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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혜 Nov 05. 2019

실패가 허용되지 않는 사람들

그 이름 프리랜서


격동의 2000년대 후반에 구직활동을 시작하면서 참 다양한 고용 형태를 겪었다. 임시직부터 계약직, 정규직까지. 정규직이 되면 무조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웬걸, 1년 만에 그만두고 프리랜서 방송작가로 전직해 5년을 살았다. 작가가 되어 섭외하고 원고를 구성하는 일이 즐거웠다. 좋아하는, 잘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런데 업무보다 더 큰 문제가 따로 있었다.



라디오 작가 고용형태요? 혹시 프리랜서라고 아시나요?


첫 방송사 면접을 보던 날이었다. 면접관이 나를 면밀하게 관찰하며 질문을 던졌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면접관의 질문이 끝나고 마지막 순서가 다가왔다.


“혹시 우리 프로그램이나 방송사에 궁금한 점이 있나요?”


“네. 라디오 작가 고용형태는 비정규직인가요? 정규직인가요?”


순간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면접관이 답했다.


“방송작가는 프리랜서랍니다.”


나는 그때까지 임시직부터 정규직까지 다양한 형태로 다양한 곳에서 일을 해봤지만 딱 한 가지, 프리랜서로 일 해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 프리랜서라는 네 글자가 방송작가 일을 하면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줄이야.


최저임금에 미달되는 급여를 받아도 문제제기를 할 수 없는 것도, 유급 휴가가 없는 것도, 사측이 계약서를 써주지 않는 것도 모두 저 네 글자, ‘프리랜서’라서였다. 그렇다고 정말로 ‘프리’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데일리 라디오 프로그램을 맡고 있으니 매일 출근해서 근무했다. 내 책상이 존재했다. 나는 그 자리에 칫솔과 치약, 컵과 각종 서류, 화장품을 두고 지냈다. 사람들은 날 찾을 때 편성국 끝에서 세 번째 책상에 오면 되었다. 하나도 자유롭지 않은데 프리랜서라고 불렸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실패할 자유가 없다는 데 있었다.



청취자 반응이 좋으면 세상이 보정 필터를 끼운 것처럼 아름다웠다


방송계만큼 업무 성과가 빠르게 공개되는 업계도 드물다. 시청률과 청취율에 의해 움직이는 세계이다 보니 소수점 아래 숫자가 한 단위만 떨어져도 좌불안석이다. 꼭 시청률이나 청취율이 아니더라도 라디오의 경우에는 피드백을 바로 받을 수 있다. 청취자들이 보내주는 문자나 카카오톡을 통해서다. 반응이 좋은 날에는 퇴근길에 세상이 보정 필터를 낀 것처럼 청량하게만 보인다. 반응이 영 좋지 않은 날에는 퇴근길에 세상이 화창한지 아닌지 잘 보이지도 않는다. 어떻게 다시 반응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골몰하면서 집에 간다.


비단 라디오 작가뿐만이 아니다. 진행자도, 피디도, 엔지니어도 비슷한 마음일 것이다. 한 프로그램 안에서 우리는 팀플레이어니까. 머리를 맞대 전술을 짜고, 온에어 버튼에 불이 들어오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니 어찌 팀플레이어가 아니겠는가.



매 해, 매 개편마다 정신없이 바뀌는 사람들


그런데 1년, 2년... 시간이 지나면서 한 가지 깨우친 것이 있다. 방송계처럼 사람이 쉽게 나고 드는 곳도 드물다는 사실이다. 개편 때가 되면 자꾸 사람이 없어지고 새로운 사람이 생겼다. 미처 얼굴과 이름을 다 외우기도 전에 바뀌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즈음 나는 ‘우리 팀이 정말 팀 맞을까?’하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2년 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작가와 기자로 구성된 A 프로그램이 부진을 겪었다. 갑작스럽게 작가들이 한 명씩 불려갔다. 그들에게 팀장이 한 말은 "계약이 끝났다"는 것이었다. 근무기간도 논의된 적 없고, 계약서도 쓴 적 없는 작가들로서는 황당한 일이었다. 그럼 우리 보고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 그 누구도 답을 주지 않았다. 작가들에게는 다음 달 며칠까지 일하라는 통보만 내려왔다. 당장 생업을 놓게 된 그 작가들을 구해준 것은 역시 프리랜서인 다른 프로그램 작가였다. A 프로그램은 그렇게 끝났다. 작가진은 공중분해되고 기자들은 남은 채로.


참 이상하다. 한 프로그램이 성공을 거두면 그 열매는 다 같이 나누곤 했는데, 프로그램이 성과를 내지 못하면 그 실패는 온전히 진행자나 작가의 몫으로 돌아갔다. 이들에게는 실패할 자유가 보장되지 않았다. 대부분 진행자가, 가끔은 작가가 프로그램 부진의 실패를 십자가처럼 혼자 등에 메고 잘렸다. 마이크 앞에 있거나 원고 앞에 있는 사람들. 말하고 쓰는 사람들. 이들의 업무적 공통점은 딱 하나다. 프리랜서라는 것. 계약서가 없거나, 계약서를 썼어도 ‘개편과 동시에 계약이 종료될 수 있다’는 이상한 문구가 들어간 계약서를 썼거나.



우리 한 팀인 줄 알았는데요


잘 되면 다 같이 기쁘고, 안 될 때는 다 같이 침통한 것이 팀이다. 한 사람이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기획하고, 진행까지 다 한다면 모를까 프로그램 안에서 각자의 역할이 있다면 공동의 실패는 공동의 책임이다. 그런데 이 당연한 상식이 매번 깨졌다. 나는 점점 “한 팀인데 이해 좀 해달라”거나 “가족 같은 우리 사이에 왜 그러느냐”는 말에 화창한 얼굴로 대꾸하는 일이 힘에 부쳤다. 햄버거 세트 사은품으로 받는 유리컵보다 더 깨지기 쉬운 것이 ‘우리 팀’이라는 사실을 매 년, 매 분기마다 느꼈기 때문에.


누구나 실패할 자유가 있어야 한다. 청년은 영업직을 해보고, 마케터를 해본 뒤 에디터를 하면서 진정한 적성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사랑을 하고 있는 이들도 실패할 자유가 필요하다. 내가 동거 제도를 적극 찬성하는 것도 이 맥락에서다. 동거를 해보면서 나와 반려자가 서로의 생활을 그럭저럭 맞춰나갈 수 있는지, 아니면 맹렬히 부딪히다가 장렬하게 실패할 것인지 파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더구나 방송이라면 실패해도 다시 기회가 와야 맞다.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는 곳이 방송계 아닌가. 온정을 다루는 곳에서 가장 비정한 일이 생기지는 말아야 한다. 성공의 과실도, 실패의 쓴맛도 다 같이 나눠야 한다. 적어도 어제까지는 한 팀이었다가, 오늘 면전에서 문을 꽝 닫는 일은 없어야 한다.


오래 묵혀두었던 이야기를 오늘에서야 꺼낸다. 고작 이만치 쓰는데도 몇 년어치의 용기가 필요했다. 나 역시 하루살이 방송 집필 프리랜서라서 그랬다. 이 글을 그동안 실패가 허용되지 않았던, 눈물을 삼키며 마이크와 펜을 내려놓아야 했던 모든 프리랜서들에게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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