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배달 기사님들이 많아지고, 성실한 가장, 청년 아르바이트 등 인식도 달라졌지만, 17년 전쯤에는 이렇지 않았다. 배달 어플이 없었던 때, 가게에서 직접 배달 기사를 고용했고, 대체로 신속 배달을 내세운 중국 요리 집에 배달 기사가 많았다. 그 배달 기사 중 한 명이 우리 아버지였다.
중학생 때, 원룸에 살던 시절. 친구의 화려한 집에 생일 파티 초대받았다. (당시 내 기준의 화려한 집이란, 그 집에 들어가려면 입구에서부터 초인종을 누르고, 인터폰에서 그 집의 엄마 목소리가 우아하게 흘러나오고, 확인, 인증 과정을 거친 뒤 집에 들어가야 하는. 나는 처음 본 신식 아파트를 말한다.)
어찌 저찌 생일 파티를 마치고, 엘리베이터에 6명 정도 친구들이 타고 내려오는데, 자장면 그릇을 찾아가던 배달 기사님이 탔다. 다른 집 그릇을 찾으려는 듯 중간층에서 배달 기사님이 내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마자, J가 외쳤다.
"아씨, 짱깨 냄새. 너네 집은 배달이랑 다른 엘베 안 써?"
웃음기, 농담 기를 담은 카랑카랑한 J 목소리. 친구들 중 누구도 그 친구 말에 답하지 않았다. 다들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 나처럼 아버지가 생각난 사람은 없었겠지... 나는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마음을 다잡고 울긋불긋 가슴속 뜨거운 울분 덩어리를 꾹꾹 눌렀다. 거기서 "우리 아버지도 배달 기사인데, 말이 심하지 않니. 편하게 음식 배달을 해 주는 사람. 직업이야. 왜 그렇게 쉽게 말하니." 말하지 못한 나는, 아버지가 부끄러웠던 걸까.
얼마 후, 언니와 길을 걷는데, 신속배달 깃발을 단 오토바이가 옆을 지났다. 아버지였다. 나는 소심하게 손을 올렸다. 아버지가 알아볼까. 기대하고, 불안한 마음이 섞였던 거 같다. 그때 언니가 엄한 눈으로 내 손을 꽉 잡아 내렸다. 당황했다. 언니도 아버지가 부끄러운 걸까?
"야, 지금 아는 척하면 위험하잖아. 차 다니는데."
언니의 그 말이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었다. 감정을 속이려고 했던 얕은 나의 속임수, 언니의 깊은 마음. 아버지를 위하는 척했지만 내 생각밖에 못 했던 위선적인 나와, 진정으로 아버지를 생각하는 언니. 나는 내 마음이 무척 창피했다.
이후 아버지는 10년 넘게 오토바이를 타며 배달 일을 하셨다. 다른 일도 알아봤지만 답답한 일은 맞지 않는다고 하셨다. 아버지만의 오토바이를 장만했을 땐, 내가 스무 살. 대학생 때 고속버스에서 내리면 아버지가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나를 맞이했다. 뒷좌석에 앉아 헬멧을 쓰고 바람과 먼지를 그대로 맞으며 아버지의 어깨를 꽉 잡는다. 내가 의지했던, 단단하고 기울어진 어깨.
부끄러웠고, 죄송했고, 든든했고, 감사했던. 오토바이 타던 남자. 우리 아버지.