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가장 좋은 장소가 나의 집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특히 프랑스식 창문이 정말 좋았다. 내가 살았던 집에는 창문이 총 3개가 있었는데 주먹보다 조금 작은 손잡이를 돌려서 여는 전통 프랑스 방식이었다. 세 개의 창문으로는 또 다른 세 개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화장실 창문에서 보는 풍경은 이웃들의 창문이었는데, 바로 앞집은 과일 창고로 쓰이고 있었고 그 윗집은 푸른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이렇게 매일 마주하는 풍경이 굉장히 일상적이면서도 이색적이게 느껴졌다.
나의 작은 부엌 한 켠. 오래된 건물이라 싱크대 아래 벽이 살짝 뚫려있어 설거지를 할 때면 발에 차가운 바람이 닿았다. 냉장고도 호텔에 가면 볼 수 있는 1m도 안 되는 작은 냉장고였지만 그럼에도 이 도시에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게 너무 행복했다.
같은 유학원을 통해 온 사람들 중 대부분이 집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우리들이 파리에 들어간 때가 1월이었기 때문에 집이 많이 빠지지 않을 때라 어렵기도 했고, 저렴한 월세에 깔끔한 아파트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신청을 하기도 했다. 나는 파리에 도착한 지 한 달 정도 만에 집을 구하고 입주까지 했으니 빠르게 정착한 편이었다. 그래서 처음 한 달은 유학원에서 만난 친구 중 집을 구하지 못한 친구가 함께 지내게 되었다. 친구는 매우 미안해했지만, 나는 오히려 그 덕분에 덜 외로워하며 파리에 적응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나는 사교적이고 활발한 편은 아니라 친구 관계가 좁고 깊은 스타일이었는데, 의외로 파리에서는 사람들과 마음이 잘 맞았다.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이게 된 건지, 내가 여유가 생긴 건지 모르겠지만 초반에는 거의 매주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파티를 열었다. 어학원에서 만난 세계 각국에서 온 친구들, 블로그를 통해 만난 한국 친구, 친구의 프랑스 친구들, 유학원에서 만난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우리 집에 왔다. 내가 요리를 하기도 하고, 친구들이 직접 요리를 해주기도 했다. 파티를 하면서 바게트와 초리조, 와인과 함께하는 일상이 익숙해졌다.
친구들을 초대하면서 별다른 인테리어가 없어 허전했던 벽에 종이 박스를 잘라 물고기를 그려 걸어두었는데, 놀러 오는 친구들이 자기도 물고기를 그리고 싶다고 해서 어느 순간 우리 집에 오면 물고기를 그리는 리추얼(?)이 생겼다.
그렇게 파리에서 나의 일상이, 지금은 추억이 된 시간들이 생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