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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작가들(3) - 김중혁

유머에 온정과 애정을 담아

by 세잇

김중혁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건 목소리를 통해서였어요. 지금은 종방 된 팟캐스트 '빨간책방'에서 흘러나오던 작가님의 말투는 뭐랄까... 둔탁하면서도 둥글둥글한데, 묘하게 힘을 뺀 것 같았달까요. 세상일에 무심한 듯 하지만 온정과 애정을 가득 담아 이동진 평론가와 책 이야기를 주고받던 작가의 이야기는, 이상하게도 듣고 나면 마음에 무언가를 남겨두는 사람이었습니다. 느슨한 말 사이사이에 문득 고개를 들게 만드는 지점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작가님의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었습니다. 그리고 곧 알게 되었죠. 김중혁이라는 이름은 단순히 작가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이자 태도라는 것을요.


그러다 보니 김중혁 작가의 글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이걸 유머라고 해야 하나 코미디를 얹은 삶의 애틋함이라고 해야 하려나요 ㅎㅎ 자주 웃음이라는 형식을 빌렸으나 삶의 진심을 말하는 게 느껴져서요.




『나는 농담이다』는 그 정체성을 가장 분명히 드러낸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낮에는 컴퓨터 수리공으로, 밤에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살아가는 송우영이란 사람이 주인공인데, 어머니가 남긴 실종된 이부형제 이일영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를 손에 쥐고 방황하는 사람이고요. 한편, 우주에 홀로 남겨진 이일영은 지구를 향해 구조 요청이자 철학적 사유, 농담, 그리고 사랑이 담긴 편지를 전송하는 사람이거든요. 지구와 우주, 현실과 상상이 교차하며 농담 같지만 진심인, 진심이기에 더 애틋한 이야기들이 펼쳐져서 흥미롭게 읽었고, 계속 작가님의 다른 작품을 만나게 해 주었습니다.


『대책 없이 해피엔딩』은 김중혁과 김연수, 두 소설가가 28년간의 우정을 바탕으로 <씨네 21>에 번갈아 연재한 칼럼들을 엮은 책입니다. (사실 네 번째로 소개할 작가로 김연수 작가를 생각하고 있어요. 김천 출신 동갑내기 유명작가가 서로 친구라니!) 영화에 대한 유쾌한 농담과 진심 어린 취향 이야기들이 오가고, 어느새 글은 각자의 삶과 세계관으로 스며드는데요. 영화 <마더>를 이야기하다 인생의 잃어버린 무언가를 떠올리고, <호우시절>을 이야기하다가 하얼빈의 북방 미녀를 소환하는 두 사람의 문장이 꽤나 인상적입니다. 읽다 보면 어느새 사적인 영화관 속으로 초대받는 기분이에요.


『메이드 인 공장』은 산업현장의 리듬과 사람의 체온이 공존하는 곳을 다룹니다. 작가는 직접 브래지어 공장(?), 콘돔 공장(!!!), 제지 공장 등을 방문하며, 그 공간 속에 깃든 노동과 삶의 결을 섬세하게 포착합니다. 기계와 인간, 반복과 즉흥, 규율과 웃음이 공존하는 그 풍경에서 김중혁 작가는 결국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무엇이든 쓰게 된다』에서는 글을 쓰는 삶이란 결국 자신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도, 문장이 어설퍼도, 그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자신을 인정해 주는 것이야 말로 삶에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지점이라는 것이죠. 작가님의 하루는 거창하지 않지만 성실하게 견뎌낸 하루라는 걸 알게 되고, 그렇게 따라가다 보면 정말 저도 뭐든 쓰고 있게 됩니다 :)


『좀비들』의 주인공 채지훈은 전국을 다니며 휴대전화 수신감도를 측정하는 일을 합니다. 그는 우연히 모든 전파가 끊긴 ‘고리오마을’을 발견하고, 죽은 형이 남긴 LP 중 스톤플라워라는 미지의 록 밴드 음반을 통해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음반에 이끌려 만난 유쾌한 거구 뚱보 130, 그리고 그의 도움으로 찾은 번역가 홍혜정. 이들이 사라진 밴드를 좇으며 마을을 다시 찾는 과정 자체가 기억과 음악, 공간과 사람을 잇는 탐험으로 읽힙니다. 이 소설에서 좀비는 등장하지 않아요. 그저 좀비처럼 살아가는 소외되고 무기력한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죠. 잊혀진 것들의 복원이라는 의미에서 이 소설은 아주 특별한 의미의 좀비 이야기로 제게 남아 있습니다.


『바디 무빙』은 몸에 대한 감각적인 시선으로 가득합니다. 걷는 것, 눕는 것, 춤추는 것 같은 사소한 움직임 속에서 마음이 어떻게 따라 흔들리는지를 이야기하고요. 말보다 앞서는 감각, 설명보다 정확한 몸의 언어가 페이지마다 배어 있습니다.


『탐방서점』은 책과 사람, 공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서울의 독립 서점 유어마인드, 고요서사 등을 방문하며 서점이라는 공간이 품고 있는 정서적 풍경을 금정연 작가와 기록해 둔 책입니다. 서점에 책이 놓인 방식, 주인의 말투, 손님이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눈에 보이는 듯하여 고요서사 같은 몇몇 책방은 저도 시간을 내어 직접 다녀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쯤 되니, 이제는 말할 수 있습니다.

김중혁 작가는 하나의 장르이지 않을까 하고요.


사람이라는 존재와 서로라는 관계에 스민 유머와 철학, 감각, 실패와 사랑이 어우러지는 고유한 세계가 작가의 문장을 통해 느슨하지만 단단하고, 무심한 듯 보이지만 따뜻한 시선이기에 오래 남게 될 겁니다.


“괜찮아, 그렇게 살아도 돼”라는 말을 다정하게 전해주는 작가. 김중혁이라는 장르.

신간을 애타게 기다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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