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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의 두 여자

Post's Hillwood Estate, Museum & Gardens

by Claireyoonlee

모든 여자가 한 번쯤 꿈꾸는 삶이 있다. 값비싼 명품 옷과 진짜보석을 입고 걸치는데 돈에 구애받지 않는다. 정원이 있는 크고 잘 꾸민, 누군가 말끔하게 청소해 주는 집이 있다. 가끔 사람을 초대해 연회를 열어 사교계의 주인공이 된다. 나는 버지니아에서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두 여자를 보았다, 한 여자는 100년 전, 또 한 여자는 현재의 여자다. 현재의 여자는 100년 전의 여자를 본보기로 삼았던 것 같다. 과거의 그 여자는 말 그대로 왕후장상이 부럽지 않았다.


1904년, 포스트 여사(Marjorie Merriweather Post)는 27세의 나이에 아버지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았다. 그녀의 아버지 C.W.포스트는 지금도 사람들이 많이 먹는 시리얼 브랜드 Postum Cereal Company를 창립했다. 그 당시 미국에는 여성에게 선거권조차 없었다. 그러나 여자의 아버지는 고명딸을 어릴 때부터 사업가 교육을 받게 했다. 여성의 능력을 우습게 보는 남성 중심인 세상에서 여자는 물려받은 회사를 키워 아버지보다 더 부자가 되었다. 호화로운 집을 여러 채 짓고, 타고난 미모로 사교계를 주름잡았다.


사생활도 화려하다. 네 번 결혼에서 세 딸을 얻었다. 스무 살도 되기 전에 한 첫 번째 결혼으로 두 딸을 낳았고, 두 번째 남편인 에드워드 프랜시스 허튼은 물려받은 회사를 더 큰 식품 회사로 만들 때 동업자가 되었다. 그는 막내딸의 아버지이다. 세 번째 남편 조셉 데이비스는 유능한 정치인이었다. 두 번째 남편과의 결혼 생활이 삐걱거릴 때 만나 첫눈에 반했는데 그도 유부남이었다. 여자는 ‘사랑’을 위해 이혼하고, 상대를 이혼시키고 세 번째 결혼을 강행했다. 그리고 러시아 대사인 남편과 모스크바로 떠났다. 러시아 혁명 후 스탈린 정부는 군사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국보급 재산을 헐값에 팔았다. 이재에 밝은 미국의 사업가가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그때 수집한 유물은 지금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이다. 부와 미모, 고급 취향까지 갖춘 이 여자의 완벽한 짝이 될 남자를 찾기는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히틀러에게 대항하기 위해 뭉쳤던 미국과 소련의 관계에 금이 가자, 소련 전문가였던 조셉 데이비스는 일과 매력을 잃었다. 그와 이혼 후 거의 70의 나이에 여자는 스무 살 정도 연하인 피츠버그의 간부인 허버트 메이와 결혼했다. 하지만 그가 동성애자임이 밝혀지고 네 번째로 이혼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어떤 남자의 부인이 아니라 아버지의 딸 포스트로 일생을 마쳤다.

사업가로서, 여자로서 혼자만 호의호식하지는 않았다. 여자는 어릴 적부터 ‘돈은 남을 위해 써야 한다’라고 아버지에게서 교육받았다. 전쟁과 대공황이 일어났을 때 구제 사업을 벌였고, 예술 단체와 스카우트 같은 공익 단체에 아낌없이 기부했다. 기금 마련을 위해 큰 파티를 열고, 부자들을 독려해 가난한 사람을 돕도록 했다.


세 번째 이혼 후, 여자는 유럽 왕족이 썼던 식기로 파티를 열고 러시아, 유럽에서 수집한 유물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워싱턴 디씨의 서북쪽 힐우드에 저택을 지었다.(Post's Hillwood Estate, Museum & Gardens) 자선 사업가답게 사후에 힐우드 저택은 스미소니안 재단에 기부하고 모든 사람에게 공개했다. 약 3만 평 부지의 언덕에 있는 그림 같은 저택과 정원, 집사의 집까지 예전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20달러 정도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100년 전 한 여자가 누렸던 어마어마한 부의 실체를 집안 곳곳에서, 정원 구석구석에서 볼 수 있다. 파베르제(러시아 제국의 보석 세공사) 작품인 약 90점의 황실 부활 달걀, 예카테리나 대왕 황후의 요리를 선보이는 60개의 러시아 도자기 세트, 25개의 은색 종교 성배, 알렉산드라 황후의 결혼식 왕관 등 눈을 현란하게 만드는 수집품은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번쩍번쩍 빛이 난다. 찬장에는 유럽 왕가의 식기 세트가 가득 전시되어 있는데 그보다 더 많은 그릇이 지하창고에 있다고 했다.


정원 한 편에는 그녀의 삶만큼이나 기품 있는 무덤이 있다. 항아리에 담긴 유해는 대리석 기둥 꼭대기에 안치되어 집과 정원, 그녀가 사랑했던 모든 애완견의 무덤을 내려다본다. 장미의 계절이 되면 비석 주위에 품위 있는 품종의 장미가 앞다투어 핀다. 분홍색 대리석 묘비에는 "In me mea spes omnis"(내 모든 희망이 내 안에 있다) 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돈도, 사랑도 실컷 누렸던 포스트 여사는 죽음 후에는 ‘희망’을 간직하고 싶었던 것일까. 욕심도 많은 여자다.


나는 한국에서 친구나 친척이 오면 이 집을 관광 목록에 꼭 넣었다. 여자들은 진귀한 식기와 가구, 보석에 매혹되었고, 남자들은 궁전 같은 집의 규모에 놀랐다. 나는 손님과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장소를 발견해서 몇 번을 가도 지루하지 않았다. 어느 날은 현대식 부엌에, 어느 날은 상차림이 번쩍번쩍한 다이닝룸에, 어느 날은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보석처럼 반짝이는 아침 식사 방에 깊이 감탄했다. 그리고 집안 곳곳에 걸려있는 한껏 성장한 마조리 여사의 초상화를 보면서 남과 달랐던 여자의 꽉 찬 하루를 상상했다. 진정한 사랑을 찾아 네 번이나 결혼하고 이혼했으니까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네 명의 남편과 깊이 사랑에 빠졌었고,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했고,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인류애까지 품은 ‘인간’이 아니었던가.


지금 버지니아에 살고 있는 여자의 남편은 작은 델리로 시작해서 자수성가한 사업가다. 힐우드 저택처럼 로코코 스타일로 꾸민 큰 집에 사람들을 불러 파티를 열고, 최고가 명품 브랜드의 옷과 핸드백을 사시사철 사들인다. 값비싼 옷과 장신구가 잘 어울리는 외모다. 아기 눈망울만 한 보석 반지가 거친 손가락에서 눈이 부시게 반짝였다. 여자는 한국에서 기자나 공무원 같은 새로운 사람이 오면 불러서 밥을 먹이고 자신의 ‘사교계’에 입성시켰다. 그들은 기꺼이 그 ‘이너서클’에 들어갔다. 해마다 12월에 열리는 남편의 회사 파티에 여자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모두 초대했다. 나는 처음 입는 파티복이 익숙하지 않아서 중저가 ‘드레스’를 하나 장만해서 입고 갔다. 서양식 파티를 즐길 줄 몰라서 아는 사람끼리 앉아서 수다를 떨거나 사진을 찍고 놀았다. 파티의 여주인공은 등이 파진 반짝이는 드레스를 입고 하얀 목에 커다란 다이아몬드가 박힌 목걸이를 둘렀다. 여자의 남편은 인사말을 하면서 함께 고생하고 애쓴 부인의 영어 이름을 다정하게 불렀다. 거침없이 무대로 나와서 멋지고 짧은 연설을 하는 여자의 모습이 누군가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마조리 포스트 여사처럼 살고 싶은 여자의 소원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


자료를 샅샅이 찾아 읽었어도 포스트 여사를 진정으로 이해하기는 어렵고, 포스트 여사를 따라 하고 싶은 여자의 삶에도 내가 알지 못하는 애환이 있을 것이다. 아버지든, 남편이든 덕을 보고 그보다 더 큰 성공을 이루기 위해 들인 그 여자들의 노력과 헌신에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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