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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oise Oct 23. 2020

외동의 설움


어릴 땐 외동인 게 참 좋았는데 크고 나니 형제자매가 없다는 게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 알았다. 특히나 집안의 크고 작은 대소사를 치를 때 느낀다. 기일에 제사 지낼 때면, 무거운 상을 옮기거나 병풍을 꺼낼 때 힘써줄 남동생이라도 한놈 있었으면 싶다. 엄마 생신이 다가올 때면 케이크는 어디가 예쁘더라, 꽃은 이 색으로 하자며 얘기할 수 있는 언니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학창 시절에만 해도 반에 외동이 서넛 정도밖에 되지 않아, 호구조사를 하다가 너 외동이야? 부럽다! 하고 놀란 친구들의 호들갑을 듣기 일쑤였다. 내심 좋기도 했다. 컴퓨터 한 대를 가지고 네 거 내 거 싸울 일도 없고, 옷을 물려받지도 않았고, 언니나 오빠의 잔심부름을 할 일도 없었으니까. 무엇보다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을 그 어떤 경쟁 없이 자연스레 가질 수 있다는 게 으뜸이었다. 그 덕인지, 아님 타고난 성격 때문인지 애교 하나 없는 무던한 딸이 되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어릴 때만 해도 언니가 어쨌니, 남동생이 어쨌니 하며 성을 내던 내 친구들이 나이 서른을 먹고는 많이 변했다. 치를 떨던 막내 동생과 캠핑을 가서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나눈다. 언니와 올해 부모님 환갑을 어떻게 준비할지 얘기한다. 서로 크고 작은 기쁨과 위안이 되어 준다. 


아빠가 가고, 홀로 남은 엄마도 그렇다. 우리 엄마는 다섯 자매 중 넷째다. 다섯 살 터울의 언니가 5분 거리에 사는데 매일같이 만나서 장도 함께 보고, 이런저런 수다도 떤다. 집에서 티브이를 보다가도 재밌는 프로그램이 한다 치면, 대구에 사는 셋째 이모와 다섯째 이모한테 전화를 건다. 끊임없는 수다의 향연이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첫째 이모와의 추억거리를 얘기하며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좋으나 싫으나 핏줄들은 다 안다. 어린 시절의 모습, 부모님의 모습, 학창 시절, 결혼과 첫 아이의 탄생... 지나온 세월들을 함께 돌이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축복이다. 별 말을 하지 않아도 거기에서 오는 위안과 위로는 말할 수 없이 클 것이다. 


아빠가 황망히 떠나고 나는 엄마 앞에서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엄마 앞에서는 든든한 딸이 되어야 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만약 형제자매가 있다면 또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건 몰라도 이제 딱 엄마와 나, 둘 뿐인 우리 가족이 조금은 덜 허전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이럴 줄 알았으면 어릴 때 엄마 치맛자락 붙잡고 동생 낳아달라며 떼라도 쓸걸 그랬나, 유치한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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