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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마트에서 울다 - 미셸 자우너

Dear Michelle

by 세잇

안녕하세요, 미셸.

격식을 갖추어 인사하고 호칭해야 한다면 퍼스트 네임 보다 라스트 네임으로 불러야 할 텐데요. 두서없이 주저리주저리 써 내려갈 제 편지가 닿지는 않겠거니 하는 소심함도 있지만, 저도 모르게 솟아난 내적친말감 때문일 수도 있으니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실은 제가 쓰는 글들에 번역으로 감당하기 거시기한 아재개그들이 숨어있어서요. 한글로 써두면 더더더 안 볼 확률이 높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래서 그냥 미셸이라고 부를게요 :)


저는 서울에 살며 열세 살 난 딸아이를 키우는 직장인입니다. 미셸을 처음 알게 된 건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동해안의 오래된 서점에서 집어든 미셸의 책을 통해서요. 제목이 『H마트에서 울다』잖아요. 여행지에서 단숨에 읽으며 울컥하긴 했지만 울진 않았어요. 심지어 그 서점의 근방에는 속초 e마트도 있었는데 말이죠. 똘망똘망 쳐다보는 아이에게 부끄러워서 그랬나 봐요.


책을 보는 내내 마음이 일렁였달까요. 갑작스레 엄마를 잃은 상실에 공감하기도 했고요. 특히나 엄마가 미셸의 마음속에 사랑을 심어두셔서, 지독한 잔소리꾼이라고는 하지만 철철이 제철 한국음식으로 미셸에게 사랑을 표현하셔서 이기도 하고요. 제가 몇 년 전에 아버지를 멀리 보내드려서 이기도 한 것 같아요.


미셸은 엄마를 떠나보내고 글과 음악으로 스스로에게 계속 물어오는 삶을 살고 있구나, 엄마와 함께 만들거나 먹으며 온전히 마음을 받아내게 만들어주었던 음식들에 대한 기억이 때론 울컥하게도 하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구나 싶어서 부럽기도 했어요. 나는 그런 추억이 있던가, 나에게 아버지는 무엇으로 남아 있을까, 그로 인해 나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가만히 고민해보기도 했고요. 갑작스레 떠난 아버지에게 얼마간이라도 곁을 내어드리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더 큰가 봐요.


혹시 아이 소식이 있나요? 언젠가의 인터뷰에서 이제 엄마가 되고 싶다고 했던 것 같은데. 저는 이제 사춘기에 접어든 딸과 티격태격 좌충우돌 우당탕탕 하는 일상을 살고 있다고 할까요 하하하. 사춘기가 그렇잖아요. ‘숙제는 다 끝내고 엉덩이를 떼야하지 않을까~’, ‘김치는 언제까지 안 먹을 거야 한국사람은 김치가 중요해’, ‘가방에 넣어둔 빈 과자 봉투는 스스로 버려야 하지 않겠니’ 같은 잔소리가 늘기도 하거니와 그 잔소리로 인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거나 고개를 숙이던 아이에서 이제는 입을 비죽거리거나 제 방문을 쾅 닫는 청소년이 된 걸 보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중에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솜씨는 없지만 주말이면 아이에게 사랑을 듬뿍 담아 아빠표 떡볶이며 카레, 오믈렛 같은 걸 만들어 먹일 때는 조금 뿌듯하기도 해요.(미셸의 엄마 이야기를 통해 배운 걸 수도 있어요.) 아이가 자라 나중에 지금의 이 언젠가를 반추해 볼 때 잔소리쟁이와 주말요리사로 분한 아빠의 기름진 미소가 삭막한 이 사회를 살아가는데 조금이나마 힘이 되길 바라기도 한답니다.


요즘도 H마트에 들르시나요. 건조식품 코너에 서면 늘 사 먹던 한국김이 어느 브랜드였냐고 전화해 물을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며, 2층 식당가에서 할머니와 딸이 해물 짬뽕을 시켜 먹다 새우 머리와 홍합 껍데기를 자기 딸 밥뚜껑에 건져내는 장면들을 설명할 때는 제가 다 무너지는 것 같았거든요. 그렇잖아요 사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일상에 불쑥 트리거가 되는 일들이 찾아오면, 얼마간은 마음을 추스르느라 멈춤 화면이 되는 거요. 저도 가끔 그래요. 아빠손을 꼭 잡고 목욕탕을 나오는 아이의 손에, 셔틀콕이 오가는 주말 동네공원의 풍경을 마주할 때면 어릴 적의 제 모습이 떠올라서 말이죠. 그럴 때면 되레 어깨에 힘이 들어가서, 딸아이와 쌩쌩이 줄넘기 내기를 한다거나 요즘 부쩍 아이가 좋아하는 아이돌인 투어스와 보이넥스트도어의 멤버들 별명과 생일 맞추기에 열을 올리기도 한답니다.


젓갈냄새 때문인지 김치만 보면 코를 찡긋하며 제 먹을 그릇을 들고 식탁을 떠나는 아이가 나중에 한국인은 뭘까라는 질문을 한다면 저는 미셸의 이야기를 들려줄 거예요. 한국인은 이거다라고 정의할 만한 것이 부모가 한국인이면, 여권에 대한민국이라고 쓰여 있으면, 한국말을 사용하거나 한국에 살고 있으면 보다는, 추억과 연결된 감각이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거라고 말이죠.


새로 앨범을 내셨다고 들었어요. 아직 재패니즈 블랙퍼스트의 음반을 들어보진 못했지만, 내일의 출퇴근길엔 미셸을 떠올리며, 제 아버지를 떠올리며, 추억과 연결된 감각으로 살아갈 아이를 생각하며 감상해 볼게요.


늘 행복할 순 없지만, 소소하게 많은 행복할 꺼리를 찾는 올 한 해가 되시길 빌며.


서울에서,

조한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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