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데스노트>
뮤지컬 <데스노트>의 무대는 바닥과 벽면을 가득 채운 LED 패널들로 이루어져 있다. 공간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지만, 동시에 손을 대면 바로바로 전환되어 마치 실체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속에는 현실과 비현실, 인간과 사신이 공존하며, 데스노트라는 초월적인 장치와 죽음이라는 실재적 개념이 경계를 넘어 만난다.
사실 나는 <데스노트> 원작이나 영화에 큰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조금 유치할 수도 있겠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공연장에 들어섰다. 하지만 정작 공연이 시작되자, 하늘에서 뚝 떨어진 ‘데스노트’라는 만화적 설정이 오히려 인물들의 내면을 더 입체적으로 끌어내는 힘이 되어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일상에 없는 절대적 힘이, 인간의 정의와 욕망을 더 비추어볼 수 있게 했다.
이야기는 두뇌가 비상한 천재 고등학생 야가미 라이토가 수업시간에 법과 정의에 대해 고민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무엇이 진정한 정의인지를 진심으로, 혹은 다소 오만하게 고민하던 그는, 이후 길을 걷다가 우연히 땅이 떨어진 데스노트를 발견한다. '이 노트에 이름이 적히면 40초 후에 죽는다'는 설명을 읽고 코웃음 치지만, 마침 어린이집 아이들을 인질로 삼은 흉악범에 대한 뉴스가 나오는 걸 보고, 그 범인의 이름을 적어본다. 그리고 정확히 40초 후 그가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뉴스를 보면서, 라이토는 데스노트의 힘을 믿게 된다.
'이 불길한 노트를 없애야 하나'라는 고민은 아주 잠시, 라이토는 자신의 손에 들어온 이 대단한 힘을 주저 없이 사용하기 시작한다. 자신에게 데스노트가 주어진 건 정의를 실현하라는 사명이라 믿고, 전 세계의 살인자들과 흉악범들의 이름을 차례차례 적어나간다.
갑자기 수많은 범죄자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아무리 흉악범들을 대상으로 한다 해도 이것 또한 살인이니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 그리고 반대로 법이 지켜내지 못한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대신 풀어주고 있으니 구세주라는 입장. 전자에는 경찰인 라이토의 아버지도 포함되는데, 그는 세계적인 탐정 L과 함께 이 기이한 사건의 범인을 쫓기 시작한다.
라이토는 초반에는 비질란테처럼 보인다. 흉악한 범죄자가 법망을 피해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을 때, 법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그들을 처벌하는 소재는 다양한 매체에서 활용된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이 답답해하고 분개했던 사건들에서 모티프를 가져오다 보니, 시청자와 관객은 자연스레 비질란테를 응원하게 된다.
하지만 <데스노트>의 라이토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비질란테적 신념이 어떻게 교만하게 뒤틀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처음에는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신념이 조금이라도 있었는지 모르지만, 라이토는 점차 스스로를 '정의를 실현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가 곧 정의'라고 믿게 된다. 그리고 그에게 정의를 수호하는 일은 곧 자기 자신을 지키는 일로 변질된다. 자신이 안전해야 세상의 정의가 지켜질 거라는 오만한 자만심이 생긴 것이다.
각오했어 나의 희생
난 정의로운 세상을
내 손으로 만들 거야 끝까지
작은 아픔 뛰어넘어
오직 나만 할 수 있는 일이야
'데스노트'
각오했어 작은 희생
난 정의로운 세상을
내 손으로 만들 거야 끝까지
작은 아픔 뛰어넘어
오직 나만 할 수 있는 일이야
'데스노트 리프라이즈 1'
대표 넘버 '데스노트'는 라이토가 처음으로 데스노트에 인질범의 이름을 적고 나서 부르는 넘버이고, 이후 '데스노트 리프라이즈(*1) 1'은 그가 자신을 수사하러 온 수사관들의 목숨을 빼앗으면서 부르는 넘버이다. 처음에는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옳은 일을 하겠다고 외치지만, 이후에는 무고한 타인의 죽음을 대의를 위한 작은 희생으로 둔갑시킨다. 여전히, 이건 '오직 나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으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건 맨 처음 데스노트를 주운 순간부터 예견된 일 같다. 라이토는 단 한 번도, 자신에게 타인을 죽일 정당한 권리가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스스로 선택받은 자라고 생각하고, 숭고한 사명감을 실천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후 류크가 자신은 라이토를 선택한 게 아니라 그저 심심해서 떨어뜨린 데스노트를 우연히 주운 것뿐이라고 말해주지만, 라이토는 무시해 버린다.
이미 라이토는 데스노트를 처음 주운 순간부터 스스로를 신으로 여긴 것이다. 할 수 있는 일과 해도 되는 일을 구분하는 대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자신에게 그 권리 또한 함께 주어진 것이라 믿었으니까.
한 개인이 스스로가 곧 정의라고 믿는다면, 그 개인에 대해서는 누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인간에게 다른 인간의 목숨을 빼앗을 권리가 있을까. 사회의 법과 처벌은 얼마나 정당하며, 법과 정의는 얼마나 맞닿아있는가.
이 이야기가 던지는 수많은 질문들 중에, 가장 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나에게 데스노트가 주어진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나에게 데스노트가 주어진다면 나는 그걸 사용해도 되는가?' 일지도 모르겠다.
라이토가 스스로 실현했다고 믿었던 정의는 진짜 정의였을까, 아니면 그가 혼자 믿었던 허상에 불과했을까. "사신은 심판하지 않는다"는 극 중 L의 말이 오래도록 맴돈다.
그래 좋아 인정하지 사신의 존재
하지만 신은 삶의 의미 판단하지 않아
삶과 죽음 그 의미를 판단하고 따지는 건 인간이지
'변함없는 진실'
[뮤지컬 데스노트]
▷ 개요 : 애니메이션 데스노트를 원작으로, 한일 공동으로 제작되어 2015년 일본에서 초연되었고, 같은 해 한국에서도 초연되었다. 2022년부터는 OD컴퍼니가 판권을 가져갔다. 무대 위와 바닥, 벽면을 1380장의 LED패널로 채워 무대 전환이 영상으로 이루어진다.
▷ 작곡 : 프랭크 와일드혼 / 작사 : 잭 머피
▷ 제작사 : 호리프로 (일본) & 씨제스 스튜디오 (한국) 합작 (2015~2017) / 현 제작사 : OD컴퍼니 (2022~)
▷ 국내 연출 : 김동연 / 국내 음악감독 : 김문정
▷ 매우 주관적인 추천 넘버 : '정의는 어디에', '데스노트', '게임의 시작', '죽음의 게임', '놈의 마음 속으로', '어리석은 사랑'
▷ 2025년 사연 캐스트 (디큐브 링크아트센터, 2025년 10월 14일~2026년 5월 10일)
라이토 : 조형균, 김민석, 임규형, 규현
L (엘) : 김성규, 산들, 탕준상, 김성철
렘 : 이영미, 장은아
류크 : 양승리, 임정모
아마네 미사 : 최서연, 케이
야가미 소이치로 : 김용수, 서범석, 윤영석
야가미 사유 : 오윤서
모기 : 이호진
이데 : 주홍균
아이자와 : 맹원태
마츠다 : 최원종
우키타 : 박민혁
앙상블 : 서재홍, 박태경, 추광호, 최새봄, 유환, 손지훈, 김다혜, 류하영, 박율리아, 제진빈
스윙: 윤나영, 이승현, 엄태용, 한연주
1) 리프라이즈 (reprise) : 음악의 반복을 뜻하며, 뮤지컬에서는 대개 곡조나 가사 등에 변주를 주어 처음 등장했을 때와는 새로운 의미를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