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처방전/ 이유없이 짜증이 난다면 생리증후군 의심을
세상에서 가장 손쉽고, 속 편한 일은 '너 때문에 화났어! 화를 실컷 쏟아내고 원인을 상대 탓으로 돌리는 일'
이다. " 나 때문이 아니고, 너 때문에 화났어!" 처음 화에 대한 공부의 시작은 아이들과 남편을 바꾸고 싶어서였다. 화나게 하는 상대 때문에 얼마나 마음이 힘든지 위로받고 싶었다. 세상 공부가 다 그렇듯, 화의 문제도 결국은 자기 자신 문제로 돌아오게 된다. 그걸 깨닫는 순간, 더 이상 답을 찾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더불어 부끄러움이 일어났다. 그동안 화를 견디고 받아준 아이들과 남편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이 슬그머니 자리를 잡았다. 내 목소리가 작아지고 행동이 조심스러워졌다. 그리고 답답함이 밀려왔다. 속시원히 화를 내지 못해 가슴 아래 뭔가가 꽉 막힌 느낌이 들었다.
그런 불편한 마음과 답답함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화를 내지 않기 위해서는 화가 목에 차 올라오는 순간 멈출 수 있어야 한다. 화가 나기 시작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아야 하는데, 화는 미꾸라지처럼 내 손아귀를 재빠르
게 빠져나가곤 했다. 화를 내고 나서 화를 낸 나에게 형편없다고 자책하는 건 더더욱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만 화에서 자유로와 지고 싶은 마음만 확인하면 될 일이다. 그러다 화에 대해 이해하게 된 것이 있는데,
바로 '자기 돌봄'이다. 내가 나 자신을 돌보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다독다독하는 마음이다. 내 몸이 피곤하고
지치면 아이들을 돌보기 어렵다. 화를 내는 그 순간 놓치지 않고 멈추는 힘이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나 자신에 대한 '자기 돌봄'은 화를 따뜻하게 품어준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평소 큰 아이랑 공부계획을 세우면서 엄마인 나도 계획을 함께 짰다. 하루 15번 이상
내는 화를 10번 이하로 줄이겠다. 엄마가 화가 나면 큰 소리 지르기 전에 "조금 있다 말하자"라고 하고 자리를
피할 것이다. 엄마가 화가 나려고 하면 세 번까지 화나는 정도를 미리 표현할 거다. 그럼 신호로 알고 엄마 마음을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지금 생각하면 자녀를 키우면서 화를 내지 않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이었는지
다시 울컷해 진다. 암튼 큰 아이의 공격성은 나의 욱하는 성질머리에서 비롯되었음을 인정하고 변화해야 할
대상을 나로 초점을 맞추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 " 당신 혹시 그 날 아니야? 달력 한 번 확인해봐. 좀 조용한가 싶다가도
꼭 한 번씩 히스테릭 하단 말이야" 한 달에 한 번씩 찾아도는 여자들 생리를 말하는 것 같았다. 워낙 주기가 일정
하지 않아 언제 내가 그 날을 맞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한 나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남편 말을
듣고 이틀 후 생리를 시작했다. " 아니 이럴 수가! 다들 겪는 생리증후군 호르몬 변화가 이렇게 일상 정서에
영향을 주는구나!" 그즈음이 되면 평소 아무렇지 않던 생활습관들이 눈에 거슬리고 감정이 예민해지는
나를 발견하곤 놀랐다. 가족들에게 짜증을 많이 내고 별일 아닌데 화가 났다. ' 자기 돌봄'이 필요한 시간
이었다. 이 일이 있고부터 내 몸이 편안한지? 피곤하거나 지친 게 아닌지? 스트레스가 있는지? 먼저 살피게
됐다. 내 몸이 편안할 수 있어야 마음이 편하고 자녀들을 돌볼 여유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유 없이 짜증이 나고 잔소리가 늘었다' 생각되는 순간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 아이들의 조그마한 실수에도 쉽게 노여워진다. 주말에 시댁을 들러 휴식이 충분하지
않게 시작된 그 한주는 유난히 아이들을 재촉하게 된다. 친구를 만나 부러움을 느낀 날은 자녀에게 짜증을
더 많이 내게 된다. 남편이 늦게 들어와서 집안일을 혼자 하느라 힘겨웠던 날은 엄마인 자신에 대한 불만이
늘어난다. '나는 지금 편안한가? 나에게 필요한 돌봄은 뭘까?'
때론 혼자 나에게 필요한 돌봄을 물어보고 해줄 수 있지만, 혼자 할 수 없을 때가 더 많다. 짜증이 난다는 건
그만큼 힘겹다는 신호이다. 가족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 엄마가 짜증을 내는 건 너 때문이 아니야.
엄마가 오늘 유달리 몸이 힘들어서 그런 거야. 엄마가 화를 내더라도 너한테 하는 말이 아니란 걸 알아줘"
화나 짜증을 내고 있는 자신을 인정하고 가족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저녁밥 준비가 힘들면 외식을
해달라고 하든지, 시켜먹든지 하는 식으로 '돌봄'을 요청할 수 있을 때 평화롭게 스트레스 상황을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