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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oise Apr 25. 2020

아빠의 눈은 마들렌을 닮았다  

 


아빠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통통한 눈두덩이다. 잘 구워진 마들렌 빵처럼 봉긋하게 솟은 눈두덩이는 왠지 모르게 정이 간다. 쌍꺼풀이 갖고 싶던 어릴 적엔, 그런 아빠를 닮아 통통한 내 눈두덩이가 참 싫었으나 지금은 고맙다. 아침마다 볼록 솟은 내 눈을 보며 아빠를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봉긋한 눈두덩이 아래 아빠의 눈은 새카맣고 선명했다. 늘 무언가를 읽고 쓰던 아빠는 육십이 다 돼서도 반짝이는 눈빛을 갖고 있었다. 남들보다 조금 일찍 하루를 시작해, 내가 학교를 갈 때 즈음엔 이미 아침식사를 마치고 탁자에 앉아 조간신문의 글자를 한 자 한 자 좇던 그 눈빛은 사뭇 진지했다. 가끔 치킨을 시켜놓고 가장 애청하는 '불후의 명곡' 프로그램을 볼 때면 두 눈이 아이처럼 동그래졌다. 쟤는 노래를 참 잘한다, 쟤는 이름이 뭐였더라? 호기심으로 가득한 눈빛이 나는 참 사랑스러웠다.  때때로 '황금빛 내 인생'을 보다가 슬픈 장면이 나올 땐 눈빛이 울멍울멍했다. 본가에 얼굴만 잠시 비췄다가 홀랑 서울로 가 버리는 딸을 배웅해 줄 때는, 애틋함과 아쉬움이 잔뜩 서려 있기도 했다. 아빠의 눈빛은 거울처럼 솔직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건, 웃을 때 눈두덩이에 눌려 잔뜩 늘어지는 눈웃음이었다. 새벽 두 시에 일어나 저녁 아홉 시에 잠이 들던 고단한 하루 일과 속에서도 아빠의 웃음은 아이처럼 천진난만했다. 나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 아빠의 웃음을 좋아했다. 아빠의 눈웃음은 뭐랄까, 상대방을 한 번에 무장해제시켜버리는 묘한 기운이 있었다. 아빠가 웃을 때면 주변의 기운이 노란색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철이 없던 나는, 그 웃음만 보고는 아빠가 잔뜩 짊어진 삶의 무게는 헤아리지 못했다.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쉴 새 없이 일하다, 엄마와 나를 보며 한 번이라도 웃기 위해 하루하루를 보내왔다는 것을 그땐 몰랐다. 그걸 알았더라면 아마 나는 내 방에 들어가 문을 닫는 대신, 아빠에게 다가가 너무너무 사랑하고 또 고맙다고... 말했을 것이다. 




이제 나는, 마들렌을 닮은 아빠의 눈두덩이, 새카만 눈, 잔뜩 늘어지는 환한 눈웃음을 기억 속에서만 끄집어낼 수 있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으니, 매일 더 보고 싶다. 지금도 가끔 카페에 가서 디저트를 고를 때, 마들렌을 보면 아빠의 눈이 생각난다. 봉긋한 두 눈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면, 나는 가끔 아빠의 눈을 꼭 닮은 내 눈을 보다 눈을 감는다. 그리곤 아빠의 웃는 얼굴을 기억 속에서 만진다. 언젠가 그 눈웃음이 희미해지는 날이 올까 봐, 그 기억을 수십 번 꼭꼭 씹는다. 내게 한없이 소중한 사람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그 기억마저 희미해지다 먼지처럼 사라져버릴까봐 매일 무서운 것. 아빠가 떠난 뒤에야 나는 그걸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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