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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일랑 Nov 25. 2017

헝가리: 제대로 된 굴라쉬란 무엇일까

뭉근히 익어가는 인연들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도 벌써 5년이 넘었다. 이제는 어디 가서 스스로를 직장 초년차라고 소개하기에 조금 어색한 나이. 졸업과 동시에 다 같이 처음으로 입사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쭉 한 회사를 다닌 친구들은 이러니 저쩌니 해도 벌써 각자의 회사에서 허리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위치에 올랐다. 중간에 이직을 한 나는 새로 정착한 직장에서 이제 3년 차. 반복되는 일이 익숙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시련과 사건사고에 드문드문 끔뻑 놀라기도 하는 시기이다. 출근하고 퇴근하는 일상이 반복된 지 오래되었고 어릴 적 읽은 공상과학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달나라와 심해로 가족 휴가를 떠나는 일이 가능할 것 같던 2020년대가 코앞이다. 그러나, 나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학교에서 집을 오가던 그 시절이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다.


직장생활을 하며 새로운 인연을 많이 만들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학교를 다니며 만난 사람들이다. 소소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함께 여행을 떠날 정도로 친분을 쌓은 직장 친구들도 있지만,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이들과 보내는 시간은 특별한 향취가 있기 때문이다. 같은 캠퍼스에서 젊음을 누리고. 울고, 웃고, 공부하고, 연애하고, 꿈꾸고, 고민하던 우리들. 익숙한 배경을 비슷한 시대에 거닐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과거를 걷는 대화는 더욱 감미로워진다. 그뿐인가. 이것저것 재고 따지거나 숨기는 것 없이, 내 모습 그대로를 아는 이와 대화하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즐거움이다.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함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하는 법을 잘 몰랐던 어린 시절에 만났던 사람들. 그들과 만나는 것은 마치 목욕탕에서 친해진 옛 친구를 만나는 것과 같아 개운하기 그지없다. 뱃살 사이를 깊게 파고든 가로 주름이라든가 굵다란 허벅지살 따위의 내밀한 부위를 천연덕스럽게 내놓고도 발을 참방 거리며 즐겁게 대화하는 일이 가능한 것이다. 막상 만나면 이렇게 반갑건만, 연락하면 부담스러울까봐, 너무 오랜만에 만나면 어색할까봐 하는 소심한 마음에 가늘어지다가 끊어지고야 마는 그런 인연의 끈들을 지켜보기가 아쉬울 따름이다.


그런 고로, 정말 오랜만에 하룻밤 우리 집에 묵기로 한 그녀가 '제대로 된 굴라쉬'를 먹어보고 싶다고 말했을 때 나는 한 번도 만들어본 적 없는 이 헝가리 요리에 기꺼이 도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같은 같은 고향 출신인 것으로도 모자라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대학에서도 선후배 관계로 만나게 된 신기한 인연의 친구이자 한 학년 아래의 동생. 집에 놀러 오면 꼭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겠다고 단단히 홍보를 했건만, 막상 그녀의 요청에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요리를 만들려 하니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헝가리에 발을 디뎌본 적도 없는 것을, 내가 만든 그 맛이 '제대로 된' 맛인지, 어찌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처음 만드는 거라 조금 오래 걸릴 수도 있어'라는 말로 태연한 척 연기를 할 뿐이었다.


왜 하필 그녀는 하고 많은 요리 중에 굴라쉬를 고르게 되었을까? 나의 경우는 동유럽이라고는 가본 적이 없으니 굴라쉬와는 거의 인연이 닿지 않는 삶을 살았다. 그녀의 경우는 이와 달라서, 약 4 년 전에 동유럽을 여행하기는 했으나 굴라쉬를 지척에 두고도 먹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한 달이 넘는 유럽 여행에서 각 지역별 특산 요리를 외우고 다니기는 어려운 일이었을 터, 헝가리 다음으로 굴라시를 많이 먹는 체코에 들렀음에도 굴라시를 시킬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맥주와 족발요리만 주구장창 먹었다는 것이다. 나와 굴라쉬의 인연이 '0'의 인연이라면, 그녀와 굴라쉬와의 인연은 '마이너스'의 인연인 셈이었다. 나중에야 굴라시라는 요리의 존재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고 그런가 보다하고 넘어갔는데, 얼마 전 지인 모임에서 기어이 자극을 받고야 말았다고 한다. 동유럽 여행에 푹 빠져입이 마르게 여행 자랑을 하던 어느 지인 덕택이다. 대전 어딘가의 레스토랑에서 내놓은 굴라쉬를 한입 맛보더니, 그는 '한국에는 굴라쉬를 제대로 하는 곳이 없어'라며 쓴소리를 했다고 한다. 부다페스트에서 먹은 굴라쉬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나. 도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나의 친구는 궁금하면서도 오기가 생겼다고 했다. 그놈의 굴라쉬 한번 먹어봐야겠다고.


굴라시의 다양한 모습. 육개장 같은 모양새의 수프일 때도 있고 갈비찜 같은 스튜 상태일 때도 있다.

(사진출처: belgianfoodie.com(좌), allrecipes.com(우))


그놈의 굴라쉬(Goulash), 과연 어떤 요리일까? 굴라쉬를 논의하려면 굴라쉬가 탄생한 이래 가장 사랑받는 곳, 헝가리언급할 수 밖에 없다. 한국 하면 김치, 일본 하면 초밥을 꼽듯이 헝가리 하면 가장 많이 언급되는 요리가 바로 이 굴라쉬이기 때문이다. 당장 나만하더라도 '헝가리'하면 연상되는 몇 안 되는 단어(부다페스트, 헝가리 무곡,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라즐로 알마쉬 정도...?) 중에 굴라쉬가 있을 정도이다. 각 나라의 대표 요리가 그 나라를 수식하는 형용사가 되는 경우가 왕왕 있는바, 헝가리의 굴라시는 정치사에까지 진출하여 그 이름을 남겼다. '굴라시 공산주의(Goulash communism)'라는 용어가 바로 그 예이다. 헝가리 혁명(1956)의 실패 이후 실권를 잡은 헝가리의 정치가 카다르 야노시 (Kádár János)에 의해 1960년대에서 80년대까지 이행되었던 헝가리 특유의 공산주의 체제를 일컫는 용어이다. 동시대 공산주의 국가 중 이례적으로 친시장적, 개혁적 체제로 알려져 있다. 스스럼없이 스스로를 '굴라쉬'라고 지칭하는 헝가리인들의 모습에서 굴라쉬에 대한 그들의 각별한 마음이 드러난다.


이렇듯 많은 이들이 헝가리가 굴라쉬의 원조임을 인정하고 있으 실상을 따져보면 굴라쉬는 더 이상 헝가리만의 요리가 아니라는 점 또한 흥미롭다. 헝가리뿐 아니라 오스트리아, 체코,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폴란드 등 동유럽의 많은 국가에서 가정요리로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뭉쳤다 쪼개졌다를 반복하며 국경선이 바뀌던 격변의 근대에 굴라쉬는 활발히 동유럽 각지에 족적을 남겼다. 시시때때로 움직이는 국경선을 따라 동유럽 곳곳으로 이주한 헝가리인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주변으로 전파하였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의 헝가리인 약 1400만 명 중 약 500만 명은 헝가리가 아닌 다른 나라에 거주하고 있을 정도이니 굴라쉬가 동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살뜰히 제 나름의 자리를 잡은 일이 그리 놀랄 일이 아닌 셈이다.


굴라쉬는 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아주 오래된 요리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서양식 스튜요리가 대개 그러하듯이 그 시작에는 소박한 목동들이 있었다. 굴라쉬라는 요리명이 바로 그 증거이다. 굴라쉬는 헝가리어로 구야쉬(gulyás)라고 읽히는데, 헝가리어로 '구야(gulya)는 '소떼'를, 구야시(gulyás)'는 '목동'을 의미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고나 노화로 갑자기 죽은 가축을 그 자리에서 간단하게 처치하기에는 아무래도 뭉근하게 끓여내는 요리가 제격이었다. 늑대 같은 맹수들이 피 냄새를 맡고 몰려오기 죽은 동물의 사체는 최대한 빨리 처리할 수밖에 없었지만, 갓 잡은 고기는 그냥 구워 먹기에는 너무나도 질겼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고기 파티를 열게 된 목동들은 포식할 수 있는 기회에 기뻐했을까, 아니면 가축을 한 마리 잃었다는  사실에 슬퍼했을까? 그 복잡한 심경이 어찌 되었든 태초의 굴라시는 그야말로 즉석 캠프 요리의 개념이어서, 고기와 목동들이 품고 다니던 말린 허브, 소금 따위로 만들어 단순한 맛을 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이 단순히 목동이 요리하던 단조로운 캠핑요리에 머물렀다면 굴라쉬는 아마 지금과 같은 인기를 얻지 못했을 공산이 크다. 아일랜드의 아이리쉬 스튜나 프랑스의 비프 부르기뇽처럼, 대개 각 지역마다 허브와 함께 오래 끓여내는 고기 요리는 하나씩 가지고 있기에 경쟁자는 허다하다. 여타 다른 고기 스튜요리와 헝가리의 굴라시를 구별하는 포인트는 바로 굴라쉬 국물에 먹음직스러운 붉은빛을 더하는 파프리카(Paprika)이다. '파프리카'라고 해서 우리가 잘 아는 피망 모양의 붉은 채소와 헝가리의 파프리카를 같은 것이라 보아서는 안 된다. 헝가리의 파프리카는 피망을 닮아 동그랗고 상큼한  파프리카보다는 붉은색의 매콤한 고추에 훨씬 가깝다. 애초에 파프리카라는 이름 자체가 고추(pepper)를 뜻하는 슬라브 계통의 단어, '파팔(papar)'에서 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 모양뿐 아니라 활용의 측면에서도 헝가리의 파프리카는 한국의 고추와 참 닮아있다. 그 가루가 여기저기 팍팍 쓰여 여러 요리를 붉은색으로 물들이는 것도 그렇고, 고추가 익을 무렵의 농촌 풍경도 그렇다. 해가 잘 드는 넓은 공터에는 붉게 익은 고추가 바다처럼 펼쳐지고, 바람 잘 드는 처마 아래에는 실에 꿴 고추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고추과에 해당하는 작물이 다 그렇듯이 헝가리의 파프리카는 본디 유럽 태생이 아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래로 저 멀리 아메리카에서 동유럽까지 먼 길을 여행하여 헝가리에 닿은 것이 15세기쯤이었다고 한다. 외래 작물에 대한 경계심이 풀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고, 수입 초기 파프리카는 상류층의 관상용 작물이었을 뿐이었다. 파프리카를 말리고 이를 가루를 내어 요리에 사용하는 방법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8세기에에 이르러서였다. 그리고 이로 인해 헝가리의 식탁은 그 어느 때보다 더 크게 변화하게 되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헝가리의 파프리카 재배는 매콤한 종이 대세였다고 한다. 매운 파프리카가 인기가 있던 당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바로 어린 아이가 있는 젊은 어머니들은 파프리카 손질 작업에서 당연스레 제외되었다는 점이다. 집으로 돌아가 아이를 어루만지며 보살펴야 할 그들의 손끝을 매운 고추로부터 보호해야한다는 일종의 사회적 약속이 존재했나보다. 그러나 이러한 풍경 또한 변화하기 시작했다. 20세기에 들어서 대중의 입맛이 다변화고 각종 육종법이 발달하 다양한 파프리카 품종이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아주 매운 것(csípős csemege)', '부드럽고 붉은색이 선명한 것(különleges)', '아주 맵고 진한 붉은색인 것(erős)' 등 8 등급의 파프리카 분류법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외래 작물이라는 태생적인 한계를 딛고 헝가리 요리의 성삼위일체인 (고기의) 지방, 양파, 파프리카의 한 멤버로서 확고한 위치를 얻어내었으니, 파프리카와 한국의 고추는 그 끈기 또한 서로 닮은꼴이다.

 


[참고한 동영상]

Food wishes: Beef Goulash - Hungarian Beef Goulash Recipe - Paprika Beef Stew

https://www.youtube.com/watch?v=nJzDfRIb9T0

수프를 만들까 스튜를 만들까 고민하다가 스튜 형태의 굴라쉬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된장국보다는 된장찌개를, 소고깃국보다는 소고기 찜을 선호하는 나의 입맛이 그 선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굴라쉬 재료]

- 소고기 약 1 kg(주로 목심(chuck)이나 사태(shin, shank)처럼 근육이 잘 발달하여 콜라겐이 풍부한 부위를 사용한다), 인절미보다 조금 큰 크기로 잘라서 소금 후추로 간을 하여 둔다.

- 포도씨유, 카놀라유 등의 식물성 기름 2 Tbsp

- 양파 2개, 손가락 한두 마디 정도 크기로 대충 잘라 준비한다.

- 올리브유 2 Tbsp

- 캐러웨이 씨드 2 tsp (시원 달콤한 감초 향이 도는 캐러웨이 시드는 헝가리 요리에 자주 등장하는 향신료이다. 감초 향이 조금 비슷한 펜넬 씨드(fennel seeds)나 아니스 씨드(anise seeds), 딜 씨드(dill seeds) 등으로 대체할 수 있다), 가루를 내어 준비한다.

- 파프리카 파우더 2 Tbsp

- (선택) 카옌페퍼 1/2 tsp

- 후추 1 tsp

- 건조 타임(thyme) 잎 1/2 tsp

- 건조 마조람(marjoram) 잎 1 tsp (없어서 패스했다)

- 고형 치킨 스톡 하나와 물 4 컵 또는 액상 치킨 스톡 4 컵

- 토마토 페이스트 1/4 컵 또는 토마토 캔 1/2 컵

- 마늘 네 톨 (다져서 준비한다)

- 월계수 잎 한 장

- 설탕 1 tsp

- 발사믹 식초 2 tbsp

- (장식) 사워크림 또는 플레인 요구르트

- (곁들이기) 파스타 또는 밥, 빵



입에서 향기롭게 녹아드는 굴라쉬 맛의 주역, 파프리카, 타임, 딜씨드, 후추, 카옌 페퍼




[굴라쉬 조리법]

1. 뜨거운 팬에 식물성 기름(포도씨유, 카놀라유 등)을 두르고 소금 후추 간을 한 소고기를 올려 겉을 갈색빛이 돌게 익힌다. 마이야르 반응을 통해 고기의 풍미를 끌어내는 과정이다.


2. (1)의 팬을 씻어내지 말고 그대로 사용하여 양파에 갈색빛이 날 때까지 볶는다.


3. (2)의 팬에서 양파를 덜어내고 파프리카, 카옌페퍼, 캐러웨이 씨드(나는 딜 씨드로 대체), 후추, 타임을 올려 2~3분 간 살짝 볶는다. 열과 지방을 사용하여 향신료의 향을 일깨우는 과정이다.


4. 동일한 팬에 치킨스톡(고형인 경우 물과 함께)을 넣고 나무주걱으로 고루 저어 바닥에 눌은 재료가 스톡에 우러나게 한다.


5. 냄비에 고기, 양파, 각종 향신료가 우러난 스톡을 담는다.


6. 토마토, 다진 마늘, 월계수, 발사믹 식초를 넣고 국물이 졸아들고 고기가 부드러워질 때까지 1시간 반~2시간 반 동안 익힌다. 익히는 시간은 순전히 고기의 질감에 달려있다. 바닥이 눌지 않도록 간격을 두고 살피며 필요시 물을 더해서 잘 섞는다.



7. 곁들일 파스타나 밥, 빵을 준비한다.


헝가리의 전통요리, 굴라쉬를 완성했다!


플레인 요구르트와 생허브를 올려 장식했다.



사실 뚜껑을 열 때부터 진동하는 그 향기에 흠뻑 매료되고 말았다. 엄마가 시골에서 갓 잡은 것을 구해서 올려 보내주신 소고기가 질겨서 제대로 고기가 부드러워지기까지 두 시간을 넘게 기다린 상황. 굴라쉬를 먹어보기까지 참으로 긴 기다림이 있었다.


맛이 충분히 좋아야 친구를 초대해놓고 오래 기다리게 한 내 체면이 설 텐데. 요구르트와 허브를 올려 요리조리 사진을 찍는 바람에 오래 기다린 친구를 조금 더 기다리게 하는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촬영을 마치고 굴라쉬를 처음으로 맛보는 순간 그러한 걱정은 혀 위에서 살살 녹아드는 고기와 함께 부드럽게 목구멍을 타고 꿀꺽 사라졌다. 얼핏 보면 갈비찜과 꼭 닮은 모양새이지만 그 맛은 확연히 달랐다. 파프리카의 향긋하고 화려한 향과 딜 씨드의 감초 향이 은은하게 어우러져 익숙한 듯 전혀 익숙하지 않은 맛을 경험하게 했다. 오래 끓여 형체가 사라져 버리다시피 한 양파는 소스의 점도를 높일 뿐 아니라 자연스럽고 은은한 단맛을 더했다.



무엇보다, 이 불그스름한 색이 정말 먹음직스럽다.



말없이 각자 굴라쉬를 맛본 후, 이제는 그녀의 평을 들을 차례. 애초에 이 요리를 요구한 주인공만큼 그녀의 평가는 이 요리의 승패를 좌우할 터였다.


눈을 감고 맛을 음미하던 그녀가 말한다. 대전에서 먹었던, 얼마 전 동유럽을 다녀온 지인이 자랑하며 얕잡아 보았던 그 굴라쉬와는 비교가 안되게 맛있다고. 어쩌면 그 지인이 헝가리에서 먹었을 굴라쉬라 할지라도 이보다 더 맛있기는 힘들겠다고. 파프리카의 향이 화려하게 터져 나오는 와중에 가니쉬로 올린 상큼트, 소스처럼 녹아내린 달콤한 양파 등 모든 것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고. 곁들인  파스타도 좋지만 밥 한 공기 곁에 두고 뚝딱 비벼먹고 싶다고 말이다.



나는 그녀의 마지막 말을 잘 기억해두었다. 손님을 재운다는 것은 곧 든든한 아침식사까지 먹여서 보낼 수 있다는 것. 겨울치고 따뜻하게 침실로 파고드는 아침 햇살에 절로 잠이 깬 나는 여유롭게 부엌으로 향했다. 냉동실에서 언 밥을 꺼내서 전날 먹다 남은 굴라쉬 소스와 섞고, 치즈를 올려 그라탱을 만들었다. 오븐이 땡 하고 울리는 소리와 함께 그녀가 감동의 탄성을 내뱉기를 기대하면서.


누군가와 맛있는 요리를 나누어먹는다는 일, 그 일의 원초적인 즐거움을 소중한 친구와 함께 누리며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늦어지기 전에 소중한 이들을 내 식탁으로 초대하기로 말이다.





[참고한 사이트]

https://en.wikipedia.org/wiki/Goulash

http://edition.cnn.com/travel/article/paprika-hungary/index.html

https://dailynewshungary.com/hungarian-gastronomical-obsession-paprika-as-an-all-time-favourite/

https://www.thekitchn.com/whats-the-difference-hot-sweet-68134

https://www.smithsonianmag.com/travel/goulash-origins-food-history-atlas-of-eating-soup-smithsonian-journeys-travel-quarterly-danube-180958690/

https://epicureandculture.com/czech-gou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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