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loise Nov 12. 2019

목소리를 잊는다는 것


그날은 무지하게 추웠고, 겨울비가 삼일 내리 그렇게도 내렸다. 장례식장에서 나는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왠지 한 번 흘리기 시작하면, 모든 게 무너져서 녹아내릴 것 같았다. 덤덤한 나와 달리, 와준 사람들이 그렇게도 울었다. 평생 우는 모습을 본 적 없던 혜원이 아줌마는 쓰러지듯 들어와 장례식장이 잠길 듯 눈물을 쏟아냈다. 함께 온 혜원이는 너무 울어서 눈이 떠지질 않았다. 명지는 일일이 친구들에게 연락해 비보를 전하며 나를 위로해주려 애썼다. 지수는 바로 휴가를 내고 서울서 내려왔고, 시우는 촬영이 끝나자마자 새벽 기차를 타고 내려와 내 옆에서 쪽잠을 잤다. 새벽녘, 지수와 시우와는 로비에 앉아 늘 그랬던 것처럼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 와중에도 킬킬거리며 웃었지만, 우리 셋의 목소리는 겨울비보다 더 축축했다. 


무던하게 와준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과는 참 실없게도 웃기도 하며 그렇게 지내다 보니 어느덧 이틀째 밤의 되었다. 그 사이 엄마의 감기는 더 심해졌고, 덩달아 나도 감기를 옮아 둘 다 온몸이 불덩이였다. 


이틀째 되던 날 밤엔 처음으로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흘렸다. 자는데 자꾸 아빠의 영정사진이 눈 앞에서 밝게 빛났다. 이제 내일이면 정말 마지막이라고 이별을 고하는 것만 같았다. 자면서 아빠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 아빠가 사진을 찍자고 했다. 친구에게 부탁해 우리 둘 사진을 찍고, 사진이 잘 나왔나 확인해보는데 내 옆에 있어야 할 아빠가 없었다. 꿈에서 아빠를 목놓아 불렀다. 아빠를 찾으러 나가려는데, 너무 마음이 아파서 심장이 뻐근했다. 꿈속에서 나는 심장이 너무 아파 걷지를 못하고 기었다. 




다음날 새벽, 아빠의 영정사진을 챙겨 우리가 살던 집을 한 바퀴 돌았다. 아직까지 체취가 남아있는 그 집에서 나는 제발 아빠의 영혼이 내 옆에 있는 것이길 빌었다. 부슬비가 내리는 새벽, 난생처음 타보는 영구차에 몸을 싣고 화장터로 향했다. 도착하니 명지와 은선이가 먼저 화장터에 도착해 있었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그 먼 거리를 왔을 친구들을 생각하니 코가 시큰했다. 


방에 들어가 화장 시간이 되기까지 기다렸다. 친척들과 옹기종기 한 방에 앉아있었는데, 비가 그치고 누런색 햇살이 방 안으로 들어와 춤추는 먼지를 비췄다. 가만히 보고 있는데 갑자기 엄마가 등을 바스락 떨었다. 사시나무 떨듯 등이 파르르 떨리더니 그 작은 등이 둥글게 오므려졌다. 울음소리가 방 안에 퍼졌다. 옆에 있던 세 살짜리 볼이 통통한 조카는 눈이 휘둥그레져 나를 바라보았다. 어찌할 바를 몰라 엄마의 손을 잡았는데, 손이 불덩이였다. 내 슬픔에 못 이겨 미처 신경도 못쓴 엄마의 상실감이 그제야 전해졌다는 사실에, 나는 내가 죽도록 미웠다. 




눈 앞에 흰색 옷을 차려입은 사람 둘이 보였다. 유리창 너머로 화장터로 사라지는 아빠가 보였다. 이미 영혼이 없는 육신이라도, 눈 앞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천지차이다. 끝까지 눈물을 흘리지 않던, 대쪽 같던 큰아빠가 주저앉아 아빠 이름을 연신 외쳐댔다. 울음소리와 비릿한 빗내음이 한데 섞여 질식할 것만 같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모두가 신생아처럼 울었다. 지독한 불길을 견디고, 아빠는 엄마와 내가 바라보는 앞에서 새뽀얀 가루가 되었다. 60년 삶이 가루가 된 순간이었다. 나는 그저 아빠가 억울하지 않길, 남겨진 우리 가족을 너무 애달파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납골당 제일 아래, 아빠 이름이 박힌 유골함을 넣고 나니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어느덧 1년 하고도 10개월, 2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갔다. 나는 아직도 갑작스러운 이별의 상처가 남았지만, 또 그게 살 수 없을 정도로 괴로운 것은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이제는 운동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아빠한테 전화해야지' 하다가 아차 하는 일 따윈 일어나지 않는다. 아빠가 나오는 괴로운 꿈도 더 이상은 꾸지 않는다. 그러나 가끔은 아빠의 목소리를 영영 잊어버릴까 봐 겁이 난다. 아직은 내 이름을 부르는 아빠의 목소리가 귓가에 선명하지만, 언젠가 세월이 흘러 내가 아빠의 목소리를 잊게 되면 정말 모든 게 끝인 것 같아서 아득하게 슬프다. 이제 누군가가 나에게 죽음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내 목소리를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살아 있을 적, 아빠와 단란한 영상 하나 찍지 못한 것이 가슴에 사무친다. 잊을만할 때쯤 꿈속에 나타나 목소리라도 들려주었으면, 그리고 언젠가 아빠가 내 아이로 다시 태어나서, 그에게 받은 내리사랑을 내가 오롯이 베풀 수 있었으면. 그저 그렇게 온 마음으로 바라고 바랄 뿐이다. 



이전 01화 인생은 늘 인생만의 계획이 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