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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라는 숲 - 이진민

나를 나이게 하는 사람

by 세잇

주말을 이용해 속초에 다녀왔다. 올 때마다 종종 날이 흐려서 제대로 돌아다니지 못했는데, 추운 날씨였지만 날이 좋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달까. 동아서점은(이전 글에 제 사심을 담은 바 있습니다.) 뉴욕제과 덕분에 눈으로만 인사하느라 아쉬웠지만, 바다를 한 껏 껴안은 남애항이며 주문진, 영금정을 돌아 소복이 쌓인 눈과 함께 위용을 자랑하는 울산바위를 눈에 담았다. (역시 모든 날이 좋았더라...) 사진 찍는데 남다른 애정이 있어 무엇 하나 프레임에 담더라도 고심하는 편인데, 보는 이로 하여금 호기심을 자아낸달까 청탁을 하고 싶어 진달까. 이상하게 스마트폰을 수줍게 내밀거나 디지털카메라를 건네며 사진 좀 찍어달라는 분들이 왕왕 있는 편.


이른 시간의 남애항이었던가. 동해안의 3대 미항이라 불리는 곳이라 흔한 해변에 지칠 때쯤 들러보기 좋은 곳인데, 추운 날씨 탓에 뒤에서 보면 영락없는 네 마리 애벌레로 분한 중년 남성분들이 남애항의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를 배경으로 찍어달라 하여 스마트폰을 건네받았다. 가족들은 집에 두고 1년 만에 뭉친 고교 동창쯤 될까, 동호회로 다져진 친목 모임쯤 될까. 어떤 사이인지를 가늠할 새도 없이 구도를 잡는다. 어제의 취기가 볼에 남은 것인지 영하 팔도의 추위가 코에 남은 것인지 50대 중반쯤 되는 네 분이 각자의 팔을 서로의 어깨에 둘러맨 모습이 정겹다. 하나 둘 셋과 요리컷 조리컷이 난무하는 가운데, 누군가 두 손가락으로 하트를 만들기에 추임새를 넣었더니 동시에 추켜올리는 손가락 들이라니. 와중에 손가락은 주먹으로 바뀌고, 그 주먹은 서로의 턱을 지켜주겠다기보다 크게 흔들어 놓겠다는 심사인 모냥인지 다들 5학년으로 돌아간 표정이다.


친구구나.


연말연초에 알고리즘의 추천으로 『모든 단어에는 이야기가 있다』라는 책을 알게 되었는데, 홀랑 반해버려서 작가의 다른 책을 찾다 『아이라는 숲』 을 이어 보게 되었다. 이진민 작가님. 정치철학을 전공하신 분이라 그런가, 독일이라는 먼 타지에서 두 아이를 키우느라 삶에 흔들림이 많으셨을까. 어르고 달래다 다그치고 알려주는 문장 하나하나의 공명이 나와 딱 맞아떨어진다. 『아이라는 숲』 이 그러한데, 부모로서의 깊은 통찰과 다정한 조언을 할머니의 다락방 소쿠리에 모아둔 간식거리 마냥 곁에 앉아 소곤소곤 풀어내준달까. 밑줄을 긋다 책이 해질지도 모르겠다.


특히나 복잡할 만큼 복잡해진 이 시대에 가족의 일원으로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아이들에게 놓일 다양한 관계를 어떻게 정의하고 배우며 성장해야 하는지가 너무 좋아 밑줄 그은 몇 가지.




- 철학자 김상봉이 쓴 《나르시스의 꿈》에도 “인간 존재는 격리보다는 만남에서 참되게 된다”는 문장이 있다. 고독의 시간도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우리는 만나야 한다.


-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임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서로 폐를 끼치며 살아가는 존재다. 누구나 모자란 점을 갖고 있고, 그래서 서로의 도움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받은 고마움과 따뜻함으로 생을 엮으며 살아간다.


- 나를 잘 알아주는 건 좋지만 나와 같을 필요는 없다. 나와 주파수가 잘 맞는 건 중요하지만 늘 같은 노래를 들을 필요는 없다. 사랑하기 위해서, 아끼기 위해서 그 대상이 나와 닮을 필요는 없다. 나를 버리고 상대를 닮으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고, 상대가 나와 비슷해지기를 요구해서도 안 된다.




그중에 '친구'를 정의한 문장은 이러하다.


그 앞에서 꾸미지 않고 나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사람, 나를 그냥 나이게 하는 사람


나를 나이게 하는 사람. 벼르고 별러 끄집어냈을 저 한 줄. 우리 모두에게 있으나 한 번이라도 제대로 고민해 본 적이 있던가. 같은 나이면, 반짝이는 학창 시절의 어느 순간을 함께 보냈으면, 서로의 허물을 내어 보일 수 있으면, 내가 가진 상처를 그대로 받아내어 줄 수 있으면 정도로 마음속에 품고 있지 않았을까. 물론 다 맞는 정의이기도 하겠으나 '나를 그냥 나이게' 할 만큼 명징할 수 있을까. 나의 생에 그런 사람이 있었을까. 그런 사람을 찾기 전에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으로 남아 있을까.


인간(人間)이라는 한자가 사람 사이란 뜻이기에, 우리는 오늘도 수많은 관계에 놓여 부대끼고 있겠지. 좋건 싫건 타인이 정의한 나는 내가 그 사람에게 만든 이미지이기에, A에겐 조한징 일수도 B에겐 조한잔 일수도 있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나이게 할 수 있는 건,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건 타인과의 관계에서 다정함과 공감을 실천하려는 자기 의지이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도 다짐해 보려고.

그렇게 계속, 누군가에게 다정한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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