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색은
무채색. 대충 감으로 알지만, 사전을 살펴보니 '색상이나 채도는 없고 명도의 차이만을 가지는 색'이라고 합니다. 흰색, 검정, 회색. 색이 아닌 거죠. 동네의 학원가를 지나다 보면, 온통 무채색으로 무장한 학생들에 둘러 쌓일 때가 있습니다.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기 시작하는 대부분의 초등 고학년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 유독 그 시기에 주야장천 찾는 색이 아닌가 싶습니다. 색이 아니라서 그런지 뭔가 밋밋하고 단조로운 인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무채색 삶이라고 생각했지만』이라는 제목에서 반전의 여운이 느껴졌습니다. 저처럼 무미건조하고 둥글둥글하거나 특별히 내세울 것이 없어, 이렇다 할 색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한 분들이라면, 이 책이 가진 울림이 결코 작지 않을 거라 직감했습니다.
김동식 작가의 첫 에세이집인 이 책은『회색 인간』이라는 데뷔작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가가 처음으로 자신의 내밀한 개인사와 작가로서의 생활을 기록한 작품입니다. 중학교 중퇴 후 10년 넘게 성수동의 주물 공장에서 일하며 살다가, 온라인 게시판에 쓴 단편소설들로 등단하게 된 작가 김동식. 정통(?)적이지 않은 경로로 세상과 연결된 이 작가의 고백은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소설처럼 읽히고, 믿기 어려운 기적 같은 서사를 품고 있습니다.
"내게 글쓰기는 친구였고, 행복이었고, 구원이었다. 글쓰기가 없었다면 난 성수동 지하의 지박령으로 살다가 죽었을 거다. 죽을 때까지 내가 어떤 색을 가진 사람인지 보지도 못하고, 나는 왜 사는지 그 이유도 모른 채로 눈을 감았을 거다. 몇 번을 말해도 부족할 만큼 내게 글쓰기는 소중하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색’이라는 표현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작가는 글쓰기를 만나기 전까지 자신이 어떤 색을 가진 사람인지조차 몰랐다고 고백합니다. 그 말속에는 스스로를 무엇이라 설명할 수 없었던 시절의 무게와, 자신에게조차 무관심했던 시간의 단절이 담겨 있는 듯했습니다. 그러다 글을 쓰면서 비로소 자신의 색을 자각하게 된 거죠. 무채색이라 여겼던 삶 속에 스며든 ‘글’이라는 하나의 색. 그것이야말로 작가가 찾아낸 삶의 빛이었을 겁니다.
김동식 작가의 문장은 멋을 부리지 않습니다. 화려한 수사나 젠체하고 어려운 말이 없죠. 오히려 일상의 사소한 장면에서 길어 올린 진심 어린 말들이 더 묵직하게 마음을 두드립니다. ‘마카롱 같은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그의 말처럼,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떠오르고, 보면 괜히 웃음이 나고 달달하게 위로가 되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는 작가의 마음이 전해집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오래도록 곁에 남는 이야기. 어쩌면 그래서 그의 문장은 결국 다양한 색채의 옷을 입고 독자의 마음을 물들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작가의 글쓰기를 향한 고백에 잠시 머물던 마음은, 어느새 ‘사랑’이라는 단어 앞에서 다시 멈추게 됩니다. 그가 말하는 사랑은 익숙한 표현은 아닌데요.
"궁금해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을 때 설명하기 위한 수단이 바로 사랑이구나. '사랑하니까 궁금하다'가 유일하게 말이 되는 설명이었다. 생산성 없는 궁금증을 설명하기 위해 사랑이 쓰인다면, 사랑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생산성 없는 궁금증이 쓰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내게 사랑이란 서로를 궁금해하는 일이다."
문득 오래된 누군가를 떠올려봅니다. 그 사람이 왜 좋아졌는지, 왜 계속 생각났는지, 뾰족하게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그 사람의 하루가, 그 사람의 기분이, 별것 아닌 그의 말투나 표정까지 궁금했던 날들. 궁금해하는 마음만으로 하루를 채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작가가 말하는 사랑이었구나 싶었습니다.
사랑은 무언가를 해주거나 들어주기보다, 먼저 그 사람의 삶에 관심을 가지는 일일 겁니다. 알고 싶어 하고, 다가가려 하고, 그 마음의 결을 헤아려 보려는 관심 말이죠. 김동식 작가가 말하는 ‘생산성 없는 궁금증’이라는 표현은 그래서 더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자주 쓸모나 성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감정조차 효율의 언어로 설명하려 드는 이 시대에서, 설명되지 않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 문장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를 궁금해한다는 것,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야말로 진짜 사랑이지 않을까요.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쩌면 조금 더 온기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한 사람이 자신의 존재를 단단히 붙들고 살아가기 위해선 어떤 기반이 필요할까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자존감'이라는 단어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 자존감은 이 한 문장에서 잘 드러나 있었습니다.
"남들보다 더 좋아하고 잘하고 잘 알게 되는 일이 아마도 한 사람의 인생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자존감의 기틀이 되는 게 아닐까"
김동식 작가는 ‘오락실에서 게임을 잘했던 기억’을 말하며, 자신이 잘하고 좋아했던 일에서 자존감의 뿌리를 찾았다고 고백합니다. 게임에 젬병이인 저로서는 부러운 능력입니다만, 남들이 보기에 대단한 업적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경험은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나는 뭘 잘하고, 뭘 좋아하고, 그렇기에 무엇이든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요. 그것이 그를 지탱해 준 겁니다.
이 문장을 읽고 나니, 어린 시절 열심히 큐브를 돌리다 여섯 면이 딱 맞아떨어진 기억, 책벌레라는 별명이 듣기 좋아서 책을 이고 지고 다녔던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지금의 나를 만든 건 그때의 그 '작지만 확실한 내가 잘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회적 성취가 아니라, 누구의 인정에 앞서 스스로를 지지할 수 있는 감각 같은 것이죠. 그 감각이 있기에 우리는 도전할 수 있고, 실망한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습니다. 김동식 작가는 그런 마음을 글쓰기로 길어 올렸고, 작가가 길어 올린 그 문장을 통해 우리는 각자의 기억을 더듬게 됩니다.
글쓰기를 만나기 전의 김동식은 공장에서 '기계의 부품' 같은 존재였지만, 글쓰기를 만난 후에는 '대체될 수 없는 고유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무채색의 삶에서 쨍한 채도를 가진, 나다운 삶으로의 전환. 글쓰기라는 매개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세상과 소통하며, 타인에게 위로와 즐거움을 전해주는 일. 그 과정이 작가에게는 자신이 가진 색깔을 발견하는 일이었을 겁니다.
『무채색 삶이라고 생각했지만』은 결국 김동식 작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자 우리에게 전하는 위로의 메시지입니다. 작가는 말합니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 글을 썼다고요. 글쓰기는 작가에게 삶의 이유이자 방향이었고,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였으며, 가장 오랜 친구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각자가 무채색이라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인지도 모릅니다.
고단하고 지친 하루의 끝에 잿빛 골목을 지나며
때로는 나만 색이 없는 것 같아 서운한 날도 있겠죠.
하지만 누군가가 건네는 진심 어린 한마디
또는 스스로에게 귀 기울여보는 짧은 한순간이
우리 삶에 색을 불러오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내가 가진 색을 남들과 비교하다가
반짝이지 않는다는 걸 발견하더라도
먼지 같은 일만 하다 먼지에 묻혀
색이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 여길지라도
내가 나로 존재하기에 분명 그 색은 내 안에 있을 겁니다.
그러니 무채색이라 여긴 삶에도 어느새 색이 스며들고 있음을
누군가의 문장을 통해 우리는 천천히 알아차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글쓰기로 자신의 삶을 물들인 김동식 작가처럼
우리도 각자의 방식으로 색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겠죠.
그리고 그 색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하며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것인지 깨닫는 순간이 온다면
그건 분명 우리가 '살아있다' 말할 수 있는
어떤 단단한 증거가 되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