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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ie Street Jan 29. 2018

당신에게 바치는 영화 <스펙타큘라 나우>

관계. 그 어려움에 대하여...

 

제목: 스펙타큘라 나우(The Spectacular Now), 2013 作

감독: 제임스 폰 솔트

연: 쉐일리 우들리(에이미 役), 마일즈 텔러(셔터 )

#미국 #드라마 #1시간 35분


 모든 걸 망쳤다고 자책할 즈음, 진통제를 찾듯이 영화 <스펙타큘라 나우>를 꺼내 틀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봤으니,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셈이다. 고등학생 때는 영화를 다 이해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다시 보니 착각이었다. <스펙타큘라 나우>는 ‘관계’에 대한 영화였다. 관계 속에서 상처 주고 상처받으며 여전히 좌절하고 있는 지금에서야 나는 <스펙타큘라 나우>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생각보다 쓰라렸다. 마치, 상처 난 곳에 빨간약을 바르는 느낌처럼.      


 이번 리뷰는 내 빨간약이다. 아프고 부끄럽지만 <스펙타큘라 나우>의 주인공 셔터처럼 관계 속에서 내 실수와 잘못을 직시하고 인정해야 할 때다. 어쭙잖은 평론가 흉내를 내고 싶지는 않다. 진짜 내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  

   

겉으로 보여지는 게 전부일까. 우리는 누군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모든 문제는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할 때 발생한다. 자기 연민과 원망은 그 지점부터 시작된다. 졸업학년인 셔터는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애'다. 공부는 뒷전이고 매일이 파티의 연속이다. 오늘만 살지만 재미만 있으면 그만인 삶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게 셔터의 전부일까. 겉으로 괜찮아 보이면 그 사람은 괜찮은 걸까. 내게 세상은 항상 어려웠다. 유독 내게만 못살게 구는 것 같았다. 어렸을 적 겪었던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그랬고, 최근까지 겪고 있는 집안 문제 역시 그랬다. 억울하고, 화나고, 지치는 그런 일들의 반복.

 그럼에도 나는 항상 사람들에게 힘든 내색 없이 괜찮은 척했다. "나 힘들어요"라는 말이 쏟아져버릴 것 같아도 꾹꾹 눌러 담고 "괜찮아요"라는 말을 뱉어냈다. 내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 싫었고, 내 상처를 보여줬을 때 상대방이 위로라는 가면 아래 우월감 혹은 동정심을 감추고 있을까봐 겁이 나기도 했다. 진짜 나를 드러내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늘어날수록 관계를 가로막는 벽은 더 두터워져만 갔다. 그 두터워진 벽을 앞에 두고 나는 두려워서 도망갔고, 상대방은 지쳐서 떠나갔다. 괜찮아 보이는 나와 괜찮지 않은 나 사이의 괴리감은 항상 나를 괴롭혔다.

 

모든게 엉망인 삶.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셔터에게는 자신을 두고 떠난 아버지가 있다. 아버지가 떠났을 때부터 셔터에게는 아버지가 필요했다. 그때부터 셔터의 삶은 흔들렸다. 셔터에게는 모든 것이 간절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매사가 대충이었다. 하지만 그건 비겁한 거다. 내가 다 망칠 것 같다는, 나는 잘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을 쿨한 척하며 마음 한 구석에 방치하는 것이다. 그게 셔터에게 공부였든, 관계였든. 나에게는 관계가 그랬다. 고등학생 때, 마음 속 상처를 가리기 급급했던 나는 작정한 것처럼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어버렸다.

 그런데 한 번 관계라는 것을 놓치고 나니 그게 어떤 종류의 관계이든 간에 맺는 것이 어려워졌다. 대학생이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난 항상 모든 관계를 어색하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나 자신에게 실망을 했다. 실망이 잦아지자 그다음에는 체념이 되더라. 실망은 어찌 됐든 자신이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기준점이라도 존재한다는 건데 그게 반복되면 자신한테는 그런 기준점이란 게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념하게 된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그런 내가 한없이 부끄러워서 어디론가 도망가고만 싶다.


우리는 매일매일 누군가와 마주하고 관계 맺는다.


 셔터에게는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어머니, 누나, 사장님, 선생님 그리고 셔터를 한없이 사랑해주고 격려해주는 여자친구 에이미. 그들은 모두 셔터의 깊은 상처까지 끌어안아 줄 준비가 돼 있었지만 셔터는 그들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셔터는 그들 모두를 실망시켰고, 상처 줬다. 고등학생 때, 나를 아끼셨던 선생님은 가끔씩 나를 불러 "선생님은 네가 힘든 게 있다면 마음을 열고 말해줬으면 좋겠어. 말해주지 않으면 아무리 도와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거든"이라고 말하셨다. 그때의 나는 셔터처럼 선생님께 끝내 마음을 열지 않았다.

 영화의 후반부, 셔터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여자친구 에이미와 함께 아버지를 찾아간다. 하지만 아버지가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너무도 오래나 간직해온 셔터였다. 셔터는 모든 것에 실망한다. 자신에게도 세상에게도. 그 자격지심에 셔터는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에이미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매몰차게 떠나버렸다. 참 바보 같은 일이다. 정작 상대방은 신경도 쓰지 않는데 말이다. 어쩌면 그런 식으로 떠나버리는 건 그 순간 자신이 상대방을 충분히 믿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관계에서의 자격지심은 상대방과 자신 모두를 지치게 만든다.

 

 하지만 한 번 자격지심의 늪에 빠지고 나면 벗어나기가 어렵다. 나도 4년 전,   <스펙타큘라 나우>를 처음 봤을 때는 셔터의 바보짓을 한탄하기 여념이 없었다. 지금의 내가 그런 바보짓에 빠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한 채로. 난 정말 한없이 못난 사람인데 그 사람은 기꺼이 다가와서 친구가 돼줬다. 함께 있으면 좋았고 즐거웠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 관계가 언젠가는 터져버리고야 말 것 같은 풍선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못나고 서툰 사람이라 진짜 내 모습을 보면 나를 떠나가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견딜 수가 없었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내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했다. 뭐가 진짜 내 마음인지 그리고 어떻게 행동하는 게 맞는 건지 아무리 고민해봐도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사람한테서 도망갔다. 어쩌면 그 사람이 도망간 것일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내가 이 관계를 망쳤다는 거고, 관계에 있어 두 번째 기회 따위는 없다는 거다. 많이 고민해서 사과를 하려고 노력했는데 그마저도 이미 늦었던 모양이다. 참 바보 같았다. 이따금 생각이 나면 항상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돌이켜보면 그 사람과의 관계뿐만이 아니었다. 한때 항상 함께하며 나를 정말 좋아해준 친구들, 항상 나를 든든하게 지켜봐준 가족들, 내 좁은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 항상 노력했던 선생님들. 나는 모두를 실망시켰고 상처 줬다. 한없이 가까웠다가도 무슨 일이 생기고 나면 마음의 문을 닫고 도망치려 했다. 비겁했고 이기적이었다. 물론, 그들도 내게 상처를 줬다. 어떤 상처는 아직도 욱신거릴 정도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건 내가 나를 진심으로 아껴준 사람들을 그만큼 아끼지 않았다는 거다.  


때때로 우리는 관계 속에서 상대방이 받을 상처를 너무 가볍게 여긴다.


"살면서 두려움을 느낀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어떤 일을 실패한다는 것에 혹은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것에도 상처를 주거나 상처를 받는 것도요. 제 앞가림을 제대로 했더라면 주위 사람들을 먼저 생각했더라면 제가 줬던 상처가 이렇게 돌아오진 않았겠죠. 제가 망쳤어요. 망친 걸로도 모자라 사람들의 고통들을 모른척했죠. 전부 다요. 결국 전 혼자 남았죠"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영화 속의 셔터는 그들에게서 그리고 과거의 잘못으로부터 용서받을 수 있을까. 단지, 지금 이 순간 과오를 직시했고 쓰라린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제임스 폰 솔트 감독은 셔터에게 셔터가 자신의 잘못을 깨달을 수 있는 과정만 제공했을 뿐, 셔터가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용서받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는 답을 주지 않았다. 영화의 마지막, 자신을 찾기 위해 필라델피아에 온 셔터를 보는 에이미의 표정에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관계가 해피엔딩일 수는 없다.


 역시나 상처에 덧발라지는 빨간약은 아프기가 그지없다. 과거의 잘못들을 헤집어 하나하나 기억하고 또 반성하는 일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따가웠다. 그때의 내가 참 미워서, 그때의 사람들에게 참 미안해서. 이번 리뷰가 나뿐만 아니라 누군가에도 빨간약이 되길 바라며 이번 글을 마친다. The Spectacular Now. 언젠가는 소중한 사람들과 소중한 순간을 함께 할 수 있는 '화려한 지금'이 되기를.



 

 왕가위 감독 作 <아비정전>의 주인공 아비(장국영 扮)처럼 셔터 역시, 영화적 서사를 파악하기 위해 이해하려는 노력은 해봤지만 인성이 파탄 났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건 셔터가 어떤 역경을 겪었느냐 하는 것과는 별개로 취급돼야 하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에이미와 함께 있으면서 전 여자친구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찌질하게 행동한다거나, 자격지심이었든 상처를 주기 싫었든 간에 에이미에게 함부로 대하는 모습들은 이해의 측면과는 별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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