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을 덜 소비하는 삶을 나부터 살아야겠다, 당장에 실천해야겠다.'라고 내가 결심하게 된 데 큰 영향을 미친 친구가 있다. 켈시(Kelsey)다.
켈시(Kelsey)는 태국에서 3년 살 때 만난 이웃이자 친구인데, 알래스카에서 온 켈시는 클라이밍과 다이빙을 즐기고, 여행을 하며 사진을 찍는다. 여행하며 찍은 사진이나 클라이밍에 관한 책을 직접 만들어 팔아 돈도 번다. 생계와 취미를 함께 하게 하는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에메랄드 빛 바다와 절경을 이루는 절벽이 아름다운 태국의 바다를 사랑한 켈시는 말했다.
"난 이 나라에 플라스틱 쓰레기를 더 보태지 않을 거야."라고
이 친구가 이런 멋진 말을 너무 당연한 듯 길가에서 그냥 뱉은 순간. 나는 솔직히 말해서 좀 반한 것 같다. 지금까지도 이 순간을 생각하거나 이 친구를 생각할 때마다 '나도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생각하게 된다. 사실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보다, '환경에 죄를 조금이라도 덜 짓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고 덜 뻔뻔해 보인다.
이방인으로서 몇 년간 살게 된 나라에서 이 나라가 주는 아름다운 자연을 누리는 것만도 감사한데, 이 나라가 이미 몸살 겪고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에 나도 가세하지 않겠다는 것. 그것을 공표하고 실천하는 켈시는 늘 백팩에 텀블러와 재사용 용기를 넣고 다녔다. 당장 장을 보러 갈 때만이 아니라 늘 그랬다.
우리는 계획에 없이 갑자기 목이 말라 물과 커피를 마시고 싶고, 그냥 오가다가 살 것들을 발견하고 즉흥적으로 사게 되니까. 그런 즉흥적인 순간에 당연하게 받아 들게 될 일회용품을 안 쓰기 위해 켈시는 그냥 빈 채로 들고 돌아올지라도 다양한 용기를 챙겨 다닌다. 나 좋자고 뭔가를 사 마시고 먹으면서 그 정도의 무게는 감당해 낼 수 있을 만큼 우리는 튼튼하기도 하다.
제주에 올 때 꼭 챙기세요
코로나로 해외를 못 가면서 제주도로 여행을 많이들 오고 있다. 제주 하면 에메랄드 바다, 파란 하늘에 어울리는 야자수, 귤 밭을 배경으로 하는 자연과 어우러진 카페를 떠올리고 언제든지 오고만 싶다. 하지만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와서 1일 3 커피 하는 동안 쓰고 버려지는 일회용 컵(=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해선 별 생각하기 힘들다. 하지만, 불편하지만, 제주는 쓰레기 몸살을 겪고 있다.
제주에 등록된 인구수에 비해 제주에는 카페가 엄청 많다. 이 많은 카페는 관광 오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쉬울 듯한데, 그 카페에서 일회용 컵 하나씩 쓴다면 1명의 여행자가 2박 3일간 쓰고 버리게 될 쓰레기는 몇 컵이나 될까. 예쁘고 가보고 싶은 카페가 많은 제주, 1일 1 커피에서 많게는 1일 3 커피도 한다고 할 때, 하루 1개에서 3개, 1인당 3일이면 3개~9개의 일회용 컵 쓰레기가 생긴다. 그리고 그 쓰레기를 여행자는 당연히 들고 가지 않고 버리고 간다. 고마운 제주가 알아서 재주껏 쓰레기를 감당해 줘야 한다. 그리고 또 다음에 놀러 오라고 두 팔 벌려 환영할 제주.
제주 올 때 이런 각오 하나 하면 어떨까.
"이 섬에 일회용 컵 쓰레기 하나 보태지 않겠다!"
없다면 제가 그런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내가 일회용 컵 앞에서 친구 켈시를 떠올리듯, 일회용 컵의 유혹 앞에서 내 친구는 나를 떠올렸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리고 그 마음은 일회용 컵을 안 쓰겠다는 각오가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나도 이 글을 쓴다.
일회용 컵을 쓰지 않겠다는 각오를 통해 해야 할 액션은 텀블러 챙겨 오기다. 각오 + 텀블러를 챙겨 오는 것이 가장 좋겠다. 하지만 가볍게 떠날 여행의 짐이 무거워지는 순간에 우리는 텀블러를 포기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각오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방법은 있다.
제주도에 도착해서 텀블러를 빌리고, 여행 동안 쓴 다음 떠날 때 반납할 수 있는 '제주푸른컵'이 있기 때문이다. 제주푸른컵은 사회적 기업명이자 빌려주는 텀블러의 이름이다. 현재 제주도 내 2천여 개의 카페와 제주엔젤렌트카와 제휴하고 있어서, 카페나 제주엔젤렌트카에서 텀블러 '푸른컵'을 대여 & 사용 & 반납할 수 있다.
텀블러 1개당 15,000원의 보증금을 내고 7일간 사용 가능하다. 좋은 건, 텀블러를 쓰고 나서 미처 내가 씻지 못했더라도 푸른컵 대여소로 역할을 하는 카페에서 주문을 하면서 씻어달라고 흔쾌히 요청할 수 있다. 제주 푸른컵 제휴 카페들은 제주를 아름답게 지키려는 주인장들이 운영하기 때문에 일회용품 쓰레기 만드는 대신 흔쾌히 씻어주실 것이다. 제주 여기저기에 약 2000명의 켈시가 있다!
나만의 텀블러가 아닌, 여러 여행자가 돌려 쓴 텀블러라고 생각하면 '깨끗하게 세척이 된 상태로 올까?' 하는 의문도 생긴다. 푸른컵의 안내 내용을 확인해보니 오히려 푸른컵이 내가 챙겨 다니는 내 개인 텀블러보다 더 위생적일 것 같다.
푸른컵에선 다회용 컵인 푸른컵을 다음과 같은 단계로 세척을 한다고 한다.
출처: 푸른컵 안내 책자
어제 이걸 보고 처음으로 내 텀블러의 뚜껑 실리콘 링을 분리해서 세척했다. 그래도 미세 플라스틱 마시는 것보다 실리콘 링에 낀 커피 때를 마시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중...
마음속에서 환호 치는 반가움, 제주의 켈시들을 만났을 때
우리는 카페에 머물면서 커피를 마실 때에 물어본다. "일회용 잔에 주시나요?"
그럼 카페에서 다시 물어본다. "마시고 가실 거예요, 테이크아웃하실 거예요?"
우리는 보통 "마시고 갈 거니 유리컵이나 머그잔에 주세요."라고 하는데 요즘 코로나로 각 매장마다 선호하는 방식이 다르기도 하고, 컵 상황이 다르기도 하고, 여러 번 대화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곳도 있다. 그래서 가장 간편한 것은 잔말 말고 '텀블러를 내미는' 방식이다. 서로 긴 대화와 확인이 필요 없고 일회용 잔을 쓸 위험을 가장 분명히 회피한다.
주말에 동네에서 차로 10분쯤 떠어진 카페에 갔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었고, 관광지와는 거리가 먼 동네여서 사람도 많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 그냥 랜덤으로 찍은 카페다. 이름은 '버터 행성-706'.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소재 카페 '버터 행성 706' (푸른컵 대여 가능)
남편이 내가 계산하는 동안 재빠르게 텀블러를 계산대에 올렸다. 나는 빠르게 주인장 뒤로 유리컵과 머그컵이 있는지 파악하려 했지만 남편이 너무 빨랐다. 그래서 주인에게 물어보았다. '일회용 잔에 주실 건가요? 아 그러니까, 유리잔이나 머그컵에 주시나요?'
주인이 물었다. "드시고 가시나요?"
나는 다시 말했다. 텀블러를 다시 주워 담으며... "네!"
주인이 다시 말했다. "텀블러 쓰시면 할인해 드리는데..."
나는 빠르게 답했다. 텀블러를 빠르게 다시 올려놓으며 "여기에 주세요!"
그렇게 몇 마디 서로 더듬더듬하며 오가는 사이 시선 처리를 어찌할지 몰라 돌리다가 바로 앞에 놓인 팸플릿에 가 닿았는데 그것은 바로 '푸른컵 안내 글'이었다. 그걸 본 주인이 커피를 내리며, "조금 있다 안내 책자 보여드릴게요~ 거기 큐알코드 해 보시면~~~~~"
갑자기 반가운 마음이 환호 쳤다. 내가 제주 서귀포 안덕면 서광동리의 '켈시'를 만났구나! 더 긴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에 드는 반가움이 마음속에서 격렬하게 일어났다. 이런 게 마음의 연대인가. 정말 더 긴 말이 필요 없이 퍼지는 그것을 경험한 것 같다.
커피와 쿠키뿐만 아니라 빈티지 옷과 잡화를 파는 버터행성 706에는 대형견 '밤이'도 있다. @버터행성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