적이 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28만 km로 지구 7바퀴 정도의 거리였다. 일반적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1년에 1만~2만km 정도 운행한다고 계산하니 그때 기준으론 택시기사에 필적할 정도로 운전하며 전국을 누비셨다. 그런데 그 시절 전국을 운전하며 목적지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순전히 본인이 숙지하고 있는 길에 대한 지식과 방향감각, 도로 표지판, 그리고 지도였다.
그 당시 아마도 모든 차량 운전자의 필수품은 이름은 조금씩 다를지 몰라도 '전국 도로 교통지도'와 같은 책자였다. 15인치 노트북 정도 크기의 판형에 올 칼라로 된 지도책자들인데, 일반적으로 1년에 한 번 개정판이 나왔다. 지금이라면 1년 만의 업데이트로는 현실을 따라가는 게 말도 안 되지만 그때는 웬만해선 큰 문제가 없는 업데이트 주기였다.
어릴 적 아버지의 로즈 그레이 색 왜건과 그다음 차였던 기아의 자주색 캐피탈을 타고 전국을 누볐다. 부모님은 여행을 좋아하셔서 여름이면 삼척 바닷가 민박집으로, 설악산 어드매 야영장으로 갔다 돌아오는 길에 자연농원에 들르곤 했다.** 겨울이 오면 겁이 많은 나는 리프트도 타지 못했지만 알프스 리조트에서 유사 알프스를 느끼며 빌린 스키와 폴을 가지고 눈밭에서 놀곤 했다. 회사 동료 가족들과 갔던 여름 홍천강가에선 야영하다 물이 불어 큰일이 날뻔한 적도 있고 어느 겨울 설악 대명을 향하는데 눈이 1미터 넘게 쌓여 스무 시간 넘게 눈만 보이는 도로에서 보냈던 적도 있다. 아버지의 출장을 따라갔던 모든 순간들도 여행이었고, 눈밭에 갇혀있던 그 시간들도 다시없는 순간들이었다.
운전을 하는 그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아버지께선 그 모든 걸 감각과 지도책 하나로 해내셨다. 차를 좋아해서인지 많이 돌아다녀서인지 나도 어릴 때부터 지도와 지도책을 탐닉하곤 했다. 우리 동네 지도는 물론이고 전국 도로교통 지도는 나에겐 하나의 친구와 다름없었다. 하염없이 지도를 들여다보며 길을 따라가는 건 하나의 큰 놀이였다. 그러다 보니 종국엔 지도를 펼쳐 해가 잘 드는 유리창에 잘 붙여두고, 기름종이를 덧대어 햇빛에 비친 지도를 필사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는 짓인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길을 하나하나 소장하기 시작했다.
병역 의무를 다하려 갔던 소방서에선 복잡한 인근 동네 시골길과 공장지대에 소방관과 나가 직접 지도를 그리는 특이한 일을 하기도 했다. 더불어 구급차를 타고 출동할 때 지도책을 보고 네비게이션보다 신속 정확하게 목적지를 찾곤 해 직원들에게 이쁨 받았다. 모르긴 몰라도 이런데 써먹으려고 알지도 못한 채 예행연습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와 누나는 길을 찾는 감각과 방향감각이 지독히도 어둡다. 매일 다니는 길도 아는 길로만 다니니 더 짧은 길이 있어도 알지 못하곤 한다. 내가 생각할 땐 답답할 것도 같건만 여행 가면 매번 똑같은 길을 다녀도 새로운 곳을 보는 것 같은 즐거움이 있다는 장점도 있단다. 이 또한 나로선 이해할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아마도 길을 찾는 감각 하나만은 아버지를 닮아 밝기 때문이다. 아버지께 닮았으면 참 좋았겠다 싶은 많은 점들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빼어 박다시피 닮은 것 하나를 꼽자면 방향 감각과 길 찾기 뿐이다.
어릴 적에도 새로운 곳에 가 차에서 내리면 곧장 방위를 인식했다. 지형이나 해를 보고 고민해 유추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 방위를 묻는다면 바로 손으로 짚을 수 있을 정도다. 그런 방향 감각에 지도 탐닉을 심하게 해대다 보니 길을 못 찾으래야 못 찾을 수가 없었다.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사랑해 마지않는 차를 직접 운전할 수 있게 되었을 땐 안타깝게도 네비게이션 시스템이 보급된 때다. 지도책을 그렇게 사랑했음에도 운전하며 지도책에 의지하는 사람은 옛사람이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어려서부터 기계에 밝았던 나는 사랑했던 지도책은 금방 기억 저편으로 보내버리고 네비게이션을 지독히도 잘 쓰는 사람이 되었다. 사람이란 참 간사해서 편리함에 맛 들이면 옛것은 쉽게 잊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감각과 지식도 계속 써주지 않으면 금세 무뎌진다. 그렇게 네비에 의지해 몇 년 운전을 하다 보니 직감이나 도로 표지판 만으론 좀처럼 목적지에 다다를 수 없는 보통의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살다 어릴 적부터 지도를 파던 취미와 신문물인 네비를 잘 사용하는 경험이 시너지를 낸 건 해외여행에서 구글 지도를 사용하면서부터다. 우리나라에 살 때면 지도로 목적지나 주변의 필요한 것을 검색하면 그만이지만 새로운 곳에 갈 때는 다르다. 여행지가 어떤 분위기인지 알아보려 해도, 숙소 가까이에 가볼만한 식당이 있는지 궁금해도 스마트폰 속 지도로 주변을 탐방할 수밖에 없다.
해외여행의 빈도가 높아지면서 갈고 닦-으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았던 지도 보는 실력이 빛을 발했다. 여행지를 결정하고 나면 그때부터 나는 지도에서 여행을 시작한다. 시시때때로 지도에 들어가 정해둔 숙소 바로 주변부터 가능한 가장 확대한 축척으로 살펴보기 시작한다. 바로 옆 집은 무엇인지, 건너집은 무엇인지. 그렇게 집에서부터 지도로 여행을 시작하다 보면 처음 가본 여행지에서도 나름 익숙하게, 아니 익숙한 척 골목을 돌아다닐 수 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여운이 남아있는 동안 지도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매일 걸었던 골목을 지도로 들여다보며 되새김질을 하고 들렀던 집들을 하나하나 눌러본다. 가능한 좋았던 곳 위주로 꼼꼼한 리뷰와 사진을 남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먼저 갔던 사람들이 제공한 정보가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정보를 남기는 것이고, 좋은 기억을 안겨준 집에 대한 작은 선물이기도 하다.
물론 이것 또한 지도를 들여다보는 게 즐거워서 하는 일이다. 이렇게 하다 보면 여행에 대한 공간적 기억이 머리에 잘 새겨져 다음 방문을 그리게 되는 효과도 있다. 주변에서 내가 방문한 여행지에 추천할만한 곳을 물으면, 이름으로 검색해 찾지 않고 지도를 확대한 다음 공간적으로 기억하는 곳을 다시 확대해 들어가 찾곤 한다. 이쯤 되니 지도 덕후 까지는 아니어도 지도병 정도는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지인들이 나와 함께 하는 여행이 편하다고 말하는 이유를 생각하다 보니, 이렇게 장황하게 아버지의 운전 얘기부터 나의 지도 사랑까지 늘어놓게 되었다. 어쨌든 여행은 현지에 가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니라 결심하고 티켓을 끊는 그때부터 시작이다. 그러니 성에 차지 않는 체류 기간에 연연하지 말고, 또 남이 차려준 밥상 같은 가이드북을 펴지 말고 지도에서 여행을 시작해보자. 여행하는 동네가 어떻게 생겼는지, 현지인들이 어디에 살고 어디로 다니는지 알게 되면 여행지에서의 편리함은 물론, 여행이 앞뒤로 확장되며 깊이도 깊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차는 고사하고 자전거나 타던 어린 시절, 매년 용돈을 모아 새 전국 도로교통 지도를 사던 나는 기념품 삼아 여행지의 지도를 꼭 사곤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지도 사는 돈이 조금씩 아깝게 느껴지고 스마트폰 속 지도에 꽂는 핀만 늘어나는 것 보면, 나도 어쩔 수 없이 편리함에 굴복한 간사한 사람인가 싶다. 스마트폰이 터지지 않는 곳으로 여행을 가게 되면 과연 나는 낭만 운운하며 지도를 펴게 될까, 아니면 휴대용 GPS를 사게 될까.*** 어느 쪽일지 알 수 없지만 가기 전에 몇 날 며칠이고 지도 속을 여행할 건 눈에 선하다.
* 5도어 스테이션왜건 5도어는 사람이 탑승하는 문 4개에 짐을 싣는 문 1개가 있는 차량을 뜻한다. 스테이션왜건 Station wagon은 서부시대 마차에서 유래한 것으로 세단형 자동차의 천장이 뒤쪽까지 쭉 뻗고 짐을 싣는 문이 뒤에 달린 형태의 차량으로 승용차 겸 화물차를 뜻한다.
** 자연농원 현 에버랜드 EVERLAND의 옛 이름. 용인자연농원이란 이름으로 1976년 개장해 1996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 휴대용 GPS 요즘의 네비들은 단말기와 스마트폰 앱 모두 GPS 신호를 이용한다. 본문 끝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휴대용 GPS라는 말로 통용되는 여행용 오프라인 GPS 장비를 말한다. 일반적인 네비와 달리 지도상의 건물 등 주소체계가 아닌 좌표와 고도 등을 기반으로 하여 여행, 산행, 탐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