볶음밥으로 대동 단결하는 아시아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내가 생애 처음으로 만든 볶음밥은 당연하게도 김치볶음밥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던가, 라면과 달걀프라이에 성공을 한 이후로 나는 요리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나 있었다. 하지만 라면을 끓이고 달걀 프라이를 만드는 것에서 김치볶음밥을 요리하는 것 사이에는 상당한 격차가 있으니, 이 한 단계를 뛰어넘기 위해 몇 달 간의 실패와 수련의 과정이 필요했다. 냄비 하나, 프라이팬 하나로 뚝딱인 달걀 프라이나 라면과는 달리 김치볶음밥을 만들려면 김치를 자르기 위한 칼과 도마가 필요했고 서툴지만 기본적인 칼질을 익혀야 했다. 재료가 사뭇 다양해진 것도 요리의 난이도를 높였다. 김치를 참기름에 먼저 볶고 밥을 잘 섞은 후 달걀을 나중에 넣는 일련의 순서는 재료의 성질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었다. 시행착오를 통해 이러한 과정을 이해하기까지, 부엌에 홀로 들어서는 내 마음속에는 대단한 실험을 앞둔 과학자와 같이 설레는 마음이 일었다.
어떤 장소든 약간의 '금기'가 덧씌워지면 그 매력은 배가되는 법이다. 엄마가 외출하신 틈을 타 부엌에 들어설 때마다 나는 금지된 마법을 연구하는 마법사가 된 듯한 쾌감을 느꼈다. 첫 아이를 어느 정도 키워낸 어머니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그맘때 어머니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퇴근 후 취미활동을 즐기고 돌아오셨다. 그런 날마다 "밥은 밥솥에 있고 반찬은 냉장고에 있으니 알아서 잘 꺼내먹으라"라고 당부하셨으나 이를 고분고분 따를 리가 없었다. 결국 그 당부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기어이 김치볶음밥을 만들어서 잔소리를 들기 일쑤였다. 곱게 차려둔 것만 먹을 것이지 괜히 주방을 더럽힌다는 죄명이었다.
나중에는 요리를 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뒷정리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나이만큼이나 주부생활의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온 베테랑의 시선은 피해갈 수 없었다. 엄마는 마치 범죄소설의 탐정처럼 부엌에 발을 들이는 순간 유죄의 증거들을 한눈에 눈치챘던 것이다. 주로 가스밸브를 도로 잠가놓지 않았다거나, 가스레인지에 김칫국물이 튀었다거나, 만들어둔 반찬이 줄지 않았다거나 하는 실수들이었다. 벼락같은 추궁이 바로 이어졌다.
핍박과 핀잔에도 불구하고 나의 도전은 꾸준히 이어졌다. 도전의 대상은 여전히 볶음밥이었다. 냉장실의 비엔나소시지 봉투를 몰래 뜯어 김치볶음밥에 넣기도 하고, 엄마가 반찬으로 만들어놓은 오뎅볶음을 팬에 던져 넣어 함께 볶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몇 번에 걸친 도전으로도 넘지 못한 해결과제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달걀이었다. 달걀을 넣고나면 항상 포슬포슬하고 깔끔한 볶음밥 대신 달걀의 수분으로 인해 축축하고 끈적끈적하게 변해버린 떡밥만 남았던 것이다. 내가 원한 것은 중국집의 볶음밥과 같이 밥알이 고슬고슬하게 살아있고 그 사이에 노란 달걀이 쏙쏙 고르게 박힌 포슬포슬하고 예쁜 볶음밥이었다. 반면 그즈음 나는 시뻘건 김칫국물로 간을 해서 질척해진 김치볶음밥에 날달걀을 깨뜨려 넣고서 이것을 밥과 함께 처덕처덕 섞는 방법을 쓰고 있었으니 그런 예쁜 볶음밥을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었다.
TV 채널을 돌리다 용케도 스쳐 지나가지 않고 집중해서 본 요리 프로그램에서 달걀을 다루는 비법을 배우고 나서야 나는 내 김치볶음밥에 만족을 할 수 있었다. 비법은 달걀과 볶음밥을 분리해서 익히는 데 있었다. 방법은 이랬다. 먼저, 다 볶은 밥은 프라이팬의 가장자리로 몰아내고 가운데에 둥그렇게 빈 공간을 만든다. 그다음 프라이팬 가운데에 달걀을 깨뜨린다. 깨뜨린 달걀을 밥과 섞이지 않게 가볍게 섞어가며 스크램블드 에그를 만든다. 달걀이 제 모양을 갖추기 시작하면 그제야 달걀을 밥과 살살 섞는다.
어린 시절에 내가 겪었던 볶음밥 속의 달걀에 대한 고민을, 오래전 중국인들도 공유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바로 양저우 볶음밥(扬州炒饭, Yangzhou fried rice; Yangzhou chaofan)에 관한 이야기이다. 양저우 볶음밥은 달걀과 완두콩, 고기(챠슈나 중국 햄, 닭고기 등이 쓰인다), 새우살을 넣어 볶아낸 볶음밥으로 그 요리과정과 재료가 단순 명쾌하여 세계 어디의 중국음식점을 가도 쉽게 볼 수 있는 세계적인 요리가 되었다.
이 양저우 볶음밥을 요리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선택의 과정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달걀을 어떻게 요리할지에 관한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은으로 싼 금(silver-covered gold)"의 방법이다. 상당히 시적인 표현인데, 은(silver)이 쌀알을, 금(gold)이 달걀을 비유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이해하기 쉽다. 이 "은으로 싼 금" 볶음밥을 만들 때는 기름을 두른 웍(wok)에 달걀을 미리 따로 익히고 난 후에(스크램블드 에그 상태로 만든 후에) 이를 밥과 섞는 방법을 쓴다. 이리하여 노란 달걀 조각이 밥알 사이에 콕콕 박힌 볶음밥이 완성되면 그 볶음밥은 "은으로 싼 금" 볶음밥이다. 한국에서 맛볼 수 있는 볶음밥 또한 주로 이 종류이며, 어린 시절 볶음밥 속의 달걀 문제로 고심하던 내가 TV에서 발견한 요리법도 이 방법에 가깝다. 아래의 양저우 볶음밥 레시피 동영상이 좋은 예시가 될 수 있다. 달걀을 먼저 스크램블드 에그로 익히고 나서 밥을 섞기 때문에 달걀의 형태가 유지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레시피 동영상: "은으로 싼 금" 양저우 볶음밥]
How to make Yang Chow fried rice 杨洲炒饭 (pro.)
https://www.youtube.com/watch?v=IZEyKAl9v78
두 번째 방법으로 만든 볶음밥은 "금으로 싼 은(gold-covered silver) 볶음밥" 또는 황금볶음밥(黄金炒饭, golden fried rice)으로 불린다. 달걀을 따로 먼저 익히는 첫 번째 방식과는 다르게 "금으로 싼 은" 볶음밥을 만들 때에는 기름을 두른 웍(wok)에 밥을 넣으면서 거의 동시에 달걀물(선명한 노란색을 위해 노른자만 쓰는 경우가 많다. 밥과의 비율은 5:1 정도로 잡는다)을 밥 위에 붓는다. 밥알 하나하나를 달걀물로 노랗게 코팅하는 것이 목적이므로 달걀물이 밥에 닿자마자 팬과 주걱을 부산히 움직여서 밥과 달걀물이 고르게 잘 섞이도록 해야 한다. 소박한 재료로 만드는 요리이지만, 잘 만들면 마치 샤프론으로 염색한 것 마냥 고르게 노란빛이 나서 꽤 그럴듯해 보인다. "은으로 싼 금" 볶음밥보다 손기술과 스피드가 요구되는 요리이기도 하다. 뜨겁게 달군 웍에 밥을 넣고 그 위에 풀어둔 달걀물을 두른 후에 손목 스냅을 사용하여 두 가지를 섞을 때, 휘젓는 요령이 부족하면 황금빛이 고르지 않은 얼룩덜룩한 볶음밥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재료와 완성도의 차이는 있으나 달걀물을 밥에 직접 접촉시킨다는 점에서 내가 어린 시절 만들었던 떡밥 같은 볶음밥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 볶음밥이다. 물론 나의 경우는 물 조절과 불 조절에 실패하여 불에 데운 진밥 수준에 그쳤지만 말이다.
황금볶음밥(금으로 싼 은 볶음밥)을 만드는데 참고할만한 동영상은 중국에서 열린 마스터셰프 경연대회에 나온 황금볶음밥 영상이다. 노련한 손놀림 속에 금빛으로 고루 빛나는 볶음밥이 완성되었다. 고급 요리에 속하는 요리가 아님에도 현란한 손기술에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경탄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레시피 동영상: 정통 황금 양저우 볶음밥]
劉一帆-黃金蛋炒飯
https://www.youtube.com/watch?v=sDs8f4MuQ3Q
하지만 황금볶음밥을 전문적인 손기술 없이 가정에서 쉽게 만드는 방법도 있다. 팬에 올리기 전, 달걀물을 미리 찬밥에 풀어서 잘 섞은 후에(손으로 조물조물 만지면 고루 잘 섞인다) 달걀물로 코팅이 다 된 밥을 팬에 올려 볶는 방법이다. TV쇼 '집밥 백선생'에서도 이 방법이 소개된 바가 있다고 한다.
[레시피 동영상: 손쉬운 황금 양저우 볶음밥]
田园时光美食---黄金蛋炒饭Golden Fried Rice
https://www.youtube.com/watch?v=gNE2PMdr7hg
이러한 '달걀 먼저 밥 먼저'의 선택의 요소가 있기도 하거니와 그 재료와 조리법마저 단순 명쾌하여 양저우 볶음밥은 전 세계 어느 도시를 가도 맛볼 수 있는 세계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모든 볶음밥이 으레 그러하듯이 남은 밥을 처리하는 용도로도 안성맞춤이니, 가정에서건 식당에서건 활용도 또한 뛰어나다. 중국 하면 볶음요리이고 중국인의 주식은 뭐니 뭐니 해도 쌀이니, 이 볶음밥도 틀림없이 오랜 세월 중국인의 사랑을 받아왔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현재의 인지도와 활용도가 무색하게도 양저우 볶음밥의 역사는 그리 긴 편은 아니다. 기록에 따르면, 양저우 볶음밥은 청나라 시기 이빙 쇼우(Yi Bingshou, 1754-1815)가 양주지사로 있을 무렵에 그의 요리사가 특별히 이빙쇼우의 입맛에 맞추어 개발한 요리였다고 한다. 건륭제가 양주를 방문하였을 때에 이 볶음밥이 연회상에 올랐으며, 황제 또한 그 맛에 반하여 이빙쇼우의 요리사를 친히 북경의 주방으로 초청하여 양저우 볶음밥을 만들게 했다고 전해진다. 양저우 볶음밥이 세계로 퍼진 것도 황실 정찬의 일부로 소개되기 시작한 이후의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볶음밥의 대중화 과정을 되돌아보면 양저우 볶음밥이 18세기 말에 개발된 것이 그리 늦은 일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지금에 와서는 '중국요리'와 '볶음 요리'가 동의어로 인식될 정도로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으나, 중국요리에서 '볶음(stiry frying)' 기술이 대중화하기 시작한 것은 명 말기(16세기 말~1644)와 청대(1644–1912)의 일이기 때문이다. 볶음 요리가 널리 퍼지기에 앞서 볶음 요리에 필수적인 요리용 기름과 화덕(wok range)이 대중화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 그 원인이다.
기록에 따르면, 오랜 세월 동안 중국요리의 주된 요리법은 '볶기'가 아닌 '삶기'와 '찌기'였다. 송대(960~1279)에 와서야 동물성 지방 대신 식물성 기름이 요리에 사용되기 시작했으나 이마저도 비싼 재료였으며 대중화되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볶음 요리가 대중화가 되기 시작한 직접적인 계기는 명대에 가속화한 도시화 현상이었다. 도시의 면적이 확장됨에 따라 도심에서 구할 수 있는 나무와 숯의 가격이 급등했던 것이다. 도심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자연스레 긴 요리 시간이 필요한 삶거나 찌는 방식 대신 재료를 빨리 익혀 연료를 아낄 수 있는 볶음 요리를 선호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중국 전역에 널리 퍼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와 더불어 중국 4대 기서로 유명한 소설 "금병매(金甁梅)"는 1596년에 첫 필사본이 나온 이후로 17세기로 넘어가서야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는데, 이 책에 언급된 100개가 넘는 요리 중 볶음 요리는 대여섯 개에 불과하다고 한다. 한편, 바로 이 시점 이후 200년 정도가 흘러 청나라 말기에 와서는 거의 모든 가정에 현대의 웍(wok)과 동일한 조리기구 및 이를 위한 화덕이 구비될 정도로 볶음요리의 위세가 대단해졌다. 따라서 중국요리의 역사는 이 시기에 새로이 쓰인 것이라 보아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한편, 중국인의 부엌에서 볶음요리가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 사건은 중국뿐 아니라 주변국의 요리문화에도 심오한 영향을 미쳤다. 웍(wok)이 아시아의 주방에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각종 볶음요리와 커리로 유명한 태국요리를 논할 때 웍을 빼놓을 수가 없는데, 이 또한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중국계 이민자가 많은 인도네시아에서도 이들의 영향으로 웍과 볶음요리 기술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볶음 기술과 더불어 볶음밥 또한 아시아 전역으로 전파되었다. 쌀을 주식으로 삼는 사람 중 그 어느 누구도 이 신통방통한 레시피를 거부할 수 없었을 터, 특히 사시사철 날씨가 무더운 나라에서 볶음밥은 더 유별난 사랑을 받았다. 익힌 밥을 다시 한번 볶아주는 것으로 밥의 보존성이 눈에 띄게 늘어났던 덕이다. 아시아 곳곳에 정착하여 상업에 종사하던 중국계 이주민들이 볶음 기술의 전령사 역할을 했다. 바야흐로 일본, 필리핀,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각지에서 볶음밥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중국식의 볶음밥 요리를 넘어서서, 각 지역 고유의 식생과 식성이 자연스레 결합하여 탄생한 새로운 볶음밥들이 세계 각지에서 속속들이 나타났다.
- 일본의 차항(チャーハン) (좌)
일본의 차항은 그 이름에서 중국의 볶음밥(차오판)의 영향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1860년 고베에 정착한 화교 집단이 처음으로 중국집 볶음밥을 '차항'이라는 이름으로 선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요리와 결합하면서 가쓰오부시와 김 등의 재료가 더해지게 되었다.
- 한국의 볶음밥 (우)
오랜 기간 쌀을 주식으로 삼아온 한국이지만 한국 볶음밥의 역사는 주변국에 비해 짧은 편에 속한다. 조상들이 먹고 남은 밥을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먹은 요리는 대부분 '볶음밥'이 아닌 '비빔밥'의 형태였을 것으로 전해진다. 요리용 기름이 귀했을 뿐 아니라 찰기가 많은 밥을 짓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볶음밥 문화가 자리를 잡기 어려웠으리라는 추측이 있다.
이토록 볶음밥에 대한 역사적인 서술이 드물기 때문에 볶음밥의 도입 시기를 일제강점기로 보는 견해가 많다. 1939년에 발행된 동아일보에 “된 밥을 해 먹는 집에서 남은 찬밥을 모았다가 참으로 맛있는 밥을 중국식으로 해 먹을 수 있다”는 볶음밥에 대한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먹다 남은 찬밥으로 볶음밥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개념이 '중국식'으로, 즉 외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자취생과 식도락가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볶음밥은 언제부터 한국 요리계의 슈퍼스타가 되었을까? 여기에 대한 다양한 추측이 존재하지만, 중국집 외식의 유행과 프라이팬의 상용화로 인해 볶음밥이 가정요리로 널리 퍼졌다는 견해가 신빙성이 높아 보인다.
-베트남의 껌찌엔(Cơm chiên) (좌)
중국의 차오판과 유사한 모습이다. 달걀과 다진 소시지, 간장 등을 넣어서 만든다.
-태국의 카오팟(ข้าวผัด, khao phat) (우)
중국요리의 영향을 받아 탄생하였으나 중국의 볶음밥과 달리 길쭉한 자스민쌀로 만들어서 식감이 사뭇 다르다. 프릭 남 플라 소스(타이 칠리와 피시소스, 다진 마늘로 만든 소스)와 오이를 곁들여 낸다. 새우를 넣으면 '카오팟 꿍', 돼지고기를 넣으면 '카오팟 무', 닭고기를 넣으면 '카오팟 카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싱가포르)의 나시고렝(Nasi goreng)
다른 지역의 볶음밥보다 밥의 색이 더 짙은 것이 특징이다.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소스인 케찹 마니스(팜슈가를 넣고 졸인 간장)와 삼발소스(고추, 새우 페이스트, 샬럿 등을 섞어 만든 소스)를 넣어 만들기 때문에 그 색이 짙다. 케찹 마니스의 짠맛과 단맛, 삼발소스의 매운맛이 더해져 입에 쩍쩍 붙는 중독성 있는 맛을 겸비하게 되었다. 2011년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뽑는 BBC 설문조사에서 1위인 렌당(Rendang)에 이어 2위를 차지한 적이 있어 유명세가 더욱 높아졌다. 슬라이스 한 오이와 새우칩, 달걀 반숙 프라이를 곁들여 낸 이미지로 잘 알려져 있다. 같은 소스에 밥 대신 국수를 넣어 볶으면 미고렝(Mi goreng)을 만들 수 있다.
볶음밥을 찾는 머나먼 여정을 거쳐, 오늘 소개할 요리가 바로 이 나시고렝이다. 인도네시아 요리를 즐기기 위해 필요한 재료를 간단히 소개한 이후에 나시고렝의 레시피를 소개하고자 한다.
*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요리 사이에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무궁무진하게 존재한다. 편의상 '나시고렝'과 같은 요리를 '인도네시아 요리'로 뭉뚱그려 소개하고나 있으나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도 동일한 이름의 유사한 요리가 존재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를 일일이 비교할 수 없는 내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인도네시아의 요리를 위주로 기초적인 정보를 차곡차곡 쌓아보려 한다.
인도네시아는 수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국가이다. 역사적으로 교역의 요지였던 사실과 더불어 네덜란드의 식민지배를 거친 국가이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의 요리는 인도, 아랍, 중국, 네덜란드의 요리와 교류하며 더욱 다채로워졌다. 이 다양성으로 인해 인도네시아의 요리를 한 문장으로 정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 요리를 포괄하는 키워드를 몇 가지 생각해보자면 자연스레 인도네시아의 기후를 언급하게 된다. 인도네시아의 무더운 열대 기후 속에서 소중한 음식이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인도네시아인들은 고추와 갈랑갈, 레몬그래스 등의 향신채와 각종 향신료를 요리에 듬뿍 담아냈던 것이다. 향신료뿐 아니라 기름에 볶는 것이나 설탕을 넣어 달달하게 만드는 것 또한 음식의 보존에 크게 기여하는데, 그래서 인도네시아에는 기름에 볶은 매콤 달달한 요리가 많다. 나시고렝(Nasi goreng) 또한 밥의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찐쌀을 향신료 양념에 볶아둔 것에서 기원한 요리이다.
<향신채(허브류)>
- 고추, 샬럿, 마늘, 갈랑갈(생강으로 대체), 레몬그라스:
나열된 향신채들은 재료의 보존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렌당(Rendang)을 예로 들어보자. 얼마 전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로 꼽힌 렌당은 원래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만들어 먹던 귀한 음식이었다. 고추와 샬럿, 마늘, 갈랑갈, 레몬그라스를 곱게 갈아 질척한 소스를 만드는데, 여기에 고기와 코코넛 밀크를 같이 넣고 두세 시간 정도 곁을 지키며 볶아낸다. 그렇게 정성을 들이고 나면 무더운 더위 속에서도 일주일은 상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향신료>
-쿠민, 코리앤더, 터머릭:
인도네시아인들은 갖가지 향신료를 절구에 빻아 섞은 것을 '붐부(bumbu)'라고 부른다. 영어로 번역하면 '스파이스 믹스(spice mix)'가 되는데, 이를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갖은 양념'과 유사한 의미가 된다. 들어가는 재료나 만들어지는 지역에 따라 붐부의 종류도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아무리 종류가 다양해도 가장 인기 있는 재료를 꼽는 것은 가능하다. 붐부를 만들 때 샬롯과 마늘 다음으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향신료는 바로 큐민과 코리앤더, 터머릭이다. 소토 아얌(soto ayam, 코코넛 밀크를 넣은 감칠맛 나는 닭 수프)이나 미고렝(mie goreng, 볶음밥) 등 다양한 인도네시아 요리에 이 붐부가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
<소스, 통조림, 건조식품류>
케찹 마니스 삼발 트라시
- 케찹 마니스(Kecap manis):
간장에 팜슈가를 더해 달콤한 보통 간장보다 더 달고 진득한 질감이다. 인도네이사어에서 '케찹(kecap)'은 간장을, '마니스(manis)'는 단 것을 의미한다. 꼬치구이(사테이, satay)나 구이요리(아얌 바카르(ayam bakar, grilled chicken)나 이칸 바카르(ikan bakar, grilled fish) 등)에 자주 쓰이며 미고렝과 나시고렝에도 필수적인 소스이다. 특유의 진한 갈색이 마치 캐러멜 색소처럼 먹음직스러운 색을 낸다.
- 트라시 새우 페이스트(Trasi shrimp paste):
인도네시아의 새우 페이스트는 새우를 발효한 후 이를 건조하여 만든 것이다. 이것저것 재료를 섞어서 짓이겨서 만드는 인도네시아의 국민 소스 '삼발(sambal)' 레시피에 자주 등장하는 재료이기도 하다. 해산물을 발효했다는 점에서는 새우젓이나 액젓류가 떠오르는데, 네모낳게 뭉친 모양이나 특유의 어마어마한 냄새는 청국장 저리 가라 할 정도라고 한다. 트라시가 들어간 삼발 소스인 삼발 트라시(sambal trasi)를 집에서 직접 만든다면 트라시 새우 페이스트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직접 만들어 먹기보다는 기성품으로 나온 삼발 소스를 사 먹는 편이 더욱 편리하다. 삼발소스보다는 보기 드물지만 트라시 새우 페이스트도 마음 먹으면 구할 방법은 있다.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서 4천 원 정도에 판매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고, 동남아 요리 재료가 잘 구비된 세계 식료품 상점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삼발(sambal):
인도네시아의 대표하는 소스 중 하나로, 고추와 갖가지 향신료를 절구에 으깨어 만든 핫소스이다. 그 위세는 우리나라의 고추장이나 쌈장, 된장을 합친 것과 비슷한 정도이며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그 종류도 다양하다. 고추와 마늘, 샬롯이 기본적으로 들어가며, 여기에 새우 페이스트를 넣은 것은 삼발 트라시(sambal trasi), 설탕과 땅콩을 넣으면 삼발카창(sambal kacang), 생강과 레몬그래스, 라임을 넣으면 삼발 올렉(sambal ulek)이 된다.
-타마린드(tamarind):
주로 신맛을 담당하는 재료이다. 타마린드가 주가 되는 인도네시아 요리에는 사유르 아셈(sayur asem)이 있다. 타마린드를 넣어 끓인 야채수프이다.
*구매 팁:
케챱마니스와 삼발 모두 연희동의 사0가마트에서 구입하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0가마트에는 다른 지역에 비해 동남아시아 지역의 요리 재료가 상세하게 구비되어 있었다. 세계 식재료 상점은 물론 인터넷에서도 케찹마니스와 삼발을 구입할 수 있다. 케챱마니스는 5천 원 대, 삼발은 3천 원 대였다.
[참고한 레시피 동영상]
Nasi Goreng, Indonesian Fried Rice Recipe
https://www.youtube.com/watch?v=1TJ9UbPmzrY
[요리 재료(1인분 기준)]
- 오일 3~4 tbsp (레시피 동영상에는 버터가 사용되었으나 원래 인도네시아식 레시피에는 버터가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 마늘 2 tbsp, 절구로 짓이기거나 잘게 다진 상태
- 샬럿 또는 양파 - 2 tbsp, 절구로 짓이기거나 잘게 다진 상태
- 닭고기 적당량(나는 2인분에 닭가슴살 하나를 사용했다)
- 풀어놓은 달걀 1 개, 반숙 프라이용 달걀 1 개
- 밥 한 공기
- 소금, 후추 적당량
- 케찹 마니스 3 tsp 또는 기호에 맞게
- 삼발 소스 3 tsp 또는 기호에 맞게
- 가니쉬용 - 오이 슬라이스, 토마토 슬라이스, 알새우칩 등 사정에 맞게
Tips:
1.케찹 마니스는 간장에 설탕을 넣어 끈적하게 졸인 것으로 대체할 수도 있다. (그래도 케찹 마니스를 구매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2. 삼발 소스가 없을 경우 신선한 고추와 양파(샬럿), 건새우를 다져서 섞은 다음 삼발 소스 대용으로 사용해도 좋다.
3. 볶음밥은 원래 그 재료가 무궁무진한 요리인바, 닭고기 대신 돼지고기나 새우를 넣고 만들어도 좋다.
[조리법]
1) 팬에 기름을 두르고 손질한 마늘을 넣는다.
2) 마늘이 노르스름하게 변하면 잘게 썬 닭고기를 넣고 볶는다. 닭고기 절반 정도 익으면 손질한 양파를 넣고 함께 볶는다.
3) 양파가 노르스름하게 익으면 중간에 공간을 만들어 달걀물을 푼 후 스크램블드 에그를 만든다.
4) 식은 밥을 넣어 볶는다.
5) 삼발 소스, 케찹 마니스, 소금, 후추를 넣고 소스가 잘 섞이도록 볶는다.
나시 고렝 완성!
'나시 고렝'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그대로 반숙 달걀과 삼발 소스, 오이 슬라이스를 곁들여보았다.
삼발의 매콤 달콤한 맛, 케찹마니스의 달콤 짭짤한 맛, 마늘과 양파의 향이 한데 섞어 손을 멈출 수 없게 한다. 여기에 흘러드는 반숙 계란의 부드러움과 오이의 상큼 아삭한 맛은 덤이다.
[참고한 사이트]
- 양저우 볶음밥 사진 By stu_spivack from C & Y Chinese Restaurant in Cleveland's Chinatown, Ohio,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2045543
-"Yangzhou chao fan – everybody loves eating it" https://herschelian.wordpress.com/2014/04/16/yangzhou-chao-fan-everybody-loves-eating-it/
- 위키피디아: stir frying https://en.wikipedia.org/wiki/Stir_frying
- 위키피디아: Chinese fried rice https://en.wikipedia.org/wiki/Chinese_fried_rice
- 위키피디아: fried rice https://en.wikipedia.org/wiki/Fried_rice
-MK뉴스: 김치볶음밥의 역사… 한국과 중국의 퓨전 음식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09&no=182595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스토리텔링-김치볶음밥 https://www.mcst.go.kr/web/s_culture/story/storyTellingView.jsp?pSeq=176
- 위키피디아: Nasi Goreng https://en.wikipedia.org/wiki/Nasi_goreng
-World's 50 best foods CNN Travel staffhttp://edition.cnn.com/travel/article/world-best-foods-readers-choice/index.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