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땅 파먹고 장사하냐.
수익 모델을 정했다면, 수익 모델 적용 시점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실제 스타트업에서 사업 계획을 세우고, 향후 실적을 예측(forecasting)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유료화 시점이다. 사업 극초반 시절엔 상상과 의지에 기반하여 사업 실적을 예측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엔 대부분 일정 기간 사업을 영위한 시점, 즉 사용자를 얼마 이상 확보하였을 것 같은 시점을 대충 찍고, 그 시점 이후 유료화를 하겠다고 계획을 세우곤 한다. 그러나 사업의 특징 및 상황에 따라 고려해야 할 것들이 있다.
1. 서비스 운영 자체에 매우 많은 돈이 든다면?
멜론 같은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나 넷플릭스 같은 영상 서비스를 하려면, 콘텐츠 제작 및 공급에 비용이 들어간다. 또한 차량을 대여해 주는 서비스라고 하면, 사용자가 서비스를 이용할 때마다 차량 확보 및 유지에 큰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경우 사업 초기라고 무조건 무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는 없다. 이런 사업은, 시작 시점부터 유료로 서비스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신 첫 달 0원 이벤트, 초기 유료 결제자를 위한 할인된 가격 제공 등 한정된 기간 할인/무료 제공을 미끼로 사용자를 모으곤 한다.
2. 유사 서비스들의 경쟁이 치열하고, 대부분 유료 서비스를 하고 있다면?
유료가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사용자들이나 해당 서비스 씬에서 유료화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유료화를 결정하고 적용만 하면 당장 매출이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유료화 결정 시점 및 수수료 수준에 신중하게 된다.
현재도 각축을 벌이고 있는 쇼핑 앱의 경우를 보자. 지그재그, 브랜디 등 쇼핑 플랫폼을 보면 입점한 셀러(판매자)들에게 수수료를 받는 모델로 셀러들이 주문 및 결제, CS, 서버 이용 등에 대한 대가로 거래금액에 비례하는 금액의 판매수수료를 내는 구조이다. 하여 신상 쇼핑 앱이라 해도, 수수료율 및 수수료 적용 날짜만 적용하면 그날 이후로 바로 매출이 발생하는 것에 어려움은 없다. 그러나 이 서비스들은 수수료의 적용 시점은 모두 달랐다. 2018년 초에 서비스를 시작한 에이블리의 경우, 오랜 기간 셀러 판매 수수료를 0%로 운영했다. (서버 이용료는 받고 있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22년 말이 되어서야 판매 수수료 3%를 적용하기로 했다. 셀러가 많아야 다양한 상품 제공이 가능하고 구매자가 따라오는 구조이다 보니 당장의 수수료 수익을 얻기보다는 수수료 0% 운영을 유지하며 충성 고객(셀러) 확보, 거래 점유율 확대에 집중했다.
이러한 경우 투자자 및 상위 의사결정자들이 유료 모델이 동작할 것인가, 매출이 얼마나 발생할 수 있을까에 대해 의심하지도 않는다. 수익모델 검증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대신 서비스 완성도를 다져서 충성 고객을 만들어내고 고객 점유율, 거래액 점유율을 만들어내는 것에 집중하면 된다. 서비스가 충분히 안정화되고, 마켓셰어를 확보한 시점에 '이제부터 수익을 거둬들입시다!' 라고 결정하면 그 순간부터 돈이 착착 쌓일 것이다.
3. 세상에 없던 서비스, 세상에 없는 모델이라면?
유사한 서비스는 없고, 이 세상에 최초로 사용자들의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여 완전히 새로운 서비스를 만든 경우라면 유료화에 대한 고민이 조금 복잡해진다. 사용자들에게 새로운 이용 경험을 제공하고, 익숙하게 하고 그리고 만족을 얻는 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을 감안하여 한동안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사용자를 잡으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서비스가 viable 하다면 무료 제공기간을 길게 하는 것보다 빠른 유료화를 통해 이 서비스가 시장에서 유료로 동작하는지 확인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무료 이용 경험이 길어져 공고화되면 사용자들의 지불용의가 작아질 수 있다.
이제 제법 유명해진 음식점 예약 서비스 캐치테이블의 경우, B2C 서비스가 나오기 전 음식점 사장님들에게 예약 관리 솔루션을 제공하는 B2B 사업을 먼저 시작했다. 음식점에서는 하나의 예약 솔루션에 익숙해지면 다른 솔루션으로 옮길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 먼저 음식점들을 먼저 붙잡기로 한 것이다. 맨땅에 헤딩하듯 인기 음식점들을 돌아다니며 직접 영업을 하였는데, 처음에는 무료로 태블릿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서비스 출시 2개월 만에 유료로 전환을 했다. “공짜로 제품만 주는 건 시간 낭비, 돈 낭비”라는 캐치테이블(법인명 와드) 대표의 인터뷰를 읽어도 알 수 있다. 끝이 없는 무료 서비스보다는 지갑을 열 준비가 된 유료 고객을 찾고, 그들을 위한 기능 개발에 집중한 것이다. 난 이것이 대부분의 스타트업에서 필요한 결단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병원 진료 예약서비스 '똑닥'이 7년 간의 무료 기간을 종료하고 유료화를 결정했다. '똑닥'은 병원을 예약하고 대기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로, 주로 영유아 부모들이 병원 방문 전에 많이 사용한다. 소아과 수가 점점 줄어들어 많은 부모님들이 소아과에 방문할 때마다 대기 전쟁을 치르고 있고, 게다 코로나 등 감염병 유행까지 겹치면서 병원 내 대기 시간을 줄이고자 하는 부모들의 마음을 똑닥이 해결해 준 것이다. 그 결과 누적 사용자 수 1000만 명을 돌파했고, 월 사용자는 약 1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계된 병원회원은 1만 4000개소라고 한다.
똑닥 운영사 비브로스는 올해(23년) 9월부터 병원 진료 예약을 위한 구독 모델, 유료 멤버십 모델로 전환을 선언했다. 월 1천 원으로 병원 예약을 무제한할 수 있는 것이다. 맘카페가 술렁였다. 병원 진료를 위한 필수앱으로 기능하는데 공공이 아닌 민간 서비스라 아쉽다느니, 구독료를 지불을 했음에도 예약에 성공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느냐 등 많은 우려와 말들이 나왔다.
비브로스는 7년이라는 무료 운영 기간에 적자의 늪에 빠졌고, 애초 광고를 통한 수익모델을 고려하다가 여의치 않아 지자 일반 사용자(병원 이용자) 대상 구독료를 붙이기로 했다고 한다. 반대쪽에 있는 병원에서는 지불 의지가 낮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이를 위해서는 더 좋은 것을 주고, 돈을 더 쓰는데 아낌이 없는 우리나라 부모들이 타겟인데, 게다가 건강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 병원 예약 서비스에서 왜 좀 더 빨리 유료화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7년 만에 유료화 카드를 꺼내기까지 많은 고민과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서비스를 지속시키고, 스타트업을 운영하기 위해 수익화가 필요했다는 것이고, 사용자의 불편과 이탈이 다소 있더라고 유료화를 감행한 것이다. 한 번은 겪어야 할 결정이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사실은 조금 늦은 결정이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 본다.
얼마의 사용자를 확보할 때까지 기다리며 언제까지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가. 충성 고객을 아무리 많이 확보했다 하더라도 수익화가 되지 못한다면 어차피 존속할 수 없다. 고객의 지불 의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면 돌아봐야 한다. 현재의 프로덕트 기능들이 우리가 제공하려는 핵심 가치를 충분히 전달하고 있는지, 기술적/기능적 부분은 물론이고, 근본적으로 우리 프로덕트의 핵심 가치가 고객들이 과연 원하는 것이었는지 검토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피벗팅을 고려해야 한다.
고객의 지불 의향을 파악하는 것, 진실을 마주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유료화를 선언하면 고객들이 떠날 것만 같고, 내부적으로도 기획자, 개발자는 물론이고 PO 조차 아직 이르다고 생각할 수 있다. 조금 더 개선하고, 조금만 더 충성 고객을 쌓은 뒤에 유료화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사용자 확보라는 이름으로 그 시점을 늦추며 회피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렇다면 매몰비용과 기회비용이 더욱 커져만 간다는 것을 명심하자.
유료화의 완벽한 때는 없다. 빨리 매를 맞아보길 권한다. 우리는 마냥 무료 서비스가 가능한 네이버가 아니니까. (참고로 요즘엔 네이버도 신규 서비스마다 수익성 검토를 하고 있고, 예전보다 더욱 빠르게 유료화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