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보내는 고장의 신호들은
코가 맵다. 아니, 매운 건 둘째 치고 흐르는 콧물을 주체할 수가 없다. 좀 부끄럽긴 하지만 줄줄 흐르는 건 지저분하니까, 미용티슈 한 장을 반으로 쪼개고 고이 접어 돌돌 말아선 양쪽 코에 냅다 넣어보는데, 입으로 숨을 쉬느라 입술이 마르는 건 제쳐두겠으나 10분도 지나지 않아 돌돌 만 티슈마저 흥건해진다. 덕분에 쓰레기통으로 가기 전의 흔적들이 쌓여 휴지산이 되고, 훌쩍거림과 재채기는 무엇하나 집중할 수 없게 만든다. 잠은 또 어떻고. 코 한쪽만이라도 숨이 쉬어지는구나~ 싶다가도 잠자리에 들 시간이 찾아오면 어김없이 양쪽이 다 막힌다. 살 수가 없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울 순 없으니, 오늘도 항히스타민을 삼키지.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 언제인지 모르게 어떻게든 잠에 들긴 한다. 이럴 때 드는 생각. 코를 떼어야 하나.
출근길에 둘러보니 집 앞 초등학교의 담벼락엔 어느새 능소화가 얼굴을 내밀었다. 능소화가 피면 여름이라 했던가. 작렬하는 태양만큼이나 한껏 가슴과 두 팔을 열고 여름을 맞이하고 싶었건만. 나의 여름맞이는 올해도 어김없이 비염과 함께 시작하는구나. 환절기엔 영락없지. 콧물, 재채기, 후비루, 코막힘, 튼입술, 수면부족불가. 비염이 이렇게 무섭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이비인후과에 들르니, 선생님 말씀. '부비동염이네요~ 한참 고생하신 것 같은데 이 약 먹으면 이틀 안에 나을 겁니다~' 비염이 아니었나. 비염으로 시작되어 부비동염으로 옮겨간 것인가. 그래서 그렇게나 코를 '부비'댔나. 다행히 이틀 치 약을 거침없이 소화해 내니 거짓말처럼 증상이 사그라든다. (이 글을 빌어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선생님! 아 그런데, 조금 아이러니합니다 선생님. 취미가 사진이신 것 같은데, 사진 속에 선생님은 멋진 배경 속에 더 멋진 포즈와 함께 담배를 태우고 계시던데요. 이비인후과 전문으로서 괜찮으신 건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동물들의 다양한 특성을 기반으로 수명을 산출한 학자가 그러던데. 인간의 생물학적 수명은 40년이라고. 그걸 넘어서였는지는 모르겠는데, 매년 한 두 군데씩 고장이 난다. 기관지가 좋지 않아 수시로 콜록 이거나 코가 막히는 것은 어릴 적부터 달고 살아 그러려니 하겠는데,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출산의 고통은 없었지만) 허리 속에 있다는 디스크는 1/4쯤 탈출한 듯싶고, 묵직~하게 세상에 나온 따님 덕분인지 손가락 손목 팔꿈치 어깨 목으로 이어지는 관절 라인은 각각이 매년 병원을 가는 이유가 된다.
덕분인지 영양제와 건강보조제가 늘어난다. 눈도 좀 침침해지려 하는데, 그래도 책은 봐야 하니까. 더 나빠지기 전에 루테인은 물과 함께 삼킨 지 5년쯤 된 것 같고, 30대 후반의 어린(?) 나이였던 언젠가의 종합검진에서 발견된 골다공증으로 칼슘&마그네슘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고, 기관지에 좋다기에 프로폴리스, 내 혈압 잡아야지 싶어 혈관 건강을 위해 속이 쓰려도 오메가 쓰리, 가끔 철야하려면 체력이 중요하니 종합비타민, 회식은 간빨(?)로 하는 거라길래 밀크시슬까지. 어째 줄진 않고 늘기만 하네. 꼭 내 업무 같군.
내 몸이 종합병원 수준은 아니겠으나, 내 또래의 사람들은 다들 비슷하려나. 나이 듦에 따라 이렇게 구석구석 고장 나고 있으려나. 그래도 큰 질환이 없으니 감사해야 하나. 요즘이야 의학의 발달로 생물학적 수명을 훨씬 뛰어넘어서 살아가고 있긴 한데, 옛날 사람들은 어땠으려나.
그럴 때 볼만한 책이 여기 있다.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라는 책인데, 건국대학교에서 정형외과 전문의로 활약 중이신 이지환 교수님이라는 분이 마치 셜록에 빙의한 듯, 역사적인 기록을 바탕으로 위인들이 겪었던 질병을 추리하고 그 병이 위인들의 삶과 업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꽤 흥미롭게 풀어낸다.
세종대왕부터 시작해서 가우디, 니체, 도스토옙스키, 모차르트, 마리 퀴리, 모네, 로트렉, 프리다 칼로, 밥 말리 등 아주 다양한데, 우선 세종대왕부터 설명해 보자면, 세종은 20대부터 무릎통증, 30대부터 허리 통증을 앓았으며 40대부터는 눈 통증이 심해졌다고 한다. 특히 허리는 '유리처럼 깨지기 쉽고 대나무처럼 뻣뻣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눈은 '모래처럼 까끌거렸고, 때로는 사람 얼굴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악화' 되었다고 하더라. 그래서 전국 각지의 온천을 찾아다니셨구나. 그리고 몸이 비대해서, 아빠인 이방원(태종)이 산책도 하고 운동 좀 하라 권했다는 기록도 있단다. 역시 운동만이 살길인가 보다. 이런 기록을 종합해 볼 때, 세종대왕은 '강직성 척추염'을 앓았을 가능성이 높단다. 이 질병이 척추와 관절에 염증을 일으키는 만성질환인데, 허리뿐만이 아니라 눈에 염증까지 동반하기도 한단다.
가우디는 어린 시절부터 관절염으로 고생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친구 사귀기도 어려워서였는지 홀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하고. 덕분에 혼자 자연을 관찰하며 독창적인 건축세계를 구축하는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평생 관절통을 달고 살다 보니 뼈에 큰 관심을 가졌고, 이러한 관심이 건축 양식에도 반영되었다고 본단다. 가우디는 1926년 노면 전차에 치였을 때, 남루한 옷차림 덕분에 부랑자로 오해를 받아 골든 타임을 놓쳐 사망하게 되었다는데, 이 또한 그의 병약했던 몸상태와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다고.
클로드 모네의 에피소드를 제일 눈여겨보았었는데, 미술은 잘 모르지만 잘 모르는 내가 봐도 모네 그림은 너무 아름다우니까. 인상파=모네 정도는 인지하고 있지. 그리고 수련 연작 정도도. 모네는 말년에 시력이 급격히 나빠져서, 그림의 색과 형태를 제대로 구분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갔단다. 그래서 후기작품들은 모네 특유의 아름다움을 잃고, 색상이 왜곡되고 형태가 뭉개져 마치 추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지환 교수는 모네의 이러한 시력 저하와 후기 화풍의 변화를 '백내장' 때문으로 추정한다. 백내장은 수정체가 혼탁해져 시야가 흐려지고 색상 구별 능력이 떨어지는 질환으로, 모네가 빛의 화가였음을 감안했을 때 그의 예술활동에 아주아주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
결국, 몸이 보내는 고장의 신호들은 삶의 주석 같은 것이겠지. 그 불편함들이 없었다면 멈춰 생각하지도, 돌아보지도 않았을 테니까. 누군가는 그런 고장 덕에 그림을, 누군가는 글을, 또 누군가는 건축을 남긴다. 나는 아직 아무것도 남긴 건 없지만. 오늘 이렇게 코를 훌쩍이며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를 다시 떠올리고 누군가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그걸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건강은 앞으로도 더 나빠지겠지. 그래도 몸이 보내오는 신호들에 일일이 불평만 하진 말아야지.
그렇구나, 그렇게 살아가는 거구나, 받아들이고, 받아 적으며 같이 살아갈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