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온 Aug 16. 2022

운동

운동에 대한 단상

출처:네이버


"탕!"

​우레와 같은 총소리에 출발했고 스타트가 아주 좋았다. 그래 봐야 나는 베테랑들에 비해 젊었고 젊다는 것은 최고의 무기 아닌가! 물속에서 한 마리의 고등어처럼 유영하는 내 모습이 너무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실상 그 대견함은 거기서 끝내야 했었다.

​20대까지 나는 운동을 하지 않아도 무척 마른 몸이었다. 물론 운동이 살을 빼기 위한 수단만은 아니겠지만 건강하기 위해 하는 운동보다 살을 빼야 하는 운동이라는 개념이 현재의 나에게는 더 뿌리 깊게 박혀 있다는 생각이다. 시골에서 자라 그런지 고기를 잘 먹어보지 못한 나는 본의 아니게 채식주의자였다. 고기의 그 비릿한 피 맛이 싫어 굽거나 쪄도 그 특이한 비린 맛이 느껴졌으며 먹는 것 자체가 곤욕이었다. 20대까지 채식만 유지했던 내가 단백질이 함량 미달이니 어떻게 영양 섭취가 골고루 될 수 있었을까! 당연히 여름 뙤약볕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 중 픽픽 쓰러지는 1인 중 한 명이었고 학교에서는 워낙 말라서 병약한 아이처럼 보이니 체육시간에도 나무 그늘을 지키는 쾌거(?)를 누릴 수 있었다.


사실 나는 달리기도 피구도 아니 어떤 종목의 운동도 영 잼뱅이다. 한창 성장기에 힘의 근원인 단백질 섭취를 전혀 하지 않으니 달릴 힘도, 근력을 써야 할 어떤 힘도 낼 수가 없었고 솔직히 별로 힘을 내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고등학교 진학할 즈음에는 학력고사와 체력장 시험이 별도로 있어 입시에 반영되었고 평균 이상이 되어야 진학이 가능하니 죽을힘을 다해 달리기를 하고 철봉 턱걸이를 했으며 윗몸일으키기를 했던 기억이다. 막상 닥치면 무엇이든 도태되지는 말아야 한다는 끈기와 신념은 그나마 나에게 있었나 보다.

막내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육동(*육아 동지) 친구들과 할 일 없이 오전 시간을 허비하느니 운동을 하자며 의기투합해 수영장 초급 주부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물이 겁나기도 했지만 물속에서는 내 몸이 어린 시절 달리기를 할 때처럼 잼뱅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니 임신을 해서 고기와 해산물을 먹기 시작했기 때문인 느낌이다. 내 한 몸이 아니었던지라 뱃속의 아이를 위해서 참고 억지로 먹었던 고기가 심봉사 눈 뜨듯 내 몸에 힘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초급 주부반에서 30대의 나는 등과 배에 살이 도톰한 싱싱한 한 마리의 힘이 넘치는 고등어와 같았다. 운동이 이렇게 재미있고 내 몸에 활력을 주는 것인지 수영을 하면서부터 실감하게 되었다. 자신의 몸에 맞는 운동이 있다는 것을 수영을 하면서 알게 되었고 물살을 가르며 날렵하게 헤엄치는 한 마리 고등어 같은 내 모습이 멋있어 보인다는 착각에 그만 빠지게 한 것이다.


발단은 주부 수영 대회이다. 주변 동기들의 "으쌰 으쌰"에 힘입어 과감하게 출사표를 척! 하고 던진 것이다. 오뉴월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10년 이상 수영을 해 온 호흡 왕 베테랑들과 내가 거기 레인의 출발선에 선 것이다. 나는 배영(*배가 천정을 향하게 두고 팔, 다리를 움직여 헤엄치는 것) 종목으로 출전하게 되었고 반환점을 돌아 총 1바퀴를 수영하는 종목에 출전했다.

​"탕!" 총소리와 함께 호기롭게 앞서 나갔고 반환점을 돌면서 급격히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두 팔과 다리는 나의 것이 아닌 양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어느 틈에 수영장 천정을 바라보던 내 몸은 뒤집혀 바닥을 바라보고 허우적대고 있었다. 호각 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어느새 나는 축 처진 한 마리의 노점에서 팔리기를 기다리는 고등어가 되어 누군가의 도움으로 물 밖으로 건져졌다. 부끄러움은 누구의 몫인 건가... 나는 수영 강습 시 항상 제일 선두를 달리다 그날 이후 조용히 선두를 따르는 진짜 소심한 회원이 되었고 그 사건은 아직도 나의 흑역사로 남아있다.

​실상 먹고살기 바쁜 직장 생활을 시작하며 현재의 운동은 숨쉬기 이외에 하기 힘든 일상이 되었다. 이전보다 지금의 나이에 운동이 더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고작해야 걷기 5~6 천보 정도가 내 하루 운동의 전부이고 몸이 찌뿌둥할 때는 유튜브를 틀어놓고 스트레칭을 하는 정도이다. 이러다가 좋은 세상 누리지도 못하고 골로 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나는 요즘 내 몸 상태가 걱정이다. 8시간의 직장 생활 과다한 업무와 컴퓨터 작업들이 허리와 골반을 틀어지게 만들고 시력을 빼앗아 가고 있다. 월급에 내 건강을 파는 느낌인데 건강을 팔아 번 돈으로 다시 건강해지기 위해 각종 영양제를 사 먹고 있는 현실이 아이러니하다.


다시 수영을 제대로 해볼까 생각 중이다. 새벽이나 퇴근 후를 이용해 예전의 고등어로 돌아가 보는 것이다. 내가 유일하게 자신 있어하며 좋아했던 운동, 이제는 호기도 사라져 혹여 수영 대회가 있더라도 나갈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것이며 예전의 재바른 고등어보다 아래 위로 더 두툼하고 커진 고등어가 되어 물 위를 유유히 유영하는 나 자신에게 스스로 더 만족할지 누가 알겠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