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쉐도우>
우리는 달의 앞면밖에 볼 수 없다고 하던가. 하지만 과거의 일들이라면 그 앞면조차 선명하지 않다. 뮤지컬 <쉐도우>는 남겨진 최소한의 기록들 사이에서, 우리가 영영 알기 어려울 역사의 뒷면을 상상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는 이제 다소 진부하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조선시대 역사상 최악의 부자관계로 손꼽히는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 속으로 가져오니 신선한 이야기가 탄생했다. 임오화변이 2인극의 락 뮤지컬로 만들어질 줄 누가 알았을까.
뮤지컬은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에 기록된 사건에서 시작된다. 뒤주에 갇히기 이틀 전 새벽, 사도세자는 칼을 들고 당시 영조가 머물던 경희궁 쪽으로 향했다고 한다. 당시 사도세자가 머물던 곳은 창덕궁이었는데, 그가 아버지인 영조를 해하려고 했던 것인지 또는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인지 여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유야 어떻든, 충분히 역모의 조짐으로 해석될 수 있는 행동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사건이 있고 얼마 후 사도세자는 영조의 명으로 뒤주에 갇힌다. 사도세자의 이름인 '훤'이 너그럽다는 뜻이란 걸 생각해 보면, 그의 죽음이 더 씁쓸하게 다가온다. 뮤지컬에서는 그가 뒤주에 갇힐 때, 천둥과 번개의 신을 부르는 주술서 '옥추경'과 함께 갇힌다. 그 안에서 옥추경 한 페이지를 찢어 자신의 이름을 적자, 벼락과 함께 과거로 가게 된다. 그리고는 그곳에서 낯선 이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어린 시절의 영조이다.
사도는 스탠딩 마이크를 붙잡고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로 전한다. 실제로 사도세자는 학문보다는 예술을 가까이 한 인물로, 기질과 성정이 매우 예민했다고 한다. 그는 실제로 주술서인 옥추경을 즐겨 보았다고 하며 도교에도 심취했다고 알려졌는데, 도교의 주술적 수인 (手印) 중 하나가 바로 검지와 새끼손가락만을 펼친 락큰록 손동작과 동일하다고 한다. 이 작품이 락 뮤지컬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이리라.
흡사 락 콘서트 같은 이 작품의 무대에는 뒤주의 형상이 하나 놓여있고, 단 두 명의 배우만이 선다. 하지만 두 배우의 긴장감 넘치는 감정선과 격렬한 넘버, 그리고 번개처럼 화려하게 번쩍이는 조명만으로 무대는 다채로운 매력으로 가득 찬다.
사도가 뒤주 안에서 몇 차례 과거로의 여행을 하면서 점점 성장하는 영조를 만나는 동안, 영조의 이야기도 서서히 펼쳐진다. 뮤지컬은 사도가 타임슬립을 통해 영조가 어릴 때부터 맞서야 했던 어려움과 그의 고뇌들을 지켜보면서, 아버지를 조금 더 이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잘 알려져 있듯 영조는 무수리의 아들로 태어나 편견과 음해,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면서 자신의 정통성을 차근차근 다져나갔다. 그렇게 힘들게 궁중생활을 했으니 아들에 대한 기대치도 매우 높았는데, 안타깝게도 사도는 그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평범한 아버지와 아들 사이로 만났다면 사이가 좋았을지 모르지만, 하필 왕실에서 태어나 둘은 가까워질 수 없었다. 영조는 사도세자를 지나치게 다그쳤고, 사도 세자는 이를 견디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결국 사도세자는 세자가 해서는 안 되는 온갖 기이하고도 잔혹한 행위들을 저지르기에 이르고 말았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자기 아들을 그렇게 잔인하게 죽게 할까' 싶기도 하지만, 영조의 당시 선택은 불가피했을 것이라는 평가도 꽤 있다. 정식 절차를 거쳐 처형했거나, 다른 방식으로 죽여 죽음에 의문이 남을 경우 세자의 아들, 훗날 정조의 미래도 불확실해졌을 테니까. 그러니 처형 아닌 처형을 통해 손자의 앞날이라도 지켜낸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영조는 이를 가정사로 치부하며 선을 그었다는 말도 있다.
눈물은 왜 심장에서 위로 거슬러 오르나
올려줘요 눈물처럼 나를 당신께 바칩니다
'사바하'
물론 영조가 어떤 심정으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우리는 그저 추측할 뿐이다. 사도세자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역사에는 결국 일부의 시선만이 기록되는 법이고, 보이지 않는 뒷면은 정황을 통해 추측과 상상으로 채워지는 법이니까. 뮤지컬에서도 둘의 이야기는 뮤지컬만의 시선과 해석으로 마무리된다.
만약 사도세자가 다른 시대, 다른 가정에서 태어났더라면, 예술적인 잠재성을 표출할 기회가 있었다면, 그의 인생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 영영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를 대신한 배우가 신나게 자신의 음악을 2시간 동안 내지를 때, 관객은 잠시나마 그의 마음을 떠올려본다. 사도가 되었다가, 영조가 되었다가 하며,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두 사람의 입장을 헤아려보려고 노력한다.
어쩌면 영영 헤아리지 못한다 할지라도, 잠시 생각해 보는 그 시간만으로도 의미가 있으리라고 믿는다. 역사의 뒷면으로 사라졌을지라도, 당대에 손가락질받았던 이들일지라도, 과거의 이야기는 흐르고 흘러 현대에 와 다시 발견되는 법이니까. 그들의 그림자가, 뮤지컬 무대 위에서는 새로이 빛을 내고 있었다.
[뮤지컬 쉐도우]
▷ 개요 : 2025년 3월 콘서트 형태의 쇼케이스를 성공적으로 진행한 후, 곧 9월부터 뮤지컬로서 정식 초연되었다. 초연 일정은 당초 10월 말까지였으나, 11월 초로 연장되었다.
▷ 제작사 : 블루스테이지 / 작가 : 허재인 / 작곡 : 앤디 로닌슨 / 연출 : 김현준 / 음악감독 : 박혜정
▷ 매우 주관적인 추천 넘버 : 'Rock Star', 'I Will Survive', 'No More Living in the Shadow', '사바하', 'Stay With Me'
▷ 2025년 초연 캐스트 (백암아트홀, 2025년 9월 5일~11월 2일)
사도 : 진호, 신은총, 조용휘
영조 : 한지상, 박민성, 김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