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뜰리에 구석에 앉아있는 조용한 한국 여자애
아뜰리에에는 아침 9시에 출근하여 12시까지 있었고 점심시간과 이동시간을 가지고 2시부터 6시까지는 어학원에 있었다(아마도. 몇 년 지났다고 정확한 시간은 기억이 안 난다). 정식 직원은 아니었기에 월급을 받지는 않았고 3시간 정도 일을 돕고 9유로짜리 식당 티켓을 받았다. Ticket restaurant(티켓 레스토랑)이라고 불리는 프랑스식 식권인데, 이걸 사용할 수 있는 식당들과 마트가 있었다. 아뜰리에는 바스티유-마레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식당도 많았고 나는 오후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점심을 먹어야 했기에 대부분 티켓 레스토를 내고 근처에서 밥을 먹었다. 어쩔 때는 점심에 쓰지 않고 저녁에 집 앞 까르푸에서 장을 보면서 사용하기도 했다. 큰돈은 아니지만 하루 한 끼 정도 해결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게 새삼 뿌듯했다.
아뜰리에에 출근을 시작할 때 나는 프랑스어가 많이 늘었다고 생각했지만 어학원 친구들 사이에서나 조금 잘하는 편이었지 일상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순간들에는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일을 하려면 전문 용어를 알아듣고 다른 직원들과 소통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에 보스는 나에게 프랑스어로 된 전공 서적과 패션용어사전을 주고 혼자 공부를 하고 있으라고 했다. 초반 한두 달 정도는 공부 반, 잡일 돕기 반을 한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간단하지만 시간이 걸리는 손바느질 작업이 대부분이었다. 며칠이 지나자 단추 달기와 단춧구멍 마무리, 밑단 손바느질은 내 차지가 되었다. 직원들이 내 한국어 이름을 발음하기 어려워하여 앞글자만 따 '마드모아젤 지(Ji)'라고 부르게 되었다. 샘플이 마무리될 즈음에 '마드모아젤 지!' 하는 소리가 들리면 뒤에 큰 테이블로 가서 설명을 듣고 홀로 앉아 손바느질 작업을 했다. 언젠가부터는 지퍼 길이 조절하는 것도 내가 하게 되었는데, 지퍼에 달린 금속 또는 플라스틱 이빨을 빼고 길이를 잘 맞춰서 마감 처리까지 정말 잘 해내게 되자 나는 아뜰리에의 지퍼 달인이 되었다. 몇 주가 지나자 책을 보고 앉아있는 시간은 사라졌고 오전 세 시간 동안 바쁘게 손을 움직여야 했다. 손은 바쁘지만 단순 작업이 대부분이었기에 머릿속으로는 온갖 생각을 다 했던 것 같다.
지금은 이렇게 아뜰리에의 맨 구석에 앉아 잡일을 하는, 직원도 아닌 그냥 이방인이지만 몇십 년 뒤에는 "내가 말이야, 프랑스 파리에서 단추 달고 실밥 뜯는 일부터 시작했어~"하며 추억을 회상하고 으스대겠지 상상하면서 즐거워했던, 쑥쓰러워 아뜰리에에선 대답도 잘 못하던 마드모아젤 지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