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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연 Jul 10. 2023

염소와 돼지의 이사부터 개식용 종식 대집회, 노천탕까지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를 살아가면서도 이번 주는 유독, 조금 더 바빴다.




염소와 돼지의 이사와 비거니즘 


돌보는 농장동물들의 1차 이사 촬영이 있었다. 나름대로 나쁘지 않게 잘 지내던 흑염소 식구와 돼지들을 더 좋은 곳으로 옮기는 이삿날이었다. 돼지의 투정을 받아주는 동료가, 또 염소를 한번에 이동장에 잘 넣는 또 다른 동료가, 동물들을 어떻게든 지켜내고 더 좋게 살게 하려 노력하는 동료들의 소중함이 유별나게 생각이 났던 건, 특히 월요일이 폭염주의보가 발령된 날이었기 때문인 것도 같다.



인간들의 노력으로 비인간동물들은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았다. 햇볕이 따가왔고, 선크림을 채 바르지 못했던 팔이 꽤 까맣게 탔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농장동물을 담당하고 있는 팀이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싶었다. 진흙목욕을 하는 돼지들을 보면서, 또 넓은 공간에서 신선한 풀을 뜯어먹는 염소의 네모난 눈을 바라보며, 그냥 이 애들의 기쁨을 빌었다. 다시 비건 지향에 좀 더 마음을 써야겠다 하는 생각과 함께.


하지만 너무너무너무 더웠으므로 집에 돌아오자마자 샤워를 하고, 아늑한 침대에 누웠고, 선선한 선풍기 바람을 쐬며 오후 일곱시 경 바로 잠들어서 내리 열 두 시간을 꼬박 수면하며 에너지를 회복했다. 다음날 느적거리며 출근하면서는 인간으로 태어나 다행이다 싶었다. 누군가에게 먹히기 위해 태어나지도 않았고, 더우면 선풍기와 에어컨을 틀 수 있고, 원할 때 침대에 누워 잘 수 있으니까. 나는 이렇게나 종족의 우상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다. 그나마 동물권에서 일한다는 게 인간동물로서의 조그만 책임이다.




개식용 종식 집회


굴림체는 안돼


아이고.. 모니터에 먼지가 껴있는데, 닦지 않았던 모양이다. 사진을 다시 보니 군데군데 먼지투성이다. 모니터 컨디션도 못 살피고 일을 하고 있는 중인데, 이번 주에는 개식용 종식 캠페인과 관련한 영상을 어떻게든 만들었다. 개식용 종식을 위한 시민 대집회에서 상영할 용도였다.


대집회 시즌만 되면 '제발 올해가 개식용 종식 집회 마지막이었으면' 싶다. 일단 개들이 좀 그만 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하나, 그리고 이 일에 대한 지겨움과 절망과 비슷한 마음 하나 때문이다.


불과 며칠 전에 개들의 죽음을 봤다. 여태껏 몇 년 전 칠성 개시장에서 봤던 누렁이도 잊지 못하고 살고 있다. 동물의 고통을 가늠한다는 건 내게도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다. 나는 제발 개들이 그만 죽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개들 뿐 아니라 모든 동물이 인간에 의해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집회 자체도 매우, 매우 피로하다. 집회를 준비할 때 동료들도 과중한 업무에 치이고 예민해지는데다, 집회 당일은 아주 여지없이 덥기도 하다. 심신이 고통스럽다. 그리고 인간의 고통은 늘 동물의 고통 뒤로 간다. 지금도 죽어가는 개들의 현실을 알고 있기에 집회 때는 그냥 착잡한 마음으로 일을 하게 된다. 여러모로 괴롭다.



좋아하던 노천탕이 사라졌고



제작년 부터인가 일년에 한두 번 강남에 있던 호텔 사우나에 갔다. 조그만 노천탕에 앉아있자면, 몸은 따뜻하게 데우면서 공기는 시원하게 마실 수 있는 게 내게는 굉장히 큰 호사였다. 세신까지 받으면 그렇게나 개운할 수가 없었다.


대집회 날은 이래저래 스트레스가 너무 많았고, 땀도 한바가지로 흘렸기 때문에... 좋은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망원동에서 강남으로 가는 길, 혹시나 싶어 원래 가던 사우나에 대해 검색했는데 노천탕이 리모델링 과정에서 사라졌다는 소식을 봤다. 그냥 헬스장 딸린 평범한 대욕탕이 되었다는 불행한 소식이었다.


일전에 찾아봤던 다른 노천탕 있는 사우나로 방향을 틀었고,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가 본 사우나 중 시설이 가장 좋았고 세신사가 무척 친절하셨다. 노천탕은 쬐끔 실망이었지만 가을이나 겨울에 오면 다시 다를 것 같았다. 3층에 있는 야외 테라스에 누워 빈둥대고 있으니 이렇게나 몸과 마음이 이완될 줄 몰랐다. 나는...! 시원한 야외에서 누워 빈둥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좋아하던 사우나가 사라진 건 아쉽지만, 덕분에 더 좋은 장소를 찾았다. 실망이 빈 자리에 더 좋은 것이 생기는 일은 그리 흔하지는 않다. 운이 좋았던건지, 내 세상이 딱히 그리 넓지 않았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이 우연 덕분에 토요일의 과로를 잘 씻어낼 수 있었다. 가을에 다시 씻고 빈둥대러 와야지.




살리고 싶은 마음, 지키고 싶은 마음, 이라는 두 문장을 일 주일 내내 생각했다. 비인간동물을 위한 운동을 계속 하려면 동료가 있어야 한다. 같은 직장 내에 있는 이들만이 동료가 아니다. 뜻을 같이하는 시민들이나, 아니면 비영리섹터의 지인들, 아니면 그냥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 지속가능한 운동의 조건도 사람이고, 지치게 만드는 것도 결국 사람이고, 모든 일이 사람으로 이어진다는 점이 고맙기도, 힘들기도 하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걸까. 요새는 정말 혼란한 와중에, 다음 주는 또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스럽고, 그 와중에 차근차근 진행하는 모든 일들이 그냥 다 잘 되기만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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