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얀 국물 속의에 숨겨진 향기의 향연
최근 SNS를 통해 새로 문을 연 동남아시아 요리 전문점 소식을 자주 접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지나친 한국화로 인해 맹숭맹숭하게 변질된 쌀국수와 정체불명의 볶음밥, 월남쌈만을 판매하는 프랜차이즈 베트남 식당 정도가 한국에서 접할 수 있는 동남아시아 요리의 대부분이었는데, 그 사이 식당가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이제는 베트남 요리는 물론이고 태국요리, 인도네시아 요리 전문점의 수도 꽤 늘었다. 게다가 요즘 '잘 나가는' 베트남 요리 전문점은 흐리멍덩한 쌀국수를 판매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이러한 식당들은 분짜(Bún chả, 피시소스 국물에 찍어먹는 석쇠구이 요리)나 반세오(Bánh xèo, 강황을 넣어 색이 노란 쌀가루 팬케이크) 등의 보다 다양한 베트남 요리를 본격적으로 취급하고 있는 식당들이다.
그러나 이런 성장세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다. 서구사회에서는 십수 년 전의 '에스닉 푸드'의 유행으로 인해 이미 팟타이, 미고렝 등의 동남아시아 요리가 일상생활과 밀접해진 상태이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야 동남아시아 요리 전문점을 드문드문 찾아볼 수 있는 한국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그 유행이 수년 이상 뒤쳐져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전망은 사뭇 기대할 만하다. 어느덧 흔해져 버린 이탈리아 요리와 중국 요리, 일본 요리를 벗어나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젊은 소비자들의 소비심리에 기대어, 대도시의 번화가 뒷골목에서는 오늘도 새로운 동남아시아 요리 전문 식당이 하나 둘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1989년에 1월에 시작된 해외여행 자유화 이래로 해외 출국자 수는 해마다 급증하였다. 약 15년 후인 2005년에 그 수는 천만 명을 넘겼고 25년 후인 2015년에는 이천만 명(1931만 명)에 육박하는 내국인이 한국을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연히 그간 동남아시아를 다녀온 한국인은 수도 없이 많을 터였다. 작년(2016년) 한 해 동안 태국, 베트남, 싱가포르, 스리랑카, 필리핀,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지에 다녀온 한국인의 수만 해도 6백만 명이 넘는다. 반면 그동안 동남아시아의 요리가 한국 식도락가에서 오늘날과 같이 대대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이탈리아 요리와 일본 요리가 한국의 식도락가에 뿌리를 내리고 무성한 가지를 키워내는 동안, 동남아시아 요리는 왜 겨우 잎사귀를 틔어내는 정도밖에 성장하지 못한 것일까?
한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 동남아시아 요리, 나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 동남아시아 요리 특유의 '향(香)'을 지적해본다. 정확히 말하자면, 동남아시아 요리에서 빠뜨릴 수 없는 각종 허브와 향신료에 그 탓을 돌리는 것이다. 동남아시아 지역의 요리에는 향신료로 유명한 인도 요리에 견주에도 손색이 없을 만큼 다양한 향신료와 허브가 사용된다. 습하고 사시사철 푹푹 찌는 동남아시아의 무더운 날씨가 이러한 요리문화에 크게 기여했다. 향신료와 허브는 단순히 맛을 돋우는 역할을 넘어서 재료를 안전하게 보존해주는 고맙고도 고귀한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던 것이다. 실로 동남아시아 요리에 자주 사용되는 허브와 향신료에는 부패를 지연시키는 자연적인 성분이 풍부하게 포함되어 있다. 그리하여, 사골국 같이 뿌연 코코넛 수프에서 레몬주스 저리 가라 하는 신맛이 나지를 않나, 육개장마냥 얼큰해 보이는 국물에서 요상한 비누향이 나지를 않나, 한국인으로 태어나 동남아 요리를 처음 접하는 사람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미각적·후각적 자극에 쉽사리 충격을 받게 된다. '세계 3대 수프라고 해서 똠양꿍을 먹었는데 맛이 영 이상하더라' 같은 후기가 괜히 많은 것이 아니다.
동남아시아 지역의 지리적인 위치 또한 향신료를 사용하는 요리문화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향신료 제도'로 불렸던 인도네시아의 몰루카 제도를 차지하기 위해 유럽 각국이 전쟁을 벌이던 시기도 있었을 만큼, 동남아시아 지역은 예로부터 육두구, 정향, 후추 등 주요 향신료의 생산지로 유명했다. 실제로 향신료의 원료가 되는 식물들은 사시사철 따뜻하고 강우량이 풍부한 곳에서 잘 자라는 종류인 경우가 많다.
페르시아와 인도, 동아시아를 잇는 교역의 중심지였던 탓에 교역국의 향신료 문화가 이식된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쿠민(cumin)과 코리앤더 파우더(coriander powder), 시나몬(cinnamon), 펜넬(fennel)과 같은 향신료는 동남아시아 요리에서 주로 고기 요리를 양념하거나 커리 페이스트를 만드는 데 쓰인다. 이는 다분히 인접한 인도의 요리와 영향을 주고받은 결과이다. 별 모양을 닮아 스타아니스(star anise)라는 이름이 붙은 팔각은 원래 중국 요리에 자주 쓰이던 향신료였다.
마치 향수처럼 온갖 향이 넘쳐나는 동남아시아 요리. 이를 한국에서 만들어 파는 입장이 되면 상황은 더욱 곤혹스러워진다. 고유의 맛을 살리기 위해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갖가지 향신료를 힘들여 구해왔는데 정작 한국인 손님들은 이를 먹기 어려워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식당을 일종의 투자 종목으로 본다면, 동남아시아 요리 전문식당은 그동안 투자하기에 상당히 불안한 종목이었을 것이다. 한편, '맛집 투어' 문화가 다변화되면서 소비자들의 입맛이 다채로워지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하나의 '호재'로써 작용했을 터이다.
이처럼 잘 알지 못하는 생소한 재료가 너무 많이 필요하다는 점, 그 점이 바로 동남아시아 요리를 만들어보고자 하는 요리 초보들에게 큰 벽으로 다가온다. 갈랑갈이며, 카피르 라임 잎이며, 타마린드 같은 재료는 보통의 한국인이라면 평소에는 마주칠래야 마주치기 어려운 재료들이다. 하물며 이 중 어떤 재료가 언제 얼마나 필요한지 파악하는 것은 더욱 쉽지 않다.
한편, 필요한 재료를 파악하는 일은 인터넷을 통해 방 안에서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지만, 그다음 장애물인 재료를 구하는 일이 남았다. 중국요리나 일본요리, 이탈리아 요리는 이미 한국인에게 잘 알려진 요리가 되었기 때문에 집 근처의 마트에서라도 그 재료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동남아시아 요리의 경우는 조금 달라서, 대형마트 쇼핑으로는 필요한 재료를 충분히 구할 수 없다. 다행인 것은 한국에 거주하는 동남아시아인이 늘어남에 따라 세계 식재료 상점이 곳곳에 생겨났고, 이를 통해 동남아시아 요리 재료를 전보다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사0가마트(특히 인도네시아·베트남 요리 재료가 많았다)'로 유명한 연희동과 이슬람 사원으로 올라가는 길에 세계 식재료 마트가 줄지어 늘어선 이태원에서 다양한 재료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물론 인터넷에서도 다양한 재료를 주문할 수 있다.
동남아시아 요리에 도전하기를 마음먹었다면, 먼저 도전하고자 하는 요리를 하나 정하도록 하자. 그다음, 직접 집 근처의 세계 식재료 상점에 가서 만들고자 하는 요리에 필요한 필수 재료를 콕 집어오자. 무슨 요리에서 시작을 해야 할지 감이 잘 오지 않아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런 경우를 위해, 3만 원 안짝에서 동남아 요리(주로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요리)를 시도하기 위한 필수 재료를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보았다.
(1) 레몬그래스(건조 또는 신선한 것, 약 5천 원)
(2) 카피르 라임 잎(건조 또는 신선한 것, 약 5천 원)
(3) 라임즙(병에 든 것, 약 2천 원)
(4) 피시소스(약 4천 원)와
(5) 코코넛 밀크 또는 코코넛 크림(약 2천 원)
(6) 케첩 마니스(약 5천 원)
(7) 타마린드(약 5천 원)
(1)~(7)의 재료들은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요리에 자주 쓰이기 때문에 미리 사둔다고 해서 손해 볼 일이 절대 없는 재료들이다. 살짝 무거워진 장바구니가 부담스러워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나라도 아니고 '한 지역'의 요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이 정도의 초기 투자는 어찌 보면 당연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고로, 장바구니 무게에 실려 드는 부담감은 일찌감치 던져 버리면 된다. 이 도전으로 말미암아, 먼 동네의 동남아시아 요리 전문점을 찾아 긴 대기줄을 거쳐 큰돈을 내고 요리를 사 먹을 이유가 영영 사라질지도 모른다!
반복하지만, 동남아시아 요리에 대한 관심이 고양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직접 요리하는 것은 내게도 큰 도전이었다. 주로 유럽 요리와 일본 요리만 만들어왔던지라 이름도 생소한 요리 재료들 앞에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의기양양하게 무턱대고 이태원에 있는 세계 식재료 전문점을 방문했으나 혼란에 휩싸이고 말았던 적이 있다. 어떻게 쓸지도 모르는 재료들로 가득 찬 선반이 마치 거대한 암호판처럼 나를 압도했기 때문이다. 결국 제대로 산 물건 하나 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치욕스러운 작전상의 후퇴를 겪어야 했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온갖 사이트를 뒤져 동남아시아 요리를 시작하기 위한 필수 재료의 리스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구글에 'essential ingredients for 000 food(cuisine)' 같은 검색어를 입력하여 나와 같은 고민을 한 전 세계인들의 지혜를 빌려본 것이다. 그리하여 두 번째로 세계 식재료 전문점을 방문했을 때에는, 한 손에는 체크리스트를 들고 한 손으로는 선반의 물건들을 확확 잡아채며 자신감 넘치게 장바구니를 척척 채울 수 있게 되었다.
동남아시아 요리를 만들어보고자 하는 또 다른 초보 도전가들에게 나의 도전기를 공유함으로써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다. 이를 위해, 아래의 네 가지 카테고리를 통해 동남아시아 요리를 위한 재료를 파악해볼 것이다. 아직 나도 이 구역에 발을 들인지 얼마 안 된 초보인 관계로 여기서 동남아시아 요리라고 하면 주로 태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이 세 국가의 요리만을 일컫는다.
1. 동남아시아 요리를 위한 공통 향신채(허브류)
2. 동남아시아 요리를 위한 공통 향신료
3. 동남아시아 요리를 위한 공통 소스
4. 태국 요리를 위한 재료
-마늘:
동남아시아 요리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고추(Bird's eye chili):
동남아시아 요리에 쓰이는 고추는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홍고추나 청양고추와는 다른 종류이다. 태국요리의 매운맛을 담당하는 고추는 쥐똥고추(태국어로는 프릭끼누Phrik Khinu, 영어로는 Bird's eye chili)가 대표적이며, 이 쥐똥고추는 한국의 고추보다 더 작지만 훨씬 더 맵다. 굳이 구하자면 세계 식재료 상점이나 인터넷을 통해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태국 고추 특유의 강렬한 매운맛을 즐기지 않는다면, 그리고 굳이 재료비를 늘리고 싶지 않다면 이를 한국의 고추(홍고추나 청양고추)로 대체해도 충분하다.
-샬럿(shallot):
동남아 요리에는 양파보다 샬럿이 더 자주 쓰인다. 샬럿은 양파와 마늘의 중간 정도 되는 모양을 가진 채소로 양파의 4분의 1 정도 되는 크기에 조직과 맛이 좀 더 치밀하다. 세계 식재료 상점에 가면 샬럿 한 움큼 정도를 3천 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다. 차이는 있지만 간단하게 양파로 대체해도 무리는 없다.
-라임즙(lime juice):
지중해 지역에 레몬이 있다면 동남아시아에는 라임이 있다. 고기 요리건 국물요리건 샐러드 건 간에 이 시큼하고 향기로운 라임즙이 빠진다면 참 섭섭할 일이다. 라임즙이 사용되는 요리를 나열하는 것보다는 라임즙이 들어가지 않는 요리를 세는 것이 더 빠를 정도이다. 하지만 생(生) 라임은 생 레몬보다 더 구하기 힘들뿐더러 비용도 높고 보관 기간도 길지 않다. 대형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라임즙(2천 원 대)으로 대체하는 것이 경제적이다.
-갈랑갈(galangal):
생강과 모양과 맛이 비슷하지만 더 단단하고 오묘한 흙향이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생강의 매운맛을 뜨거운 매운맛으로 표현하자면 갈랑갈의 매운맛은 '차가운(시원한)' 매운맛에 가깝다고 한다. 아무래도 특유의 상쾌한 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똠 양 꿍, 똠카가이 등 태국식 수프 요리에 자주 등장하는 재료이며, 갈랑갈과 카피르 라임 잎, 레몬그래스를 묶어 '태국 수프의 삼위일체'라고 일컫기도 한다. 구하기가 어렵다면 맛의 차이는 있으나 생강으로 대체해도 된다.
-카피르 라임 잎(kaffir lime leaves):
동남아시아에 자생하는 라임은 카피르 라임(kaffir lim) 또는 마크루트(makrut)라고 불린다. '키 라임 파이' 등으로 유명한 아메리카의 키 라임(key lime)과는 다른 종류의 라임이다. 오래전부터 동남아시아인들은 라임의 즙뿐 아니라 껍질, 나뭇잎까지 요리의 다방면에 사용해왔다. 카피르 라임 잎에서는 잎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라임향이 난다. 이 향을 살리기 위해, 요리에 사용할 때에는 잎을 손으로 찢거나 실처럼 가늘게 썰어서 사용한다. 태국의 톰얌 수프, 인도네시아의 소토 아얌(soto ayam , 닭고기 수프) 등에 사용된다. 카피르 라임 잎을 구하기 힘들다면 같은 뿌리인 라임즙을 뿌리는 것으로 그 역할을 어느 정도 대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잎을 사용하는 것과는 맛과 향이 사뭇 다르다.
-레몬그래스(lemongrass, Ta-khrai):
이름 그대로 레몬(lemon) 향이 나는 풀(grass)이다. 신기할 정도로 강한 레몬향이 난다. 한국에서는 식재료보다는 허브티의 종류로 잘 알려져 있고 이를 즐기는 사람이 많다. 반면 동남아시아에서는 한국의 대파 마냥 국물 요리에 감초처럼 등장하는 흔한 요리 재료이다.
* 재료 구매 팁
갈랑갈, 카피르 라임 잎, 레몬그래스 모두 세계 식재료 상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다만 모든 상점에서 파는 것 같지는 않고,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곳을 방문하는 것이 좋다. 나는 이태원 3번 출구에서 라인 스토어 방향으로 가다가 우측으로 꺾으면 나오는 세계 식재료 상점 중 가장 큰 곳에서 이 세 가지 허브를 모두 구할 수 있었다.
갈랑갈과 레몬그래스, 카피르 라임 잎을 묶어서 2500원에 판매하는 것이 있길래 냉큼 집어왔는데, 이 정도면 똠양꿍 같은 국물 요리를 두 번 정도 만들기에 적당한 양이다. 카피르 라임 잎은 한 봉에 6천 원이었다. 갈랑갈과 레몬그래스, 카피르 라임 잎 모두 냉동보관이 가능하기 때문에 한 묶음을 사서 남은 것은 냉동실에 넣어두면 된다.
신선한 상태인 것보다는 향이 떨어지지만 건조된 제품을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나는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건조 레몬그래스 한 봉(5천 원)을 사 왔다. 요리에 사용해보니, 신선한 것보다는 덜하지만 어느 정도 제 구실은 하는 것 같았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건조 갈랑갈과 건조 라임 잎을 파는 사이트가 몇 있다. 한 봉지에 3천 원에서 5천 원 정도이다.
저녁 시간에 태국의 주택가를 찾으면 커리를 만들기 위해 아낙네들이 돌절구를 콩콩 두드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동남아시아의 커리 요리는 손절구로 갖은 향신료와 허브를 오랫동안 짓이긴 것을 바탕으로 끓이는 손이 많이 가는 요리이다. 그리하여, 삶이 예전보다 바쁘고 각박해진 요즘에는 절구를 손에 끼고 팔이 아플 때까지 커리 페이스트를 짓이기기보다는 이미 만들어진 커리 페이스트를 사서 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현지인도 그러할진대 극동의 한국인이 모든 재료를 다 구비하고 커리 페이스트를 직접 만들기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대형마트나 세계 식재료 상점에 '00 커리 페이스트'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는 제품이 판매되고 있으니 재료를 하나하나 다 구입하기보다는 시판 제품을 사서 쓰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일지도 모른다.
큐민, 코리앤더 파우더, 시나몬
-큐민 파우더(cumin powder):
주로 커리 페이스트를 만드는 데 쓰인다.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의 대표 요리 렌당(Rendang) 페이스트를 만드는 데도 쓰인다. 겨드랑이 냄새 같은 중독적인 꿉꿉함이 매력적이다. 인도 요리, 중동 요리, 남미 요리 등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향신료이므로 한 봉지 구매해서 손해 볼 일은 없다.
-코리앤더 씨앗 파우더(coriander seed powder):
큐민 파우더와 마찬가지로 주로 커리 페이스트 또는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의 대표 요리 렌당(Rendang) 페이스트를 만드는 데도 쓰인다. 큐민과 느낌이 비슷하지만 겨드랑이 냄새는 덜하고 라면수프 냄새 같은 매콤 새콤하고 맛있는 향이 난다.
-시나몬(cinnamon power):
커리 페이스트와 디저트를 만들 때 사용된다.
팔각(스타아니스), 정향(클로브). 후추
-팔각(star anise):
동남아시아 요리에 팔각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이웃한 중국요리의 영향이라고 한다. 한약 냄새를 품은 달콤한 향이 특징이다. 커리 페이스트 또는 중국의 영향을 받은 요리에 쓰인다. 베트남 쌀국수 국물을 우려내는 데 쓰이는 향신료이기도 하다.
-정향(clove):
강렬한 치과 냄새를 풍기는 정향은 커리 페이스트를 만드는데 주로 사용된다. 음식물의 부패를 막는 기능이 있어서 무더운 날씨에 요리를 안전하게 보존하기 용도로 애용되었다고 한다.
-통후추(black pepper):
볶음 요리나 커리 페이스트에 쓰인다.
피시소스, 타마린드, 간장
- 피시소스(fish sauce):
젓갈문화가 발달한 것은 비단 한국뿐만이 아니다. 동남아시아인 또한 예로부터 독특한 해산물 발효 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켜왔다. 동남아시아 젓갈문화의 대표 중 하나가 바로 이 피시소스이다. 한국의 멸치액젓과 유사한 느낌이며 간장의 수 배는 될 정도로 짠맛이 강하다. 감칠맛이 강한 동시에 특유의 지릿한 발효된 생선 향이 있다. 베트남의 피시소스는 느억맘(nước mắm)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베트남 요리 중 느억맘이 들어가지 않는 요리를 찾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활발하게 사용된다. 태국의 피시소스는 남플라(nam pla)라고 불리며 팟타이 등 다양한 볶음 요리에 가미해서 짭짤한 감칠맛을 끌어올리는 데 사용된다. 피시 소스와는 다른 분류이지만 생선이나 새우를 짓이긴 후 발효시켜 진득한 페이스트 형태로 만든 것도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트라시(terasi, 말레이시아에서는 벨라칸이라고 불림)라는 발효 페이스트가 유명하다. 역시나 감칠맛이 강하고 꾸릿꾸릿한 냄새가 난다.
- 타마린드(tamarind) 페이스트:
태국에서 흔한 콩의 일종인 타마린드를 짓이겨서 만든다. 콩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구수한 맛이 날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지만, 예상외로 타마린드의 주된 맛은 강한 신맛이다. 팟타이 소스의 주재료이기도 하다.
- 간장(soy sauce):
동아시아 요리 못지않게 동남아시아 지역 요리에서도 간장이 많이 쓰인다. 아무래도 중구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추측된다. 간장이 주가 되는 유명한 요리로는 태국의 간장소스 볶음면인 '팟 씨 유(Pad see-ew)'가 있다.
* 구매 팁
피시소스는 대형마트나 백화점 지하에서도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4천~5천 원). 타마린드 페이스트는 세계 식재료 상점이나 인터넷에서 5천 원 정도에 구매할 수 있다. 간장의 경우 욕심을 부리자면 각 나라별로 다양한 간장을 사서 모을 수 있지만, 속 편하게 찬장 속의 한국식 간장을 사용해도 큰 무리는 없다.
태국 요리는 세계의 인정을 받는 것에 민감한 한국인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상당히 흥미로운 요리이다. 2011년 전세계 35,000 명의 독자 투표를 거쳐 공표된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50가지(World's 50 Most Delicious Foods (Readers' Pick), CNN Travel)" 목록에 무려 7 가지의 태국 요리가 당당히 올랐던 것이다. 똠양꿍이 4위, 팟타이가 5위, 솜땀이 6위, 마싸만 커리가 10위, 그린 커리가 19위, 태국식 볶음밥이 24위, 무남톡이 36위였다. 같은 설문에서 한국의 갈비가 41위, 비빔밥이 40위, 불고기가 23위, 김치가 12위를 석권하기는 하였으나 아무래도 상위권에 위치한 태국요리의 비결에 대해 호기심이 생겨나는 것은 막을 수가 없다. 어째서 태국요리는 이토록 세계인(주로 서구권)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요리가 될 수 있었을까? 혹시 '김치 워리어' 이전에 '팟타이 워리어'가 종횡무진 활약하며 온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이 아닐까?
구글에 이런 질문을 검색해보아도 마땅한 답은 없다. 대부분의 경우 "그냥 태국 요리가 맛있어서" 같은 답변이 대부분이다. 그 외에 가장 쓸만한 응답은 태국이 서구사회에서 굉장히 인기 있는 여행지라는 사실과 태국요리의 인기가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특히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사는 호주인들이 태국을 자주 찾는다고 한다. 하지만 여행지가 마음에 들었다한들 그 음식이 맛이 없다면 고국에서도 그 맛을 찾아다니지는 않을 터, 태국 요리의 매력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여기에 대한 짧지만 멋진 답변이 하나 있다. 호주 출신 태국요리 전문 요리사 데이비드 탐슨(David Thompson)에 따르면, 태국요리의 독특함은 "단순성을 거부하고 전혀 다른 요소를 저글링하여 조화로운 마무리를 창조(the juggling of disparate elements to create a harmonious finish)"하는 데 있다고 한다. 태국요리의 주요한 4 가지 맛인 단맛, 매운맛, 짠맛, 신맛 위에 덧입혀진 갖가지 허브와 향신료의 어우러짐, 즉 한 스푼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다양한 맛과 향의 조화가 바로 태국요리의 핵심인 것이다. 복잡 다난하여 한국인이 단숨에 익숙해지기 어렵다고는 하나, 멀리하기에는 아쉽울만치 향기롭고 다채로운 맛과 향의 세계, 그것이 바로 태국요리의 세계이다.
코코넛 밀크, 타이 칠리 페이스트, 스리라차 소스
- 코코넛 밀크와 코코넛 크림:
코코넛 밀크를 빼고 어찌 태국 요리를 논할 수 있을까. 특유의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은 수프에서도, 디저트에서도 매력을 뿜어낸다. 코코넛 밀크가 사용된 대표적인 요리로는 태국의 톰카가이(Tom Kha Gai, 닭고기 코코넛 수프)와 말레이시아의 나시르막(Nasi lemak, 밥물에 코코넛 밀크를 섞어 지은 밥, 인도네시아에서는 Nasi uduk이라는 이름으로 불림)이 유명하다. 코코넛 밀크는 코코넛 과육과 물을 1 대 1의 비율로 끓여서 만들고 코코넛 크림은 코코넛 과육과 물을 4 대 1의 비율로 끓여서 만든 것이다. 따라서 코코넛 크림 쪽이 코코넛 밀크보다 더 진득하고 농도가 짙다. 또한 코코넛 크림을 물에 희석하면 이를 코코넛 밀크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같은 값이면 코코넛 크림을 사용하는 것이 더 경제적인 것 같기도 하다.
- 타이 칠리 페이스트(Nam prik pao, Thai chili paste):
고추, 양파, 마늘, 설탕, 식초, 오일과 새우 페이스트를 섞어서 만든 페이스트로, 매콤 달달하면서 끈적한 질감이다. 한국의 닭꼬치 소스와 비슷한 맛이 나며, 새우볶음을 비롯한 볶음 요리에 특히 잘 어울린다. 똠양꿍을 만드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스리라차 소스:
루스터 소스(rooster sauce, 태국계 미국인이 만든 스리라차 소스 브랜드의 별명)의 성공으로 머나먼 미국 땅에서 국민 소스로 인정받게 된 소스가 바로 스리라차 소스이다. 요리의 재료가 된다기보다는 국수를 먹을 때 살짝 뿌려먹거나 스프링롤을 찍어먹거나 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매콤하면서 새콤한데,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매운맛이다.
건새우, 갈랑갈, 카피르 라임잎, 레몬그래스 , 각종 커리 페이스트, 팟타이 소스
-건새우:
팟타이 같은 볶음요리를 할 때 미리 기름에 볶아주면 요리의 고소한 맛과 감칠맛이 증대된다.
- 갈랑갈, 카피르 라임잎, 레몬그래스:
태국의 수프 요리의 알파이자 오메가이다. 한국과 일본의 다시 국물 재료와 비슷할 정도의 위상이다. 이 세 가지 재료의 향이 어우러져 태국 요리 특유의 새콤하고 청량감이 넘치는 개성 넘치는 국물 맛을 완성한다. 그 매력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요리로 똠양꿍(Tom Yum Goong)과 똠카가이(Tom Kha Gai)가 있다.
-각종 커리 페이스트, 소스:
대형마트에만 가도 각종 인스턴트 태국식 커리 페이스트와 소스를 발견할 수 있다. 레드 커리, 옐로 커리, 그린 커리 등 다양한 커리 소스가 판매되고 있다. 봉지에 든 것은 이천 원 대로 저렴하다. 플라스틱 통에 든 것은 좀 더 비싸지만 양이 많다. 팟타이 소스도 한 병에 3천 원에 마트에서 구할 수 있게 되었다. 팟타이 소스를 직접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타마린드, 피시소스, 칠리소스 등)를 갖출 필요 없이 팟타이를 바로 만들 수 있어서 편리하다.
* 구매 팁:
코코넛 밀크(2천 원 대), 스리라차 소스(5천~9천 원 대), 말린 새우(6천 원 대), 각종 커리 페이스트(2천~5천 원 대), 팟타이 소스(3천 원 대)는 대형마트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다. 타이 칠리 페이스트(3천 원 대)는 백화점 식품매장이나 세계 식재료 상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오늘 소개할 요리는 '똠 카 가이(Tom Kha Gai)'이다. 그 이름을 번역하자면 '닭고기 갈랑갈 수프'라는 뜻이 된다. 이는 태국어로 '똠(Tom)'이 끓인 것 즉 수프를, '카(Kha)'가 갈랑갈을, '가이(Gai)'가 닭고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똠양꿍이니, 팟타이니, 솜땀이니 유명하고 잘 알려진 태국 요리가 많지만 그런 요리를 제치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똠 카 가이'를 선택한 데에는 몇 가지 의도가 있다.
태국 요리 초보라도 큰 거부감 없이 접할 수 있는 요리라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이다. 보다 유명한 똠양꿍과 비교하자면, 똠 카 가이의 맛이 덜 자극적이고 더욱 부드러운 편이다. 예를 들어, 똠양꿍을 처음부터 즐기게 되는 사람이 적은 것은 매운맛과 신맛, 단맛이 온갖 향으로 가득 찬 국물 속에서 강하게 충돌하기 때문이다. 적응을 하면 그것을 매력으로 삼아 즐겨먹게 되기는 하지만 태국요리 초보자는 그 폭발적인 맛을 처음부터 즐기기가 어렵다. 반면 톰 카 가이의 경우에는 '매운맛, 신맛, 짠맛, 단맛'이 공존하면서도 이 네 가지 맛이 강하게 충돌하지 않고 부드럽게 잘 어우러든다. 바로 국물이 뽀얗도록 듬뿍 넣은 고소한 코코넛 밀크의 덕이 크다.
그다음으로, 태국 요리의 대표적인 재료인 닭고기, 코코넛 밀크, 피시소스, 고추, 레몬그래스, 갈랑갈, 카피르 라임 잎이 모두 사용되는 요리라는 점을 고려했다. 이 모든 재료가 한 데 모여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내는가, 그것을 이해하면 태국요리가 한층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똠 카 가이가 몸이 아플 때 큰 도움이 되는 요리라는 점 또한 매력적이었다. 부드러운 코코넛 밀크와 향긋한 허브향이 어우러진 따끈한 국물을 맛보면, 왜 이 요리가 미국의 힐링 푸드인 '치킨 누들 수프'와 비견되는지 바로 이해할 수 있다. "내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라는 책으로 유명한, 그 치킨 누들 수프 말이다.
[참고한 레시피 동영상]
Tom Kha Gai Recipe ต้มข่าไก่ - Hot Thai Kitchen!
https://www.youtube.com/watch?v=9RNxC6w7ERg
'Pailin's Kitchen' 채널의 호스트 Pailin은 40만 명의 구독자를 거느리고 있는 유튜브 요리 동영상계의 스타이다. 똑 부러지는 영어 발음으로 전문적인 설명을 곁들여 다양한 태국 요리를 능숙하게 선보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태국에서 태어나 뉴질랜드에서 중등교육을 받고, 국제학교를 거쳐 캐나다의 대학교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그녀는 요리에 대한 열정을 주체하지 못해 졸업 이후 컬리너리 스쿨에서 전문적인 요리 교육을 받는 길을 택했다고 한다. 한 명의 요리사로 살기보다는 태국 요리를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하고 싶었던 그녀는 용기를 내어 유튜브에 요리 동영상을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TV쇼와 손수 지필 한 요리책, 성공적인 블로그를 가진 유명인사가 되었으니 역시 될 만한 사람은 언젠가는 성공하게 되는 것이 유튜브 세계의 위력이 아닌가 한다.
- 고형 치킨 스톡 1 개+생수 2 컵 또는 닭 육수 2컵
- 코코넛 밀크 1.5 컵 (나의 경우 위의 코코넛 밀크 1 작은 캔으로는 원하는 농도가 나오지 않아서 코코넛 크림을 1/2 작은 캔 정도 추가했다)
- 닭가슴살 2 덩이 또는 닭다리살 500g
- 레몬그래스 1 줄기, 카피르 라임 잎 4~5 장, 둥글게 썬 갈랑갈 5~10 편
- 고추 3~4 개
- 느타리버섯 또는 만가닥 버섯 한 줌
- 피쉬소스 2 Tbsp
- 설탕 1 tsp
- 라임즙 2-3 Tbsp
- 소금 1 tsp
- 대파(나 쪽파) 또는 고수 약간(가니쉬 용)
1) 레몬그래스는 맨 아랫부분과 억센 윗부분을 잘라낸 후, 중간 부분의 질긴 바깥 껍질을 벗겨서 준비한다. 레몬그래스 특유의 향은 중간 부분이 가장 강하다고 한다. 칼등으로 레몬그래스 줄기를 골고루 치는 것으로 레몬그래스 준비를 마무리한다. 향이 국물에 더 잘 우러나게 하기 위한 것이다.
2) 갈랑갈은 얇게 편을 썰고, 카피르 라임 잎은 손으로 두어 번 찢는다. 고추는 칼등으로 내리치거나 어슷하게 썬다. 모두 재료의 향이 국물에 잘 우러나게 하기 위한 준비과정이다.
3) 닭가슴살을 먹기 좋은 크기로 손질한다.
4) 준비한 닭 육수 또는 고형 치킨스톡을 물에 푼 것을 끓인다.
고형 치킨스톡은 소금이 이미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직접 만든 닭 육수를 사용하는 경우 짠맛이 부족하므로 소금을 1 tsp 정도 넣어 간을 조금 본다.
5) 닭 육수가 끓으면 손질한 닭고기를 넣고 닭고기가 3/4 정도 익을 때까지 끓인다. 지방이 적은 닭가슴살은 사이즈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5분이 안되어 거의 익는다. 너무 오래 익히면 퍽퍽하고 짉겨질 수 있으니 주의하도록 한다. 닭다리살의 경우 더 오래 끓여도 된다.
6) 코코넛 밀크와 손질한 레몬그래스, 갈랑갈, 카피르 라임 잎, 고추를 넣고 피시소스와 설탕을 넣어 간을 한다. 재료의 향이 우러나도록 3~5분 정도 약불에 끓인다. 국물의 농도가 연하다면 코코넛 밀크나 코코넛 크림을 추가한다.
코코넛 밀크가 섬세한 재료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강한 불로 빠르게 끓일 경우 덩어리가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약불로 뭉근히 끓이도록(simmer) 하자.
7) 버섯을 넣고 버섯이 익을 때까지 2분 정도 뭉근히 끓인다. 피시 소스와 소금을 추가하여 최종 간을 본다. 라임즙은 반드시 불을 끄고 넣도록 한다. 국물에 라임즙을 넣고 이를 강하게 끓이면 향은 약해지고 쓴맛이 생기게 된다.
똠 카 가이 완성!
고수 대신 대파를 송송 썰어 가니쉬를 했더니 영락없이 곰탕 같은 비주얼이라 웃음이 비죽 나왔다. 고소한 코코넛 밀크가 국물을 부드럽게 하기 때문에 그 맛도 조금 비슷한 구석이 있다.
요리를 하는 동안 온 집안이 허브 향기로 가득 찼다. 레몬그래스의 상큼한 향과 갈랑갈의 상쾌한 향, 카피르 라임 잎의 라임향이 뽀얀 국물뿐 아니라 내 방안 전체를 휘젓고 있었다. 옆집에서 김치찌개를 끓이면 온 복도에 김치찌개 냄새가 진동을 하는 공동주택의 특성상, 내 태국요리의 향도 문틈을 비집고 나가 복도의 끝까지 퍼져나갔을 터, 내가 무슨 요리를 만드는지 짐작을 하는 이웃이 몇이나 될까 궁금해진다.
혀가 사방에서 즐거운 간지럼을 당하는 느낌이다. 라임즙과 설탕이 시큼 달달한 맛을, 피시소스의 짠맛을, 송송 썰어 넣은 고추가 매운맛을 뿜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레몬그래스와 카피르 라임 잎, 갈랑갈의 향이 후각을 거쳐 미각으로 전이되니 그 맛과 향의 조화가 기가 막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조화는 맛과 향의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촉촉하면서도 결이 살아있는 닭가슴살과 부드럽고 탱탱한 버섯이 씹을수록 입이 즐거워지는 질감의 조화를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참고한 사이트]
World's 50 best foods CNN Travel staffhttp://edition.cnn.com/travel/article/world-best-foods-readers-choice/index.html
How to Stock a Thai Pantryhttp://www.seriouseats.com/2016/06/how-to-stock-thai-pantry-thailand-cooking-ingredients.html
위키피디아: thai cuisine https://en.wikipedia.org/wiki/Thai_cuis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