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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ji Jan 07. 2024

처음 맞는 파리에서의 여름



아뜰리에에서 일을 시작하고 한 달쯤 지나니 초여름이 되었다. 해는 점점 더 일찍 떠서 늦게 졌고, 파리의 사람들은 더욱 멋스럽게 입고 밖에 앉아 와인을 마셨다. 파리는 겨울의 우중충한 날씨에서도 그 쓸쓸함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켰지만, 따사로운 햇빛에 반짝이는 센느강과 밝은 초록빛의 잔디, 한층 활기가 넘치는 거리의 파리를 만나는 일은 정말 황홀했다.


신기하게도 대학교 후배이면서 언제나 나와 함께 파리를 동경했던 수진이가 잠시 일을 하고 있었던 사무실이 내가 다니던 아뜰리에의 바로 건너편에 있어서 우리는 점심시간마다 보쥬광장(Place des vosges)에서 만나 잔디에 앉아 샌드위치나 도시락을 먹었다. 보쥬광장에는 주변 회사나 학교에서 점심을 먹으러 나온 사람들뿐만 아니라 산책하는 사람들과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빠르게 밥을 먹고 우리는 뒹굴렁거리며 책을 읽기도 하고 사람들 구경을 하며 수다를 떨기도 했다. 잠깐의 피크닉을 즐기고 나는 마레에 있는 어학원으로 가서 오후 내내 프랑스어 공부를 했다. 어학원만 다니는 반 친구들은 일을 하고 학원에 오는 나를 신기하게 보기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했다.


여름이 다가오자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저녁 시간에도 해가 쨍쨍하고 날씨가 좋아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를 걸어서 집으로 가기도 했다. 마레를 통과해서 시청을 지나 센느강변을 따라 걷다가 퐁네프를 건너서 오데옹을 거쳐 뤽상부르 정원을 통과하면 집으로 갈 수 있었다. 언제나 뤽상부르 정원은 그저 지나 만 갈 수가 없기에 벤치에 앉아 책을 읽거나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마트에 가서 장을 봐서 들어가곤 했다. 또 어떤 날은 샤뜰레(Châtelet) 쇼핑몰에 들어가 대형서점인 FNAC에서 책구경을 하거나 MK2에서 영화를 한 편 보고 집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힘이 좀 더 있는 날은 샤뜰레를 통과해 루브르나 Pont des arts까지 걸어가거나 한인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버스를 탔다. 한인마트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는 루브르 박물관의 피라미드 바로 앞에서 탈 수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며 그곳에 서있으면 파리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한 일처럼 느껴졌다.


저녁에는 주로 집에서 밥을 먹고 책을 보거나 컴퓨터에 저장해 놓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혼자 보냈던 날들이 많았는데, 수진이가 친구들과 놀러 나갈 때마다 나를 초대해 줘서 저녁 피크닉을 하거나 클럽이나 바에 가서 와인을 마시고 공연을 보기도 했다. 서로 바쁜 일상을 사는 유학생들이었던 결이, 상아와는 자주는 못 봤지만 이따금씩 서로의 집에서 돌아가며 요리를 해서 초대하고, 같이 책과 미술에 대해 이야기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뜰리에에서도 내가 할 일들이 조금 자리 잡기 시작했고, 직원들에게 설명을 듣지 않아도 뭘 해야 할지, 어떤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보스 가족과도 조금씩 친해져 종종 아뜰리에 건너편에 있는 보스의 집에서 점심을 같이 먹기도 했다.


아름다운 파리의 여름을 맞이하며, 내가 만들어낸 루틴으로 제법 안정된 일상을 살아가는 것 같아 뿌듯하고 행복했다.







파리지엔들의 점심시간







어학원에 가기 전 잠시 앉아서 책을 읽다 가던 작은 공원




주말에 공원에서 햇살 샤워하며 책 읽는 시간





파리에서 스물여섯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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