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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ji Dec 27. 2023

무모한 도전의 연속




처음 파리로 떠날 때 나의 계획은 구체적이지 않았다. 일단 프랑스어를 배우다 보면 석사를 하고 싶은 학교를 찾게 될 거라 막연하게만 생각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 부분이 내가 가장 잘못한 점인 것 같다. 한편 이런 무모함이 없었다면 한 발을 내딛는 일조차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신기하게도 파리에 가기 직전에 한 줄기 희망이 찾아왔었다. 엄마 후배 분이 운영하시는 옷 가게에 우연히 들렀을 때, 후배 분의 지인이 파리에서 패션 아뜰리에를 운영하고 계시다며 연락처를 준 것이다. 대학을 갓 졸업한 나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상한 자신감에 차서 파리에 도착한 그다음 주쯤 포트폴리오와 이력서를 들고 그 아뜰리에로 찾아갔었다. 대학교 졸업 패션쇼에서 대상을 받은 나와 당연히 일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나는 세상물정을 모르는 애였다. 


며칠 동안 프랑스어로 번역까지 해가며 열심히 만든 포트폴리오와 이력서를 프린트 가게까지 찾아가서 2부 정도 인쇄를 하고, 아뜰리에에 찾아갔다. 생각보다 깔끔하고 획일적인 사무실 느낌의 아뜰리에였다. 이곳에 온다고 며칠 밤낮을 설치며 긴장한 나와는 다르게 이 약속조차 까마득히 잊은 듯한 엄마 지인의 지인인 여자 보스가 무뚝뚝하게 인사를 하셨다. 근무시간에 찾아와 방해만 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십여분 정도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고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는 정도의 말을 들었을 뿐 내 포트폴리오나 이력서는 가방에서 꺼내지도 못하고 허둥지둥 나왔다. 기대했던 하나의 희망이 사라지고 이제 파리에서 나는 뭘 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막막했던 기억이 난다.







가끔 그런 날들이 있다. 얼빠진 상태로 무모한 일을 저질러버리는 날들. 파리에 가서 4개월쯤 지났을 때, 어학원을 다니고, 친구들을 만나는 일 말고 조금 더 발전적인 일을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간단한 점심을 먹으며 일기를 쓰던 카페에서 갑자기 홀린 듯이 보스에게 문자를 보냈다. 일을 배우고 싶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하고 싶다고 했다.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연락을 기다렸다. 다음 주에 한번 나와보라는 답장이 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슨 배짱인가 싶을 만큼 이때는 하고 싶은 대로 거침없이 도전을 했던 것 같다. 프랑스어 공부를 시작한 지도 겨우 5~6개월 차여서 '어제 뭐 했니?'같은 질문 정도에 간단한 일상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는 수준밖에 되지 않았는데 일을 하고 싶다니. 막상 사무실로 나오라는 문자에 다시 가슴이 답답하고 어쩌자고 그런 일을 저질렀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사회생활도, 일도 한두 달의 짧은 인턴과 아르바이트 경험 밖에 없는데. 또다시 며칠 밤낮을 설쳤다. 


아무것도 모를 때가 용감하다고, 그렇게 파리로 훌쩍 떠난 것도, 일을 배우고 싶다고 갑작스럽게 연락을 한 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상상이 안될 정도로 스물여섯의 나는 정말 무모하고 용감했다. 


이렇게 저질러버린 일들로 프랑스에서 나의 시간들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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