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나의 관계는 꼭 모녀지간이 아니라 자매 같았다. 아빠가 있을때도 그랬다. 사소한 일로 티격태격하고 언성을 높였다. 밖에서는 화 한번 내지 않는 나지만, 한 번씩 전쟁을 치를 때면 온순한 모습은 온 데 간데없고 패악을 부리는 내 밑바닥의 모습이 튀어나왔다.
"둘은 떨어져 살아야 해. 그래야 애틋하고, 붙어 있으면 맨날 싸운다?"
가끔 철학관이나 점집에 가면 엄마와 나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하곤 했다. 서로를 너무 사랑하지만, 붙어 있으면 아웅다웅 싸울 수밖에 없는 사이. 단순히 띠 궁합으로만 봐도 우리는, 상극 중에 상극이라는 양띠와 소띠였다. 친한 친구들은 엄마 전화를 받는 무뚝뚝한 내 목소리와, 아빠 전화를 받는 살가운 목소리를 옆에서 들으며 기가 차다는 듯 웃었다. 문자도 마찬가지였다.
"밥 먹었나?"
"ㅇㅇ"
"오늘은 뭐하는데?"
"집"
늘 이런 식이었다. 나는 참 못되게도, 엄마에게 철저한 '갑'의 위치였다.
"어머님한테 살갑게 좀 해라. 다 너 걱정해서 그러시는 건데."
나는 엄마가 그렇게 나에게 어디냐고 묻고, 전화를 하는 것이 나에 대한 구속이라고 느꼈다. 이건 다 나를 믿지 못해서, 내가 제대로 어른 구실이나 하고 다닐까 하는 노파심에 그러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장성한 딸내미한테 하루에 세 번씩 전화해서 꼬치꼬치 캐물을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럴수록 전화를 받기 싫었고, 기분이 내킬 때만 전화를 받았다. 그렇게 아주 가끔 기분이 내켜 전화를 받을 때면 미주알고주알, 회사 얘기, 연애 얘기, 친구들 얘기를 털어놓았고 엄마는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다가도 꼭 한 마디 잔소리를 얹는 바람에 결국엔 '몰라, 알아서 할게'로 전화를 끊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어느덧 나이를 먹어 나는 서른이 됐고, 엄마는 오십 아홉이 됐다. 아빠가 사라진 집에서 엄마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언제나 그랬듯 친구들도 만나고, 이모도 만나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듯했지만 예전과는 좀 달라진 게 있었다.
"엄마, 요즘 왜 연락이 없어?"
"내가 연락 없으면 네가 하면 되지. 혼자 있는 엄마 궁금하지도 않나? "
엄마는 이제 딸에 대한 짝사랑을 그만둔 듯 보였다. 대신, 거짓말처럼 이제는 내가 엄마의 하나하나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밥은 잘 먹었는지, 오늘은 누구를 만났는지, 기분은 어떤지, 캡슐 커피가 다 떨어지진 않았는지 등등 사소한 것 하나하나 다 걱정이었다. 아빠가 가고 텅 빈 집이 엄마에게 버겁지 않을까, 혼자라서 외롭진 않을까, 집에 혼자 있는데 무섭진 않을까,,, 그런 생각이 꼬리를 물 때즘 나는 그 옛날 엄마가 바리바리 전화를 했던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다.
엄마는 내가 '혼자'라 걱정이 됐던 것이다. 혼자 먼 타지에 나가 사는데, 밥은 잘 챙겨 먹는지, 외롭지는 않은지, 친구들이랑은 잘 지내는지. 나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그저 혼자 있는 내가 애틋해서 그랬던 것이다. 그걸 아빠가 떠나고 난 후에야 알았다.
이제는 세월이 흐르고 흘러, 절대 그럴 것 같지 않았으나 내가 엄마를 애틋해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180도 달라져 엄마에게 늘 살가운 딸이 되진 않았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철없이 엄마의 사랑 위에 군림하는 행동 따윈 하지 않는다. 언젠가 세상에서 가장 살가운 말로 애정표현을 하고 싶어도 못할 날이 오리란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
"파마했는데 영 파이다. 엄마 많이 늙었제?"
"괜찮은데? "
"ㅋㅋㅋ너거 엄마니까 그렇지"
"미모 아직 안 죽었다. 걱정 마요!"
간만에 엄마가 먼저 보낸 셀카 사진에 풉 하고 웃음이 난다. 나의 사랑스러운 엄마, 엄마의 하루가 외롭지 않고 우울하지 않길 오늘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