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흔한 주간회의 풍경. 당면한 과제들은 넘쳐나고, (누군가가) 지시하고 (또 다른 누군가가) 지시받은 항목들은 끝이 없습니다. 잘했다, 잘못했다와 왜 그랬니와 어쩔 거니, 이래야 하지 않겠니가 난무합니다. 어찌 되었건 이래저래 회의는 흘러가죠.
회의 말미. 딱딱하고 서걱거리기만 한 회사생활에 자그마한 활력이라도 불어넣어 보고자 팀원 한 명이 '스몰토크'를 주기적으로 하자는 제안을 합니다. 업무 이야기만하지 말고 월에 한 번쯤? 좀 멀어도 괜찮으니 맛집이라도 찾아가서 그냥저냥 이렇게 저렇게 사는 이야기라도 해보자고 말이죠.
너무 좋은 제안 같습니다. 그간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바라보았는지, 개인적인 어려움이나 일상에 변화는 없는지, 여가시간에 관심 갖고 행하는 것이 무엇인지, 새로 알게 된 트렌드나 재밌는 정보들을 공유하면서 말이죠.
다들 좋다는데, 묵직한 펀치가 하나 날아듭니다. '근데 그런 건 평소에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 다들 아무 말 없는 걸 보니 비슷한 생각들을 하고 있나 봅니다.
스몰토크, 중요합니다. 얼마나 중요한지 보시죠.
소소한 잡담은 유대 관계를 형성하고, 이는 신뢰로 발전할 수 있죠. 잡담과 수다의 특징은 하고 난 후 내용은 생각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다 잊어버리고 그 사람과 내가 같은 시간을 보냈다는 유대감만 남지요.
그런데 사실 일할 때는 그 유대감이 되게 중요하거든요. 밥이라도 한 번 먹어본 사람과 일하는 것과 소소한 얘기도 한 번 안 해본 사람하고 갑자기 일하는 거랑 다르잖아요. 그런 이유로 잡담을 수시로 많이 나누게 해요. 그 안에서도 정보들이 오가고요. 잡담을 많이 나누면 좋은 게, 보고를 하거나 결정해야 할 때 무겁지 않게 얘기할 수 있더라고요. 사전에 가볍게 물어봤으니 조금이라도 편하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죠. 그래서 잡담이 경쟁력이라고 생각해요. - 홍성태, 《배민다움》
저 문장은『일터의 설계자들』이라는 책의 내용입니다. '배달의 민족'으로 유명한, 우아한형제들의 피플실 팀장이신 나하나라는 분이 쓴 책인데요. (링크드인을 잠시 살펴보니 아직도 우아한형제들에 계시네요.) 9년간 우아한형제들에서 '배민다움'이라는 조직 문화를 만들어온 경험을 바탕으로, 일 문화가 어떻게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풀어쓴 책입니다.
잡담 속에 숨어있는 조직의 힘
우리는 언제부터 직장에서의 잡담을 비효율적인 것으로 여기게 되었을까요? 성과와 효율만을 추구하는 조직 문화 속에서 잡담은 마치 시간을 낭비하는 행위처럼 취급되는 듯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합니다. 잡담과 수다의 특징은, 하고 난 후 내용은 생각나지 않지만 그 사람과 내가 같은 시간을 보냈다는 유대감이 남는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유대감이 일할 때 아주아주 중요하다고요.
잡담이 유대감을 만들고, 유대감은 동료들끼리 일하는 데 있어 경쟁력을 만든다는 이야기는 단순해 보이지만 깊은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보고를 하거나 결정해야 할 때 무겁지 않게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죠. 사전에 가볍게 물어봤으니 조금이라도 편하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테니까요.
이는 단순한 대화 기법이 아니라 조직을 운영하는 데 있어 중요한 철학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많은 조직에서 소통의 문제는 '무엇을 말할지'보다 '어떻게 말을 꺼낼지'에서 시작되니까요. 잡담이라는 완충지대가 있을 때 비로소 진짜 중요한 이야기들도 자연스럽게 오갈 수 있다고 봅니다.
관계의 온도를 높이는 작은 실천들
우아한형제들의 일 문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지혜는 '관계의 온도'를 조절하는 섬세함이었습니다. 책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사례들을 보면, 구성원들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기 위해 의도적이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는데요.
예를 들어 호칭을 '님'으로 통일하거나 영어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단순히 수평적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신규 직원이 조직에 적응할 때 가장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이름과 직급을 잘 기억했다 칭하는 일이고, 실수로 직급을 낮게 불러 불편한 감정이 생기지 않을지 걱정하더라는 설명이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소나기 말고 가랑비처럼
책에서 기억에 남는 표현 중 하나는 '일 문화는 소나기 말고 가랑비처럼'이라는 내용입니다. 우리 다운 행동이 무엇인지 기업이 강요하기만 하면 직원들은 '이제 그만~' 하고 귀를 닫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무언가로 자연스럽게 행동을 유도한다면 좀 다르지 않을까요?
문화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미는 것이니까요. 강요는 억지로 따르게 할 수 있지만, 진정한 내재화로 이어지진 않습니다. 우아한형제들 사무실 바닥 곳곳에 새겨 두었다는 '인사받고 싶으면 먼저 인사하자'같은 문구들이 바로 이런 가랑비 접근법을 고민한 결과들이 낳은 산물일 겁니다.
100-1=0의 철학
저자가 강조하는 또 다른 중요한 개념은 '100-1=0'입니다. 감이 오시죠. 네, 오실 겁니다. 아무리 좋은 일 문화를 만들어 놨다고 하더라도, 단 하나의 실수로 제로가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일 문화가 얼마나 섬세하고 지속적인 관리를 필요로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인데요. 하지만 이것이 조직문화를 가꾸어 나가는 사람들에게 주는 두려움의 경고는 아닙니다. 오히려 간과해서는 안 될 가치가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죠.
저자는 '좋은 일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냐 묻는다면, 직원에 대한 애정과 존중의 마음이라고 대답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관리가 아닌 관심. 이는 조직 운영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보였습니다. 통제와 관리 중심의 전통적 조직 운영에서 벗어나, 관심과 애정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적 접근법으로의 변화인 것이죠.
(부러웠던 부분인데) 피플실이라는 조직은 매주 모든 부서를 찾아다니며 점심 사주고 커피사주는 게 핵심업무이고, 다양한 채팅채널에서 대화가 끊이지 않게 하는 것이 주된 과업이라고 하더군요. 진심을 다해 구성원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려는 것이죠. 진정한 내부영업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저 밥사주는게 부러웠다는 것만은 아닙니다 ^^;;; )
태도가 경쟁력이다
책을 읽으며 계속 떠오른 생각은 결국 태도의 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저자 역시 인터뷰에서 최인아책방의 최인아 대표 말을 인용하며 '태도가 경쟁력'이라고 강조합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와 시스템이 있어도,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무용하다는 것이죠. 반대로 완벽하지 않은 환경일지라도, 올바른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겁니다.
마음에서 시작되는 일의 의미
『일터의 설계자들』을 관통하는 핵심은 결국 '일하는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가'입니다. 모든 것의 근원은 '일하는 사람의 마음'이고, 뻔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모든 건 마음에서 출발하니까요.
하지만 그저 마음가짐의 중요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성원들이 어떻게 구체적인 실천으로 옮기도록 도울 것인가, 어떻게 지속 가능한 시스템으로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실용적인 방법들이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그 ‘스몰토크’의 자리로요.
어떤 회의보다도, 어떤 의사결정보다도 중요한 것은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이니까요.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고, 사람 사이엔 온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일터의 설계자들』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지만 무심히 지나쳐온 것들과 작은 실천들이 모여 조직을, 일하는 사람을, 그리고 일 자체를 바꾼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잡담은 경쟁력’이라는 말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잡담은 우리가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여는 첫 번째 걸음이고, 무거운 말을 가볍게 꺼낼 수 있는 통로가 될 테니까요. 팀원들과 한 달에 한 번 맛집을 찾아 수다를 떨겠다는 그 제안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일할 수 있게 만드는 ‘가랑비 같은 문화’의 시작일지 모릅니다.
회사생활에 있어 최고의 복지는 동료라 믿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회의가 (있다면) 끝나고 잠깐의 잡담이라도 나누어 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게 곧 우리가 더 오래, 더 잘, 함께 일할 수 있는 방법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