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 한식 디저트 행사를 앞두고 여전히 테스팅에 한창이다. 오늘은 다시 약과를 만들었다. 오븐에 구운 약과를 선보이기로 해두고 또 뭔가 아쉬워서 다시 튀겨보았다. 아 오늘은 다른 레시피를 사용해봤는데 아무래도 무리다. 적혀있는 레시피대로 따라 했는데, 수분양이 많았는지 반죽이 너무 물렀다. 이건 먹어볼 가치도 없다. 이미 물렁물렁 약과의 텍스처가 나오지 않는다. 흐믈흐믈 기름을 흠뻑 먹은 약과의 꼴이 내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능력보다 더 잘 보이려는 나의 욕심 때문이리라. 다시 마음을 먹는다. 스트레스에 녹아내리지 말고 정신 바짝 차리고 멋진 한식 디저트 50인분을 해내야 한다. 그걸 한다고 누가 크게 알아주는 것은 아니지만, 정갈한 한상을 멋지게 만들고 그날 만나는 스페인 사람들 몇 사람 만이라도 오! 이게 한국의 디저트라는 거구나! 상당히 멋진 맛이다. 이렇게 느꼈으면 좋겠는데. 그러니 내가 먹어도 맛있어야 한다. 남 부끄러운 디저트를 내놓을 수 없다. 그러니 나의 살길은 연습뿐. 그런데 글쓰기 없는 연습은 말짱 도루묵이다. 메모가 중요하다. 어떻게 했는지 어떤 이유로 어떻게 변경했는지 모든 메뉴와 실패를 기억하려면 말이다.
음식을 만드는 일이지만 멀리 있는 누군가에게 자문을 구하기 위해서 글을 써야 했다. 레시피를 잡는 건 스페인에 대해 더 잘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스페인 사람들은 어떤 맛을 좋아할까? 어떤 식감과 어떤 재료를 선호할지... 당일에 알면 안 된다. 미리미리 연구해보는 이 시간이 즐겁다. 파리에서 한식 디저트 행사를 이미 해보신 셰프님께 연락드렸다. 일면식도 없지만 음식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 만으로도 통했나. 정성스러운 답변에 마음 한편이 찡해졌다. 인절미 등의 찰떡류를 어려워한다고 하셨다. 스페인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신랑을 통해서도 들었던 이야기. 뭔가 퍼즐이 맞춰져 간다. 셰프님 말씀으로는 식감이 너무 쫀득해서 삼켜야 할 시기를 잘 몰라 당황했다고 한다. 강정류는 이곳의 그래놀라 바 같은 느낌이 있어 제외하려고 했더니 오히려 비슷하고 익숙해서 반가워하고 좋아하신단다. 아... 강정을 해야 하나. 고민이 깊어간다. 주고받는 메모에서 힘을 얻는다.
생각해보면 르 꼬르동 블루의 실기 시험 대비도 반은 부엌에서 부지런히 오븐을 켜고 맛있는 케이크를 만들었지만 반은 책상에 앉아 액셀을 써놓고 레시피와 공정을 쓰면서 익혔다. 물론 손맛이 좋으셔서 계량 없이도 척척 요리를 잘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적어도 제과를 하는 나에게 있어서 1g의 오차도 줄여야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오곤 하니까 말이다. 바르셀로나에서 한식 코스 요리 행사를 하셨던 셰프님도 나에게 팁을 전해주시길... 문서를 많이 작성하셨더라. 플레이팅과 아이디어, 테스트, 레시피 짜기, 원가 계산, 메뉴판과 메뉴 설명, 기물 리스트, 장 리스트, 타임 테이블과 체크리스트 등 말이다. 참 이상하게도 이메일로 문서 뭉치를 받는 순간 나에게 일종의 희열이 느껴졌다. 쓰는 걸 좋아하는 나. 과연 그게 뭐가 미식 업에 도움이 될까 싶었는데 정말 만들고 딱 먹는 순간 말고는 전부 뭘 적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러니 내 특기를 살리면 행사도 잘 마무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이 생겼다.
잘 적어보고 준비하려 한다. 더 맛있는 걸 만들어봐야지. 내일은 다 떨어진 물엿과 조청을 더 사 와서 약과 주악을 한번 더 해보고 셰프님이 추천해주신 강정도 시도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