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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 박완서

사랑을 말하고 상처를 만지며 용기를 건네다

by 세잇
"다만 깊이 사랑하는 모자 모녀끼리의 눈치로, 어느 날 내가 문득 길에서 어느 여인이 안고 가는 들국화 비슷한 홑겹의 가련한 보랏빛 국화를 속으로 몹시 탐내다가 집으로 돌아와 본즉 바로 내 딸이 엄마를 드리고파 샀다면서 똑같은 꽃을 내 방에 꽂아 놓고 나를 기다려 주었듯이 그런 신비한 소망의 닮음, 소망의 냄새 맡기로 내 애들이 그렇게 자라 주기를 바랄 뿐이다."


박완서 작가의 문장에는 언제나 일상의 기적과 삶에서 마주하는 깨달음이 스며있습니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국화를 마음속으로 탐내고 있을 때, 딸이 똑같은 꽃을 사와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이 작은 기적. 이것이 바로 박완서 작가가 말하는 신비한 소망의 닮음이겠지요.


이 문장에서 작가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이가 잘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채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연스럽게 배려할 줄 아는 아이로 자라기를 바라는 부모의 간절한 마음 말이죠. 엄마가 원하는 것을 딸이 알아서 준비하듯,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따뜻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거죠. 이런 소망의 냄새를 맡을 줄 아는 아이들로 자라주기를 원하는 작가의 마음이 닿아, 저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내 아이를 바라보게 됩니다.



박완서 작가와의 늦은 만남

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그전까지는 박완서 작가의 작품을 단 한 편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오래된 학창 시절에, 국어 시험 지문 속에서 스쳐 지나간 이름으로만 기억하고 있었죠. 그러다 처음 만난 책이 바로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였습니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글마다 담긴 마음이 얼마나 넉넉하고 따스하던지요. 때로는 어머니의 다정한 다그침처럼 마음을 톡톡 두드려주기도 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밑줄을 긋고 또 그으며, 책 한 권이 꽤 지저분해졌습니다. 하지만 그 흔적들마다 작가의 말에 깊이 공감했던 순간들이 새겨져 있어, 그 또한 소중한 기록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였는지, 문득 작가님을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습니다. 에세이로 처음 만났던 감동과, 이후 하나씩 읽어 내려간 여러 작품들에서도 감명을 받기도 했고요. 교육열이 높았던 작가의 어머니 밑에서 성장해 개성에서 서울로 상경하기도 하고, 서울대에 입학한 해에 6.25 전쟁으로 피난길에 올라야 했던 삶. 결혼과 육아를 병행하며 아내이자 엄마로 살아가다, 마흔이 넘어서야 비로소 등단할 수 있었던 그 시간 속엔 얼마나 많은 감내와 울분, 서러움이 켜켜이 쌓여 있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글을 쓰지 않고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었을 그 마음들이 조금씩 이해되더라고요. 더욱이 남편과 사별하고 몇 달 지나지 않아 하나뿐인 아들마저 떠나보낸 어머니의 마음은, 차마 다 헤아릴 수조차 없을 것 같았습니다.


박완서 작가에게 글쓰기는 단지 직업이라 부르기 어려운 무엇이었을 겁니다. 그것은 박완서 작가가 살아내기 위한 방식이었고, 가슴속에 쌓인 상처를 어루만지는 치유의 방식이었으며, 세상과 마주하고 또 자신을 지켜내기 위한 창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늦깎이로 문단에 나섰던 그녀에게는 젊은 작가들과는 또 다른 단단한 무게감이 있었을 겁니다. 살아온 세월만큼 품은 이야기가 있었고, 그 세월만큼 깊어진 마음이 있었을 테니까요. 그런 지점이 쌓여 만든 문장들이 너무 좋았습니다.



결과보다는 여정을

"부모가 자식에게 줘야 할 것 중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이 아닐까. 완성되고 구비된 물건이나 행복이 아니라 그것을 획득하기 위한 과정 말이다."


박완서 작가의 이 문장을 읽고 나면, 문득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요즘 우리는 얼마나 결과에만 마음을 빼앗긴 채 살아가고 있는지, 아이에게 좋은 성적을, 좋은 대학을, 좋은 직장을 안겨주려 애쓰면서도 정작 그 과정에서 아이가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마음으로 성장해 가는지를 놓치고 있지는 않았을까 돌아보게 되거든요. 박완서 작가는 ‘완성된 무언가’를 건네는 대신, 스스로 얻어가는 ‘과정의 시간’을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말이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이건 단순히 교육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겠죠.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결국 더 중요한 건 ‘어디에 도달했는가’보다 ‘어떻게 걸어왔는가’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정말 추구해야 할 건, 어쩌면 그 여정 자체일 테니까요.



답답함에 맞서는 용기

"그래 도전을 하려거든 철저히 해라. 속 빈 강정인 기성 세대에게 너희들의 알찬 내실로 맞서거라. 팝송을 들으면서라도 좋으니 지독하게 공부하고 밤새워 명작을 읽고 진지하게 고민하거라. 그리고 답답한 일이 있거든 답답해하거라. 답답한 것과 맞서거라. 답답한 것을 답답한 줄 모르는 바보야말로 구제할 길 없는 바보가 아니겠는가."


1970년대, 혼란과 변화의 한가운데를 지나며 박완서 작가가 건넨 이 말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깊은 울림을 줍니다. 작가는 단순히 젊은 세대를 다그치지 않습니다. ‘도전하라’는 말속에도, ‘철저히’라는 당부가 따라붙습니다. 그저 흉내만 내지 말고, 정말로 지독하게 고민하라고요. 밤새워 명작을 읽고, 팝송을 들으면서라도 괜찮으니 진지하게 생각하라고요.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남는 건 '답답한 일이 있거든 답답해하거라'는 구절이었습니다.


참 이상하죠. 살다 보면 우리는 점점 무뎌집니다. 답답한 걸 답답하다고 말하는 법을 잊게 되고, 불편한 현실도 어느새 ‘원래 그런 거지’ 하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런데 박완서 작가는 말합니다. 그 감각을 놓치지 말라고 말이죠. 세상이 답답할 땐, 답답해할 줄 알아야 한다고요. 그 답답함과 마주 서는 용기야말로 살아 있는 삶의 태도라고 말입니다.


그 한마디에, 문득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 답답한 것을 답답하다고 느끼고 있는가. 그 무감함 속에 안주하며 살고 있진 않은가. 박완서 작가의 문장은 오늘도 그렇게 우리 마음 한구석을 조용히 건드리고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진정 살아 있는가 하고요.






그래서 오늘도 박완서 작가의 문장을 다시 펼쳐 듭니다.


다정한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결과보다 과정을 더 오래 붙들었으면 하는 바람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제 목소리를 내라는 용기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는 생각보다 낡고 거칠며 삐걱거립니다.

때로는 그 하루를 무사히 버텼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다독여야 하는 날들이 있지요.


그럴 때마다 삶을 더 잘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미처 챙기지 못했던 마음의 조각들을

작가가 문장으로 조용히 건네주었습니다.


쉽게 말하지 못했던 마음이 거기 있었고

세상이라는 무게에 눌리면서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단단한 이유도 그 속에 있었습니다.


박완서 작가는 거창한 이상이나 철학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너무 익숙해서 무심히 지나쳤던 일상 속 장면들로

사랑을 말했고, 상처를 어루만졌으며, 용기를 건넸습니다.


그런 문장들을 만났기에 조금은 더 따뜻하게 하루를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조심스럽게 사람을 대하고 조금 더 진심을 담아 마음을 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건 아마, 박완서 작가가 남긴 선물일 겁니다.

책장을 덮은 뒤에도 오래도록 곁을 지키는 그 문장의 숨결.

그 안에 스며든 삶이, 여러분의 하루에도 채워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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