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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롱 Jun 05. 2021

이제야 꺼내보는 그때의 이야기

난임 


그때는 모든 것이 다 잘될 줄 알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단란한 가족을 꾸려 행복하게 사는 것. 축복받으며 결혼을 했고 당연히 아기도 금방 생길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려워 보이지 않았던 다음 관문은 예상외의 복병이었다.
 
2년 만에 자연스레 찾아온 줄로 알았던 임신이 실패로 끝났다. 소파술(임신의 흔적을 지우는 수술)을 위해 수술대에 오르고 텅 비어있던 아기집은 내 살 조각이 찢기듯 그렇게 버려졌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수액을 맞으며 누워있던 병원 구석 침대 한 공간. 회복실인 줄 알았지만 출산 대기 장소이기도 했나 보다. 상실의 슬픔을 뼈저리게 느끼는 이에게 진통으로 새 생명을 맞이할 준비하는 사람들과 함께 공간을 나눠 쓴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각자의 아픔을 가지고 소리 지르며 보내는 이곳. 평생 느껴보지 못한 비참하다는 감정을 이곳에서 처음 느꼈나 보다. 배려 없음을 원망하고 서러움을 표현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아 그저 그렇게 펑펑 울었다.
 
그때부터 일까 임신 자체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매달 아기를 기다리며 성공과 실패라는 이름을 주었다. 하루하루 일희일비했다. 테스터기를 한 박스씩 잔뜩 사서 가장 임신 가능성이 높은 날짜를 찾아보고 혹시나 임신이 되지 않았을까 끝도 없이 기기를 낭비했다. 집 앞 산부인과에 방문해서 산전 검사를 받고 미리 맞아야 한다는 예방 주사도 꼬박꼬박 맞았다. 부부가 일을 쉬는 주말에는 새벽부터 일어나 용하다는 한의원에 줄을 서러 가기도 하고. 날짜를 받기도 했지만 기대하던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점점 예민해지던 때, 엄마는 조심스레 난임 병원에 가보라고 하셨다. 안타깝게도 따뜻한 조언으로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이미 잔뜩 삐뚤어진 마음 탓에 왜 그런 강요를 하냐며 기분 나빠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며 또 한 해가 지나갔다.
 
"내려놔야 생긴데."
주위의 말은 나의 화를 돋울 뿐이었다.
 
"소파술을 하고 나면 자궁이 깨끗해져서 임신이 잘 된데."
주변에서 들은 근거 없는 말을 위로처럼 전하는 이들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대리님, 애는 아직인가 봐요?”
키워주지도 않을 사람의 지나가는 인사는 가슴을 후벼 파기도 한다.
 
처음 글을 쓴 건 가장 친한 친구가 임신 소식을 알려준 바로 그날이었다. 각자 타지 생활로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한 카페에 앉아있었다. 우리가 그동안 나눴던 대화를 생각해 보면 얼마나 꺼내기 조심스러운 말이었을까. 그래도 베스트 프렌드라는 이름으로 가장 먼저 빅뉴스를 전달해준 것에 너무나 고마웠고, 기다렸던 소식에 나는 기뻐 마음껏 축하해주었다. 문제는 집으로 돌아온 직후였다. 곧바로 침대에 누워 울기 시작했다. 자책했다. 나는 뭐가 그리 문제일까 무엇을 그리 잘못했을까 나는 왜 안될까. 찰나의 축하 뒤에 이렇게 혼자 우는 못난 모습에 스스로 자괴감이 들었다.
 
난임 전문 병원도 다니게 되었다. 문제가 있으니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과배란, 인공수정, 시험관, 난자 동결, 냉동 난자, 자궁경 등등 새로운 단어를 배워갔다. 출근 전 일찍 일어나 병원에 다녀가는 것도 점차 익숙해졌다. 회사 화장실에서 몰래 자가 주사를 맞는 일, 배에 복수가 차 움직이기 힘들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다이어트를 핑계 삼아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러 가지 않는 일도 가끔 있었다. 부끄러움과 분노와 수치를 완전히 내려놓기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난임 기간이 길어질수록 커지는 걱정만큼 많은 글이 쌓였다. 어디 털어놓을 곳이 없어 혼자 글을 썼다. 늘 첫 문장은 '괜찮아'로 시작했다. 친구가 먼저여도 괜찮아. 남들보다 늦어도 괜찮아. 다른 선택을 해도 괜찮아. 기다리는 것도 괜찮아. 난임 치료를 받는 것 자체도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주위에 숨기려고 애쓰는 게 더 어려웠기에 숨어서 짧게 쓰던 그 글 한편 한편이 나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난임은 손가락질받아야 할 가십거리가 아니라 언제든지 어려움 없이 수면 위에서 말할 수 있어야 할 그런 주제 아닐까.
 
감사하게도 쌍둥이를 무사히 출산하며 난임 학교를 졸업했다. 이제는 사랑스러운 아이 둘의 엄마로 지낸다. 아주아주 사적인 일인 난임. 그때 그 시절의 글을 하나씩 공개하게 된 이유는 이런 어려움에도 해피 엔딩이 분명 존재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압박감과 절망, 흔하지 않은 일을 왜 하필 내가 겪는가 하는 원망은 그 시기에 너무도 자연스러운 감정이었다. 과정은 아팠지만 그 또한 행복하게 기억하기로 했다. 치료의 회차가 거듭될수록 작게나마 얻는 교훈이 있었고 무엇보다 그 모든 것은 엄마가 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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