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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하여 넘나들다

백남준 작가 회고전

by 쉼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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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시험 문제에 TV로 만든 발명품이 나오면 속으로 반가운 함성을 질렀다.

당연히 백남준이지! 모두에게 떠먹여 주는 문항인데 한 문제 맞혔다고 좋아했었더랬다.


아무튼 교과서에서 자주 보던 백남준 작가의 작품들이 부산 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가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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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책에서 단편적으로만 봤을 때는 TV를 활용한 단순한 창작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백남준 작가가 머리카락에 붓처럼 잉크를 묻혀 종이 위를 기어가며 선을 만드는 영상, 바이올린을 끌고 걸어 다니는 모습, TV로 만든 첼로, 인간의 형상을 한 TV들, 그 TV에서 나오는 영상들이 의미하는 것들.

전시를 보는 내내 시대를 관통하는 심도 있는 시선에 감명을 받았다.


백남준 작가는 동, 서양 가리지 않고 음악, 과학, 미술, 종교 등 사회과학부터 예술분야에까지 숱한 장르를 넘나들며 세계관을 넓혀 나간 분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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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1974년에 선보인 ‘TV부처’이다.

부처님 불상이 TV를 마주하고 앉아 있는 것도 생경한데, TV에 나오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도 철학적으로 다가왔다.

이후 독일에서 열린 전시에서는 백남준 본인이 법의를 걸치고 부처상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봄으로써 스스로 살아 있는 조각이자 부처가 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고 한다.


이런 통찰력은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을까?

세상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호기심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끊임없는 공부와 고민을 통해 마침내 여러 분야를 통섭하기에 이른 것이리라 추측해 본다.


또한 이렇게 다양한 양식의 선을 넘나들면서도 자신의 색을 잃지 않는 힘도 존경스러웠다.

시간이 흘러도 사랑받는 것들은 고유의 가치관을 지니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물리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나는 오로지 눈앞에 직면한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부만 한 것 같아 한탄스러웠다.

이제라도 내면에 중심을 잘 잡고 의식을 확장하다 보면 세상을 더욱 다양하게 바라보는 시각을 가질 수 있을 거라 믿어본다.


저명한 지식인이나 예술가처럼 시대를 통섭할 순 없겠지만, 삶을 정형화된 틀에만 가두지 않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의 인생은 훨씬 풍요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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