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배우고 싶다고 무작정 찾아간 아뜰리에에 출근 비슷한 걸 하게 되었다. 정식 직원은 아니고, 어학원 가기 전 오전 타임에만 나가서 소일거리를 도와드리게 되었다. 그래도 매일 오전 루틴이 추가되니 하루가 가득 차서 뭔가 생산적인 날들을 보낼 수 있을 거란 기대가 되었다.
내가 일했던 P 아뜰리에는 한국으로 치면 패턴/샘플실 같은 회사였다. 파리의 경우 대부분 럭셔리 하우스에서는 내부적으로 패턴과 샘플 하는 직원들이 있기 때문에 한국처럼 패턴, 샘플만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가 많지는 않았다. 패턴 실무를 하는 여자 보스 M은 당시 내 나이와 같았던 스물여섯 즈음 파리에 와서 에스모드를 졸업하고 20년 가까이 이 일을 하고 있었다. 여자 보스의 남편인 D는 아뜰리에의 전반적인 경영과 관리를 담당하고 있었다. 패턴 담당 직원들과 샘플 담당 직원들이 한 공간에 어우러져 일을 하고 있었는데 패턴은 주로 경력이 많은 독일인 모델리스트 H와 여자보스가 담당했고 그레이딩과 플레이싱을 하는 I가 있었다. 샘플은 중국인 부부 재봉사와 세르비아 출신의 할아버지 재봉사, 알제리 출신의 재단사 F를 중심으로 나머지 직원들은 계속 조금씩 바뀌었다.
나는 일개 수습생이었지만 보스들은 나에게 가장 입구 정 중앙의 큰 책상을 주었다. 출근 첫날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여자보스가 나에게 샘플 피팅을 부탁했는데, 새하얀 면 레이스 원피스를 입고 벗으면서 파운데이션을 묻히는 사고를 쳤다. 사회생활 초보에 프랑스어도 못하던 나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어쩔 줄 몰랐지만 보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중국인 재봉사 Z가 덤덤히 닦아냈다. 그러고 나서 그 원피스의 밑단을 새발 뜨기 해달라는 미션을 받았는데 정말 신경 써서 열심히 잘했다고 생각했지만 마네킹에 입혀보니 너무 타이트하게 되어서 다시 뜯고 새로 하기만 두 번을 했다. 졸업패션쇼 대상을 받고 자신만만했던 나에게 첫날부터 수치심이 몰려왔다.
그렇게 우당탕탕 나의 첫 프랑스 회사 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