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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rvived (by)

죽음 뒤에 남은 이야기들

by 바다의별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죽음 뒤에 무엇이 있을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일단 현재의 내 모습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것, 그것만은 분명하다.


우리의 육체는 우주의 티끌에서 시작되었듯 아마 다시 흙으로, 먼지로 돌아갈 테지만, 우리의 영혼은 어떻게 될까. 만약 천국과 지옥이 없다면, 그 상태로 우리는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걸까. 깜깜한 어둠만이 남는 것일까.


그런 두려움이 나로 하여금 survived by라는 말을 좋아하게 했다.


He is survived by his wife and children. (그의 유족으로는 아내와 자녀들이 있다.)

She is survived by her brother. (그녀의 유족으로는 남자 형제가 있다.)


남은 가족들을 the bereaved 또는 조금 더 공식적으로 family of the deceased와 같이 표현하는 경우도 많지만, 문장 형태로 풀어쓸 때는 survived by라는 말이 종종 활용된다.


직역하자면,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아내와 자녀들은 여전히 살아있다는 뜻이다. 좀 더 건조하게 말하자면 outlive, 즉 그보다 오래 살았다는 의미에 가깝다.


그렇지만 여전히, survive라는 단어가 들어감으로써, 떠나간 이와 남겨진 이가 함께 표현됨으로써, 죽음은 언제나 생존과 함께라는 걸 보여준다. 내가 죽더라도, 내 가족들은 나와 같은 문장 속에서 여전히 살아갈 테니. '남은 가족'이 아니라, 계속해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생존자들로서 말이다.


죽음 뒤에는 언제나, 남은 이야기들이 있다. 죽은 이만 놓고 보면 더 이상 아무것도 없는 완전한 끝에 도달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사람의 이야기가 그렇게 끝이 나는 것은 아니다. 친구들과 나누었던 웃음을 계속해서 기억하듯, 여행을 마치고 그 순간들을 오래도록 추억하듯, 떠난 이의 삶도 그 잔상은 오래오래 남는다.


삶이 끝날지라도, 그 사람을 사랑하고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으리라. 그가 꿈꿨던 것들, 전했던 온기, 그의 믿음과 생각, 습관이나 말투와 같은 것들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계속 재생될 것이다.


죽음과 생존은 서로 반대말이 아니라, 얽히고 공존하는 존재다. 육체가 사라지더라도, 우리의 일부는 반드시 어딘가에 남아있다. 내가 떠나간 이들의 흔적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죽음/유가족 관련 표현

He is survived by his grandchildren. 그의 유족으로는 손주들이 있다.

She left behind three sons and her dog. 그녀는 세 아들과 반려견을 남기고 떠났다.

The bereaved gathered at the wake. 유족들이 장례식장에 모였다. (조문을 위해 모였다)

The family of the deceased expressed their gratitude. 유가족이 감사의 뜻을 전했다.

The mourners paid their last respects. 조문객들이 마지막 경의를 표했다.

His loved ones mourn his passing. 그를 사랑하는 이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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