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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ie Street Feb 14. 2018

<컨택트> 너의 모든 순간

당신의 전 생애를 다 볼 수 있다면 삶을 바꾸겠어요?

제목: 컨택트(Arrival) 2016 作

감독: 드니 빌뇌브

출연: 에이미 아담스(루이스 役 ), 제레미 레너(이안 役)

#미국 #드라마 #SF #테드 창『Stories Of Your Life And Others』


"당신의 전 생애를 다 볼 수 있다면 삶을 바꾸겠어요?"


 인간의 의식체계는 철저하게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된다. 마치 우리가 개미를 머리, 가슴, 배로 나누는 것처럼. 시제의 구분 속에서 인간은 무력하다. 우리의 의식은 결코 시간보다 빨리 미래에 도달하지 못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런 구분이 무의미해진다면? 미래가 불확실한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지는 확실성 그 자체라고 한다면 당신은 그 미래를 바꿀 것인가? 당신은 더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 미래를 바꾸려고 할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너무 서둘러 답변을 내릴 필요는 없다. 당신의 답변은 이미 존재하고 있으니까. 



 

어느날 지구에 나타난 외계비행물체(셸). 그들의 목적을 알기 위해서는 그들과 소통해야만 한다.


 <컨택트>는 SF를 기반으로 한 배경 속에서 철학적인 완벽함을 갈구한다. '외계 생명체(이하 헵타포드)와의 소통'이라는 소재에서 출발해 '협력과 소통의 가치'를 잠시 거친 후, '순간의 소중함'에 마지막 발을 내딛는다. 이 모든 과정에는 인간과 헵타포드의 언어체계를 기반으로 한 언어학적 고찰이 수반된다. 인간의 언어체계는 통상적으로 과거, 현재, 미래 시제로 구성돼 있는 선형적 특성을 가진다. 그러나 헵타포드의 언어체계는 시제의 구분이 없는 비선형적 특성을 가진다. 

 이 상이한 언어체계 사이에 영화는 샌드위치처럼 '시피어-워프의 가설'을 끼워 넣는다. 이른바 '언어 결정론'이라고도 불리는 이들의 가설은 언어체계가 사람들의 경험과 사고방식을 규정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이를 영화에 적용시키면 인간은 시제로 작동하는 언어체계를 사용함으로써 사고체계 역시, 과거, 현재, 미래라는 구분에 갇혀있게 된다. 헵타포드는 시제의 구분에서 벗어나 모든 시간대를 동시에 인지한다. 의식이 결코 시간을 앞지를 수 없는 인간과 달리 헵타포드는 삶의 모든 순간을 겪지 않고도 이미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헵타포드가 사용하는 문자는 원형으로 이뤄져 있다. 그 안에는 시간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헵타포드는 오이디푸스처럼 삶에 저항하지 않는다. 선험적으로 주어진 삶의 궤적을 각본을 따르는 배우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수행한다. 헵타포드 '애벗'은 루이스에게 정보를 전달하면 자신이 죽게 될 것을 알면서도 주저하지 않는다. 이렇듯 헵타포드의 비선형적 언어체계는 목적론적 행동으로까지 이어진다. 목적론적 행동은 '페르마의 원리'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페르마의 원리에 따르면 빛은 전파될 때, 이미 최단 거리가 정해져 있고 이에 따라 움직인다. 

 즉, 빛의 전파 운동에 있어서 빛에게 선택권 따위는 존재하지 않고 필연적으로 최단거리를 내달려야만 하는  당위성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분명 <컨택트>는 헵타포드의 비선형적 언어체계를 근거로 목적론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페르마의 원리 속 빛처럼 수동성을 원리로 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루이스 역시, 시피어-워프의 가설에 따라 헵타포드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사고체계를 습득하게 된다. 시간이 갈수록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쏟아져 내리는 미래의 환영에 루이스는 당황한다. 


헵타포드의 언어를 배워갈수록 뚜렷해지는 미래의 환영. 루이스에게 그것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이 정해진 미래. 루이스는 남편인 이안과도 헤어지게 되고, 불치병에 걸린 딸이 죽는 것을 지켜봐야만 한다. 안타까운 이별이기에 사랑했던 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많이 아플 것이 분명하지만 루이스는 그 삶을 따르기로 결정한다. 그건 루이스가 결코, 나약하거나 수동적인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그건 루이스의 선택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이라는 비극적 결말을 알고 있지만 그 과정에 있어서의 모든 순간들이 소중함을 느끼기도 전에 이미 느껴버렸으니까.

    

모든 여정을 알면서, 그 끝을 알면서도 난 모든 걸 받아들여.
그 모든 순간을 기쁘게 맞이하지

자신에게 다가올 모든 순간을 선택하는 루이스. 


 사랑하는 사람들을 매 순간 여백 없이 가득 차도록 사랑하고, 그들과의 모든 시간을 소중하게 느끼는 것. 그것이 루이스의 선택이었다. 상이한 장르지만 나는 <컨택트>의 결말을 보면서 리처드 커티스 감독의 <어바웃 타임>의 결말을 떠올렸다. 팀(돔놀 글리슨 扮)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요행을 바라지 않는다. 하루를 다시 살아보며 미처 보지 못했던 삶의 모든 순간을 음미하는데 능력을 사용할 뿐이다. 결말에 도달하는 방식은 각자 달랐지만 <컨택트>와 <어바웃 타임>, 두 영화는 '순간의 소중함'이라는 바다에서 조우했다.

 우리는 모두 해피엔딩을 바라지만 모든 순간이 해피엔딩으로 매듭지어지지는 않는다. 순간의 끝이 슬프게 기억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때때로 그 슬픔을 끌어안는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당시의 기억들을 헤집어보고는 한다. 행복했으니까. 삶에서 과정과 결과, 시작과 끝은 항상 같은 곳으로 나아가지만은 않는다. 억울하지만 그건 우리의 능력 밖의 일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초능력은 결과와 상관없이 삶의 모든 순간을 최대한도로 사랑할 수 있는 의지밖에 없다. 


리처드 커티스 감독의 <어바웃 타임> 2013 作. <컨택트>와는 다른 화법으로 순간의 소중함을 말한다.


 결과가 좋지 못했지만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다. 아니, 우리 모두에게는 그런 순간이 있다. 불현듯 떠오르는 그 순간 앞에 '왜 그 순간을 더 소중하게 여기지 못했을까'하는 자책감에 나는 매일 무력해진다. '만약'이라는 공상은 항상 우리에게 유한성을 자각시키며 좌절감을 선사하지만 그럼에도 만약 헵타포드드와 같은 사고체계를 가질 수 있다면 나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 같다. 나에게 그 순간은 이미 소중한 것이 돼 버리고, 나는 모든 순간을 사랑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니까 헵타포드의 사고체계에 의하면 삶의 모든 순간은 <컨택트>의 원제처럼 ARRIVAL, 이미 지금 자신의 삶 앞에 도착 혹은 도달해 있다는 의미다. 통상적으로 인간의 삶은 방향성을 가진다. 즉, 시작이 있기에 끝이 존재하는 인과적 특성을 전제한다. 그러나 헵타포드에게는 그런 구분이 무의미하다. 미래가 이미 존재하기에 과거가 그에 따라 움직이는 것일 수도 있고, 과거가 이미 그런 식으로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미래가 그렇게 형성되는 것일 수도 있다. 

 헵타포드의 문자는 원으로 구성돼 있다. 이는 그 자체로 메타포다. 원에는 시작과 끝이 없다. 모든 순간이 시작일 수도 있고 끝일 수도 있다. 그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거다. 원 같은 순환적 사고체계에서는 과거와 미래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우리는 과거-현재-미래라는 시제를 대전제로 모든 가정을 해왔다. 그 대전제는 너무도 당연해서 대전체 자체를 의심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컨택트>는 그 대전제가 어쩌면 시간을 인식하는 유일한 전제가 아닐 수 있음을 말하고 있었다.

  무엇하나 버릴 게 없는 작품이다. 생각할 것도 많고, 돌아볼 것도 많다. 글을 쓰기 위해 <컨택트>를 두 번 봤는데 신기한 게 보통의 영화들은 다시 보면 이해하게 되는데 <컨택트>는 고민하게 되더라. 영화를 두 번째 볼 때, '어쩌면 루이스가 비극적인 미래를 알면서도 이를 선택하는 과정 역시 목적론적 삶에 의해 설계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건 도무지 내 의식의 영역에서는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였다. 그래서 이 고민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떠넘기려 한다.  




  

 당신의 전 생애를 다 볼 수 있다면 삶을 바꾸겠어요? 영화의 마지막, 루이스는 이안에게 묻는다. 이안은 답하지 않았지만 루이스는 자신의 선택으로 그 질문에 답을 했다. 이제는 당신이 답할 차례다. 당신이 어떤 답변을 내리던 당신이 당신의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길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당신의 전 생애를 다 볼 수 있다면 삶을 바꾸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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