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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ie Street Feb 21. 2018

이제는 당신의 숲을 가꿀 때

영화 <리틀 포레스트> 리뷰 

제목: 리틀 포레스트 2018 作

감독: 임순례

출연: 김태리(송혜원 役), 류준열(재하 役), 진기주(은숙 役), 문소리(혜원 어머니 役)

#이가사리 다이스케 <리틀 포레스트> 만화 원작 #침샘 주의 #1시간 43분


*해당 리뷰는 [브런치 무비 패스]의 지원으로 시사회에 참석하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리틀 포레스트>는 담백한 영화다. 자극적인 맛은 빼고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절밥 같은 느낌. 관객들을 진부한 로맨스나 신파로 몰아넣을 수 있는 구간들이 산재하지만 임순례 감독은 완곡하게 피해 간다. 영화 전개를 위한 최소한의 감정선만 남겨놓을 뿐, 더 이상 욕심내지 않는다. 한국 영화의 신파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은 이런 담백함만으로도 이미 <리틀 포레스트>를 봐야 할 이유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 또한, 영상미를 중점으로 두는 사람들에게도 <리틀 포레스트>는 매력적인 영화일 것이다.

 한국 시골을 배경으로 이렇게까지 영상을 예쁘게 잘 뽑아낸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사계절의 모든 정서가 영상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러나 가장 큰 관전 포인트는 바로, 음식에 있다. 꽃잎 파스타, 꽃전, 직접 빚은 막걸리. 주인공 혜원은 직접 재배한 농작물들을 사용해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음식들을 만든다. 요리 씬이 꽤나 많은데 그럴 때마다 객석에서는 탄성이 쏟아졌다. 자극적인 양념에 익숙해진 나에게 혜원이 만들어내는 요리는 어쩌면 판타지에 가까울 정도였다. 무엇보다 맛있어 보였다.


영화가 끝나면 파스타를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청각을 자극한다는 점 역시 꽤나 색다른 경험이었다. 혜원이 재료를 손질하는 소리, 재료가 보글보글 끓는 소리 등이 꽤나 생생하게 들린다. 배우들의 대화 소리, 배경음에 묻히지 않고 오히려 더 부각된다. 그 소리 하나하나들이 귀를 산뜻하게 자극한다. 그 자극이 싫지만은 않다. 이러한 방식으로 <리틀 포레스트>는 복잡하고 바쁜 일상 속에 무뎌진 우리의 오감을 하나하나 자연스럽게 일깨워준다. 그렇게 우리의 오감이 되살아 났을 때, 영화는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하루하루 치여사는 고달픈 우리 삶.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영화는 때로는 위로의 말을 건네고, 때로는 그리움의 말을 건네고, 때로는 희망의 말을 건넨다. 혜원을 통해서. 혜원은 바쁜 현대인들의 표상이다. 고군분투한 임용고시는 떨어졌고 아르바이트에 몸과 마음이 황폐해진다. 혜원은 지금의 당신일 수도 있고, 과거의 당신일 수도 있다. 그런 혜원이 고향으로 돌아간다. 적막함과 답답함이 싫어 그렇게도 떠나고 싶어 했던 고향을. 고향에서 혜원은 잊고 살아왔던 모든 것을 마주한다. 익숙한 텃밭, 연락이 끊겼던 친구. 그리고 자신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기억.

 <리틀 포레스트>에는 기승전결의 진폭이 그렇게 크지 않다. 거의 일직선에 가깝다. 혜원이 고향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요리하기, 농사짓기, 친구들 만나기가 전부다. 혜원은 그 시간들 속에서 기다림을 배우고, 평온함을 되찾는다. 한없이 바쁘기만 했던 도시에서의 시간들. 우리는 왜 그렇게 바빠야 했을까. 과연 누구를 위해서. 고향 친구 은숙이 돌아온 이유에 대해 묻자 혜원은 "배 고파서 왔어"라고 답한다. 혜원이 고향을 떠나기 전, 혜원에게 음식은 어머니의 사랑이었고 자연의 재료들이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를 버티게 하는 것은 한때나마 존재했던 행복한 순간들이 아닐까

 

 도시에서의 혜원은 매일 인스턴트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웠다. 어머니의 사랑도 없고, 자연과도 거리가 멀었다. 그렇기에 어쩌면 혜원에게 배 고프다는 의미는 잊고 지냈던 소중한 시간들에 대한 그리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말 그대로 혜원은 고향에서 잘 먹는다. 그것도 부러울 만큼 지나치게. 혜원의 회상 씬에서 어머니는 그녀에게 "집중해. 요리는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야"라고 말한다. 우리가 간단하게 지나칠 수도 있는 한 끼의 요리조차도 집중하고 공들이라는 말은 매 순간을 정성스레 여기라는 말이 아닐까.

 바쁜 도시에서 살다 보면 삶의 순간들을 소중히 여길 겨를이 없어진다. 지금 이 순간은 언젠가 다가올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버텨내야만 하는 과제가 돼버린다. 고등학생들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입시를 견뎌내고, 대학생들은 좋은 직장에 가기 위해 스펙 전쟁을 견뎌낸다. 그리고 입사하면 또다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 버텨내야 행복해질 수 있을까. 바쁘기만한 현대인의 삶에서 행복은 환상에 불과하다. 매 순간마다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지 않은데 견딘다고 행복해지기나 할까.


천천히 자신의 리듬대로 살아볼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살고 싶은가?

 

 혜원이 살아내는 고향에서의 삶은 다르다. 혜원은 굳이 강박증처럼 성과를 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먹고 살만큼의 농사만 지으면 되고, 수리가 필요한 곳을 그때그때 손질만 해주면 되는 것이다. 농사로 땀을 흠뻑 흘리고 난 후에 선풍기를 틀고 먹는 콩국수에 감사하게 되고, 공들여 빚은 막걸리 한 잔에 친구들과 근심 없이 마음을 나누기도 한다. 농촌에서의 삶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마음만큼은 여유롭다. 우리는 바쁨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바쁨을 강요받으며 살아온 것이다.

 바쁜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현대 사회에게 <리틀 포레스트>는 말한다. 게으르면, 좀 천천히 살면 뭐 어때? 그래서 영화도 서두르지 않는다. 느릿느릿 흘러간다. 변하는 것은 계절뿐이다. 영화는 겨울에서 시작해 봄으로 끝난다. 난 그 설정이 마음에 들었다. 항상 봄이 시작일 이유는 없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혜원처럼 추운 겨울이 새로운 삶의 도약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삶의 목표일 수도 있다. 우리가 어떤 순간에 있던 지금 이 순간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거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나에게는 느림의 미학, 정적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리틀 포레스트>가 맘에 들었지만 영화의 메시지가 꼭, 슬로우라이프를 동경하라는 의미에 국한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마지막, 혜원은 말한다.


도시로 떠나는 혜원. 그녀는 자신만의 답을 찾았을까


그동안 엄마에게는 자연과 요리 그리고 나에 대한 사랑이 그만의 작은 숲이었다.
 나도 나만의 작은 숲을 찾아야겠다.

 내가 생각하는 <리틀 포레스트>의 메시지는 삶은 결코 어느 방향으로 강요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방법이 꼭, 혜원처럼 자연이 있는 삶으로 돌아가라는 뜻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도시에서의 삶이 자신만의 작은 숲일 수도 있다. 핵심은 삶에서 어떤 선택을 내리고, 어떤 순간을 살아가던 그 방향이 지금 이 순간 자신을 위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다시 겨울. 혜원은 고향을 떠난다. 그리고 봄이 지나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도망치듯 온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스스로 선택했다. 온전히 자기 자신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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