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꼬르동 블루 제과 디플로마 과정을 마치고, 반 친구들은 각자 원하는 장소를 찾아 인턴쉽을 시작했다. 어떤 이는 호텔에서 또 어떤 친구는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혹은 유명 제과점에서 말이다. 물론 나 같은 이도 있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랄까. 그렇다고 오븐을 켜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주아주 맛있지만 공정이 복잡해서 레시피를 외우기도 힘든 케이크는 아니지만, 우리 집 아기들을 위한 원볼 레시피의 제과를 한다. 화낼 때는 불같은 엄마지만, 빵을 보면 다정한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으면 하는 마음. 홈 베이킹과 함께 아이들의 추억을 하나씩 더해주고 싶은 소망을 담아서 말이다. 늘 쉽게 구웠던 모카번이나 바나나 브레드도 굽고, 한국에서 유행한다는 소금 빵도 구워본다. 아직 만 3 세지만 르 꼬르동 블루 전 제품의 시식단으로 활동해온 아이들은 나름 바로 맛있다는 이야기를 안 해준다. 소금 빵이 딱 그랬다. 응? 바삭 아니 말랑말랑 하네? 하고 시큰둥하더니.... 계속 달라는 건 뭐니....? 쫍쪼롬한 그 킥에 은근 중독성이 있더라. 왜 사람들이 소금 빵 오픈런을 하는지 알겠더라는!
졸업 후의 헛헛한 마음을 집에서 종종 굽는 빵과 케이크로 달래고 있지만, 뭔가 동기 부여가 더 있었으면 하던 차에 좋은 기회가 생겼다. 마드리드에서 하루 스페인 사람들에게 한식 디저트를 소개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나 한과라니! 어려서부터 해외생활을 하며 명절마다 어머니 곁에서 함께한 내공은 있지만 걱정부터 앞선다. 그러니 레시피를 연구해야만 한다. 스페인의 재료로도 충분히 같은 텍스처와 맛이 나는지 확인해봐야 한다는 것. 소식을 듣자마자 유명하다는 책도 사보고 인터넷으로 조사도 해보고 꼭 필요할 것 같은 약과 틀도 지인 편으로 마드리드까지 공수받았다. 난 세상에 존재하는 달달함을 모두 사랑하는 것이 틀림없다. 왜 이렇게 재밌을까. 아직 뿐인데도 말이다. 집 나갔던 에너지가 돌아오고 있다.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무엇보다 전통적인 맛이면서 스페인 사람들도 좋아할 수 있는 게 관건! 계속해서 고민하는 중.
겨울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하지만 실험은 계속되어야 하기에 시작은 빠를수록 좋다. 첫 타자로 약과를 만들기 시작했다. 요즘 한창 유행인지 SNS에서 약과 사진도 많이 봤는데, 먹고 싶었다고 말은 안 하겠다. 당연히 시식은 해야겠지만! 참고하고 있는 '강정이 넘치는 집, 한식 디저트'라는 책에 따르면, 약과는 불교의 발달과 함께 중요한 제향 음식 중 하나였고, 왕실의 잔치는 물론 원나라에 가져가던 최상의 조공 불로 '고려병'이라는 이름으로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했단다. 주요 재료인 밀가루, 꿀, 참기름은 서민들이 접하기 힘든 아주 귀한 식재료였기에 고려 명종과 공민왕 때는 민생이 어려워진다고 하여 한과를 먹지 못하는 금지령이 있기도 했다니 신기하다!
약과 만들기는 즙청(시럽)과 반죽으로 이루어진다. 반죽을 만들어 튀기고 시럽에 담그는 속까지 촉촉하게 스며들도록 하는 과정을 거친다. 해외에서 한식 디저트를 소개한 사례들을 보며 반죽은 튀기기보다 굽기로 결정했고, 향이 강한 참기름의 사용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반죽을 너무 치대면 글루텐이 형성돼서 자칫 질긴 약과를 먹을 수도 있으므로 가볍게 뭉쳐지는 정도로만 반죽한다. 엇...? 이거 밀가루와 버터를 섞어 가루로 만드는 사 블라쥬 과정과도 파이지를 만들기 위해 가볍게 뭉치는 것도 비슷한 면이 있네? 의외의 발견이 신기하다. 그러면 대량 제조를 위해 손 보다 키친에이드 머신을 이용해 볼까? 아직도 연구 중. 한과 실험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프렌치 페이스트리 셰프도 좋지만 나의 조국 음식을 선보일 수 있다는 것 너무도 꿈같은 일! 마음 벅차오르는 일이다. 어느 나라 퀴진이든.... 맛있는 것은 사랑인데, 특히 한국 음식을 알릴 수 있는 기회라니 말이다! 다가오는 모든 기회를 감사하게 여기고 진지하게 임해볼 생각이다.
그나저나 살은 무진장 찔 것 같다. 약과 왜 이렇게 맛있나? 동네 사람들 나눠 주고 싶다. 나에게 맛있는 이 한과 부디 스페인 사람들에게도 맛도리로 다가갔으면 좋겠다. 시나몬, 생강, 꿀 모두 스페인에서 익숙하게 접하는 재료이고 이 향들이 폴폴 나는 또리하 라는 스페인식 디저트도 국민 디저트 이므로 식감은 정말 달라도 엇? 이거 뭔가 친근한데? 하는 반응이 나올 것 같다. 얼른 선보이고 싶은데! 아직도 연구해야 할 디저트가 많이 남아있다. 식감과 재료와 조리법이 다른 네 가지를 선보이고 싶다. 현재 연구 대상으로 찹쌀떡, 주악, 정과, 송편 등이 리스트에 올라 있다. 곶감말이도 할 예정! 뭔가 바삭한 것도 있으면 좋겠는데. 가장 적절한 것으로 추릴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