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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ji Dec 17. 2023

파리에 갈 결심.

마음이 가는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대학교 막학기를 마치고 나는 유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파리에 가고 싶었지만 프랑스에는 패션디자인 전공으로 석박사를 할만한 학교가 없었다. 프랑스의 패션디자인 전공은 대부분 사립학교가 많고, 학위 제도 자체가 다르고 정보도 너무 부족했다. 패션스쿨 중에서는 런던이 제일 유명하기도 하고 석박사 제도가 잘 되어있는 편이라 주위 사람들이 많이 추천해 주었다.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해 런던의 가장 좋은 패션스쿨 출신의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학원에 한 달 정도를 다녔다. 학원비는 매우 비쌌고, 아티스트의 거품을 씌워주지만 사실은 입시 공장으로 전락한 곳 같은 느낌이었다. 그는 나에게 내 일러스트 스타일은 too fashionable 하고, 못생기게 그려진 저 일러스트가 훨씬 contemporary 하게 느껴져서 cool하다고 하며, 어떤 수준의 매거진 또는 디자이너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감각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나와 경쟁할 학생들은 모두 그의 방식을 따라갔다. 내가 원하는 것이 저런 모습인가? 저런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고 싶은가? 패션업계에 들어가려면 결국 저런 생각을 해야 하는 건가? 갑자기 숨이 막혔고 유학 준비를 그만뒀다.


장래에 대한 고민으로 끙끙 앓던 그맘때쯤 두 차례의 지진을 겪었다. 실제 진도 5.8의, 기상청 계기지진 관측 이래 역대 최대 규모의 지진이라고 했다. 경주, 대구가 가장 많이 흔들렸는데 나는 그때 대구 본가에 내려가 있었다. 처음 겪는 흔들거림에 엄청난 불안감을 느꼈다. 통신도 끊어지는 바람에 당시 초등학생이던 막냇동생과 통화가 되지 않아 우리 가족 모두가 불안에 떨었던 기억이 난다. 좀 극단적일 수도 있지만 그때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불안감을 경험하면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프랑스에 가서 사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 당시 파리는 테러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할 때였는데, 이때 세상 어디에도 안전하기만 한 곳은 없다는 것 또한 깨달은 것 같다. 


어느 밤에 엄마와 나란히 막냇동생 침대에 걸터앉아 아무래도 나는 프랑스에 가서 살아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언제나처럼 가족들은 나의 결정을 그저 묵묵히 바라봐주고 지지해 주었다. 친구들은 대부분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는 대단한 결심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모두들 나의 결정이 나답다고, 자연스럽다고 했다. 


한번 마음을 먹자 당장 떠나고 싶었다. 떠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마음이었다. 조금 그렇게 무모하게 파리에 갈 준비를 시작했다. 알파벳도 모르는 상태였고 가서 뭘 하고 어떻게 살지 현실적인 고민도 딱히 하지 않았다. 우선 유학원을 몇 군데 가서 상담을 받고 파리에서 일 년 동안 다닐 어학원을 등록했다. 돈을 조금이나마 모으기 위해 디자인실에서 풀타임 아르바이트를 했다. 퇴근을 하고 저녁에는 프랑스어 기초 수업을 들었다. 밤늦게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깜깜한 한강을 지날 때마다 알 수 없는 평정심을 느꼈다.


그렇게 프랑스에 가서 살기러 결심한 지 두 달 만에 출국을 하게 되었다. 내 손에 쥐어진 편도행 비행기 티켓이 낯설게 느껴졌다. 가족들과 인사를 하고 출국장을 통과하니 세상 앞에 혼자 남겨진 것만 같았다. 비장한 각오와 나약한 마음이 왔다 갔다 하며 나를 흔들었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끌어당기는 걸까. 불이 꺼진 고요한 비행기 안에서 눈물이 조금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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